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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싸이롱 뽕

by *열무김치 2022. 8. 7.

 

 

 

꽤 오래전 일이다.

평범한 직장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던 나는 전혀 다른 분야에 뛰어드는 모험을 감행했다.

 

"지점 사무실에 처음 오셨지요?"

"네  OO점 인수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서 처음입니다."

"그럼 지점장님께 인사부터 하시구요. 오늘 회의 있으니까 참석하시고 가세요."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요?"

"아, 이런 일 처음이시구나. 지점장님께 잘 보이시는 게 앞으로를 위해 좋으니까 참석하시고 가세요."

"제 일만 하면 되는거지,  저는 분야도 다른데.."
"하, 이양반 빡빡하시네. 좋아요. 그럼 맘대로 하시던가."

같잖다는 투로 쳐다보던 창고 주임이라는 사람은 서류뭉치를 책상에 휙 던지고 나갔다.

돌아오려고 차에 올라  몇 번을 재다가 할 수 없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사무실로 올라갔다.

"가신다더니 왜 올라 오셨을까?"

창고 주임의 비꼬는 듯한 말투에 부아가 났지만 30여 명이 둘러앉은 사무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한쪽 구석으로 가 앉았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사람들마다 무슨 서류를 들고 있었고 모두들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의아스러웠는데 조금 뒤 그 까닭을 눈치챌 수 있었다.

회의 시작부터 질책이 쏟아졌다.

"이거 봐, OO 담당은 이번 달 이게 뭐야. 무슨 구멍가게만 다녔어?  작년 같은 분기 매출의 반도 안 되잖아. 이따위로 할 거면 다 때려치우고  노가다나 가지 그래."

말 끝나기 무섭게 실적표가 공중으로 뿌려졌다.

이 부서 저 부서의 질책이 계속 이어지더니  이 달 안으로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면 여름휴가도 없고 분기 보너스는 물 건너갈 거니까 알아서 하라며 다시 서류 뭉치들이 책상 여기저기로 뿌려졌다.

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회의 중간중간 아주 야릇한 소리가 계속 나서 이상한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소리가 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고 그 소리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삑삑.. 무슨 기계음 같기도 하고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회의가 끝나고 지점장실로 들어가 인사를 하자 그는 대뜸 나이를 물었다.

"어디서 일 하셨어요? 영업 쪽 일을 해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이부터 묻는 그의 태도에 부아가  났다.

"아, 아주 없는 건 아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왜 그러십니까?"

"이 쪽 일이 간단하지 않아서 그래요.  보니, 잘 알아보지도 않고 덤벼드신 거 같은데 실적이 몇 달만 좋지 않아도 공개적으로 아웃입니다. 그 건 아시고 오셨지요?"

"말씀은 고마운데 무슨 군대에 온 거 같네요. 제가 여기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 자본으로 사서 온 거니까 알아서 할 테니 초면에 너무 겁주지 마세요."

허, 하고 콧방귀를 뀐 지점장은 돌아 앉더니 그만 나가보라며 손짓을 했다.

기분이 상한 나는 인사도 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왔다.

대형트럭에 상품 적재를 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을 바라보다가 이거 괜한 일에 뛰어들었나 싶어서 기분이 우울해진 나는 창고 옆에 붙어있는 휴게소로 들어갔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는데 창고 주임이라는 사람이 들어왔다.

모르는체 하다가 커피를 뽑아 든 그가 내 옆에 앉기에 슬쩍 물어보았다.

"아니, 무슨 회의가 그래요?  대화를 하는 게 아니고 야단만 치던데 왜 그래요?"

"아, 싸이롱 뽕 얘기하시는구나."

"예?"

"싸이롱 뽕 그 양반, 원래가 그래요.  여기 있는 사람들 이제 그러려니 해요."
"싸이롱 뽕이 무슨 뜻입니까?"

다 마신 종이컵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은 그가 밖으로 나서며 무슨 물건을 던지듯 말했다.

"여기에 몇 번 오시면  자동으로 알게 될 겁니다."

 

판매업의 일이 몸에 배지 않았던 나는 몇 달간 동분서주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발을 잘 못 들여놨구나 하는 후회와 판매고에 대한 압박이 밀려들 때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저울질을 수 없이 했지만 상황은 이미 발을 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가을철 실적이 시원치 않은 데다  쌓이는 재고로 인해 고심하던 어느 날 지점으로부터 회의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몇 달간 실적이 좋지 않았으니 보나 마나 다그침이 있을 거라는 각오로 마지못해 회의실에 들어갔다.

서류뭉치가 날아다니고 고성이 오가는  또 그때의 풍경이겠지 하는 예상을 했는데 웬일인지 그날은 시종일관 차분했다.

"OO 파트는 처음 치고는 그런대로 선방을 했네요. 그런데 품목별로 고르지 않고 몇 가지 품목에 너무 치우쳐서 계속 이런 식이면 곧 한계에 부딪칩니다. 이에 대한 대안이 있습니까?"

지점장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안을 물었다.

