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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가을 악보 정거장 이제 내려야 할 때 안녕 낙엽 오선지에 낮은 음표를 그리고 떠나는 가을 주저하지 말고 바지랑대로 떠받친 가을 하늘엔 온갖 이야기들이 매달려 종알거렸다 저 골짜기 갈참나무 의연하더니 갈바람 그년 눈웃음에 광까지 털려 이미 얼굴이 노랗더라 자기는 사랑으로 익었다고 고추잠자리 저렇게 빨갈 것 까지야 실 같은 허리에 빨간 융단을 감고 댓바람에 나대는 꼴이 한로가 쓴 일기를 훔쳐보았구나 입안에 혀처럼 굴어도 무서리 몇 방이면 강가의 물안개처럼 내려앉을 허무한 계절 가을이 누군데 모른 척 하기는 눈 몇 번 끔뻑하고 겨울에 들러붙어 주저하지 말고 2023. 11. 5.
11월 빚잔치 도둑처럼 내린 무서리를 쓸고 해에게 꾸어다 쓴 푸른 빚을 갚는 날 점점이 모여 앉아 내뱉는 홍엽 기침소리에 고리대금 하늘빛이 고깝다 枯葉이라니 몸단장 미소가 곱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이자를 깎을 수는 없지 변덕쟁이 바람 놈에게 준 삯이 얼만데 그윽한 실바람에 따스한 눈빛 마디마디 더듬는 황홀한 손길이 아니었소 난 몰랐네 북풍한설 뒤에 두고 손바닥 털어 줄기마다 올린 수액 쥐어짜더니 빚잔치 끝에 얻어걸린 개평 두고 온 새 눈마다 봄이 숨어 소곤소곤 明年 대출 이야기로 가득하다. 11월 엄마 먹을 거 없어? 엄마 얼굴 보름달이던 어린 날 꽃과 나무가 보채는 얼굴을 몰랐다 떠나는 시월 서러워 몇 줄의 김밥을 등에 지고 산에 오른 날 왔던 길인데 왜 이리 멀꼬 스물두 살의 봄이 몇 천리 향기로운 그대가 웃.. 2023. 11. 1.
흔적 흔적 윤 창 환(뜰) 나무 뿌리를 훑고 온 내는 입동 지단세(地段稅) 가위에 눌린 나무의 애환을 들었다 곧 만산홍엽의 강이 되리라 추풍낙엽이어도 나는 눈물이 많아 떠나는 날 메마른 그대 얼굴 초라하지 말라고 내도 강도 소리쳐 불렀더니 2023. 10. 30.
안개 안개 가을 깊어 감추고 싶은 심사(心思) 꼬깃꼬깃 접은 속내 섣달 스무 아흐레 야심한 밤이더니 그까짓 떨어진 잎 하나에 울다니 안갯속에서 손가락을 꼽으며 곧 드러날 백주(白晝)에 희미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2023. 10. 29.
가을애 가을애 여름 내 고백하다 빨갛게 멍들어 버린 창공에 걸린 구애 어쩌면 좋아 올올이 타는 가슴 몇 올 남았는데 2023. 10. 29.
단풍 평생 푸르리라 나도 몰래 접어든 상강 (霜降) 골짜기 아차 이제라도 거하게 한 판 벌리고 질펀하게 취해보자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만산홍엽이 내 술잔에 있구나 2023. 10. 27.
가을 정거장 가을 정거장 마실 나온 바람이 심심한 오후 아무도 없네 버스는 언제 오나요 하루 두 번 단풍잎 같은 버스가 도착하면 타는 사람 없어도 문이 열리고 코스모스 해맑은 얼굴이 웃는다 탈 사람이 없어요 어떡해요 괜찮아 살가운 바람 너의 향기 또 다른 기다림을 싣고 가면 되지 2023. 10. 26.
가을에 앉아 세월은 앉지도 않으면서 날 보고 쉬어 가라고 시린 바람에 마음 다칠까 잎마다 화장을 했다지 삶에 겨운 이 찾아와 눈물짓거든 노랗고 빨간 손 내 보이며 내 속도 이렇게 아팠느니 가을은 곶감처럼 허우대 멀쑥한 시월 그놈이 담홍색 달을 꿰어 내 걸고는 뽀얀 분칠이 피기도 전에 야금야금 도적질이다 오호라 갈길 바쁜 호색한(好色漢) 야금야금 빼먹고 모르는 체 시치미구나 여름 외상값도 떼어먹었다지 우수 띤 얼굴 애틋한 눈물로 마음 줄 것 같더니 빈 꼬지만 내던지고 도둑처럼 달아날 계절 가을 속내 가을 저만치 달아나 다가서면 냉큼 일어나고 쉬어가라 하니 설한( 雪寒) 이르기전 살아 돌아가 그대 눈물을 닦아야 한다고 가을 속내 뻔히 알아도 초설 그날까지 노심초사다. 2023.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