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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8월이야기3..가을의 기억

by *열무김치 2021. 8. 19.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백발 어머니가 반겨줄 것만 같은 초가을 날

 

 

 

 

 

 

 

 

 

스무 살 누나는 그 가을에 80리나 떨어진 산골마을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갔다.

평창 대화 신리

대화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먼지 나는 신작로에서 한참이나 걸어 들어가야 하는 산골짝 그 집은 강냉이 농사만 지어서 쌀 밥 구경을 할 수 없었다.

땅뙈기가 제법 되어서 꾸러가지는 않으니 시집은 잘 간 거라고  자랑질을 한 사랑방 세 들어 사는 중매쟁이 대장장이의 말은 순전히 개 뻥이었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런대로 보리밥은 먹었는데 순 강냉이로만 지은 밥을 본 아버지는 이듬해 봄 신리 도로변에 논 여덟 마지기를 사 주었다.

" 아니, 땅뙈기가 많다는데 우리가 무신 돈이 있다고 논을 사 준대요?'

아버지와 갈등을 빚던 어머니에게 몇 차례 닥달을 당하던 사랑방 대장장이는 눈치가 보였는지 야밤에 슬그머니 이사를 가 버렸다.

그 마을에서는 목상을 하는 장인어른이 돈 냥깨나 만지는 사람 같은데 이런 골짜기로 딸을 왜 내놨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소문이 났고 예쁜 둘째 누나를 아내로 얻은 이서방은 호박이 넝쿨채로 굴러왔다고 부러워했다.

우리 집 속내를 알 리 없는 그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가 큰 사업을 하여 돈을 많이 버는 줄 알았다.

기실 아버지는 목상을 하시면서 나무 도시락공장을 운영하기도 했고 차돌 광산도 하셨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우리 집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빚 좋은 개살구였다.

빚쟁이들이 수시로 들락거렸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아버지와 자주 다투셨다.

찌그덩한 초가집은 몇 년이 가도 그대로였고 충주 달천에서 이사올 때 싣고 온 문짝이 떨어질 것 같은 농짝도 그대로였다.

 

그해 가을

벼 타작을 끝내고 비로소 쌀밥을 먹었다고 누나가 말했다.

산판에 다니는 제무시에 도지쌀 한 가마를  싣고 온 매형은 어머니에게 낯짝도 두꺼운 놈이라고 핀잔을 들었다.

"남한테 장리 쌀을 준다더니 그게 다 거짓뿌렁이여?"

매형은 얼굴이 벌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리는 시에 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볼씨럽다고 이순이 니년이나 자네가  고집불통 영감보다 더 꼴보기 싫네.  쌀 한 가마는 아까워서 어찌 싣고 왔누?"

평소 과묵하던 어머니가 언짢아 하시자 누나와 매형은 하룻밤 지지도 못하고 대화로 돌아갔다.

하지만 매형이 보내온 쌀은 어떻게 된 일인지 한 번도 밥을 해 먹지 않았다.

네째 누나가 말하길  그 쌀가마는 다시 대화 신리로 되돌아갔다고 했다.

나는 고래실 논에서 났다는 그 쌀로 밥을 지으면 어떤 맛이 날까 몹시 궁금했고 밥 한 번 지어먹지 못하고 쌀가마를 돌려보낸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호사스러운 꽃밥을 먹다가 ....

불현듯 떠오르는 전설이 되어버린 가을 한 조각

 

 

 

 

 

 

 

 

 

 

 

그 누님의 현재가 궁금합니다.
아버님이 사주신 논을 기반으로 나중엔 부농이 되셨는지
그리고 자식농사 잘 지어 자녀분들은 대성을 했는지..

강냉이로 밥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궁금해지네요.
옥수수를 따서 익히는건지 아니면 겉 껍질을 벗겨서 밥을 하는지?
잘 상상이 안되어서요. ^^
가난의 굴레가 쉬 벗겨지지 않아서 둘째누님은 오래 간 고생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지요.
누님은 남매를 낳아 아들은 서울로 대학을 보냈고 금융사에 취업하여 요즘말로 잘 나가는 축에 속해 어느정도 부를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형님은 고생이 심했던 탓인지 일찍 돌아가시고 누님은 혼자 되셨습니다.
누님 연세가 80줄이니 생각하면 오랜 얘기네요.
누님이 결혼 후 살던곳은 현재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가 들어서 있어서 옛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옥수수밥은 말 그대로 말린 옥수수를 맷돌이나 분쇄기에 잘게 갈아 감자 등 잡곡을 섞어 지어 먹었는데 식감이 매우 거칠고 소화가 잘 되지않아 먹기가 거북했지만 당시 강원도 산골의 살림살이가 쌀이나 보리쌀이 귀하여 선택이 없었어요.
요즘은 마당에 키우는 개도 강냉이밥은 먹지 않으니까 불과의 세월에 우리나라 식문화는 기적을 이룬 셈입니다.
근데..
요즘 이런 이야기 하면 별나라에서 왔다고 팽 당합니다. ㅎㅎ
동네 어귀의 코스모스가 맘을 붙잡는군요
하늘 거리는 코스모스에서 가을 내음이 느껴지네요

