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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11월

by *열무김치 2022. 11. 13.

색이 사라지는 11월

추위가 닥쳐오기 전의 이맘때는 대입 수능 시험을 치르기 위해 긴장하고 있는 수험생 같은 기분이다.

1년의 기다림에 대한 좋은 결과를 기대해야 하는 심정은 초조할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그렇게 반복이 됐어도 푸르고 싱싱한 날에는 무디어 있다가  며칠 천하로 얼굴색을 바꾸는 자연 앞에  아차 싶은 것이다.

찬바람이 불면 바람보다 더 찬 것은 공허하고 쓸쓸해진 마음이다.

솜뭉치나 스펀지에 물이 스며 들듯이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의 얼굴과 마음에 아직은 아니라고 부정을 하고 싶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시 공간은 얼음장같이 매정하고  야속해서 바늘귀만큼도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들이 바라는 융통성이 무정한 세월에게도 적용이 되었더라면 지구는 이미 오래전에 우주의 먼지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신은 자연의 변화를 통해 우리들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들어 지난 날들을 돌아보게 하신다.

마음이 비지 않거나 쓸쓸하지 않으면  외로움이나 고독이  찾아들 공간이 없다.

천하에 쓸모 없을 것 같은 외로움이나 고독도 시간을 더해가는 우리에게 필수 불가결한 무형의 존재라는 것을  우리의 자유의지가 아닌 신의 프로그래밍이라는 걸 알면  이에 대한 쓸모없는 논쟁이 줄어들고 시인이나 극작가들은 이를 더 이름답게 표현 하리란 생각이다.

세상에 아무 의미도 없이 존재 하는 건 없기 때문이다.

 

 

 

감나무에  상당수 남겨놓은 감의 개수가 불과 열흘만에 반으로 줄었다.

전에는 주로 까마귀 까치가 찾아오더니 요즘은 참새가 많이 찾아온다.

금강산도 식 후경, 먹어야 양반이라는 속담이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우리는 겨울이라는 한 계절을 걱정하지만 들짐승이나 날 짐승은 그날그날의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니 열흘이나 한 달 때거리만 있어도 행복한 일임에도 우리는 여간해서 그런 상태를  긍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걱정거리로 생각한다.

현대의 풍요한 물질문명은 우리들의 육신을 편하게 만든 대신 나 아닌 상대방에 대한 공감능력을 빼앗아 가 버렸다.

우리는 이 것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라고 합리화하면서도 사회적인 큰 사건이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항변한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 수확한 감을 깎다.

감나무에 꽤 많은 양의 감을 남겨 놓았는데 금방 줄어든 걸 보고 양심에 찔리다.

이거 안 먹어도 겨울 나는데 큰 지장이 없는데 욕심을 부린 것이다.

필자가 무슨 성인군자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막상 감나무에 찾아드는 새들을 보니 드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내년엔 맨 아래에 달린 거나 따고 그냥 두어야 할까 보다.

뭐, 새들이 황금 박 씨는 물어다 주지 않더라도 지들끼리라도 저 집은 괜찮은 집이라고 소문은 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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