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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야기 3 시골 가는 길에 사과농원에 잠시 들렀다.맑은 햇살아래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의 붉은 볼이 햇간이 얼굴처럼 상큼하다."사과색이 좋네요."사과를 수확하던 농장주가 사과 바구니에서 큼직한 놈을 골라 건넨다."이 녀석은 꽃사과를 개량한 품종인데 크기도 제법 크고 아삭한 맛도 꽃사과보다 좋아요."눈을 찔끔 감고 한 입 덥석 베어 물자 시큼 달큼한 사과즙이 입안을 가득 점령한다."어때요. 작년보다 나은 거 같은데요.""올해 폭염이 심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예년 수준은 되었네요. 이곳이 해발 700이니 그 덕을 본 셈이지요."   "와~! 황금 사과도 올해 엄청나게 달렸네요. 몇 년 전만 해도 사과가 작더니 확 달라졌어요."농장주가 느끼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왜요?""흐흐..저 녀석들도 이제 연애를 할 나.. 2024. 10. 9.
가을 이야기 2 들꽃푸른 날에눈곱만큼도 모르던 일들이쌉쌀한 바람이 일면 큰일이 된다그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하지만 들꽃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시큰둥도 하지 않았다칠팔월 염천에도 꼿꼿하게 서 있었고외려 갈빛에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곧강산같이 서리가 내리면자리를 비켜야 한다는 것과쓸쓸한 바람에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다만그 모습에 이곳을 스치는 자들이 쓸쓸해 했을 뿐이다. 2024. 10. 9.
가을 들녘 가을들판에 서서 익어가는 곡식과 바람이 연주하는 교향악을 듣는다팔 분의 육박자로 시작된 들판의 서곡은 사분의 삼박자에서 이윽고 사분의 이박자로 옮겨 탄다사각거리는 가을 잎들의 코러스가 농익은 봄날의 장조로 피었다가 이내 쓸쓸한 단조(短調)로 표정을 바꾸는 것은 들을 귀 있는 자들에게 건네는 또 하나의 복음이다풍요로운 들판이 간직한 강단(剛斷) 있는 속성 우리는 비로서가을의 허와 실이 빚은 떡을 떼며 삶을 논하고 철학을 쓴다. 2024. 10. 1.
고향 고향배설하지 못한 삶의 찌꺼기들이부아를 지르는 날옛 동무 까무룩하게 잊은낯선 돈키호테가 찾아간 곳고향 그곳은여전히 자린고비로 앉아서한 송이 꽃솜털구름 한 점에더부룩한 심사를 덧씌워막무가내 시비를 걸고 나면하늘은 더 푸르고꽃은 숙맥처럼 붉어버선속 같은 속내를 모두 털리다. 2024. 9. 23.
차돌광산 아가씨 5 *지난 이야기*군 입대 전 전라도 군산에서 미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나는 나무 도시락 공장을 운영하다 사업을 접고 깊은 산골에 차돌광산 사업을 시작하다가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광산 일을 전혀 모르는 데다 험한 일을 겪어보지 않은 나는 그곳에서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내는 순영이라는 아가씨를 만난다.하는 일이 고단하여 이성에게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왈가닥 성격인 그녀와 티격대며 서서히 가까워진다.타 지역에 원석을 납품하다가 내 제안으로 우여곡절 끝에 차돌을 가공하는 공장을 세우게 되지만 그 사업은 초반부터 벽에 부딪치게 되고 운영자금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계에 몰리게 된다.군 입대를 연기한 나는 공장 일에 매달리다가 임금을 주기 위해 광산으로 갔다가 순영.. 2024. 9. 14.
차돌광산 아가씨 4 "원석을 먼 곳에 있는 공장으로 대느니 가까운 곳에 공장을 짓는 게 낫겠어요.운반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남는 게 별로네요."내가 공장 얘기를 꺼내자 트럭 기사들이 입을 내밀었다."사업 사자도 모르는 사람이 뭘 안다고ᆢ""저도 여기 일 한지 반 년이 넘었거든요. 저도 이제 알만큼 알아요.""쥐뿔, 반 년 짜리가 알면 얼마나 알겠어. 꼬라지를 보니 햇병아리 같은데"툴툴거리는 트럭기사들을 본 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었다.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는데 매형이 찾아와 공책을 불쑥 내밀었다."뭐에요?""처남이 차돌 공장을 짓는 게 어떠냐고 했다면서?""그런데요.""장인 어른이 공장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시네""에이. 제가 무슨 설계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그려요.""그러니까 쓸데없는 말은 왜 꺼내 가지고... 2024. 9. 14.
차돌광산 아가씨 3 1~2 줄거리군 입대 전 전라도 군산에서 미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나는 나무 도시락 공장을 운영하다 사업을 접고 깊은 산골에 차돌광산 사업을 시작하다가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광산 일을 전혀 모르는 데다 험한 일을 겪어보지 않은 나는 그곳에서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내는 순영이라는 아가씨를 만난다.하는 일이 고단하여 이성에게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왈가닥 성격인 그녀와 티격대며 서서히 가까워지는데...   여우재를 휘돌아 나가는 평창강은 줄기가 제법 커서 하류엔 뗏목을 이용해 한양까지 임산물을 실어 나르는 나루가 있었다.우마차가 다니는 길이 있기는 했으나 온통 자갈 투성이어서 맨몸으로 걷기도 힘이 들었지만 그녀는 산삼이라도 삶아 먹었는지 보통 날랜 몸이 아.. 2024. 9. 14.
차돌광산 아가씨 2 여름 몸살을 일주일 가까이 다구지게 앓은 나는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뭔 일이래유. 겉만 멀쩡하구 속은 허당이구만유."아침 밥상을 들고 온 그녀는 코끝을 찡그렸다.무슨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입안에서만 맴돌 뿐 얼른 내 밭을 수 없었다.뻘쭘하게 서있던 그녀가 숟가락만 들었던 밥상을 들고 나가며 엄마처럼 말했다."뭐니 뭐니 해두 밥이 보약인데 원 이렇게 깨작거려서 낫기나 하것어유?"그녀가 허름한 방문을 닫고 나가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다시 이불을 뒤 쓰고 누워 마분지로 바른 천장을 멍하니 올려보다가 또 이렇게 방구석에서 하루를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땀으로 젖은 퀴퀴한 이불을 대충 개어 놓고 일어 서는데 갑자기 방안이 빙빙 돌았다.벽에 기대어 크게 숨을 들여 마시고 한동안 서 있자 조금 .. 2024.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