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습작단편

파란초등학교 3

by *열무김치 2016. 12. 26.

 

 

 

 

 

간단한 술자리가 끝나고  구들방에 누웠다.

"오랜만에 오신거지요?"

"그렇게 됐군. 여기를 떠난 지 벌써 40년이라는 걸 오늘 오면서 알았지."

삼락이 이불을 더 내려왔다.

"그런데 말이야. 제법 긴 세월인데 길게 느껴지지 않아. 여기 누우니까 엊그제 같아."

"선생님께 수업을 받았으니까 저 역시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그런데 자네는 왜 여기를 떠나지 못 하나?"

"그냥요. 다른데 가도 달라질 게 별로 없을 것 같아서 눌러 앉았지요."

"하긴 , 자네가 남아있으니 내가 오는 거지 . 한편 고마운 일이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만 쉬시지요."

삼락이 전등을 내리고 공 선생 옆에 눕자 순식간에 피로가 몰려왔다.

희미하게 불빛이 들어오는 창가로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동안 교직에 계셨는데 그간 있었던 재미나는 이야기가 있으면 딱 하나만  들려주시지요."

"딱 하나? 그 많은 이야기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피곤하시면 내일 하시구요."

뒤척거리던 공 선생이 일어나 앉았다.

"딱 한 대만 피겠네. 자네 담배 있으면 한 가치만 주게"

"담배 끊으셨다고 하셨잖아요."

"이렇게 피우고 싶을 때가 있지."

하얗게 피어오르는 담배연기가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

교장이 공 선생을 찾은 건 수업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이봐, 자네는 무슨 일을 그렇게 하나?"
교장은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어제 그 양반이 교무실로 찾아 왔었네. 무식하긴 했지만 나름 조리있게 떠들더군."

"누구 말입니까?"

"정말 몰라?"

공 선생이 손을 양쪽으로 벌리자 교장은 메모지를 꺼내 어느 학생이름을 적었다.

"얘 말이야. 이번 반장선거에 떨어졌다면서?"

공 선생이 입맛을 다시자 교장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짓이기며 얼른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안 될 거 같으면 받지를 말던가. 안 그러면 뒷수습이라도 제대로 하던지, 교무실에서 그게 뭐야."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수업을 하지 않을 수 없어 교실로 들어가자 아이들 떠드는 소리로 교실은 온통 시장 통 같았다.

공 선생이 들어가자 아이들이 우루르 자리에 앉았다.

"반장, 앞으로 나와."

눈이 둥그런 반장 아이가 슬 금 거리며 나오자 공 선생은 이내 지시봉을 들었다.

"손바닥 내"

열 차례가 넘게 손바닥을 내려치자 반장아이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교실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지자 공 선생은 반장에 떨어진 아이를 불러냈다.

"너, 이런 반장이 좋아?  아버지 내일 학교로 나오시라고 해 . 알아들었지?"

아이가 겁을 잔뜩 먹은 얼굴로 주척 거리며 들어가자 손바닥을 맞은 반장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따라 들어갔다.

"누가 들어가라고 했어. 이쪽으로 와서 의자들고 서있어."

반장아이에게 의자를 들린 채 수업을 진행했지만 공 선생은 부아가 올라와서 견딜 수 없었다.

"시간 될때 까지 모두들 자습 한다.알았지?"

창문 곁에 서서 밖을 바라보았지만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의자를 든 반장아이가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흘금거리며 숙덕대자 공 선생이 벼락같은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못 해? 너희들도 똑같은 놈들이야."

 

다음날 반장에서 떨어진 아이의 아버지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학생도 결석을 했다.

교환을 불러서 그 아이 집에 전화를 연결했지만 몇 번을 걸어도 받지 않았다.

종일 우울했지만 그렇다고 티를 낼 수도 없었다.

"왜 그래요? 무슨 근심거리 있어요?"

바로 옆 책상에 붙어있는 여교사가 물었지만 공 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눈짓만 보내곤 이내 교실로 들어왔다.

어끄제 그 일 때문인지 아이들은 모두들 제자리에 얌전하게 앉아있었다.

"기환이 집 아는 사람 ."

