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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단편

만덕이

by *열무김치 2017. 12. 4.

 

 

 

 

 

 

 

갑작스러운 전화에다 만나서 차나 한 잔 하자고 했을 때만 해도 반가운 마음만 앞섰다.

살다 보니 이럴 때도 있구나 싶었고 이제 적잖은 세월도 흘렀으니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린 것은 착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하긴 요즘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정작 비밀이 보장되어야 할 은행이나 기업 보험사 등에서 개인의 신상정보가 한 겨울 눈 날리듯 온 사방에 뿌려지는 세상이니.

서둘러 일을 마치고 약속 장소로 나가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허구한 날 유니폼만 입으니 평소의 옷차림에 감각이 떨어진 탓인지 어떤 걸 입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갑자기 왜 옷차림에 신경을 써요?"

"왜, 난 그러면 안 되는 거요?"

"그런 게 아니라 당신 아까부터 거울을 몇 번이나 봤는지 알아요?"

"그런 게 있어."

"무슨 꿈에 그리던 옛 애인이라도 재회하러 가시나?"

"허, 멍석을 깔아야겠구먼. 이제 산에서 하산을 하셔야겠어."

아내는 다른 옷을 꺼내 입어보라고 했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재 보았지만 도토리 키 재기였다.

"옷보다는 옷걸이가 좋아야 하는데 그것 참."

대충 옷을 바꿔 입고 구두를 신고 나서자 처량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은 확실하게 잡았네. 비도 꾸죽 하니 내리고 해야 재회의 분위기도 애틋할 테니. 좋겠소."

"진짜 만나면 어떡하려고?"

"마음대로 해 보시던가. 지금 당신 나이가 꽃띠가 아니거든. 모르긴 해도 소 닭 보듯 , 닭 소 보듯 할 걸."

 

약속 장소에 이르자 비는 더욱 세차게 쏟아졌다.

그 언제던가

시골 가설극장 화면엔 비가 좍좍 내렸지.

숱하게 써먹은 낡은 필름을 영사기에 걸면 영락없이 화면에 줄이 죽죽 가서 난 처음엔 비가 오는 줄 알았다.

또 언제는 엄마 치마꼬리 붙들고 동백아가씨를 볼 때 화면에도 비가 내리고 하늘에서도 비가 내렸다.

한국영화는 이별할 때 꼭 비가 내리더라.

낡음 필름에서, 화면에서, 하늘에서 진짜 비가 내리는 완벽한 삼위일체

비교 불가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처럼 다이내믹한 영화관이 지금 존재하기나 할까?

얼른 들어가지 못하고 잠시 비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다보았다.

수많은 약속들이 긴 꼬리를 감추고 어디론가 숨고 있었다.

비 내리는 날의 고독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저 비를 핑계 삼아 억지를 부리고 있으리라.

삶에 대한 화풀이를 술로 달랜다면 비 오는 날의 고독은 세상이 나를 다독이는 일이다.

하여 비는 빗물이 아닌 슬픔의 언어로 나부낀다.

사랑하던 날

사랑하는 사람과 우산 속에서 듣던 빗소리는 자연의 소리가 아닌 천국의 멜로디였다. 

그 아름답던 소리가 고독하고 음울하게 들릴 때 나는 이미 그곳에서 너무도 멀리 와버렸다는 걸 알았다.

 

카페에 들어가 여기저기를 살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약소 장소를 잘 못 찾았나 싶어 나가려고 할 때 카페 구석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실내가 약간 어두웠으므로 멀리서 확실하게 구분이 되진 않았지만 짐작으로 그녀 같았다.

그녀는 다소 어두운 색상의 옷을 걸치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이런 데서 만나네요."

그녀는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얼른 알아보긴 했지만 가까이에 다가가 바라본 그녀는 적잖은 세월이 흘렀다고 해도 너무도 변해있었다. 

아니 완전히 딴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마치 뜨거운 물건을 만지기라도 한 듯 마주 잡은 그녀의 손에서 얼른 손을 뺐다.

