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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하늘 높아지면 호박이 뜀박질이다 메뚜기도 오뉴월이 한 철 여기 싹 저기 싹 갈바람 이마 간지리네 물들어 온다 노 저어라 아침이면 쑥 저녁에도 쑥 쑥 천고마비 날 두고 하는 말 마디마다 매달려 아우성칠 때 아줌마 나섰다 아가야 잘 컸노? 꽁꽁 잘 숨었제? 작대기 술래되어 여기 뒤적 저기 뒤적 난 아직 어려요 호박닢 뒤집어쓴 살풋한 아이 가자미눈이다 아줌마 나는 금빛 얼굴로 익고 싶어 삭풍 된서리에 가슴 시려도 알알이 여문 씨로 써내려 갈 가을날의 일기 그대의 흔적이고 싶어요. 2023. 9. 3.
여름이 지다 삼복염천(三伏炎天)이 뺑덕어멈 고뿔에 줄행랑이더니 미련이 남아 동구밖 뒤안길을 서성이다 가을에게 틀켰다 여름내 익혀 놓았더니 뽀시시하게 화장을 한 바람에 날리는 긴 머리 가을 그년이 눈 웃음 한 번으로 혼자 다 차지했네 오호라 분하고 원통한 여름이 빨갛게 익었다. 가을 그것은 우리 모두 한 날 청순한 꽃으로 피어 하늬바람 갈바람 희롱에 웃고 울다가 가 없는 우주의 먼지로 흩어진다 가을 그것은 신에게 진 여름날의 채무 이행 가을편지 하늘빛 곱던 날 단지 하늘이 푸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되돌아올까 봐 보낸 이 이름은 쓰지 않겠습니다 대신 깨알 같은 그리움들이 쏟아질까 봐 봉투는 단단히 봉할게요. 호박 나는야 윤기나는 9월 풋호박 이력을 붙이자면 호박볶음 호박전 호박 된장찌개 호박 .. 2023. 8. 30.
고기 먹고 싶은 날 침 한 번 꿀꺽 삼키면 될 일을 눈알 부라리며 한바탕 3차 대전을 벌인 날 안 그래도 썰렁한 동네 골목에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몇십 년을 살고도 내 속을 모르는 미련퉁이 여편네라고 두고 봐라 내가 지는지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퀭한 눈으로 어슬렁대는 밴댕이 소가지 흑백 필림 속 이별 장면도 아닌데 싸움하는 날은 꼭 비가 오더라 구죽 하니 풍겨오는 전집 기름 냄새에 어느 골목 염장 지르는 웃음소리 갈 곳 없는 골목길을 돌다가 삼겹살 30프로 세일 문구에 소 잡은데 개 어르대듯 돼지고기 두 근을 끊었다 프라이팬에 두툼한 고기를 얹고 후춧가루 소금질 힐끗힐끗 치지직 기름타는 소리에 통통 빗소리 화음이 널브러지고 아름아름 내다 보네 모를 줄 알고 빗사이로 번지는 기름칠의 유혹 쐐주 한 잔에 베어문 알싸한 청양.. 2023. 8. 30.
가을 시장 혹서에 멍든 群像들이 찾아온 새벽거리 삶의 편린(片鱗)을 찾아 기웃거리는 새벽장터에 얼굴을 붉힌 여름 끝이 앉아있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익고 싶어 곡간 구멍으로 드나드는 골방쥐처럼 삶의 숟가락을 내려놓지 못하는 본능으로 산다고 해도 가끔은 황금빛 석양을 가슴에 품고 시월 구절초에 눈물짓는 청아한 사람이고 싶어 더러는 흥정을 하고 더러는 낡은 벤치에 기대어 한 잔의 쓴 커피로 맞는 늦여름의 일탈 붉은빛 하나로 바꾼 가슴의 바다로 그렇게 가을은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2023. 8. 27.
가을과 연애하기 고개를 숙여 봐 조금 더, 조그만 더 숙이라니까 그래, 그렇게 숙이니까 섹시하네 배시시 웃는 얼굴 비처럼 내리는 귀밑머리 언 듯 언 듯 청치마 사이로 내비친 날씬한 다리에 앉은 갈 볕 말쑥한 바람이 슬그머니 감싼 허리에 채 여물지 못한 나락의 질투가 이바구질이다 바람 저놈이 개 건너 점순이년도 흔들고 왔다지 여기 집적 저기 집적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조년 날씬하다고 흔드는 꼴이 눈꼴 시누나 지그시 눈감은 에스라인 방년 18세 조의 나긋함에 갈 볕 손길이 뜨겁다. 가을빛을 버무리다 풋풋한 몸매에 환장하겠네 나도 한 성질 하는데 이쪽으로 비비고 저 쪽으로 비비고 우리 한 번 땡겨 봅시다 엉큼한 빛에 초가을이 화들짝 놀라다. 2023. 8. 24.
나무잎이 되어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것은 비움이 아니라 채움이다 소금에 절인 자반의 눈알이 뭉그러진 것은 절인 몸뚱이 원대로 하라고 나도 바람 속 한 닢이 되어 秋色의 강으로 흘러야 한다 그것은 내게 남은 최고의 사랑 막간의 소곡 (小曲) 으로 객석의 눈물을 훔치면 굳이 길지 않아도 될 이야기 나는 백로(白露)의 이슬로 맺혀 아침 태양으로 숨는 가을의 술래 2023. 8. 21.
애증의 화장실 처가엔 세 명의 사위가 있다. 내가 맏사위 대장이고 아래로 나보다 세 살 위인 동서가 있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서열 상 내가 형님이니 동서 입장에서는 속으로 껄쩍지근 하겠지만 깍듯하게 형님으로 부른다. 내가 나이가 아래이니 편하게 대하라고 했지만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라고 본인이 극구 사양하는 바람에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처가에 모임이 있어 만나거나 외부에서 만나게 되면 형님, 형님 부르니 처음엔 닭살이 돋았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곧 익숙해졌고 맏사위 대접을 받으니 싫어 할 까닭이 없었다. 막내 사위는 나이가 한참 아래지만 오리지날 서울 본토배기에다 소위 말하는 야탸족, 오렌지족으로 성장한 사람이라 촌수니 서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었다. 몇 번 지켜보다가 너무 함부로 하는 것 같아서 모.. 2023. 8. 20.
그리움을 팝니다 그리움을 팝니다 가슴 시린 계절 그리움을 팝니다 머나먼 은하 셀 수 없는 날을 달려온 태양이 꽃등을 내걸고 호객 중이다. 2023.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