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석을 먼 곳에 있는 공장으로 대느니 가까운 곳에 공장을 짓는 게 낫겠어요.
운반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남는 게 별로네요."
내가 공장 얘기를 꺼내자 트럭 기사들이 입을 내밀었다.
"사업 사자도 모르는 사람이 뭘 안다고ᆢ"
"저도 여기 일 한지 반 년이 넘었거든요. 저도 이제 알만큼 알아요."
"쥐뿔, 반 년 짜리가 알면 얼마나 알겠어. 꼬라지를 보니 햇병아리 같은데"
툴툴거리는 트럭기사들을 본 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는데 매형이 찾아와 공책을 불쑥 내밀었다.
"뭐에요?"
"처남이 차돌 공장을 짓는 게 어떠냐고 했다면서?"
"그런데요."
"장인 어른이 공장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시네"
"에이. 제가 무슨 설계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그려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말은 왜 꺼내 가지고..여튼 대충이라도 그려 봐."
공책과 연필을 받아 들고 고심을 하다가 머리가 지끈거려 숙소 아래로 흐르는 개울가로 내려갔다.
원석을 가공하는 기계는 들여 놓으면 될 것이고 전기를 끌어오고 물을 확보 하는 게 큰일인데 어떻게 하는 게 큰 비용 안 들이는 방법일까.
개울가에 멍하니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머리를 쥐어 짰지만 이 분야에 아는 게 거의 없는 탓으로 손가락으로 허공을 찌르는 꼴이었다.
하긴 나무 도시락 공장을 지을 때만 해도 형편은 비슷했다.
그러나 가내 수공업이나 마찬가지인 나무 도시락 공장과는 한참 동떨어진 차돌 가공 공장을 짓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건축 비용 면에서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무슨 생각으로 그러셨을까, 공장을 지을만한 돈이 있을까?
어디선가 돌멩이가 날아와 개울 물에 떨어졌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유?"
"아이, 깜짝이야. 놀랬잖아요. 기척이라도 하던가."
"옆에서 불러도 모르던데 뭘 놀래유, 평소 지은 죄가 많은가 부네."
웬일로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그녀가 내려다 보고 웃고 있었다.
"생각 할 게 좀 있어서요. 여기는 왜 내려 왔어요?"
"아까부터 안 보여서유. 난 또 호랭이가 물어갔나 해서 걱정이 되어서유.
멀쩡허네유."
"하여튼, 말 하는 꼴이.. 아가씨가 무슨 입이 그렇게 거칠어요.
이 골짝에 호랑이가 있기는 해요?"
"건 모르지유. 가끔 호랭이 터럭지를 본 사람이 있다고 해서유."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근디유. 뭘 그렇게 생각을 깊이 해유?"
"그 쪽이 알 일이 아니니까 알려고 하지 말아요."
"고상한 척 하기는, 빨랑 와서 저녁이나 먹어유. 모두 찾고 있잖아유."
들은 척도 않고 앉아있자 그녀가 내려와 내 팔목을 나꾸었다.
"왜 이래요. 내가 애도 아니고.."
"말 안 듣는 애 맞거든유. 아주 드럽게 안 들어유. 잔소리 말구 빨랑 와유."
그녀가 우악스럽게 팔을 잡아 당겼지만 내심 싫지 않았다.
내 팔목을 움켜잡은 그녀의 커다란 손이 이른 봄 날 나풀거리며 날아가는 나비 같았다.
그녀의 머리에서 칡꽃 냄새가 풍겼다.
어디 선 가 엄마의 무릎을 베고 듣던 옛날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집까지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앞 서 걸어가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시간이 유독 짧게 느껴졌다.
말을 꺼냈으니 하지 않을 수 없어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듯 대충 공장 그림을 그려 아버지에게 보여 드렸다.
그림을 바라 보시던 아버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 보셨다.
"왜 그러세요?"
"니는 이제 전라도로 안 가나?"
"글쎄요. 군 입대도 가까웠고 거기는 이제 정리하고 와야지요."
"그래 , 잘 됐다. 군에 가기 전에 공장 짓는 거나 돕다 가거라."
그러나 공장을 짓는 일은 간단한 게 아니었다.
관을 수 십 차례 드나들며 수 십 가지에 이르는 서류를 첨부해서 제출하고 몇 차례에 걸쳐 현장 조사를 하는 등의 까다롭고 긴 진행이 어찌 보면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닌 그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군에서 여러 차례 만난 근방에 사는 양씨가 나를 불렀다.
"에이, 이제 보니 윤씨가 맹탕이구만 . 아직 젊어서 그런가?"
"왜 요?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급행료라는 게 있잖아. 그렇게 범생이로만 하다간 해 꼴딱 넘어 간다니까."
"급행료?"
양씨가 내 귀에다 대고 속닥거렸다.
"뭐가 오가는 게 있어야 정이 붙지.가는 쩐이 있어야 오는 떡이 있다니까
젊은 사람이니 댐박에 알아 듣겠지 오케이?"
"아니, 그건 변칙적인 방법이잖아요. 그게 말이 돼요?"