스무살에 시집간 그 누님은 잘 살고 있겠지요
벼타작 끝내고 비로소 쌀밥 먹었다는 그 누나...

꽃밥을 먹다가
전설이 되어 버린 가을 한 조각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드는군요...
오래전 이야기지만 이제 누님은 80줄 노인이 되었고 아마도 그날의 기억은 희미한 옛일로 남았을겁니다.
가을은 우리들의 심성이 맑아지는 계벌이라지요.
고운 가을 맞으시기바랍니다.
잠으로 가는 길을 잃고 이리저리 돌아 다니다가
문득 들어와보니, 맘이 환해지는 느낌입니다.
어쩜 코스모스 얼굴이 저리도 또랑또랑할까요..
들어도 들어도 식상하지 않는 때때산골 이야기..
새닥시절에 가난이 주저리 열린 그 산골에도 옥수수밥은 안먹던데...라고 쓰다보니,
누님과 저랑은 나이차이가 얼맨데..ㅋㅋ
찰옥수수로 떡해먹으면 찰떡되고 맛나던 기억이 나네요..
옥수수밥 먹던 누님과 고래실 논에서 난 쌀밥이 먹고 싶던 소년과
쌀 한가마를 그대로 돌려 보낸 어머니와
세월이 흐르고 흘러...꽃밥 드시는 열무김치님의 상념이 왠지 조금은 쓸쓸해집니다

그곳에서 한동안 사셨으니 ...
그시절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지만 가을만 되면 소년시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누님은 이제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기력이 많이 쇠하셔서 동생네 집 발걸음도 힘겹습니다.
이번에 만나면 이 얘기를 들려줄까 합니다.
며칠째 밥 한끼도 먹을 시간 없이
이 계절에 해결 해야하는 일에 매달려 있다보니
저 꽃 비빔밥 유혹이 허기를 느끼게 하네요 ㅎㅎㅎ
예전에는 중매쟁이들이.왜 그렇게 거짓말로 남의 인생을 장난쳤을까요.ㅠ
글 속 아픔 색고운 저 과꽃이 위로를 합니다
복숭아 수확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농사를 하는 분들은 일에 매달리다 여름과 가을이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일의 끝이 좀 보이면 겨울초입이니까요.
시골에서 농사를 하는 친구들이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농사를 지어 뚜렷한 결과물은 별로 안 보이는데 자신의 늙은 얼굴은 확실하게 보인다구요.
표현을 하지 않을 뿐 사정은 비슷합니다.
남은 여름 무탈하시길요.
^^*♡
방가 방가 Bonjour encore 선생님 포스팅 잘 보고 다녀갑니다. (♡꾸벅)

https://blog.naver.com/yeejooho6

나뻐요. 미쿡은 날강도 집단입니다. 앞으로 망해 갈 것입니다. 문제는 똥성반란에 인류가 공히 망한당께유. 쩝쫍 ㅠㅠㅠ 대선과 관련 이낙연씨를 지지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사악한 핵쓰레기 무단 방류는 환경 범죄로 환경전쟁 선포입니다. 그리고 그 뒷배인 미쿡은 반드시 망합니다. 시간 문제입니다. 똥성 미쿡은 양아치 일본의 배후로 우린 또 "'젖'되는"겁니당! 일본 타도!양키 고홈이랑께유 ㅠ감사(꾸벅)^^*
찾아주시고 댓글 주시는 건 참 고맙습니다만 제 블로그 댓글란에 종교나 정치적인 견해는 사양합니다.
개인 일기장이나 다름없는 블로그가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소모적인 논쟁의 장이 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오니 이 점 널리 이해하여 주시고 추후 정치성을 띤 댓글은 달지 마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열무김치님 삶의글이
정말 넘 아름다워서
눈을 뗄수가 없어요.
글을맛갈스럽게 쓰시는군요
즐감 합니다.
멋진날 되셔요.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많이 내립니다.
좋은 휴일 되세요.
예전엔 이런 비슷한 중매가 많았지요?
저의 이모도 이런 중매쟁이 말만 믿고 혼인하여 그래도 증조할아버지께서 평생 친정에서 살게 하셨지요
지금은 천국에 계십니다.
남을 맺어주는 혼사를 성사시키려다보니 양념이 많이 가미되게 마련이고 없는 사실도 많이 보탰지요.
그중의 갑은 먹고살만 하다는 유혹이 가장 컸습니다.
대부분 살림이 곤궁했으니까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사는 게 결혼조건의 으뜸이다보니 거짓말을 할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물론 중매를 잘 하면 한 건 잘 챙길 수도 있었지요.
잘 못하면 뺨이 석대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나 봅니다.
어머니께서 말씀은 그리하셨어도
그 쌀가마니 누님댁에 도로 보내신 속내를 이해하겠습니다
참 엣날..더구나 강원도 산골짝..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강원도 산골짝 살림살이 불보듯 뻔했지요.
골마다 화전민이 흔했으니까요.
돌아보면 지금의 우리 살림은 기적이라고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 시절을 겪지않은 세대들에겐 마치 동화같은 얘기겠지만요.