잠시 어색함이 지나갔지만 나는 얼른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비가 엄청 내리네요. 우리 창문 쪽으로 갈까요?"

"그럴까요. 그럼."

다시 주문한 따스한 카페라테를 들고 창가로 왔을 때 바로 옆자리엔 앳된 젊은 연인이 손을 마주 잡고 소곤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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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도

입영을 앞두고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에서 일을 돕고 있었다.

그동안 사귀던 아가씨와의 문제로 잠시 전라북도 군산의 모 지역에서 미군들과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촌형님에게 장사를 배우다가 입대가 가까워 다시 올라와 있었다.

다행히 사귀던 아가씨와는 사이가 회복되어서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우체국에서 장거리 전화를 자주 주고받았다. 

내가 살던 곳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우체국이 있었다.

산골에 우체국이 생긴 건 반가운 일이었지만 이런 곳에 왜 우체국을 지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무 때나 찾아가도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수작업이 전부인 작은 공장도 공장이라고 이런저런 우편물을 보내야 할 게 많았다.

매주 수요일이면 보내야 할 우편물을 보아 우체국으로 갔는데 갈 때마다 우체국 안은 마치 절간 같았다.

가끔가다가 걸려오는 전화소리가 정적을 깨우고 있었다.

우표를 사서 풀로 붙이고 있을 때 어느 여인이 다가와 눈짓을 했다.

못 본 척 하자 그녀는 아기를 안은 팔꿈치로 나를 툭 하고 쳤다.

왜 그러느냐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대뜸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모르는 여인이었다.

"저기요, 저기 아랫동네 OO 공장 하시는 분 맞지요?"

"저를 아세요?'

"그럼요, 매일 봤는데요."

그녀는 우표 값 100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오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다면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나를 매일 봤다는 말에 100원을 꺼내 주었다.

"내려가면 드릴게 요"

"됐어요."

"꼭 드린다니까요."

 

이튿날 오후에 그녀가 공장 안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녀가 내미는 돈을 보자 직원들이 수근덕 거렸다.

"뭐야, 그 풍경은?"

"암 것 두 아니에요. 빌려준 거 받은 건 데."

"그쪽 여자랑 돈 거래도 하나 봐?"
"에이, 뭔 말이 그래요. 그 쪽 여자라니. 어제 첨 봤어요."

"순진하기는,  그럼 그 말을 믿으라 구?  윤 씨가 뭘 모르나 본데, 조심해. 그 여자 신랑이 성질이 지랄이야."

쓸데없는 참견이라는 생각에 공장을 나왔지만 직원들 말이 영 마음에 걸렸다.

제품 정리를 하다가 참을 먹으려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국수를 푸던 주방 아주머니가 날 보더니 손짓을 했다.

"왜요?"

"참 먹걸랑 나 좀 봐."

"여기서 말씀하세요."

"그게 아니라니까."

참 시간이 끝나고 공장 뒷 켠으로 불려 간 나는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빌려간 돈을 갚으러 온 그녀가 이 고장 사람이 아닌 데다 간질환 자니까 가까이하지 말라는 거였다.

"그럼, 내가 그 여자랑 사귀기라도 한다는 거예요?'

"그럼, 첨 보는 여자한테 돈을 왜 꿔 줘?"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 말을 꺼내다 그만두자 아주머니는 야릇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거, 이상한 취미를 가졌네. 군대도 안 간 총각이.

그리고,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윤 씨는 백치여서  열 번이면 열 번 다 당한다니까."

"백치요? 아니, 그럼 제가 바보 등신이라는 거예요?"

"어이구 저렇게는.. 좋은 뜻이야."

걸끄럽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동안 이어졌지만  난 모르는 척했다.

말복이 지나고 군에 입대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덤덤하게 받아들이자고 다짐했지만 입대일이 가까워오자  마음과는 반대로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보름간의 임금을 주기 위해 공장에 들렀는데 그녀가 공장 안에 와 있었다.

반장 아주머니는 눈을 찡그리며 얼른 가보라고 했다.

"어떻게?"

"저도 여기서 일 좀 시켜주면 안 될까요?"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지만 아이는 어떡하려 구요. 그리고 여기 일이 보기보다는 힘들어요."

