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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단편, 장편

차돌광산 아가씨 3

by *열무김치 2024. 9. 14.
 
 
1~2 줄거리

군 입대 전 전라도 군산에서 미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나는 나무 도시락 공장을 운영하다 사업을 접고 깊은 산골에 차돌광산 사업을 시작하다가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
광산 일을 전혀 모르는 데다 험한 일을 겪어보지 않은 나는 그곳에서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내는 순영이라는 아가씨를 만난다.
하는 일이 고단하여 이성에게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왈가닥 성격인 그녀와 티격대며 서서히 가까워지는데...

 

 

여우재를 휘돌아 나가는 평창강은 줄기가 제법 커서 하류엔 뗏목을 이용해 한양까지 임산물을 실어 나르는 나루가 있었다.
우마차가 다니는 길이 있기는 했으나 온통 자갈 투성이어서 맨몸으로 걷기도 힘이 들었지만 그녀는 산삼이라도 삶아 먹었는지 보통 날랜 몸이 아니었다.
강 줄기를 따라 점점이 심기워 있는 미류나무가 강바람에 부산을 떨었다.
강 중간 중간 고기를 잡는 사람들이 그림처럼 보였다.
앞장서 뛰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나풀대는 한 마리 나비처럼 보이자 갑자기 힘이 솟고 뜀박질이 빨라졌다.
이상하게 숨이 차지 않았다.
바짝 달구어진 한 낮의 열기로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낯선 세계로 들어간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먼저 도착한 그녀의 모습이 부드럽게 휘어 나가는 강줄기에 하얀 점으로 비쳤다.
바지를 둥둥 걷어 올린 그녀가 등에 지고 온 짚으로 만든 망태기에서 넓적한 사발을 몇 개 꺼내어 놓더니 이내 무언가를 싸서 사발에 넣었다.
익숙한 손동작으로 보아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길게 땋은 그녀의 머리가 땅바닥에 닿을듯 말듯한 모습이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광산에서 일을 하던 모습과 다른 느낌이었다.
풍만한 뒷태가 여느 때와 달리 보여서 멍하니 바라다 보자 그녀는 마치 보고 있었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뭘 그렇게 치다 봐유. 이런 거 처음 보나유?"
"그런데 그릇 안에 넣는 게 뭐에요?"
"아, 이거유. 막장인데 물괘기가 아주 좋아해유."
"막장이라구요? 그걸 고기가 먹어요?"
"말해 봐야 소용 없구 이따가 보세유."
강 복판으로 들어선 그녀는 막장을 넣은 몇 개의 그릇을 조심스레 담갔다.
그물도 아니고 낚시도 아닌 그릇 몇 개로 고기를 잡는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자신 있게 말하는 그녀를 믿어 보기로 했다.
"한 둬 시간 기다려야 하니깐 요 아래로 내려가 봐유."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해요?"
"아이고, 물괘기가 금방 잡히나유. 승질도 급하네. 기달비는 시간에 날 따라 와유."
막장 그릇을 놓은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제법 널찍한 너래가 깔린 곳이 나타났다.
"여기에 골뱅이가 제법 있어유. 바지 걷고 들어가 봐유."
초등학교 시절 여름이면 바가지나 족대로 물고기를 잡거나 다슬기를 건지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런 거라면 나도 자신 있어요."
바지를 걷고 강으로 들어서자 밖에서 본 것과 달리 물이 제법 깊었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며 다슬기를 찾았지만 어쩌다 작은 씨알이 보일 뿐 큰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큰소리를 친 자존심 때문에 더 깊은 곳으로 들어서다가 미끈거리는 돌을 밟는 바람에 강물 속으로 곤두박질을 치고 말았다.
물에 빠져서 허부덕 대는 내 꼴을 보았는지 그녀가 얼른 쫓아왔다.
"아이고, 메기 잡았네. 골뱅이를 잡은 게 아니라 골뱅이가 사람을 잡았네유."
" 내가 물에 빠진 모습이 그렇게 재미나요?"
"누가 그렇대유? 오나 가나 허당이라서 안심찮어서 그래유."
"내가 애도 아니고.."
"아무래도 안 되겠어유. 나가서 옷 말리구 있어유. 나 잡는 거 봐유."
윗옷을 벗어던진 그녀가 작은 종다래끼를 차고 강 복판으로 들어서더니 이내 자맥질을 시작했다.
그녀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나는 저러다 무슨 일이 나는가 싶어 몹시 당황스러웠다.
"저기.. 그만두세요. 위험하다 구요."
내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녀는 계속 자맥질을 했다.
깊은 물속을 한참이나 들락거리던 그녀가 흠뻑 젖은 모습으로 강가로 나왔다.
"이거 봐유. 골뱅이가 엄청나게 크지유. 굵은 건 깊은데 들어가야 잡아유."
그녀가 허리에 찬 종다래끼에는 씨알이 굵은 다슬기가 반 가까이 차 있었다.
"와, 정말 크네요. 그런데 물질은 어디서 배운 거에요?''
"배우긴 뭘 배워유, 기냥 하다 보니까 지절로 된 거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물소리 만큼 상큼하게 들렸다.
물에 젖어 착 달라붙은 옷 때문에 그녀의 몸이 굴곡을 따라 그대로 드러났다.
길게 땋은 머리가 그녀의 등에 붙어서 마치 말총처럼 보였다.
좀 가무잡잡한 피부였지만 햇빛에 비치는 화장기 없는 그녀의 얼굴이 늦가을 말갛게 익은 머루처럼 다가왔다.
언듯언듯 비치는 반달 같은 가슴과 움직일 때 마다 흔들리는 풍만한 둔부가 눈에 밟혔다.
물에 젖은 귀밑 머리가 보석처럼 반짝거리며 내 눈을 훔치더니 이내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로 변했다.
바짝 다가 앉아 이거 저거 설명을 하는 그녀의 몸에서 짙은 아카시아 향이 풍겼다.