"에혀, 말이 되지 그럼. 지금까지 내가 한 말 똥꾸녕으로 들었어?
자고로 기름을 칠하면 뻑뻑하던 문이 스르륵 열려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까 좋게 생각 하라고.
자네, 앞으로 잘 되면 나한테 과외지 내야 하는 거 알지?"
빌어먹을..
급행료의 효과가 별로였는지 그 뒤로도 공장을 짓기까지 수 개월이 더 걸렸다.
군 입대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공장을 짓는 일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 들었지만 입대 일이 가까워지자 마음은 더욱 초조해지고 있었다.
공장을 짓는 일은 돈과의 전쟁이었다.
캐온 원석을 잘게 부수어 건축 자재나 조경용으로 쓰도록 세분화 하는 과정이 전부여서 공장에 놓을 기계는 단 네 대에 불과 했지만 문제는 기계가 모두 외국산이어서 가격이 만만찮았다.
동분서주 귀띰이 될 만 한 곳은 다 돌아다니며 알아보았지만 이런 기계를 쓰는 곳도 거의 없었고 가격의 부담 때문에 중고 기계를 알아보려고 해도 그 자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성냥갑 같은 철골 건물을 짓고 할 수 없이 그동안 외면했던 원석 납품하던 공장으로 찾아갔다.
납품 대신 가공 공장을 짓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공장 대표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실수를 했어요. 보기엔 가공 공장을 지으면 수지 맞을 것 같지만 앞으로 남고 뒤로 밑져요. 그냥 돌을 대는 게 좋을 텐 데 윤 목상 어른이 왜 그러셨는가 몰라."
"몇 가지 도움을 받을까 해서 왔는데.."
말끝을 흐리자 공장 대표는 해 줄 말이 없다면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그러진 얼굴엔 섭섭함이 가득했다.
"저기, 기계에 대해 여쭈어 볼게 있어서.."
"공장을 짓겠다고 생각했으면 이미 자초지종 다 알아보았을 텐 데 나한테 뭘 물어볼 게 있다고... 거, 가서 전하시우.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내가 사람을 잘 못 봤다고."
그가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간 뒤 한동안 앉아 있었지만 그는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고 기계를 들여온 것은 결국 아버지의 힘이 컸다.
그간 목제업이나 광산일을 많이 하셨던 인연으로 줄이 닿아서 우여곡절 끝에 대형 파쇄기와 분쇄기, 대형 컨베어 벨트와 걸름망을 들여올 수 있었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 될 줄 알았던 공장 가동은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엔 조용하던 마을 사람들이 차돌 공장이 들어서면 동네가 오염된다며 집단으로 항의를 시작한 것이다.
평소 안면이 많았던 이웃이지만 주동자 몇 사람이 바람을 넣었는지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어 있었다.
마을 분들을 불러 다과를 베풀고 차돌공장은 환경 위해 사업이 아니니 이해를 구한다고 수 차례 설득을 했지만 허사였다.
소음과 함께 분진, 돌가루 ,잦은 트럭의 운행으로 인한 교통사고 유발 등을 들고 나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한다고 윽박질렀다.
차라리 처음부터 반대를 했으면 시작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공장을 짓고 기계까지 들여온 터라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공장이 마을과 상당히 떨어진 곳이고 농경지와 동떨어진 산 밑이라 큰 상관이 없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엔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니 공장 가동을 강행하겠다고 나섰다.
공장 가동을 시작하던 날 마을 사람들이 공장 앞에 모여 공장으로 들어오는 트럭을 막아 섰다.
일부는 아예 길바닥에 들어 누웠다.
일이 커지자 아버지는 매형과 나를 불러 역정을 내셨다.
충분한 시간과 금전을 주었는데 왜 이 지경을 만들었냐고 나무라셨지만 혼이 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당장이 급했다.
화물차에 실어 온 차돌은 하역도 못하고 한나절을 서 있었지만 동네 사람들은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녁까지 대치를 하다가 땅거미가 밀려오자 버티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가고 그제서야 트럭에 실었던 차돌을 적재함에 부릴 수 있었다.
"우리는 내일 농삿일을 못 하더라도 또 올 거니까 알아서 하라 구."
이런 일을 처음 겪는 나는 점심도 거른 채 종일 서 있느라 온 몸이 파 김치가 되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다시 몰려온다는 말이 협박이 아닌 공포로 다가 왔지만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
일도 해보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망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복잡한 심경으로 공장문을 닫고 나오자 정문에 뜻밖에 그녀가 서 있었다.
"아니.저녁 늦게 여기는 웬일이에요?. 오늘 광산에 안 갔어요?"
그녀는 대답 대신 공장을 가리켰다.
"오늘 동네 사람들이 몰려 왔다면서유. 뭐래유?"
"아, 됐구요.대답하기도 싫어요. 그거 알아서 뭐해요. 뾰족한 방법이나 있으면 모를까."
"아이구, 남자가 배짱이 있어야지유. 고까이꺼에 벌써 두 손 두 발 다 들었나 보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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