"저기 교회당 옆에 큰 집인데요. 엄청 부자래요."

창가에 앉은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자랑스럽게 말했다.

" 너 수업 끝나고 선생님이랑 기환이네 집에 가자."

"저기요, 기환이네는 엄청 무서운 개가 세 마리나 있어요. 전 안 갈래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 세 마리면 뭐해. 선생님, 모두 똥개래요.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두 아이가 서로 주먹을 들어 보이며 눈을 부라렸다.

 

길게 난 논둑길을 따라 들어가자 멀리 교회당이 보였다.

그 옆집이라고 했으니 물어보고 말 것도 없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누런 색깔의 개들이 굵은 쇠줄에 매여 있었는데 공 선생이 들어서자 난리를 쳐댔다.

"뉘기요?"

팔십 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영감이 삼태미에 뭔가를 담다가 허리를 폈다.

"여기가 기환이 학생 집 맞지요?"
공 선생이 인사를 하고 노인의 권유에 따라 대청마루에 앉자 이내 기환이 아버지가 나왔다.

"무슨 염치로 여기까지 왔습니까?"

분에 찬 눈을 위 아래로 껌벅거리는 기환이 아버지를 보자 공 선생은 부아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 없었다.

"여기 어르신이 계시니 다른 데 가서 좀 봅시다."

"뭘 다른 데를 가요. 여기서 말하면 되는거지."

"사정하고 매달린 게 누군데 학교에 찾아가서 그 작단을 칩니까. 제가 싫다고 했잖아요."

"하이고야, 꼴에 선생이라고. 그만한 융통성도 없는 게 선생질은 왜 합니까?"

두 사람의 대화가 생각 밖이라고 여겼는지 노인이 두 사람을 가로막고 나섰다.
"야야, 니는 선상님 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고? 저놈아가 실성을 했나."

공 선생은 노인 보기가 그래서 얼른 밖으로 나왔다.

급하게 뒤따라 나온 기환 아버지가 씨근덕대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무리 아들이 하는 일이지만 선생이 적당하게 무마하면 될 걸 가지고 그게 뭐요.

반장이야 선생이 정하면 되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

아새끼 반장 한 번 시켜 보겠다고 간이고 쓸개고 빼고 그만큼 사정 했으면 눈치 껏 좀 봐주면 안 되는 거요?"

공 선생이 같이 담배를 피워 물자 기환 아버지가 피우던 담배를 발로 짓 이기며 허리춤을 치켜 올렸다.

"돈 달라고 안 할테니 그만 가 보소."

순간 공 선생이 기환 아버지 멱살을 움켜쥐었다.
"돈 같은 거 필요 없다고 했고,  반장 역시도 아이들이 뽑는거니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억지로 돈 봉투 던저두고 간 게 누구요. 떨어져도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한 게 누구냐 구요?  이 더러운 .."

"아이고야, 선생이 사람 치겠네. 그만한 능력도 없는게 받아 처먹긴 왜 받아 처먹는데. 받아 처먹은 건 사실이잖아."

" 그래요. 그거 돌려주려고 여기 왔습니다. 억지로 주고 간 거 요."

"사무실에서 창피를 주었나 보지 .창피한 건 아나보네."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기환이 울면서 달겨 들었다.

"아버지요. 선생님한테 이러지 마세요."
기환 아버지가 기환에게 발길질을 하자 공 선생이 잡았던 멱살을 놓았다.

"나 하고 싸우면 그만이지 애한테 발길질은 왜 하는 거요. 정말 창피 합니다."

"허, 도덕군자가 여기 있었네, 돈 떨끔 받아 자시는 도덕군자가."