그녀는 무슨 일이던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노라며 매달렸다.

하지만 이미 그녀에 대해 알고 있었던 터라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더구나 허락을 하면 공장 직원들과 부딪칠 게 분명했다.

"미안합니다. 사람을 더 쓸 형편도 못 되고 해서요."
그녀는 울 듯 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돌아갔다.

"잘하셨어요. 제 깐 게 무슨 일을 한다고.. 그러다 여기서  경끼 하면 그 꼴을 어떻게 봐."

반장 아주머니가 들으라는 듯이 샐쭉거렸다.

"거, 쓸데없는 말 하지 마시고 얼른 일이나 하세요."

내가 평소와는 다르게 소리를 지르자 아주머니들이 입을 내밀었다.

"이상도 하네. 왜 저렇게 예민하실까?"

 

이튿날, 그리고 며칠이 가도록 그녀는 공장에 계속 찾아왔다.

내가 상대를 하지 않자 아예 공장 바닥에 퍼질러 앉아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서서히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쫓아낼 수도 없었다.

"젖먹이를 안고 무슨 일을 하신다는 거예요?"

"안 그러면 우린 굶어 죽어요."
"예?"

그녀는 집안에 쌀 한 톨 없다고 했다.

남편은 집을 나 간지 오래됐고 자신은 아기 때문에 집을 떠날 수도 없다고 하면서 사람 살리는 셈 치고 좀 도와달라고 했다.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며칠 후 반장 아주머니를 불러 그녀에게 일을 시키는 게 어떠냐고 하자 펄쩍 뛰면서 만일 그렇게 하면 자기가 공장에 나오지 않겠다면서 되레 으름장을 놓았다.

"왜들 그렇게 저 여자를 싫어하세요?"
"발작하는 거 못 봤지요? 그거 봐봐. 당장에 밥맛이 떨어질 걸."

"하지만 굶어 죽게 생겼다는데 못 들은 척할 수도 없잖아요."

"신경 꺼요. 신랑이 버젓이 있는데 설마 하니 애 엄마를 굶겨 죽이기야 하겠어요. 더구나 환자인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며칠이 더 지나자 그녀가 더 이상 공장에 나오지 않았다.

남편이 왔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근처에 사는 아주머니가 한다는 말이  공장으로 오면서 들으니 애 우는 소리가 계속 난다고 하면서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한나절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계속 쓰였다.

도데 체 어떻게 살길 래..

점심시간에 슬그머니 그녀가 산다는 집으로 찾아갔다.

간간이 애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가 그치면 적막감이 흘렀다.

늦여름 매미가 우는 소리가 정적을 깨트렸다.

살그머니 집안으로 들어서자 빠끔 이 열린 방문 사이로 아기가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방안 비스듬히 걸린 빨랫줄에는 기저귀로 보이는 천들이 어지럽게 걸려있었다.

아기가 두발을 들고 버둥대다가 발가락을 입에 물고 몇 번 빨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기의 울음소리는 힘이 빠져서 마치 모기가 앵앵대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기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아이가 우는 걸로 보아 옆에 있겠지 싶어 되돌아 나오다 아기 울음이 그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산골의 여름 한낮은 그악스러운 매미소리와 간간이 이마를 간질이는 비탈 바람 말고는 적막하기 그지없어서 여기에 사람이 산다는 게 현실 같지 않았다.

반쯤 넘어간 외양간에는 여물통이 놓여있었지만 소가 있었던 자리엔 잡초가 사람 키만 큼 자라 있었다.

마당 가득히 제멋대로 피어난 망초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발자국만 겨 우남은 마당을 나섰다.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싶어 공장으로 내려왔지만 오후 내내 자꾸만 아이의 울음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젊은 총각이 왜 한숨을 쉰 대?"

"제가 언제요?"

"아까부터 한숨을 푹푹 쉬었거든요. 애인이 연락을 잘 안 하나?"

"에이, 진짜.."

"맞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는 게."

나무 널을 간추리던 아주머니들이 까르르 웃었다.

