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583

겨울이야기5..소 2021년 소의 해다 소는 농촌과 도시를 잇는 대들보였다. 농기계에게 농사일을 내주었지만 2~30년 전만 해도 소가 없이는 농사를 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인 존재였다. 제주도에서 감귤나무가 대학나무라는 별칭을 얻었다지만 도시에서는 우골탑이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 조달의 원천이었다. 느리지만 변함이 없고, 힘이 세지만 해하지 않고, 수없는 노동에 시달려도 우직했던 황소. 농경사회의 주인공에서 우리의 입맛을 위한 대상으로 역할이 바뀌었지만 소 본연의 성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직한 소같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꽃피는 봄이오면 고통의 눈물을 거두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파란편지 2021.01.01 14:27 신.. 2021. 1. 1.
희망을 쓰다 세월의 흐름을 시위를 떠난 화살에 비유하지만 바이러스가 점령한 2020년은 유독 길고 지루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당연하며 응당 그렇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불가항력의 도전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드러낸 평범한 삶의 맨얼굴을 발견합니다. 어떡하든지 더 좋은 환경에서 풍요롭게 살아야 하다는 무언의 强迫觀念속에 살아왔던 우리들에게 바람 같은 바이러스는 수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도전하는 자만이 쟁취할 수 있다고 두 주먹을 쥐고 살았지만 왔던 길을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변함없이 찾아왔던 아침과 푸른하늘, 그리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소원이 되었습니다. 뿌리 없는 나무토막에서 생명이 고개를 내밉니다. 설령 기약이 없더라도 그러므로 산다는 희망을 놓습니다. 갈.. 2020. 12. 31.
겨울이야기4.. 연말 성탄절과 연말이 다가왔지만 거리는 무표정하다. 젊은 날, 가슴을 설레게 하던 크리스마스 트리나 캐럴도 사라지고 빨간 우체통 앞에서 시린 손 비비며 그리운 사람에게 보내던 성탄 엽서나 연하장도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세상사 알 수 없다지만 막상 발등에 떨어진 얼른 끄지도 못할 가공할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피아를 식별하지 못할 만큼 삶의 정서를 바꾸어 놓았다. 집합 금지가 권고되면서 전국의 이름난 해맞이 명소가 인적 없는 새해 첫날을 맞게 생겼다. 당장을 살아야하는 사람들에겐 새해맞이가 삶의 연장선에 놓여있지만 적막 속에 떠오를 민낯의 태양은 고요의 바다에 부담 없이 유영하게 되었다. 매일이 고단한 태양에게 잠시 새벽의 자유가 주어진다고 억울해할 까닭이 있을까. 동백아가씨 작년 초겨울 제법 큰 오픈 마켓이.. 2020. 12. 25.
겨울이야기2..겨울빛 *마지막 점심 "점심 먹으러 왔어요." "오늘 문 닫는데 용케도 찾아오셨네." "예? 문을 닫는다구요?" "일단 앉으세요. 그래도 찾아온 손님인데..." 차려온 순두부 백반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자 식당 주인은 멋쩍게 웃었다. "단골이셨는데 결국 끝을 보이고 마네. 특별히 순두부에 낚지 한 마리 넣었으니까 잘 드시고.." "그럼 오늘까지만 장사하고 그만두는 겁니까?" "에이, 더 잘 아시면서.." "오래 하셨잖아요. 어디 아프신가?" 대답 대신 식당 주인은 식탁과 의자들을 한 곳으로 밀었다. 아무도 없는 식당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고 일어서자 이미 해는 서쪽에 걸려있었다. 장사를 그만둔다는 말에 카드를 내밀기 그래서 지폐를 내밀자 주인은 손사래를 쳤다. "됐어요. 그동안 팔아준 걸로 퉁쳐요." "아니지요. .. 2020. 12. 19.
가을이야기27..가랑잎 초등학교 (*위 글은 이웃 블친이신 지우당 님의 블로그에서 양해를 구하고 옮겨온 것이다) 가랑잎 초등학교라니.. 여전히 남아 있겠지 싶어 검색을 해보니 이미 폐교된 지 오래였다. 본 이름은 삼장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유평분교로서 1970년대 이곳에 취재를 하러 왔던 기자가 가랑잎 국민학교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가을이 되면 산골 오지에 있는 이 학교 운동장에 온갖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아이들이 가랑잎을 치우기에 바빴다는 것이다. 강건너 돌아다 보면 이 학교에서 배우고 자란 아이들은 고운 기억을 지니고 있으리라. 살아가면서 삶의 풍파를 만날 때마다 어린날의 기억들로 인해 미소 짓는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 하나만으로도 자연속에 묻쳤던 산골 초등학교의 역할은 다 하고도 남았다는 생각이다.. 2020. 11. 25.
가을이야기26..흔적 마지막 남은 가을볕 까지.. 한 해를 살아가는 사람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따스한 양지는 늙어 죽는 그날까지 영원한 동반자다. 등을 기댈 수 있는 따스한 양지 고단한 삶을 기댈 수 있는 따스한 양지가 자꾸만 좁아진다. 태양빛을 타고 숨어들어간 가을색 침묵의 땅은 속만 깊은 게 아니라 가끔은 짙은 연지도 바른다. 하늘은 허허롭지만은 않고 끓는 태양도에도 정분은 숨어있다. 그대를 향한 내 젊은 날의 사랑이 저런 빛깔이었을까. 미끈한 무를 보는 순간 무다리, 무 같은 얼굴은 모두 도망을 가버린다. 화장은 우리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무를 썰어널다. 다시는 안 한다고 다짐한 맹세는 무를 보는 순간 까마귀 고기를 먹었다. 앞으로 나란히~ 남은 갈변을 훔치기 위한 무들의 입학식 옥상을 오르내리며 슬금슬금 꺼내 갈.. 2020. 11. 23.
가을이야기24..뭘 해 먹고 삽니까? 손바닥만큼 심었던 콩 타작을 했다. 시집와서 처음 해봤다는 키질을 이제 능숙하게 해내는 아내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콩을 까부른다. 영락없는 엄마 모습이다. "누런 콩이 김 모락모락 나는 허연 두부로 보이네" 도리깨질을 하다 말고 옆에 쭈그려 앉아 먹는 타령이다. "너구리 굴 보고 피 돈을 내어 쓰세요." 훠어이~ 검불은 날아가고 노란 콩만 남거라. 빌어먹을 코로나도 이렇게 까부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바이러스는 콩알을 악착같이 붙들고 이 겨울을 넘길 셈이다. 여름 내 내렸던 비 탓에 올 호박 농사는 허당이다. 그나마 때깔도 좋지 못해 그야말로 논두렁 호박이 됐다. "아니, 저거 썩은 거 아닌가?" 구석에 박혀있는 거무튀튀한 호박이 불편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이봐, 이만큼이라도 된 .. 2020. 11. 15.
가을이야기22..그 가을의 찻집 바이러스가 지나간 늦가을 오후 붉은 열정이 스러진 가을 찻집엔 빛바랜 낙엽과 스산한 바람이 대신 앉아 있었다. 어디로 가야하나... 순리로 지는 일들마저 지난하다. 2020.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