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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단편

고양이 무덤

by *열무김치 2020. 2. 11.

 

 

 

 

안개비가 내리는 것은 아침에 먹은 약 때문이었다.

한 봉만 먹었을 때는 좀 어지럽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지럼을 이기려고 또 한 봉을 먹자 얼마 안 있어 안개비가 내렸다.

약을 먹기 전의 내가 정상이었을까?

의사와 약사는 정상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 약을 주었을 것이니 약 먹은 뒤의 내가 정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개비가 내리고 그 안개비는 한참 동안 내렸다.

나는 그 안개비를 맞으며 고양이를 묻으러 갔다.

함께 있은 지 오래라 이 녀석도 살만큼 살아서 인지 죽을 때도 미련이 없어 보였다.

자아성찰은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죽어가는 고양이 얼굴을 본 뒤였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정신현상학을 쓴 헤겔은 죽으면서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오래전 사람이지만 적어도 그가 쓴 철학서 못지않게 그의 표정도 전해져야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충성까지는 아니었어도 적어도 변덕을 부리거나  배신은 하지 않고 내 곁에서 죽어간 고양이도 갈 때는 평온했으니까 저 근엄한 정신세계를 탐구한 철학자의 죽음은 좀 근사해야 옳다.

가랑비가 좀 내리긴 했지만 아까 보았던 안개비가 더 짙어진 까닭이라고 여겼다.

바짝 메마른 땅보다 습기가 있는 축축한 땅에 묻히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두어 자 땅을 파고 고양이를 눕히자 제법 자리가 찼다.

이 녀석이 죽을 무렵 바짝 말랐더니 그동안 산 세월이 뼈에 배었는지 언덕을 올라오는 동안 팔이 시큰할 정도였다.

중간쯤 묻다가 다시 흙을 걷어 올렸다.

적어도 신문지나 거적 대기는 덮어서 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거적을 덮어서 묻고 나자 제법 굵은 비가 내렸다.

주머니에 넣어온 소주를 꺼내 반 병쯤 마시고 나머지는 무덤에 부었다.

이것으로 정은 끝이다.

오랜 간의 정이 소주 반 병으로 끝이 났구나.

그럼 , 아주 잘한 거야. 잘하고말고.

이제 마누라가 내방으로 올까?

고양이 털이 지겹다고 벌써부터 각방을 쓰더니 이제는 소 닭 보듯 되어버렸다.

"고양이를 따라 죽어요."

외출을 하던 아내가 현관문 앞에서 중얼거렸다.

 

"선생님 원고 마감일자가 내일입니다. 오늘 오후까진 꼭 보내셔야겠는데요."
잡지사 직원의 전화를 받고 원고를 들여다보았지만 내일은 어림도 없었다.

"선생님, 선생님의 뜻은 알겠는데 독자들의 가려운 부분도 좀 긁어주어야 하니까 조금만 강하게 수정을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요?"

"에이, 다 아시잖아요."

"근질거리면 지가 긁으면 되지 내가 뭘 긁어주라는 거요."

"에이, 왜 그러십니까."

직원은 다소 못마땅하다는 투로 전화를 끊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그의 아내가 밀 창을 쾅하고 닫고 나갔다.

"곧 쥐꼬리 같은 원고료도 끊어지겠어. 평생이 그렇지"

펜대를 마당으로 집어던지고 소주를 반 병 정도 들이켰다.

"허허.. 날 긁어줘야지. 빌어먹을 놈"

 

잡지사에서 연락이 끊기고  이상하게도 며칠간이나 비가 내렸다.

반찬값이라도 벌어야 쭈그려 앉는다고 속을 긁어대던 아내가 집을 비우고 나니 이내 방문이 환해졌다.

가끔 인식이 되지 않는 통장을 바꾸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은행에 들르자 안내원이 부리나케 다가왔다.
"어머, OOO 선생님이시죠. 선생님 글 잘 보고 있어요. 요즘 좀 쉬시는가 봐요."

창구 은행원 시선 때문인지 안내 아가씨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얼른 번호표를 뽑아 건네주었다.

아무래도 머리가 신경이 쓰였다.

며칠 동안이나 감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은  통장 잔액을 보아야 할 까닭이었다.

