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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단편, 장편

차돌광산 아가씨 2

by *열무김치 2024. 9. 14.

 

여름 몸살을 일주일 가까이 다구지게 앓은 나는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뭔 일이래유. 겉만 멀쩡하구 속은 허당이구만유."
아침 밥상을 들고 온 그녀는 코끝을 찡그렸다.
무슨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입안에서만 맴돌 뿐 얼른 내 밭을 수 없었다.
뻘쭘하게 서있던 그녀가 숟가락만 들었던 밥상을 들고 나가며 엄마처럼 말했다.
"뭐니 뭐니 해두 밥이 보약인데 원 이렇게 깨작거려서 낫기나 하것어유?"
그녀가 허름한 방문을 닫고 나가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다시 이불을 뒤 쓰고 누워 마분지로 바른 천장을 멍하니 올려보다가 또 이렇게 방구석에서 하루를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땀으로 젖은 퀴퀴한 이불을 대충 개어 놓고 일어 서는데 갑자기 방안이 빙빙 돌았다.
벽에 기대어 크게 숨을 들여 마시고 한동안 서 있자 조금 안정이 되었다.
"저기요, 나 좀 봐요."
몇 번을 불러도 기척이 없었다.
"거기 없어요, 누구 없냐구요."
괜한 부아가 치밀어 올라 있는 힘대로 소리를 지르자 빼꼼히 문을 연 그녀가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 귀머거리만 살지 않걸랑요. 아까는 암 말 않다가 왜 그러는데유. 무슨 대감마님이 종을 부르는 거 같구만요."
"아니, 그게 아니고 너무 어지러워서 그래요."
"그럼, 지가 부축해 줘유?"
"됐구요. 제 아버지 한테 연락을 좀 했으면 해서요.
그런데 오늘 일은 왜 안 갔어요?"
"그러니까 그게..오늘 일 안 나와도 일당 쳐서 준다구 집에 있으라고 하더구만유."
"누가 그래요?"
"북어 아저씨유. 그짝이 마이 아프니까로 돌봐 주라고 그런 거 같아유."
빙긋이 웃으며 태연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애도 아니고 뭘 돌본다는 거에요. 좋겠어요. 일도 안 가고 일당 받아서.
난 됐으니까 일 보세요."
"희야한 사람이네. 객객 부를 땐 언제고 왜 이랬다 저랬다 그래유."
길게 땋은 머리를 감아 올리던 그녀가 문을 닫고 나가자 다시 한기가 몰려왔다.
빨리 전라도로 내려 가야 한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일주일 가까이 방안에 누워서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인지 일어서기만 하면 천장이 빙빙 돌았다.

중복이 가까이 되어서 몸이 좀 회복이 되었다.
아버지와 매형이 쇠고기를 끊어다 곰국을 끓여준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체력을 좀 키우라고. 원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쇠도 씹어 먹을 한창 나이에 꼴이 그게 뭐여."
끌끌 혀를 차던 매형이 장인이 허락 했으니 며칠 뒤 차돌 트럭을 타고 집으로 가서 전라도로 내려 가라고 했지만 아버지께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냥 가기엔 마음이 걸렸다.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신경 쓰지 마세요."
"원, 지금까지 신경을 쓰게 만들어 놓고는..
그건 처남이 알아서 하고, 낼 모래 복 날 광산 인부들과 복 추렴을 하기로 했으니까 그거나 먹고 가더라고."
"복 추렴? 그게 뭔데요?"
"저렇게 답답하기는, 복 날 원채 더우니깐 개고기 닭고기로 몸 보신 하는 거 말이지.
밥 대놓고 먹는 아가씨네 집에서 할 거니까 그리 알라고."
다시 전라도로 내려가라는 말이 반가웠던 탓인지 일주일 여 앓은 몸살이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복 날이 되자 그녀의 집안이 떠들썩해졌다.
마당 엔 큰 닭들이 가득 담긴 무쇠솥이 걸리고 밭 둑 한쪽에서는 인부들이 모여 뭘 태우는지 매캐하고 비릿한 연기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특별히 할게 없었던 나는 부지런하게 그릇을 닦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밭 둑에서 연기가 나는데 불이 난 게 아니에요?"
나를 한 번 힐끗 돌려다 본 그녀는 뭐가 우스운지 큭큭대며 혀를 낼름 내밀었다.
"그거 끄슬구고 있어유."
"그거? 그게 뭔데요?"
"아 참, 복날 하면 떠오르는 거 몰라유?"
"닭? 닭은 커다란 무쇠솥에 가득하게 있던데."
"아이구, 저 나이가 되도록 뭘 봤는지 모르것네. 혼자 아는 척은 다 하더니.
볏짚으로 개 끄슬구고 있잖여유. 궁금하믄 한 번 가 봐유."
그녀의 말에 놀란 나는 얼른 그곳으로 갔다가 새카맣게 그을린 개 몸뚱이를 보고 소스라 치게 놀랐다.
코를 막고 부리나케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는지 그녀가 같잖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뭘 그렇게 놀라유. 촌에 살았다민서 .."
"아니, 왜 개를 저렇게 새카맣게 태워요?"
"태우는 게 아니구유. 원래 저렇게 짚불에 꾸슬려서 털을 없애야 맛이 좋아유.
이따가 한 그릇 해 봐유."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고 태연하게 말하는 그녀가 아주 낯설게 다가왔다.
"그나 저나, 혹시 저 개가 마당에 돌아 다니던 검둥이 아니에요? 아까부터 보이지 않던데."
"맞아유. 원래부터 복 날에 잡아 먹으려구 기르던 거예유."
"아이고야, 세상에..아무리 그래도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잡아 먹는다 구요?"
"여기선 원래 그래유. 그게 뭐 어때서유?"
************************