비오는 주말입니다.
코로나라는 복병으로 가는 여름 오는 가을이 심란합니다.
옛날에 중매쟁이들은 거의 사기꾼이었군요.
하긴 울 엄마도 중매쟁이한테 속아 아부지한테 시집왔다고..... ㅎ
가난한 집 장남인줄 모르고 왔다 평생 고생했다고.
그 모진 세월 살아내고 자식이라도 잘 됐으니 다행이네요.
강냉이밥 먹던 시절도 살았는데 꽃밥 먹으며 왜 못 살겠어요
코로나가 난리를 쳐도 살아내야지요.
끝까지 남는 넘이 이기는 넘이라 카대요 ㅎㅎ
하하..
굳이나 멀리보지 마시고 지우당 어머님 만으로도 비교가 되겠군요.
둘째 누님은 서울에 있으면서 괜찮은 상대에게 청혼도 받았다는데 당신이 말씀하시길 집안이 너무 차이가 나서 겁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 이르러 그게 후회가 된다네요.

아니, 누님 이제와서 그게 무슨 말씀이랍니까?
아니여,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거라.
바보짓을 한거지
아이고야...
그저 소설을 쓰셨는지 알았는데 누님 이야기셨네요?
시집 보내고 나서 사정을 알게되신 어머님은 얼마나 속이 아프셨을까요.
자식은 어려서나 어른이 되나 맘이 아픈건 늘 같은것 같아요..
올 가을은 더 맘이 스산합니다..
제 위로 세분의 누님이 어려서 죽어서 그렇지 다 살았으면 10녀 1남이 되는 셈입니다.
누님이 하도 많다보니 벼라별 사연이 다 있답니다.
특히 세째누님의 연애편지 이야기는 제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
이제 세월은 가고 그저 기억만 남습니다.
첫째 누님의 연세가 88세시니 가끔은 우리 엄마가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들어요.
요즘 코스모스 보기가 참 귀합니다. 코스모스, 맨드라미, 나팔꽃 접시꽃은 이제 옛말이 되고, 가끔 볼 수 있는 것으로, 보면 정겹습니다.
외래종으로 모두 대체가 되어서 서울은 임의적으로 심는 곳을 만나면 반갑지요.. 또한 철 모르게 1달 남짓 미리 피어 계절을 상실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가을 하면 사람들이 코스모스 했는데, 지금은 여름에 보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랫만에 뵙네요.
안녕하시리라 믿습니다.

요즘은 시골에가도 맨드라미나 봉숭아 분 꽃 등 즐겨심던 수수한 꽃들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런 꽃들을 심던 구세대와 세대교체가되었기 때문이지요.
회려한 꽃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놀러 갈께요.
저는 서울에 와서 꽃을 밥으로 먹는 것을 봤습니다. 어려서 화전이나 요리를 해서 먹는 것은 종종보곤했는데, 비빔밥이나 이런곳에 꽃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저희는 꽃은 직접 먹지 않아야 한다고 배워서요. 꽃잎을 먹을때도 잎만 잘 씹었는데, 아마도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합니다.
아픔의 세월이었지만,
이야기에 아픔의 세월이었지만 지금은 아픔과 아름다움이
섞인 풍경화 같습니다.

그림도 그린 사람은 즐거움으로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아픔의 표현이지 싶은데,
우리가 보는 그림은 아름다움인 듯이요.

