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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단편

봉화골의 전설 1

by *열무김치 2024. 2. 15.

 

 

 

 

"이보게 자네 그 여자 본 적이 있나?“

"누구?"
"저기 봉선화 골 산 밑에 사는 여자 말이지 ."
"아..그 여자. 나도 멀찍이 몇 번 보기는 했지."
달식은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땅 꺼지겠네. 대낮에 웬 한숨이야."
달식이 담배를 꺼내 물자 현석이 성냥을 그어 그의 입에 대었다.
"난 말이야. 언제부터 인지 야밤에 그 여자가 산다는 산 밑을 자꾸 보는 습성이 생겼어."
달식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웅얼거리자 현석이 입맛을 다셨다.
"자네만 그런 게 아니야. 이 마을에 사는 사내 놈 치고 그렇지 않은 놈 몇 이나 있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누가 봐도 홀랑 반할 절세미인이 왜 이런 산골짝에 와서 사는지 귀신이 곡 할 일 아닌가?"
"그렇긴 해. 더구나 봉수 그 놈이 어디 그 여자한테 가당키나 해?
남의 전지나 부쳐 먹던 홀애비 밑에서 나뭇짐이나 지다가 객지로 떠돌다 들어온 놈인데 무슨 재주로 저런 여자를 꼬셔 왔는지 재주 하나는 용하단 말이야. 지금도 가진 거라곤 달랑 불알 두 쪽 뿐이잖아."
꽁초까지 타 들어가 가던 담배를 뱉아 발로 짓 이기던 달식이 신작로에 널부러진 자갈을 냅다 걷어찼다.
"빌어먹을, 낼 모래면 50줄인데 나 같은 놈은 언제 살림 차려보나."
두 사람은 멍하니 그녀가 사는 봉선화 골을 바라다 보았다.
"야, 이럴 게 아니라 저 집에 한 번 가 보자."
현석이 앞 장을 서자 달식이 슬그머니 현석을 따라 나섰다.

처서가 지난 지라 구불구불한 논둑길에 실하게 자라던 풀들이 숨이 죽어서 뱀이 기어가는 듯한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말이 가을이지 백로만 지나면 해 떨어지기 바쁘게 한기가 몰려왔다.
"어끄제 목간을 했는데 성깔 한 번 급하네. 놀부 마누라 같다니까.
하여튼 이놈의 동네 드러워서 이사를 가든 가 해야지."
달식이 소매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코를 킁킁 거렸다.
"엔간이 떠들고 앞이나 잘 좀 보라 구."
낟알만 따면 그만인 손바닥 같은 전지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강냉이 섶들을 지나자 이내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이 보였다.
하지만 주변은 쥐 죽은 듯 고요해서 도무지 사람이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집 가까이로 다가 갔다.
썩어서 금방이라도 내려 앉을 것 같은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자 앞 마당에 빨래 몇 가지가 걸려 있을 뿐 기척이 없었다.

"어이, 아무도 없는 거 아니야?"
"떠들지 말고 좀 조용히 해 봐."
현석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 눈알을 부라리자 달식이 소변을 지렸다.
깨금발로 몇 군데를 둘러 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에이, 김 샜네. 그 여자 여기 산다는 거 맞아?"
"얼마 전에도 봤다니까 그래."
"김 샜어. 그만 가자구"
두 사람이 돌멩이를 대충 쌓아서 갈대 지붕을 얹은 뒷간을 지나 개울로 나오자 이내 땅거미가 밀려왔다.
개울가로 난 좁은 논둑길을 어림으로 걸어 나가다 달식이 발을 헛디뎌 도랑에 쑤셔박혔다.
달식이 일어나려고 허우적거렸지만 도랑이 워낙 좁아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이런, 재수 옴 붙었네. 왜 오자고 해서 꼴 사납게 만들어."
달식이 투덜거리자 현석이 줄달음을 쳤다.
" 드런 놈, 내일 두고 보자."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달식이 벌벌 떨면서 신작로에 나와 찾아갔던 그녀가 사는 집을 바라보자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뭐여, 시방.. 집에 있었던 거여?"

