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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고기 먹고 싶은 날

by *열무김치 2023. 8. 30.

 

 

침 한 번 꿀꺽 삼키면 될 일을
눈알 부라리며 한바탕 3차 대전을 벌인 날
안 그래도 썰렁한 동네 골목에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몇십 년을 살고도 내 속을 모르는 미련퉁이 여편네라고
두고 봐라
내가 지는지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퀭한 눈으로 어슬렁대는 밴댕이 소가지
흑백 필림 속 이별 장면도 아닌데
싸움하는 날은 꼭 비가 오더라
구죽 하니 풍겨오는 전집 기름 냄새에
어느 골목 염장 지르는 웃음소리

갈 곳 없는 골목길을 돌다가
삼겹살 30프로 세일 문구에
소 잡은데 개 어르대듯
돼지고기 두 근을 끊었다

프라이팬에 두툼한 고기를 얹고
후춧가루 소금질 힐끗힐끗
치지직 기름타는 소리에
통통 빗소리 화음이 널브러지고

아름아름 내다 보네
모를 줄 알고
빗사이로 번지는 기름칠의 유혹
쐐주 한 잔에 베어문 알싸한 청양고추에
싸르르 넘어가는 육고기 향연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네
쳬면도 먹어야 양반
입술에 기름칠 배반이 없어
비쭉배쭉 다가앉는 가을비 오후
번드르르한 비게 한 점에
쐐주 한 잔으로 퉁치고야 마는
칼로 물 베기 부부싸움 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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