 

 

 

 

제가 초등학교 6학년때 2학기 반장을 했었지요.
서로 안하려고 하는 반장이었지요.그래서 일년도 아니고
반년씩하는 반장을 학기초와 여름방학이 끝나고 두번 선거했지요.
다른 아이들은 과외하고 가정교사 두고 중학교 입시 공부할 때였으니까요.
저는 과외를 다닌적이 없어서 시간이야 많았지만
남들이 하기 싫어 하는 반장을 한학기 맡아서 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서로 반장을 하려고 하나 봅니다.
한가지 제 아버님은 제가 어렸을때는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시면서 담임도 하셨는데,
학부형들에게 촌지를 한푼도 안받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가난해서 등록금 못내던 학생들을 도와 주셨었지요.
이 내용을 읽으면서 현실 이야기 같은데 슬픕니다.저도 들어 보기도 했고요.
물질에 깨끗하게 살려고 아직껏 바르지 못한 돈은 안쓰고 살아 왔다고 생각은 하는데,
돈앞에서 사람이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어떤 면으로 어쩔수 없는 현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소설을 쓰셨는데 현실같은 소설입니다.재미있었습니다.

성탄절 잘보내셨지요?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아..
이글은 지금이 아니고 공선생의 젊은시절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쓴 것이니 40년전의 얘기가 되겠네요.
당시엔 반장을 하는 아이기 동네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의 자녀들이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비록 픽션이지만 당시 겪었던 일들을 자료삼아 써보는 글입니다.

성탄절은 운전을 해야 해서 성도들 실어 나르느라 정신없이 보낸 것 같습니다.
늘 가까이 다가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가정사 웃는일들이 많아지기를 빕니다.
아울러 제 이웃으로도 계속 남아 주세요.
그렇다면 제가 미국에 있었던 때였군요.
서울서 자식 공부시키려는 부모들은 반장 안하겠다고 처음부터 공표를 해서
요즘도 잘안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요.제가 잘못 알고 있었네요.
열무김치님 차로 남들에게 라이드주시는 일을 하시는 군요.
좋은 일하시고 사셨네요.저희도 연로하신분들에게 라이드를 주곤 했지요
일요일에 교회갈때요.저는 집에 장애인아이를 놓고 다녀서 긴시간을 라이드 드릴수 없는데,
어느저희보다 젊은부부가 자기부모님을 저희보고 라이드해달라고 해서
처음 얼마간은 했었는데 나중에는 거절했어요.
자기부모님 라이드 해달라면서 저희 집에 혼자있는 제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안하더라고요.
이유는 자기들이 친구집에 가려는데 자기 부모님이 지루해하실까봐서 저희보고 모셔다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자기부모님이신데 무엇을 하든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저희를 부모님 운전기사로 생각을 하고 있어서 제가 딱부러지게 말을 했지요.
당신들 부모를 당신이 하던지 다른사람 찾으라고요.
우리집 막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우리부부는 막내를 돌봐야 한다고요.
한가지 고마운것도 모르는 그부모님과 그아들 부부였지요.
아주 당연하다는 식으로 저희에게 맡겼었지요.
자기들 놀러 다니는데 부모님께서 불편해 한다고 생각하면서 다른사람에게 부모를 떠 맡기려고 하는것을 이해하기 참 힘들었지요.
변권사님은 저희가 몇년을 라이드 드렸는데 항상 고맙게 생각하셨고 크리스마스때면 막내선물도 주셨지요.
그리고나서도 서로 다른교회를 다니고 있는 지금까지도 선물을 보내 주십니다.
잘 하셨습니다.
받을 줄만 알고 자신은 인색한 사람들이 있어요.
어려서의 교육부재라는 생각입니다.
그런사람들에겐 현실적인 대답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초등학교도 아니고 국민학교시절...
파란색 나무로 만든 책걸상.
가운데 선명하게 그어진 줄,
생각해보면 그어진 줄만큼 선명한
기억들인데...아주 오래된 흑백사진같은데요^^
확실한 건 그런 추억을 지닌 기성세대들이 지금 세대들보다는 정적이었다는겁니다.
비록 힘겹게 살았지만.가끔 흑백사진을 찍습니다.
흑과 백의 단순함이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기도 하거든요.
파란색 나무로 만든 책걸상.
저도 기억합니다.
당시 학교 부자재들은 모두 비슷햇지요.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읽고 있으니까 예전에 겪었던 일들도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요즘은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그 문화는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일들이지요.
분명 길지는 않지만 40년의 벽은 참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시골초등학교는 보통 1,000여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가끔 들러보는 시골초등학교엔 20명이 채 안되는 곳들이 많더군요.
반장선거, 그리고 힘깨나 쓴다는 집 아이가 반장을 독식하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갑과 을의 관계는 크게 변하지 않아서 가끔 차라리 그때가 더 솔직한 시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공 선생이 오랜 교단생활을 끝내고 그가 꿈꾸었던 대안학교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보려고 시작은 했는데...
잘 지내시지요.
습작이 아닌 책으로 출판을 하셔야 겠습니다.
어린시절을 잠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편안하고 좋은날 되세요.
감사합니다.
블로그에서나 써보는 글입니다.
요즘 바쁘시겠네요.
연말 평안 하세요.
아 반장이 무엔지
ㅎㅎㅎ 그러고보면 우리가 참 감투 좋아해요
예전엔 그래도 선생님 알기를 하늘같이 알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한 선생님이 그가 꿈꾸었던 교육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시작은 했습니다만 아득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40년 전이라면 지금보다는 선생님 권위가 유지 되던 시절이던데도, 그 시절도 이런 일이 있기도 했지 싶습니다.
반장 부모가 되면 소풍 때나 운동회 때 선생님을 식사를 비롯해서 챙겨야 하는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입장에서 보면 엉덩이에 뿔난 돈 있는 학부형이 갑이었을 겁니다.
제맘대로 돈 봉투 던지고 부탁한다고, 않되어서 말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선 그 학부형은 제 아이가 무엇을 보고 자라는지는
올랐지 싶은데도 그 시절의 사회환경이 그 아이를 반듯하게 길렀지 싶습니다.
요즘에 비하면 선생님의 권위가 상당했지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통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교육현장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선생님의 귄위도 있었지만 교육의 수직적인 권위가 군대문화처럼 존재했으니까요.
동네 힘깨나 쓴다는 집의 학부형이 여러문제에 관여하고 그로인한 마찰음도 많이 일었는데 이를 당연시 하는 문화가 당시였습니다.