그러나 은행원은 재빠른 동작으로 통장을 바꾸어 주고 밝은 미소만 보였을 뿐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은행을 빠져나와 공중전화부스에서 슬그머니 열어본 빳빳한 통장엔 15,000원 정도의 잔액이 보였다.

은행으로 다시 들어가 15,000원을 찾으니 은행원이 통장을 해약할 건가를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은행원은 무슨 말을 할 듯한 표정이었지만 얼른 시선을 돌렸다.

담배 포 때문에 문을 닫지 못한다는 구멍가게에서 소주 한 병을 집어 들자 점방 노인이 거들었다.

"김치쪼가리라도 먹고 마시지 강소주만 들이키지 말고."

500원짜리 동전을 털어 쫀드기 하나를 집어 들고 이거면 되겠느냐는 손짓을 보던 노인이 다가와한 개를 더 쥐어주었다.

 

이미 늦가을이라 점점이 푸른색은 파장마당 휘장처럼 제멋대로여서 기다려도 소용이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볼 까닭이 없어 땅만 보고 언덕을 오르기 바쁘게 곧 고양이 무덤이 보였다.

여름 내 오지 않았으니 봉긋하게 새운 흙무더기가 나지막하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래도 무덤 꼴은 하고 있었다.

갈잎들이 수북하게 내려앉은 무덤 위쪽에 앉으니 엉덩이가 제법 푹신했다.

소주병을 따서 반쯤 들이키자 이내 머리가 맑아졌다.

손으로 무덤 위를 움푹하게 파내고 남은 소주를 부었다.

진흙이어서 그런지 소주가 금방 흙으로 스며들지 않았다.

약간의 취기와 함께 땅거미가 스멀거렸다.

이미 잎을 부린 은행나무가 흐릿하게 보였다.

 

"선생님, 내일까지는 원고를 꼭 보내세요.

그리고 아시잖아요.

번개가 번쩍 할 만큼  좀 세게 써 주시지요."

 

 

**그 사람

 

골목 2층 복도에 가끔씩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는 그가 잠시 바깥으로 나왔다는 표시다.

멀리서 보아 어떤 담배를 피우는지 알 수 없지만 연거푸 두 개피를 피우고 들어가는 걸 보아 이왕 나온 김에 실컷 피우겠다는 심보다.

비가 내리거나 눈발이 날리는 날은 뻐끔 이 열린 창가로 하얀 연기가 올랐다.

그걸 볼 때마다 시골집 굴뚝에서 올라가던 거무튀튀한 연기가 자꾸 생각이 났다.

어스름 해가 저물면 어느 집 할 거 없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으니까.

저 집은 마른 장작을 때네, 저 집은 연기 모양으로 보아 젖은 솔가지를 억지로 때고 있고..

저러니 쌀인들 제대로 익을까.

그럼 그렇지, 저 집구석 남정네가 꼴 같은 나뭇짐을 지고 오는 걸 보지 못했으니.

술고래로 글러먹은 지 오래였다.

그 집 아낙이 시집올 때는 제법 희멀겋고 번드 그리했는데 여자 팔자가 두레박 팔자지.

육덕 진 몸매가 십수 년 몸빼 바지와 수건에 가려져있으니까 얼마나 아까워.

막걸리 한 잔 받으면 취한 척하고 슬그머니 궁둥이를 찔러야겠어.

이봐, 아직은 쓸 만한 나이고 어디 가면 수작을 붙이는 놈이 있을 게야.

여기 붙어있는 자네 인생이 너무 가엾지 않은가.

내가 그랬다는 말은 말고,

 

비 오는 날

창문을 열었다가 담배연기를 뿜어 올리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모른 척하다가 신경이 쓰였던지 슬그머니 창을 닫았다.

그의 어머니가 창문으로 무언가를 건넬 때 그는 혹시라도 내가 볼까 두리번거리다 얼른 가라고 짧은 손짓을 하곤 이내 창문을 닫았다.

그의 어머니가 걸을 때마다 가슴을 치고 다닌다고 했다.

바깥세상과 등진 지 20년

그는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있었다.

창가에 서면 혹시 그 사람이 창문을 열지 않을까 하여 힐끔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하긴 보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보일 테니 굳이나 고개를 빼지 않아도 되었다.

 

복도 청소를 하다가 다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주춤거리다 눈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또 보네요."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렸을 뿐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이웃인데 인사나 하고 지냅시다. 저도 이곳에 산지 오래됐거든요."