*****************************************************

마을 한 복판에 있는 포목집에 그 여자가 왔다는 전갈을 받은 달식이 눈이 빠지게 뛰어 나갔다.
가뜩이나 입성이 노루 꼬리 같은 달식 어미는 시원찮은 한 해 소출로 도지를 줘야하는 딱한 처지라 달식이 장가를 간다고 해도 큰일이었다.
하긴,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빈한한 집구석에 올 처자가 있을 리 만무여서 그따위 걱정은 하나 마나였다.
자칫하여 전대라도 끊어지면 장리쌀을 내야 하기에 달식이 장가를 가는 일은 곧 또다른 종살이였다.
달식이 허부덕 대며 포목 집에 당도 했을 때 달식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마침 그녀가 포목 집을 나서고 있었다.
급하게 몸을 숨긴 달식이 숨을 죽이며 그녀를 바라다 보았다.
그때 어디서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현석과 종부가 뛰어 왔다.
"현석아, 너 봤냐?"
"방금"
"아이고야, 몸매가 죽이네. 야, 난 태어나서 저렇게 이쁜 여자는 첨 본다."
현석이 몸을 꼬아 대자 달식은 몸이 달았다.
"뭐, 양귀비라도 되냐? 왜 호들갑이야."
"야 임마, 양귀비 보단 훨 이쁘다. 빨랑 가봐라."
현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식이 그녀가 간 방향으로 내 달렸다.
"저 형 미친 거 아니유? 아주 확 가버렸네."

 

달식이 먼 발치서 뒤따라가자 그녀가 잰 걸음으로 징검다리를 건넜다.
아무래도 달식이 뒤따라 간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그녀가 제법 큰 보따리를 들고 있었던 까닭에 징검다리를 건너 하늘 바라기 논빼미로 올라서자 걸음걸이가 느려졌다.
달식은 먼 산을 보는 체 하면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 갔다.
먼 발치서 볼 때에도 그녀의 몸매는 날렵하고 가벼워 보였다.
달식이 가까이 다가서자 그녀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달식에게 다가왔다.
"왜 저를 따라 오세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달식은 움찔 놀랐다.
"따라 온 게 아니고 여기에 볼일이 있어서 왔구만요."
"아무것도 없는 허허 벌판에 무슨 볼일을 보나요?"
아..
달식은 짧은 신음을 내 뱉았다.
바람에 날리는 귀밑 머리가 햇볕을 받아 하얗게 부서지는 그녀의 얼굴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바람결을 타고 가냘픈 허리로 흘러내렸다.
다락 논둑처럼 유려하게 휘어진 허리가 잘 닦아 놓은 뒤란의 장독처럼 빛났다.

호수 같은 눈동자라니
달식은 말로만 듣던 호수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저기요, 저를 따라오지 마시고 볼일 있으면 얼른 가세요."
그녀의 다그침에 달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예..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달식이 엉거주춤 서 있자 그 여자는 아까보다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걸어갔다.
달식은 그녀가 그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해 봄
심하게 걸린 고뿔로 며칠을 앓아 드러누워 있을 때, 삐끔이 열린 방문 사이로 보이던 아지랑이 아물 거리는 복사꽃 수북하게 핀 앞마당
다섯 살이나 위인 누이가 툇마루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닦던 실팍한 그 모습이 아슴하게 다가왔다.
육감적인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천사였다.

