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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안개 가을 깊어 감추고 싶은 심사(心思) 꼬깃꼬깃 접은 속내 섣달 스무 아흐레 야심한 밤이더니 그까짓 떨어진 잎 하나에 울다니 안갯속에서 손가락을 꼽으며 곧 드러날 백주(白晝)에 희미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2023. 10. 29.
가을애 가을애 여름 내 고백하다 빨갛게 멍들어 버린 창공에 걸린 구애 어쩌면 좋아 올올이 타는 가슴 몇 올 남았는데 2023. 10. 29.
단풍 평생 푸르리라 나도 몰래 접어든 상강 (霜降) 골짜기 아차 이제라도 거하게 한 판 벌리고 질펀하게 취해보자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만산홍엽이 내 술잔에 있구나 2023. 10. 27.
가을 정거장 가을 정거장 마실 나온 바람이 심심한 오후 아무도 없네 버스는 언제 오나요 하루 두 번 단풍잎 같은 버스가 도착하면 타는 사람 없어도 문이 열리고 코스모스 해맑은 얼굴이 웃는다 탈 사람이 없어요 어떡해요 괜찮아 살가운 바람 너의 향기 또 다른 기다림을 싣고 가면 되지 2023. 10. 26.
가을에 앉아 세월은 앉지도 않으면서 날 보고 쉬어 가라고 시린 바람에 마음 다칠까 잎마다 화장을 했다지 삶에 겨운 이 찾아와 눈물짓거든 노랗고 빨간 손 내 보이며 내 속도 이렇게 아팠느니 가을은 곶감처럼 허우대 멀쑥한 시월 그놈이 담홍색 달을 꿰어 내 걸고는 뽀얀 분칠이 피기도 전에 야금야금 도적질이다 오호라 갈길 바쁜 호색한(好色漢) 야금야금 빼먹고 모르는 체 시치미구나 여름 외상값도 떼어먹었다지 우수 띤 얼굴 애틋한 눈물로 마음 줄 것 같더니 빈 꼬지만 내던지고 도둑처럼 달아날 계절 가을 속내 가을 저만치 달아나 다가서면 냉큼 일어나고 쉬어가라 하니 설한( 雪寒) 이르기전 살아 돌아가 그대 눈물을 닦아야 한다고 가을 속내 뻔히 알아도 초설 그날까지 노심초사다. 2023. 10. 12.
가을로 흐르는 강 내와 강이 산과 들에만 있으랴 망망 허공에 빛강이 흐르다 내도 강도 머물러야 할 처소를 찾아 외줄기 끄나풀을 마다하지 않고 꾸역꾸역 파고들어 마침내 오묘한 빛깔로 허물을 벗는다 무에서 유로 신의 창조가 눈앞에 보여도 우리는 세치 혀가 창조한 철학의 배를 타고 닿을 수 없는 섬으로 무한정 흐른다. 2023. 10. 10.
때때수 이야기 50~60년대를 산 사람들은 어머니나 할머니 무릎을 베고 호랑이나 여우가 등장하는 옛날이야기 몇 자루씩은 들었을 것이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이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박수를 치고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엄마 등 뒤나 치마폭에 숨기도 했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가난이 만들어준 선물이었다. 놀거리 먹거리가 시원찮던 시절에 듣던 이야기를 지금 아이들에게 들려준다면 어떨까.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상당수의 동화들이 게임시장에 진출해 있는 데다 눈만 돌리면 휘황찬란한 디지털 기기들이 손에 잡히는 세상이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식의 구전동화는 너무 시시해진 것이다. 필자가 몇 년간 교회학교 교사로 있을 때이다. 아이들을 가.. 2023. 10. 6.
가을비 방 빼세요 시월이 보낸 압류 통보서 급하게 싼 여름보에 비가 내리다 혼기를 놓친 청춘의 이마에 그리는 구월의 낙서 찬 그녀의 작별이 쓸쓸한 허공에 긴 빗금을 긋다 2023.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