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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야기 1 가을연가가을이다.알싸한 갈바람 부니 어디든 떠나기 좋고 머무르기 좋다.청아한 하늘아래 색색으로 물드는 나뭇잎과 금색으로 변하는 들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주머니에 든 것 없어도 불안하지 않고 내것 아니어도 풍족한 것은 가을이 주는 매직이다.인적 뜸한 시골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서 있어도 지루하지 않음은 봄이나 여름이 줄 수 없는 묘한 반전이다.길가에 핀 코스모스나 백일홍, 마침내 씨방만 남은 봉숭아나 맨드라미를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낯설지 않은 가을이다.누구나 꽃이고 나무며 나를 향해 흐르는 시내다.피고 지는 일이 얼마나 다행인가.갈색으로 초라해진 초목이 비루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떠나야 할 본향의 색이기 때문이다. 가을꽃한로((寒露) 그놈이 차기는 해도속은 깊다지아직저.. 2026. 9. 24.
고양이 무덤 3 (지난 이야기)잡지사에 글 줄이나 대고 쥐꼬리 만한 원고료를 받는 나는 스스로 괜찮은 작가라고 안위하고 살지만 일정한 돈줄이 없는 가장으로 늘 삶의 허기에 쫓긴다.글쟁이의 성을 지켜야 한다는 자존심으로 버티던 나는 어느 날 낯선 이로부터 뜻밖의 제의를 받는다.훗날 나의 아버지가 될 장월남은 6.25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1.4 후퇴 때 단신으로 부산까지 내려와 떠돌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팥죽을 훔쳐 먹다 붙잡혀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ᆢ********************괴팍한 성격의 팥죽 가게 주인은 망령이 난 게 분명했다.툭하면 대를 내려 써도 된다고 주절대는 박달나무 주걱으로 팥죽을 휘휘 젓다가 팥죽이 줄줄 흐르는 주걱을 하늘로 치켜들고 킬킬대며 웃었다."이 거지새끼들아. 내가 밤새 죽을 쒔으.. 2026. 8. 20.
애견 출장입상 (出將入相) 이라는 말이 있다.나가서는 장수가 되고 들어와서는 정승이 된다는 뜻으로, 어떻게든 자신의 처한 위치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주위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그를 바탕으로 자신의 영욕을 채우고자 하는 인간의 속성을 빗댄 말이다.아내와 함께 횡성 5일장을 갔을 때이다.꽤 근사한 쌍둥이 유모차가 지나가기에 카메라를 들었다가 오해를 받을까 싶어 카메라를 내리자 이를 본 유모차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찍어도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아이들이 귀해진 세상에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시니 애국자라며 엄지를 추켜 세운채 덮여있는 유모자 햇빛 가리개를 열었는데..유모차에는 상상하던 해맑은 아이가 아닌 강아지 두 마리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모교에서 열리는 클래식축제에 갔다가 특별한 복장을 한 개를.. 2026. 8. 20.
여름 이야기 9 흐를 때는 모른다청청수여도어느 곳 어느 골에서세차게 흐를 때는 모른다바람소리 새소리 낭창하고사선으로 내리꽂는 폭포아래기암에 가라앉은 홍엽이 참참이 썩어가도아래로 아래로 내려야 하는 수고는 삯이 없다계곡을 내려온 내와 강은 철이 들어넓이와 깊이를 재고피라미 기름종개의 등을 훑었다채단과 혼서를 넣은 함을 보낸 바다가 아슴하면무심히 흘러내린 계곡 청청수 낯빛이 두꺼워진다 세차게 흐를 때는 모른다바람소리 새소리 참참이 썩어가는 홍엽의 기침소리를. 2026. 8. 16.
여름 이야기 8 감자 옹심이하지역에 도착하니털털한 아줌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대관령 감자 봉평감자 해남감자명패를 붙였지만 입성은 매일반누구를 만나느냐 관건이듯감자 팔자 다를 게 없어호사다마는 예외가 없다대관령 감자가 그랬다온 몸을 갈고 닦아마침내 깍뚜기와 선 보는 날뽀시시한 몸매로 눈 흘기면게슴츠레한 눈길로 엄지를 새우는 변덕으로 죽을 끓이는 미식가들의 혀끝이 심란하다. 여름바다긴 머리 짧은치마 방년 18세머스마들 눈이 초점을 잃듯여름바다 그짝이다섣달 비풍(悲風) 쓸쓸하기 그지없어별 수 없는 갈매기 차지더니작렬하는 7월수평선 구름 날고낭창해진 물빛 하나로 팔자를 바꿨다심연으로 찾았던 겨울바다는태양 성형외과에서 얼굴을 싹 뜯어고쳤다. 7월 코스모스그리움 가득하게 맺히던청순하고 여린 꽃이잦은 성형으로 괴물이 된 기후(.. 2026. 7. 19.
여름 이야기 7 비내리는 날 하루 벌이를 나가지 못한 고루한 눈들이하얀 담배연기를 타고 눅눅한 하늘로 오른다 두달치 월세가 밀린 앞집 박씨가 버린끄타지 타들어간 꽁초가비내리는 마당에 원을 그리고 날았다 전집 창가로 번지는기름매 심드렁한 오후에 손 비비는 날비 내리는 날은감추고 살았던 그늘이슬그머니 옆구리를 찌른다 나 싫다고 간 점순이 그년은지금쯤 어디서 늙어가고 있을까진심 반 거짓 반나도 알수없는 밴댕이 속내 장마라는데 큰일이네하루 한 갑이면 족하던타일공 박씨 담배는 반갑이 더 늘었다. 2026. 7. 15.
여름 이야기 6 열무김치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온통 주식얘기다.얼마를 투자해서 얼마를 벌었고 앞으로 전망이 어떻다는 둥, 고속으로 내닫는 주식이라는 천리마 등에 올라타지 못했거나 주식 불신에 아예 관심을 두지 못했던 사람들, 주식을 하지만 업종 선택을 잘 못한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급등하는 몇몇 대장주들을 보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는 하소연이다.불장이 이어지다 보니 열심히 살았지만 앞을 내다보는 기회 감각이 둔해서 부의 대열에 올라탈 수 있는 절호의 동아줄을 잡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근간에 등락폭이 크게 확대되면서 주식투자로 인한 피해자들의 하소연이 봇물을 이룬다.투자의 몫은 개인의 책임이니 사실상 어디다 하소연 할데도 없다밖을 나서면 일거수일투족 모두 돈과 연관된 삶이어서 .. 2026. 7. 15.
여름 이야기 5 강낭콩해쓱한 아가씨4월중순에 세를 들었다훈풍 그윽한 5월 한 달종다리 다녀가고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영감도 다녀갔다세월이 가르쳤는지 5월 손길이 무디지 않아손도 뻗고 다리도 펴고빈 한 살림살이 가짓수가 늘었다뻐꾸기 그놈이 남 둥지를 차지하던 날물만 먹고 자란 새끼 들 눈이 똘방똘방불만 가득한 영감 눈길이 사랑스러워두 달 사글세를 일시불로 치렀다.게시판 선택 2026.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