"달식 형님이 여긴 웬 일이요?"
언제 왔는지 그녀와 같이 사는 봉수가 눈을 부리리고 서 있었다.
"웬일은 그냥 볼일 보러 왔었지."
"고따구 거짓말 말고, 왜 여자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 왔냐 이거요."
"이 사람이 왜 이래. 누가 꽁무니를 따라 왔다고 그래."
"아니 그럼, 은실이가 거짓말을 한다 이거요?"
"은실이? 갸가 누군데."
" 이 형님 정말 안 되긋네. 형님 대접 받고 싶거들랑 행동거지 똑바로 하시요."
달식은 무언가를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따지듯 말하는 봉수가 괘씸했다.
"야, 이사람아, 자네가 뭔데 똑바로 하라 마라야. 이 자석이 보자 보자 하니까."
달식이 눈을 치켜 뜨자 봉수가 대뜸 달식의 멱살을 거머쥐었다.
"이거 봐, 좋게 얘기 할때 꺼지지 그래. 은실씨 한테 껄떡댈라고 하는 것 같은데
잘못하면 뒤지는 수가 있어. 그 여자 너 같은 놈이 넘볼 그런 여자가 아니거든."
"뭐, 껄떡 대? 이 새끼가 한참 형님 뻘 되는 사람한테 말하는 거 보소.
너, 이 새끼 객지 나가서 끼돌아 댕기면서 말 뽄때를 고따구로 배워왔냐?"
달식이 봉수가 잡은 멱살을 뿌리치려고 기를 썼지만 덩치가 한참이나 큰 봉수의 우악스러운 손을 당할 수가 없었다.
"너 이새끼, 나한테 이러고도 동네에서 살 수 있을 거 같냐?"
같잖다는 표정으로 웃던 봉수는 달식을 논 바닥에 냅다 팽개치며 벼락 같은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똥 같은 놈아, 꼴에 나이값 한다고...
내가 내 밥 먹고 사는데 니 놈 무서워 여기 못 사냐?
한 번만 더 여기에 얼쩡대면 그때는 정말 뒤진다."
논 바닥에 쑤셔 박힌 달식은 너무 기가 막혀 숨을 쉴 수 없었다.
"자기야, 거기서 뭐 해. 빨리 와서 저녁 먹어요."
"응, 알았어. 얼른 갈께."
논 바닥에 드러누운 달식의 눈에 저 멀리서 손짓하는 그녀가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을 부리리며 쌍욕을 해 대던 곰퉁이 같던 봉수가 나비처첨 나풀나풀 뛰어가고 있었다.

 

"아니, 달식이가 개 건너 봉수 한테 멱살잡이를 당하고 논 구녕에 콱 쑤셔 백혔다던데 그게 사실이여?"
"그렇다누만, 달식이가 뭐시기가 책이 잡혀서 한참 어린 놈한테 그 봉변을 당하누."
"못 들었어? 봉수 따라와서 사는 그 이쁘장한 여자 찝쩍대다가 그랬다잖아."
"하이고야, 꼴에 사내라고 이쁜 여자는 아나 보지."
"그 나이 먹도록 장개를 못 갔으니 환장을 할맨도 허지."

마을에 달식이와 봉수가 싸웠다는 소문이 파다 했다.
달식이 식음을 전폐하고 방 구석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돌자 동네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성삼이 아들 완수가 달식을 찾아갔다.
허름한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완수가 헛기침을 했지만 달식은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사람이 들게 왔으면 기척이라도 해야지 방구석에서 뭐하는 거여. 시방."
완수가 걸걸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지만 달식은 모로 돌아 누웠을 뿐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이고야, 이 등신아 뭐시기를 잘 했다고 유세를 떠나. 동생 놈 한 테 넙죽 당한 거이 무슨 벼슬이여?"
자꾸 큰소리가 나가자 마지못해 달식이 일어나 앉았다.
"그래, 뭐, 그 여자 손목이라도 잡아보고 논 바닥에 패대기를 당한 거여?"
며칠을 굶었는지 얼굴이 파리한 달식이 몇 번 어깨를 들썩이더니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동생도 한참 아래 동생한테 당하고 나니 분하고 원통하네."

"혹시, 자네가 그 여자한테 거시기 하다가 들킨 거 아니여?"
"그따구 얘기 할라거든 빨랑 꺼져."
달식이 소리를 꽥 지르고 다시 방바닥에 드러 누웠다.
"허, 무슨 나라를 구한 거도 아니구, 유세를 떠네 떨어."