후덥지근한 공장을 나와 도랑물에 세수를 하다가 그녀가 사는 집 쪽을 바라다보았다.

방 안으로 들어가 볼 걸 그랬나.

공장 앞에 쌓아둔 미류나무에 앉아 몇 번을 망설이다가 다시 그녀가 사는 집으로 올라갔다.

집 앞에 들어서자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비스듬히 열린 방문 사이로 여전히 아기는 누워있었지만 잠이 들었는지 움직임이 없었다.

몇 번 망설이다가 방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계세요."
방문을 세게 두드리고 여러 번을 불렀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기가 누워있는 윗목으로 그녀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녀가 누워있는 주변으로 몇 가지 물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잠을 자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저기요, 이봐요. 일어나 보세요."

그녀를 흔들어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머리칼이 주뼛 서고 얼굴에 소름이 돋았다.

"저기요. 아주머니 정신 차리세요. 이봐요."

나도 모르게 그녀를 잡고 머리를 들어 올렸지만 부스스한 머리칼을 한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반응이 없었다.

왈칵 두려움이 밀려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길 나가야 하나.

방망이질을 해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럴수록 두려움이 밀려왔다.

점심 무렵 울던 아기도 미동이 없었다.

죽은 게 아닐까 싶어 반사적으로 그녀의 코에 귀를 가져다 대었는데 아주 가느다란 숨결이 느껴졌다.

그런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두려움에 휩싸여 반사적으로 방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공장으로 내달린 나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던 아주머니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저기요. 큰일 났어요. 큰일.."

"숨 넘어가겠네. 이런 촌구석에 큰일이 날 게 뭐가 있어? 뭔데요?"

"저기 위에 사는 아줌마, 다 죽어가요. 빨리 가보세요."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야. 느닷없이 나가더니 더위 먹었어요?"

"왜, 취직시켜달라고 하던 그 여자 말이에요."

"거, 이상도 하네. 그 여자가 죽는지 사는지 어떻게 알아요?"

"객소리 그만하고요. 빨리 올라가 보세요. 늘어져서 일어나지도 못 해요."

"더워서 그런가 보지. 우리가 거기를 왜 가요."

"사람이 죽어간다 구요. 내 말 모르겠어요?"

나도 모르게 내지른 벼락같은 소리를 듣고서야  아주머니들과 널을 깎는 조 씨가 공장을 나섰다.

"별일이네. 총각이 거길 왜 갔어. 거 봐 사귀는 게 맞다니까."

모두들 내키지 않은 눈치였지만 몹시 당황해하는 내 모습을 느꼈는지 모두들 산 쪽으로 올라갔다.

마을에서 유일한 약방에 전화를 걸어 급한 환자가 있다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리가 있는 관계로 한 시간이 넘어서야 구급낭을 든 약방 아저씨가 도착했다.

서둘러 그녀가 있는 집으로 올라가자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있었고 그녀는 여전히 누워 있었다.

약방 아저씨가 이리저리 그녀를 살폈지만 고개만 갸우뚱할 뿐 시원스러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때요? 괜찮아요?"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나?"

"그건 모르겠고요. 아까 낮에 왔을 때도 계속 이랬거든요."

"내가 보기엔 탈진했구먼.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빨리 병원으로 가야겠어."

그날 저녁, 아기를 아줌마들에게 맡기고 나와 조 씨 아저씨는 번갈아 그녀를 들춰 업고 공장으로 내려와야 했다.

공장에는 나무와 제품을 실어 나르는  낡은 트럭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불편하긴 했지만 가까운 대화 병원으로 나가려면 트럭이라도 타야 했다.

나는 운전을 하지 못했으므로 조 씨가 트럭을 몰고 짐칸에 헌 옷들을 모아서 깔고 그녀를 태웠다.

지금 같으면 단 이십 분이면 갈 거리였지만 비포장 자갈길이었던 당시의 대화까지는 한 시간이 넘도록 털털거리며 가야 했다.

가는 도중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두려웠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병원을 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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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신다면서요?"

"네, 9월 말에 가요. 어떻게 알았어요?"