담배연기를 두어 차례 허공으로 내뿜던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일하느라 문자가 온 줄 모르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열어보았다.

누구지 했지만 이내 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어떻게 내 번호를?

 

"전 아무 관심 없으니까 저를 보지도 말고 말도 걸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베란다 창문을 제 방 쪽으로 열지 마세요. 열려 거든 창이 보이지 않게 스티커를 붙이시던가"

 

 

 

 

 

 

 

                                                                                                                                                                                                  *치악산

 

 

"아주 잠깐이야. 시집가는 날 연지곤지 찍을 때처럼 말이지. 절하고 나면 필요 없잖아."

"뭐가?"

"상고대 말이지. 나무마다 다른데 딱 한 가지로 통일이거든. 아주 간단 명료하고 경쾌하지 않나?

 

 

 

 

 

 

 

 


그렇게 왔다가
인연이 다하여 갔군요
누군가 그럽디다
사람이 죽어면
저승에서 제일먼저 반기는 것은
애완동물이라고 ᆢ
물론 우스개소리지만
죽어도 잊지못할 은혜를 받고
묻혔을겁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습작이라는...그 단어가 존경스럽습니다
습작속엔 가끔 내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상대역이 되어 마주한 사람의 뇌리를
헤아려보기도 하지요
지은이가 누구든
독자도 주인공이 되었다가
상대역도 되었다가ᆢ

언젠가 아이가 어릴적
주택에 살면서
토끼장을 만들고 키우다가
맥없이 죽은 토끼를 들고
산에 묻으러 간적이 있는데
소름끼치게 그시간들이 오버랩되면서
뻣뻣하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네요
그렇게 맥없이 가버리다니 ᆢ
하긴 영원한 삶은 없으니까요 ᆢ
읽는 맛이 나는 글을 한가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사진 속의 겨울 햇살 같은 사람들 얘기구나 싶었습니다.
그러고보니 글도 사진도 메마른 정서에서 온 것이 아니구나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참 오랫만에 소설을 읽어요.
키우다 심장마비로 죽은 애완견...
잊고 있던 연탄가스 냄새..
허름하고 남루한 생활..
많은생각을 하며 읽게됩니다.
상고대와 연지를 같이 묶어보니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그것도 짝이 딱 맞구나 싶고요.


처음엔 소설이 아닌 일상인 줄 알았습니다
고양이 따라 죽어요 이 부분부터 현실로 돌아와 읽었습니다
읽는 맛이 나네요
천천히 꼼꼼히 읽었습니다
고양이 무덤이라니
우리네 무덤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서릿발 뻗친 치악산의 상고대가 말해줍니다

풀어가는
호흡이 좋은 글들


그렇구나

어쩐지;;
맞아요
원주에 치악산이 있군요
습작을 못보고선 열무님도 저처럼 고양이를 키우시는구나
반가워서 읽어내려갔습니다
나가서 죽어
여기서 어? 그럴분 아닌데 ...했구요
담배연기, 밥짓는 굴뚝연기
무슨 뜻인지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작가가 살기에 우리나라는 너무 척박한 풍토지요
공감하고 갑니다
습작들이 모여 한편의 책이 되면 좋겠네요
짧으니까 저한테는 읽기가 수월해서 좋은데 ㅎㅎㅎ
아하....습작 단편이었군요.
단숨에 읽어 내릴만치 일상에서의 벌어지는 일들이라서
마치 제가 극중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것 같습니다.
그렇게들 살아들 가지요. 제각기 나름대로.....
문득 아주 오래전 강아지를 라면박스에 담아 야산으로 묻으러 갔던 생각이 떠 올려집니다.
재롱댕이 였는데 길건너다가 ...하룻강아지 차 무서운줄 모르고....
녹녹치 않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오늘은 오전엔 함박눈이 펑펑 나렸네요.
언제부터인가 소설과 드라마 영화 등을 잘 보려하지 않게 된 이유가
그 속에 쏘옥 빨려들어가 너가 나인듯 내가 너인듯...
때로는 헤어나기 힘든 때가 많아서였어요...

글을 읽다가 어릴적 지하실에서 고양이 시신을 만진 기억과
그간 숱하게 묻어준 고양이들이 떠올라버렸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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