완수와 동네 청년 몇 이 작당을 하고 봉수를 찾아 갔다.
그냥 두면 동네를 망칠 놈이라고 입을 모은 터였다.
동네에서 힘 깨나 쓴다는 완수가 앞 장을 서자 모두 의기양양해 있었다.
"완수 형님, 이참에 아주 뽄때를 보여줘야 한다니까요.
위 아래도 모르는 놈은 방맹이 찜질을 당해도 싸지."
일행이 봉수집에 다다르자 마당을 쓸던 봉수가 싸리 빗자루를 어깨에 메고 나왔다.
"웬일이십니까 이런 누추한 곳 까지."
봉수가 깔깨눈을 뜨자 째려보던 완수가 다짜고짜 봉수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너, 정말 몰라서 묻냐? 니가 달식이 멱살을 잡고 논바닥에 패대기 쳤다메?"
"그래서요?"
"하, 요 놈 봐라, 달식이가 너 한참 형 뻘 인데 고따구로 해도 되는 거 여?"
봉수가 메고 있던 빗자루를 땅바닥에 팽개쳤다.
"형님 대접을 받을라면 형님 구실을 해야 할 거 아이요. 여자 꽁무니 졸졸 따라오며 수작질을 하는데 그거 보고도 가만 있으란 말이요?  형님은 형수님이  그짓거리를 당해도 가만 있을거요?"
"야, 이 놈아. 아무 짓도 안 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니 놈이 알지도 못하고 지랄을 한 거지"
" 형님 대접을 받을 라면 말 좀 곱게 하시요. 뭘 알고 떠들던지."
봉수가 팽개쳤던 빗자루를 다시 주워 들고 완수 일행에게 먼지가 나도록 비질을 해 댔다.
"나 바쁘니께 헛소리들 그만하고 빨랑 가 보시오."
"아니, 요 싸가지 없는 놈 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완수가 팔을 둥둥 걷어 부치더니 우악스럽게 봉수의 멱살을 거머쥐었다.
"너, 이 새끼, 오늘 곡소리 한 번 들어보자."
그러자 옆에 있던 일행이 우르르 달려들어 봉수를 땅바닥에 쓰러뜨렸다.
순식간이었다.
그러나 워낙 덩치가 큰 봉수인지라 몇 사람이 달려들었는데도 쉬운 게 아니었다.
열 받은 봉수가 발길질을 해 대자 일행 중 한 명이 얼굴을 맞아 코피가 터지고 봉수에게 머리채를 잡힌 완수 이마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를 본 완수가 돌변했다.
"이새끼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완수가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자 봉수도 질세라 주먹질을 해 댔다.
허지만 완수는 봉수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몇 번의 엎치락 뒤치락 끝에 완수는 봉수 밑에 깔려서 일방적으로 주먹질을 당하고 있었다.
이를 본 일행이 봉수를 잡아 재끼고 완수를 일으키자 흥분이 극에 달한 완수가 미친 듯이 집안을 뛰어 다니더니 낫을 들고 나타났다.
" 이 개새끼야, 오늘 너 제삿날이다."
완수가 낫을 들고 설치자 같이 간 일행이 완수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아이고 형님, 이러면 안되지. 우리 모두 죽을 일 있소?"

그러나 완수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봉수 역시 낫을 들고 나온 완수의 눈이 뒤집혀 있다는 걸 알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어디 낫으로 한번 짤라 보시요."
봉수가 완수 앞으로 머리를 들여 밀었다.
그때였다.
"모두들 왜 이러세요."
나긋한 여인의 음성이 들리자 싸움판이 일시에 멈추었다.
"우리 봉수씨가 잘 못 한 게 없는데 동네 분들이 몰려와서 이래도 되는 건가요?"
아..
나긋하게 말하는 여인을 본 완수는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들고 있던 낫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바지 춤을 걷어 올렸다.
옆에 있던 일행은 갑자기 변한 완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땅바닥으로 고개를 숙였다.
"완수 형, 갑자기 왜 이래?"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여인이 앞에 서 있었다.
금빛 같은 머리와 달덩이 같은 얼굴, 유려한 허리, 가슴을 떨게 만드는 목소리에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었다.