"다 아는 수가 있지요. 잘해 내실 거예요."

가끔씩 그녀가 말을 붙여왔다.

아주머니들이 수근거렸지만 전 같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뭐가 그리도 다정해? 이젠 아주 대놓고 속닥거리네. 연상의 여인이 취향인가 봐."

"에이, 정말..그런 거 아닌 거 잘 아시죠?"

"아니긴 뭐가 아니여. 그런 게 아닌데 공장에 취직까지 시켜?

어쨌든 사람을 살렸으니까 잘한 건데 조심하라고, 저 여자 지랄 같은 남편이 아직 안 왔잖아. 오해하기 딱이라고."

하긴 그랬다.

그녀가 아사직전에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그녀는 혼자였고 남편이라는 사람에게선 연락이 없다고 했다

혹여나 남편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무슨 행패를 부릴지도 모른다는 아주머니들의 충고에 신경이 쓰였다.

당장이 급해 반대를 무릅쓰고 공장 일을 시켰지만 그녀가 공장에 계속 다니기도 불가능해 보였다.

최대한 애를 쓰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녀가 갖고 있는 지병이 계속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껄끄러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지만 그렇다고 당장 그만두게 할 수도 없었다.

입영을 며칠 앞둔 주말 오후에 퇴근을 하고 그녀를 따로 불렀다.

내가 따로 부르자 그녀는 초조한 얼굴을 하고 나왔다.

초가을 늦은 햇살이 나뭇잎에 앉아 상쾌한 분위기였지만 그녀의 얼굴은 어두웠다.

바람 탓인지 귀밑머리 살랑이는 그녀의 얼굴이 평소 보던 모습보다 앳되어 보였다.

아무렇게 질끈 동여맨 꽁지머리가 지는 햇살에 반짝거렸다.

말을 하지 않아도 직감했는지 그녀가 먼저 입을 떼었다.

"저 때문에 힘드시지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니 구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나무 널리 널려있는 개울가를 멍하니 바라다보았다.

몇 번인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그녀가 발로 땅바닥을 그으며 중얼거렸다.

"가시면 전 어떡해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입영을 하면 더 이상 공장에 나올 수 없다고 했다.

그럴 염치도 없다면서.

해가 지도록 그녀와 나는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저기.. 그것보다는 건강이 우선이잖아요. 그래서인데 이거 받으시고 당분간 좀 쉬세요."

아버지 몰래 준비한 얼마간의 돈이 든 봉투를 내밀자 그녀는 예감이라도 했었다는 듯이 울먹였다.

"그동안 도와주신 것만 해도 많은데... 제가 무슨 염치로.."

받지 않으려는 그녀의 손에 억지로 봉투를 쥐여 주고 난 도망치듯 공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입영을 준비하기 위해 더 이상 공장을 나가지 않았고 추석을 보내고 곧바로 입영열차를 탔다.

 

휴가를 나와 공장에 들렀을 때 공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반으로 줄어있었다.

나무 도시락이나 젓가락 대신 스티로폼으로 만든 도시락 통이 시장에 나온 후로 일감이 부쩍 줄어들었다고 했다.

발동기를 돌리던 조 씨도 고주망태가 되어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고 아버지는 공장을 처분해야겠노라고 말씀하셨다.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그녀가 어떻게 사는지는 물어볼 경황이 없었다.

공장 때문에 고민을 하시는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휴가기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두 번째 휴가를 나왔을 땐 한겨울이었다.

공장은 멈추어 있었고 아주머니들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를 따라 공장에 내려가 기계들을 정리했다.

공장을 매물로 내어 놓았지만 찾는 이 마땅치 않아서 기계와 건물을 따로 처분하기로 했다.

"휴가를 나왔구먼. 세월도 빨러."

지나던 아주머니 몇 분이 공장을 찾아왔다.

"이제 뭐 하세요?"

"뭐 하긴, 죽으나 사나 농사나 지야지. 그래도 공장 다닐 때가 좋았는데. 농사해봐야 벌이가 뻔하잖아.

