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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가을이 진다는 것

by *열무김치 2022. 11. 2.

비틀어져 말라가는 가지 끝에 1년의 수고가 덩그러니 매달렸다.

아무리 목석이어도 이 모습을 보노라면 심장이 뛰지 않을 수 없다.

곧 닥쳐올 삭풍의 계절을 감내하라고 우리에게 건넨 하늘의 뜻에 그저 무덤덤하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그 많은 색깔 중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담홍색이라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은 우리만 좋으라고 있는 말이 아님이 분명하다.

우리 눈에 호감이 가도록 색을 입히고 무뚝뚝한 가지가 단물을 보냈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서정이 없는 것이 어디 있을까.

태산같이  높고 무섭기만 하던 아버지가 늦가을 햇살에 방문을 떼어내 문종이로 문을 바를 때  가을꽃을 수놓아 문을 바르는 모습을 보았다.

아...

무섭기만 하던 아버지가 저렇게 따스한  마음 지닌 분이구나.

그때부터  불호령을 내리고 매를 들어도 아버지가 무섭지 않았다.

몇 송이의 가을꽃과 햇볕에 말라가던 문종이, 그리고 문을 바르시던 아버지의 평온한 모습이 소년의 가슴에 들어온 까닭이다.

 

 

 

 

 

 

그리 당당하던 사람도  시한에 이르면 초라해진다.

주름 가득한 얼굴과 구부정한 허리, 어눌한 말투와 초점 없는 동공은 아무리 아름답던 지난날을 불러 발 앞에 앉혀도 요지부동이다.

머리맡에 둔 약봉지와 쓴 입안을 적셔줄 사탕이 목숨이나 다름없어서 당신은 물론 보는 이들의 마음이 조석 지변이다.

아무리 기를 써도 늙으면 추해진다고 한탄한다.

이 한탄은  적당히 살다가 죽는 게 복이라는 반신 반의 와  타협하며 경험으로 굳어진 철학과 몸싸움을 벌인다.

살아있는 날의 의미가 공연한 걸까?

신이 부여하신 생명에 대한 애착은 추하지도 않고 계산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자유의지에 의해 스스로의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자신이 태어난 것에 결정권이 없었듯이 죽음에 관한 최종 결정권 역시 본인의 자유의지가 아닌 것이다.

 

낙엽 가득한 가을 호수가 보는 이들의 가슴에 돌을 던진다.

자신도 저렇게 아름답게 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쓸쓸해진다.

낙엽이 지는 것은  매듭이 아니다.

나무의 눈에 봄이 들었고 그 눈 안에 이미 내년의 이야기들로 떠들썩하다.

길이나 호수에 떨어진 낙엽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며 대지로 숨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우리의 지식과 혜안으로 읽지 못할 뿐이지 낙엽은 신이 우리에게 보내는 희망의 엽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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