그 쌀 한 가마 딸네도 넉넉하지 못하다 싶으셔서 못 잡수시고 돌려 보냈을 겁니다.
그리 맘이 단단하셨던 세대가 우리 엄니 세대였습니다.
지금 같으면 우선 내 어린 자식들 생각하시고 가지고 온 쌀 잡수셨을텐데요.

이 글 쓰시면서 여러가지 회한의 생각들이 많으셨지요?
둘째누님이 참 무던하시고 야문분이셨는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는동안 젊은 시절은 다 가버렸으니까 사실상 죄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듭니다.

억척같이 사신 덕분에 지금은 의왕쪽에서 괜찮게 사시는데 이미 80줄이라 어쩌다 뵐 때면 마치 어머니를 보는 것 같습니다.
어끄제 같았던 어머니는 떠나신지 벌써 2년 반이 되어갑니다.
블로그 이웃들의 이야기도 빠르게 지나갑니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네요
곳곳에서 비피해가 심하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블친님! 비피해 없으신가요?
이밤도 편안한 밤되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반갑습니다.
가을의 길목에 때아닌 비가 자주 내립니다.
가을장마라는 신조어가 생겼어요.

한 해의 후반으로 가는 가을에 좋은 일 많기를 바랍니다.
불현듯 떠 오르는 전설이 되어버린 가을 한조각
그 옛날 그시절의 소설을 읽는듯 합니다.
그 시절에 누님께서는 가난으로 고생은 많이 하셨겠지만
지금은 다 지난 옛일이 되었고
글을 잘 쓰셔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딸의 생활을 훤히 알고 계시니 사위가 싣고온 쌀을 다시 돌려보내는 딸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찡했습니다
엄마의 마음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속이 좁다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바다와 같습니다.

코로나로 점철된 하루하루가 모두에게 짐이되고 있습니다.
이 무거운 짐을 언제 벗을 수 있을지요.
무탈하시기바랍니다.
꽃밥을 먹다가 불연듯 떠올려지는 전설이 되어버린 가을 한토막.....
신작로, 제무시, 대장장이,소풍때 싸가지고간 나무 도시락도.....
시절을 거스르며 함께 그 시절로 회귀해봅니다.
그때만도 식구들이 보통 7-8남매였지요. 부득이 먼저 가기도 하고....
엊그제는 모처럼 큰누님과 자형과 통화를 해보았네요.
제가 꼬맹이시절 한강 광나루 에서 수영하러 간 기억속에 자형은
풍채가 멋있고, 뻥도 있었던.... 이제는 80노인에 몸져누워계시고 말투도 어눌하시고,,,,
세월의 무상함도 느꼇습니다.
가난한 세월을 추억으로 간직한것도 지나고 보니 괜찮은 무용담(^^)같습니다.
요즘 애들에게 얘기 늘어 놓으면 꼰대라고 투정하지만....ㅎㅎㅎㅎ
그 시절이 있어서 담금질이 되기도 하였던것 같습니다.
코스모스가 피어나는 들녁에 가을이 성큼 다가선듯 합니다.
이 가을엔 하수상한것들이 파란 하늘처럼 싹 가셔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건강하시고 즐거운 가을 맞이하세요^^
비슷한 시절을 보내셨으니까 단 글자를 쓰더라도 공감이 가는데 턱이 너무 높이 진 신세대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게 여간한 지혜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자칫하면 말씀대로 꼰대로 비쳐지니까요.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꼰대들은 그냥 그대로 살다가 가야지요.
그것도 삶의 축 이니까 훗날 모두 인정하고 기억하리라 봅니다.

바이러스로 세상이 어지럽지만 어김없이 맑은 가을이 왔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세상 근심 가끔씩이라도 내려놓아야겠습니다.

빛 좋은 가을날에 한 번 뵙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그 흔한 코스모스가 귀하더군요.
동네어귀에 늘 반겨주듯 피었던 코스모스가 노란꽃에 밀려 안타까워요.
밥상위에 꽃밥을 보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셨군요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쌀밥이지만 남편말로는
날마다 먹고 싶다고 먹을 수 있는 쌀밥이 아니였다군요.
힘들던 유년시절을 지금은 그리워하며 추억하게
되나봐요...
안녕하세요?
♡세계 동물의 날 건강 관리 잘하시고 보람 되게 보내세요♡
멋진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공감♡ 추가하고 갑니다~~~~
저희 엄마도
부잣집인줄 알고 속아서 시집왔다던데....

잘 사는 작은 할아버지 댁을
시댁이라고 생각하고 말이죠...

당시 중매쟁이들은
다 사기꾼수준이었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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