 

완수 일행이 봉화골을 나서자 이내 한기가 몰려왔다.

"아니 완수 형, 어떻게 그럴 수가 있소? 그 여자 말 한 마디에 그냥 나가 떨어진 거 아니요."
"시끄러 이놈 들 아."
"허, 이제 보니 완수 형님이 여자에 아주 약하네 . 그냥 한 방에 뻑 가버리는 구만."
풀어진 눈으로 앞만 보고 걷던 완수가 돌아서더니 주먹을 들고 일행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그들 경고 하는데 집구석에 가서 오늘 있었던 얘기 지꺼리다간 나한테 뒤지게 맞는다. 알아 처 묵었냐?"
"아이고 형님 너무 하네. 왜 우리한테 성질을 내는 거요?"
"이 새끼가..똑같이 그래 놓고 어디다 말 대꾸야."
완수가 눈을 부라리자 모두들 입을 다물었지만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이쁘긴 합디다. 얼굴이며 몸매가 남정네들 여럿 홀리고도 남겠더라 구요"
"아니 고렇게 이쁜년이 봉수 그놈 뭘 믿고 이 산골 구석에 따라 왔다냐?"
앞장서 걷던 완수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이쁘면 뭐 혀. 빙신 같은 니놈들이 침 삼킨다고 그 여자가 눈이라도 껌뻑 해 준다냐? 에이, 이런 놈들을 데리고 다니는 내가 빙신이지."
완수가 잰 걸음으로 개울로 뛰어가더니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미 처서가 지난 지라 물이 찼지만 속이 탔는지 물속으로 나동그라진 완수가 또 소리를 질러 댔다.
"저 형 왜 저래? 그 여자 보더니 미친 거 아니여?"


동네에 또 다시 소문이 돌았다.
완수가 동네 청년들을 데리고 봉수네를 찾아가서 찝쩍대다가 그 여자한테 개망신을 당하고 입도 벙긋 못하고 쫓겨 왔다고.
동네 아녀자들의 비웃음과 조롱이 이어지자 이번엔 완수가 집 밖 출입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소문의 중심에 완수가 오르내리자 완수 처는 부아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고 년이 그렇게 이쁘다요? 동네 청년들이 그럽디다. 당신이 아주 오줌을 질질 싸고 왔다고. 참말이요?"
완수는 눈만 껌뻑 일 뿐 대꾸가 없었다.
"하이고, 참말인가 보구만. 지 예편네는 요모냥으로 맹글어 놓고 이쁜 여자는 눈에 차는 갑지?"
완수처가 비아냥 대자 완수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어딴 놈이 그따구로 지껄여. 쓰잘데기 없는 말 듣지 말고 모른 척 혀."
"당신이 동네 청년들 데리고 가면서 큰소리 뻥뻥 쳤다고 합디다.
그런데 그 여자 한 번 보고 당신이 끽 소리 못하고 똥 마려운 개 모냥 설설 기었다고 소문이 쫙 났어라. 남사스러워서 마실이나 나가겄소."
처를 보고 눈을 부라리다 성질이 오른 완수가 바가지로 냉수를 퍼 마시더니 밖으로 휭하니 나갔다.
"워디 가시오. 또 그 년 한테 가남?"
***************************************************************************
마을 회관에 동네 아녀자들이 모여들었다.
동네 소문이 흉흉 한 터라 무슨 수를 내야 한다는 말이 돈 후였다.
팔을 걷어 부친 부녀 회장이 일어나더니 무슨 큰일이라도 난 거 처럼 말했다.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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