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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골의 전설 2 "여러분, 봉수 댁인가 뭐시긴가 여우 같은 년이 동네 남정네들을 아주 바보 등신을 만들고 있는데 그냥 있을 거 에요?" "맞아요. 남정네들이 아주 설설 긴다는데 무슨 수를 써야지 이러다간 동네 모두 비리게 됐어요." "달식이 그 등신도 그 모냥으로 당했다지, 큰소리 치던 완수가 한 방에 당한 걸 보면 고년이 보통 년이 아닌 건 확실하니 대책을 세워야 해요." "무슨 대책?" "그년을 내 쫓던지, 안 그러면 우리가 가서 요절을 내 뿌리던가 해야지 이러다간 동네 남정네들 마카 등신 되겠소." 모두들 웅성거리자 도시서 시집온 서울 댁이 나섰다. "어머, 모두들 이상하시네요. 그 여자가 동네에 무슨 해꼬지를 한 거도 아니고 엄연히 남친이 있는 몸인데 동네 남자들이 일방적으로 몰려가서 일을 벌린 거잖아요. 그러면.. 2024. 2. 16.
봉화골의 전설 1 "이보게 자네 그 여자 본 적이 있나?“ "누구?" "저기 봉선화 골 산 밑에 사는 여자 말이지 ." "아..그 여자. 나도 멀찍이 몇 번 보기는 했지." 달식은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땅 꺼지겠네. 대낮에 웬 한숨이야." 달식이 담배를 꺼내 물자 현석이 성냥을 그어 그의 입에 대었다. "난 말이야. 언제부터 인지 야밤에 그 여자가 산다는 산 밑을 자꾸 보는 습성이 생겼어." 달식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웅얼거리자 현석이 입맛을 다셨다. "자네만 그런 게 아니야. 이 마을에 사는 사내 놈 치고 그렇지 않은 놈 몇 이나 있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누가 봐도 홀랑 반할 절세미인이 왜 이런 산골짝에 와서 사는지 귀신이 곡 할 일 아닌가?" "그렇긴 해. 더구나 봉수 그 놈이 어디 그 여.. 2024. 2. 15.
봄 이야기 1 그 봄날의 벤치 이름 모를 곳을 지나다 양지가 내미는 손짓에 다가 앉은 벤치 뭇 나그네가 남기고 간 낯선 온기가 여기 당신이 앉을 차례라고 인연은 얼음 밑을 훑고 지나는 여울 내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위해 겨우내 그렇게 흘렀더니 표정 없는 벤치도 그랬다 봄이 꾸어온 몇 줌 볕이 살그머니 깔아 놓은 온기에 앉아 빈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긴 한숨으로 들여 마신 하늘 먼 그날을 지나와 이곳에 닿아 스쳐간 사람처럼 해를 더하는 내귀에 닿으라고 가녀린 봄에게 시비를 걸다가 무심히 덮는 눈커플 아지랑이가 턱을 괸 그 봄 날의 벤치에 일곱 살 아이가 앉아 졸고 있었다. 딸기 뜰 윤창환 연인의 입술이 붉어야 할 까닭이다 떨리는 입맞춤이 달콤해야 할 까닭이다 실팍한 엉덩이와 가녀린 허리를 보듬고 안아야 할 까닭이다 .. 2024. 2. 14.
담벼락 담벼락 아무도 오지 않았어 십 오 년 전인가 멀쩡한 울타리를 허물고 불럭을 쌓더라 싸리나무 울타리 여름이면 나팔꽃이 바락바락 기어올라 해맑게 웃고 가을 그 녀석이 데려온 고추잠자리도 꼴 값을 떨었지 초승달이 빼꼼이 걸린 섣달 고뿔이 주저리 주저리 매달려 아련한 봄 꿈을 꾸었는데 못되 먹은 영감탱이 해거리 담장이 귀찮다고 쫓아낸 나무 울타리 덕지덕지 바른 시멘트 담벼락보다 먼저 가버렸어 지난해 늦가을 앞집 등 굽은 할마씨가 해 먹은 호박죽일 거야 윤사월 담장 밑에 뾰족이 올라온 그 녀석을 파내 버리려다 그래 너도 살겠다고 나왔지 에라, 인심 썼다 여름 내 곡간 골방쥐처럼 들락거리다가 지난달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아니, 눈알 번쩍하는 거 횡재수 같은 거 평생 한 번은 있다는데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까 머리.. 2024. 1. 7.
눈사람 눈사람 정 이월 혹한 눈물을 뭉쳐 보름달 빚고 사 나흘도 가지 못할 미소를 새기다 북서풍 속내 둥글게 감싸 안으면 나직히 손 내미는 머나먼 나라 안녕 동구밖을 내 닫던 소년이 달려와 하얀 마음 파란 나라로 뛰어가고 아지랑이 들녘 나물 캐던 소녀가 단발머리 무명 치마로 살포시 안기다. 2024. 1. 5.
찔레 기쁨 슬픔 미움 그리움을 꾸지람 한 번 없이 잠재우는 방법 쓸쓸한 들판에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것 찔레 가을이 달아 놓은 빨간 등불 겨울 초병으로 뽑혀 근무 중 한설 서러워 떠는 애 오면 몇 개 따서 손에 쥐어 주고 굴뚝새 파고 들거든 몇 알만 꾸어 줘 빨간 입술을 지우면 안 돼 언덕 넘어 나풀나풀 봄 그 애가 깨금발로 흘금흘금 훔쳐보고 있더라. 2024. 1. 4.
새해 소망 새해 소망 새해가 밝았어요 할머니 복 많이 받으세요 글쎄 나 같은 사람이 많이 받을 복이 있을랑가 몰것네 짠지에 밥술이나 지대루 삼키면 좋겠구 저기 뭐시냐 볕이나 잘 들어서 찬물에 주물러 넌 같잖은 빨래나 잘 말르면 좋컷어 2024. 1. 3.
연말 맛이 좋아? 응 최고 누가? 옥수수 그리고? 할비도 최고 할비가? 할비가 키웠잖아 이 겨울이 쓸쓸하지 않다 치켜세운 여린 엄지에 기쁘고 슬펐던 한 해의 기억들이 편안한 표정으로 내려 앉는다. 2023.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