그녀가 개고기와 닭고기를 큰 그릇에 담아 내밀었지만 개고기는 물론 닭고기도 입에 댈 수 없었다.
게걸지게 먹어 대던 인부들이 깨작거리는 나를 보더니 비아냥거렸다.
"원 포스랍기는, 복 날 개고기 만큼 보신이 되는 게 어디 있다고 한 지름도 안 먹어 밥맛 떨어지게. 윤 사장이 외아들이라고 손등에 올려놓고 키웠나 부네."
"내말이. 자고로 남자는 보신탕도 먹고 술도 퍼 마시고 ,기집질도 하고 해야 사내지. 윤 사장은 투전에, 술에, 기생질에 타고난 팔도 건달인데 아들은 왜 저모냥인지 모를 일이네. 인생 공부 다시 해야긋어."
광산 인부들이라 잠자코 듣고 있었지만 부아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 없었다.
그녀가 다시 닭고기를 담아다 주었지만 성질이 난 나는 그릇을 밀쳐내곤 결국 소리를 질렀다.
"무슨 그따위 되지도 않는 말을 해요.먹고 안 먹고는 내 자유지. 개고기를 먹어야 남자가 되나. 그리고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잡아먹는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술이 거나하게 취한 인부들이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명색이 윤 사장 아들이고 감독이라고 해서 참았는데 그 아부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도 다 허따배기 말이여. 하긴 꼼생이가 뭘 알것어. 오늘 같은 날 걸판지게 들이 부어도 시원찮을 판에 에이, 기분 드럽구만."
인부들의 불만에 손사래를 치던 아버지가 허허 웃으며 술잔을 따르자 다시 술판이 이어졌다.
내 옆으로 다가온 그녀가 내 팔을 잡아 당겼다.
왜 그러느냐는 눈짓에 그녀는 코끝을 찡그리며 고개를 까닥였다.
그녀를 따라 쑥 둘러 빠진 정지깐으로 들어선 내게 그녀는 삶은 옥수수를 내 밀었다.
"아니, 도회지서 살다 왔다면서 순진한거에유. 아니면 아예 모르는거예유.
답답하구 아슬아슬해서 못 보겄네유."
"처음 겪는 일이라 그래요. 됐어요. 그만 나가 보세요."
부뚜막에 걸쳐 앉은 그녀가 부지깽이로 바닥을 긁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저기, 그러지 말고 우리 보쌈 놓으러 갈까유?"
"보쌈?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가만 보니까 여기 있어봐야 혼 만 날 것 같구유. 내 시키는 대로 따라와 봐유."
후다닥 무언가 챙긴 그녀를 따라 뒤란으로 빠져나온 나는 마치 마라톤을 하는 것 같은 그녀를 따라 붙이느라 땀을 비 오듯이 쏟았다.
"좀 천천히 가요. 나 죽겠어요."
"빨랑 따라 와유. 저녁에 가서 오늘 벌린 설겆이 해야 해유."
허부덕 거리며 뒤쫓아 가던 나는 결국 7월말 염천 길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3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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