"글쎄요. 뭐, 최선을 다 해 보겠습니다."

"무슨 대책이 그래요?  누가 그런 말 듣자고 물어봅니까?"

"그럼, 무슨 대답을 원하십니까?"

"허, 이양반이... 지난번에도 엉뚱한 말만  하더니,  답변하는 태도가 왜 그래요?"

나는 더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고 실적표만 바라보았다.

사실 반년 가까이 일을 해 보니  대책이라는 게  특별한 비법이 있는게 아니라 무슨 수를 쓰던지 많이 파는 게 대책이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런데 어디선가 지난번처럼 삑삑거리는 소리가 계속 났다.

지난번에는 고성이 오가는 바람에 희미하게 들렸지만 이번에는 사무실 분위기가 가라앉아서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럭저럭 회의가 끝나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해서 같이 들어갔다.

이용하는 사람이 40여 명이 전부인 데다 외판을 나간 직원들을 빼면 식사를 하는 사람은 열 명 안팎이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계속 삑삑거리는 소리가 났다.

내 핸드폰이 그런가?

핸드폰을 꺼내 이리저리 살폈지만 가까이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창고 주임에게 물었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오늘도 계속 무슨 기계음 같은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던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는 입을 함지박만 하게 벌리고 큰 소리로 웃었다.

"아, 이제 대충 눈치 채셨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글쎄요. 무슨 고양이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딩 ~동, 반은 맞추셨네요."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싸이롱 뽕이 내는 소리라고요."

"좀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세요. 싸이롱 뽕이 무슨 기계인가요?"

입을 가리고 웃던 그가 내 옆으로 바짝 다가앉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기계가 아니고 지점장이 싸이롱 뽕이라고요."

???

 

어떤 원인인지 몰라도 지점장은 쉬지 않고 방귀를 뀌는 데다 소리가 아주 묘해서 일반인들은 흉내도 못 낸다고 했다.

처음엔 직원들도 놀라고 민망해서 한동안 대면하기를 꺼려했는데 무슨 일이든 면역력이 생기는지 몇 달이 지나자 이제 그러려니 한단다.

"아니, 방귀도 하루 뀌는 게 한도가 있지 종일 뿡뿡거립니까?"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싸이롱 뽕 저 양반은 방귀에 관한 한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기네스북에나 올라갈 사람이에요. 스컹크와 내기를 하면 스컹크가 바로 아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별명이 싸이롱 뽕입니까?"

"거, 있잖아요. 방귀가 나올 때 궁둥이 살 사이로  삐져나오니까  그리 예쁜 소리가 아니고  마지못해 나오면서 아주 묘한 소리가 나잖아요. 발정 난 고양이가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말씀하신 거처럼 무슨 기계음 같은 소리 같기도 하고..

하도 자주 뀌니까 궁둥이 사이로  뿅뿅 하고 나온다고 붙여진 별명이지요."

푸핫~

나는 마시던 음료를 내뿜었다.

 

지점장 그는 심했다.

가까이서 대해보니 말 몇 마디에 방귀 한 방이었다.

에, 이번 달은 판매고가  어쩌고 저쩌고 뿡~  수금 사정은 괜찮나요 뿡~  재고를 더 안고 가세요 뿡~

이런 식이었다.

면전에서 웃지 말았어야 했는데  박자를 맞추듯이 나오는 그의 방귀소리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나는 밖으로 뛰쳐나와야  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면서 계속 실실거리며 웃자 아내가 물었다.
"왜 그래요?  무슨 공짜 돈이 생겼나?  혹시 로또에 당첨 됐어요?"

" 그런 게 있어. 싸이롱 뽕"

"그게 뭔데? 새로 나온 음료야?   싸이롱 뽕인지 나이롱 뽕인지  좀 거시기 하지만  이름이 쌈빡해서 잘 팔리겠네"

 

일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었을 무렵 지점장 그가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방문에 난 당황스러웠다.

또 뿡뿡거리면 얼굴 표정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는 한 번도 방귀를 뀌지 않았다.

몇 번 망설이다가 슬그머니 물었다.

"이제 괜찮으시네요."

"예?"

무슨 뜻이냐는 눈빛을 보내던 그는 잠시 후 피식 웃으며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자세하게 설명드리긴 그렇고 지병이 있어서 보조기구를 찼는데  그게 얄궂은 소리를 내는 바람에 그만"

그가 겸연쩍은 표정을 하자 나는 얼른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아, 다행입니다. 지금은 괜찮은 거지요?"
"예, 이제 보조기구가 필요치 않아서..."

"오해를 많이 받으셨겠어요."

" 그렇긴 하지만 막상 끝나니까 싱겁네요."

"예?"

"싸이롱 뽕 하고 부르니까 좀 거시기 했지만 재미는 있잖아요. 웃을 일 없는 세상에 그렇게 놀리면서 웃을 수 있으니까."

그는 나를 바라보면 빙그레 웃었다.

고성을 지르던 그의 얼굴이  오랜만에 편안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걸끄럽게만 보였던 그의 얼굴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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