그래.
5월 아카시아가 한창일 무렵, 그 향기가 아깝다고 창문을 모두 열어 놓고 코를 벌름거렸지.
나보다 두 살 많은 누이가 엄마 분을 훔쳐 바르고 손거울을 보며 얼굴을 요리 조리 매만질 때 나던 그 냄새.
광산일을 할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그녀의 실팍한 몸매가 내 눈앞에 앉아 있었다.
아..우리가 스무 살 이구나.
그녀가 나보다 두 살 더 많은 성숙한 여인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옷을 갈아 입는다는 게.. 정신을 팔구 있었구만유"
젖은 옷을 갈아 입으려고 버드나무 뒤로 들어가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내 자신이 확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처음 장소로 돌아 오면서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덤덤하게 대하던 그녀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진 느낌이었다.
"왜유? 어디 또 안 좋아유?"
그녀가 물었지만 얼른 대답할 수 없었다.
뭐라고 꼬집을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었다.
"어머, 이상하네유. 아까 물에 빠질 때 냇물을 먹은 거 아녀유?"
그녀가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와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 왜 이래요.무안하게시리"
"오마, 요런 모습 첨 보네유.
맨날 벅벅대더니 오늘 보니 순덱이네."

이런. 빌어먹을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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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막장을 담아 담그어 둔 사발을 건지더니 소리를 질렀다.
"와~ 이거 봐유, 엄청나네유."
무슨 고기가 얼마나 잡혔기에 저렇게 놀라나 싶어 신발을 신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녀가 건져 올린 사발에 커다란 물고기가 가득하게 들어있었다.
족대질로 가끔 잡았던 퉁가리였다.
"오, 이렇게 큰 퉁가리는 첨 봤어요. 야..대단하다."
"퉁가리가 뭐예유, 탱바리지."
"퉁가리든 탱바리든 이거, 대박이네요."
그녀와 난 물속에 서서 환호성을 질렀다.
나머지 사발 세개에도 상당량의 물고기가 들어 있었다.
그 중 한 그릇엔 손바닥 만한 꺽지가 나왔다.
"대부분 탱바리가 들어오는데 오늘은 눈먼 꺽지가 찾아 왔네유. 이 놈이 아주 약은 놈인데 깜빡 졸았나 봐유."
물밖으로 나온 그녀는 날카로운 칼로 퉁가리 배를 따기 시작했다.
"이거, 잘 따야지 잘못하믄 까시에 찔리면 엄청 아파유, 며칠 동안 죽는다니까유."
"그건 나도 알고 있어요."
고기배를 따던 그녀가 나를 빼꼼히 올려다 보았다.
"왜요?"
"근데, 아까부터 좀 이상해진 거 알아유?"
"뭐가요?"
"하여튼 좀 이상해유. 목소리도 작아지고..날이 너무 더워서 더위를 먹었나?"
콕 찔러 말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이상하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광산일에 염증이 나 있었는데 아주 새로운 기분이었다.
"탱바리하구 꺽지회가 아주 맛나는데 한 번 먹어 볼래유?"
"그걸 날 것으로 먹는다 구요?"
"그럼유, 얼매나 맛이 좋은데유. 쐐주 한 잔 있으면 저 좋은데 아쉽네유."
그녀는 딴 나라 사람 같았다.
아니, 때때산골 구석에 농사를 짓는 아가씨가 언제 이런 걸 해 봤을까 싶고 , 더구나 민물고기 회라니..
그녀가 껍질을 벗긴 퉁가리와 꺽지를 코 앞에 불쑥 내밀었다.
"초장은 없지만서두 눈 딱 감꾸 한 지름 먹어봐유.
아주 꼬시다니까유."
" 왜 이래요.이런 거 먹어 본 적이 없다니까."
"나 같은 지지바두 잘 먹는데 무신 남자가 그 모냥이예유.
오늘 한 번 개시해 봐유."
몇 번 사양을 했지만 그녀는 내 입속에 퉁가리회를 강제로 집어 넣었다.
"꼭꼭 씹어봐유.워때유. 꼬습지유?"
생각과 달리 퉁가리회를 씹자 달근한 맛이 우러났다.
"음ᆢ비릴 줄 알았는데 괜찮네요."
"거 봐유.내 말이 맞다니까. 이제야 남자 같네유. 내친김에 이번엔 꺽지회를 한 지름
먹어봐유. 나중에 더 달라고 나 하지 말구유."
허ᆢ
그녀는 평벙한 산골 아가씨가 아니었다.
"아 참,큰일 났네유. 빨리가서 오늘 개 잡아 먹은 거 설겆이 해야 하는데. 빨랑 가유."
"아니, 아가씨가 개 잡아 먹었다는 말이 뭐에요. 말을 막 하는 거 아니에요?"
그녀는 입을 삐죽하게 내밀며 툴툴거렸다.
" 소를 잡은 것 두 아니고 개 잡은 걸 그럼 뭐라고 해유. 너무 그렇게 고상한 척 하지 말아유."
물고기를 손질하여 지고 왔던 망태기에 담아 내 어깨에 지워준 그녀는 올 때 보다 더 빠르게 내 달았다.
에고야.
무슨 군사 훈련도 아니고 무슨 저런 여자가 있다냐.
" 혼자 내빼지 말고 좀 천천히 가라구요. 에고,미치겠네"
그녀를 뒤쫒아 가느라 허부덕거리다 보니 아까 느꼈던 야릇한 감정은 내 허락도 없이 저 만큼 도망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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