어느 조직이던 양과 음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교육은 양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도 교육에 대한 문제가 많이 일어나니 비록 상상속이지만 우리가 바라는 교육현장을 한 번 써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짧은 식견에 잘 써질지 모르겠습니다.
열무김치님은 결코 짧은 식견은 아니십니다.
단견이긴 해도 사람은 많이 알아서 자기 분야 속 아니면 대화가 않되는, 댓글도 대화라고 보고 분도 계십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댓글, 저런 댓글,등에도 댓글 적으신 분 입장에서 마주보고 답글을 다시는 분이 열무김치님이시지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포스팅에 정답인 댓글이 있지도 않고, 또 여러가지 수준의 분들이 호의로 다는 댓글은 그 호의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바라는 교육현장이 이 블로그를 통한 사람들이 합심이 되어서 파란편지 선생님을 교장선생님으로 모시고,
열무김치님께서는 교감 선생님으로 두량을 하시고, 그런 파란학교가 운영 되어 졌으면 합니다.
그런 학교가 있다면 준서할미도 가끔 가서 운동장에 꽃도 관리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 주고, 비단 준서할미 뿐이겠습니다.
나름대로 자격요건까지 갖춘 블로거들이 여러분들이 계실텐데요.
이루어 질 수 없어서 저도 해 보는 말입니다만, 열무김치님의 파란학교가 블로그에 연재 되면서 자격요건을 갖춘 그런 대안학교가
생길지가 희망 사항입니다.

제 블로그 벗님께서는 아들의 고등학교에서 대한학교를 찾아 다니다 결국은 정규고등학교에 입학 시켰고, 스카이 대학 중에 한 곳을
입학 했고, 군 복무를 끝내고 복학 중이기도 합니다.
대안학교는 초등학교 수준에서가 적기 이나? 합니다.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노력을 다 해 보겠습니다.
옛날 생각 나는군요.
청청수.
 

'습작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덕이  (0) 2017.12.04
순정이 *  (0) 2017.11.29
파란초등학교 2  (0) 2016.12.19
파란 초등학교1  (0) 2016.12.19
晩秋****방앗간 집 딸들  (0) 2016.11.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