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
아무도 오지 않았어
십 오 년 전인가
멀쩡한 울타리를 허물고 불럭을 쌓더라
싸리나무 울타리
여름이면 나팔꽃이 바락바락 기어올라 해맑게 웃고
가을 그 녀석이 데려온 고추잠자리도 꼴 값을 떨었지
초승달이 빼꼼이 걸린 섣달
고뿔이 주저리 주저리 매달려 아련한 봄 꿈을 꾸었는데
못되 먹은 영감탱이
해거리 담장이 귀찮다고 쫓아낸 나무 울타리
덕지덕지 바른 시멘트 담벼락보다 먼저 가버렸어
지난해 늦가을
앞집 등 굽은 할마씨가 해 먹은 호박죽일 거야
윤사월 담장 밑에 뾰족이 올라온 그 녀석을 파내 버리려다
그래 너도 살겠다고 나왔지
에라, 인심 썼다
여름 내 곡간 골방쥐처럼 들락거리다가
지난달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아니, 눈알 번쩍하는 거
횡재수 같은 거 평생 한 번은 있다는데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까 머리를 쥐어 박다
염천으로 내 닫던 7월
어라
저런 게 언제 달렸지?
거무튀튀한 담벼락에 매달린 머리 땋은 해맑은 꼬마 아가씨
무엇을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멍하니 서다
풋호박 하나가 달렸을 뿐인데
아..
내가 왜 이래
까닭 모를 눈물이 주르르 흐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