일할 땐 힘들어도 몫 돈 쥐는 맛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재미가 없어. 구관이 명관이여."

"참, 그때 그 아주머니는 어떻게 살아요?"
"누구?  아, 만덕이라는 그 여자?

아직도 생각이 나나 봐. 그때 군대 가고 얼마 안 있다가 이사를 갔지. 남편 따라갔지 아마."

"그리 구요?"

"몰라 우리도. 어디 가서 잘 살겠지. 별 게 다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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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그냥, 그냥요."

그녀는 찻잔만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아이는요?"

"결혼하고 살림 났어요"

"잘 됐네요."

침묵이 흘렀다.

무슨 말이던 해야겠는데 입안에서 맴을 돌뿐 얼른 나오지 않았다.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꼭 찾아보고 싶었어요."

"아니에요. 입장이 바뀌었어도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냥... 힘들게 살면서도 짐을 안고 있었어요."

"전 새카맣게 잊고 있었는데요 뭐."

그녀는 한참 동안  커피를 여러 차례 나누어 마셨다.

"아저씨는 만나셨나요?"

그녀는 대답 대신 작게 웃었다.

다시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그곳을 나오고 얼마 안 있어 갔어요."

"가다니요."
"집을 나가서 소식이 끊겼어요."

문 쪽이 요란하더니 젊은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왁자지껄 커피 시키는 소리에 커피숍의 나지막한 음악소리가 달아났다.

"비가 꽤 오네요."

"그러게요. 여기가 원래 비가 잘 안 오는 동넨데."

 

커피숍을 나서자 바람이 제법 불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가는 탓에 길에 서있기가 거북했다.

"연락 주시고 만나서 반가웠어요."
"또 연락해도 될까요?"

그녀는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작게 말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녀는 조금 큰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연락을 드려 미안했어요.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마 제가 편하려고 그랬을 거예요. 나와 주셔서 고마웠어요."

"네, 잘하셨어요. 비가 많이 내리는데 조심해서 가세요."

잠시 서있던 그녀가 커피숍 앞으로 난 횡단보도로 걸어 나갔다.

일부러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나는 차량들이 여러 대 지나고 나서야 그녀가 걸어간 방향을 바라다보았다.

불빛 속에 사선을 긋는 빗줄기가 어른거리고 이름 모를 우산들이 가로등 아래로 숨고 있었다.

 

 

(*17년 1월에 올렸던 글 )

댓글이 달렸지만 미완성이었던 관계로 다시 올리게 됐습니다.

 

 

 

 

 

 

다음 이야기 ...
설 날 전에 올려 주실거지요 ?
바쁨 중에 있지만
빼꼼 빼곰 다음 이야기 실렸을까 ..들여다 볼 것입니다 ㅎ
감사합니다.
놀러도 자주 못 갔네요.
즐거운 주말 맞으세요.
잠시 머물다 갑니다.
날씨가 춥지만 햇볕은 따사롭군요.
좋은 하루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하세요.
주말엔 날씨가 풀린다고 합니다.
봄이 기다려 집니다.
노래 정훈희 씨 목소리 같애요
맞아요.
요즘도 신곡을 내더군요.
마음속 영원한 우리들의 연인.
비오던날 만나셨던 그 여인이 그 여인 인가요?

그런데 가만보니 열무님 아주 고단수 세요
제가 뎃글은 이제써도 간간이 와서 서너번은 읽었거든요
그런데 아주 궁굼해 죽갔어요 ㅎㅎㅎ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하하..
시간상 그렇게 되었을뿐이에요.
설 때문에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다보니 다음글을 쓰지 못했어요.
조금 전 들어왔어요.
열심히 읽어주시고 관심을 가져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게 에너지를 주셨으니 국화향님은 그냥 이웃블로거가 아니예요.
성당을 나가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습니다. [비밀댓글]
"제게 에너지를 주셨으니 국화향님은 그냥 이웃블로거가 아니예요."

그냥 이웃이 아니란 말에
웬지 한발 더 다가간 ?
더 친한?
특별한?
ㅎㅎㅎㅎㅎ
참 글 한줄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것도 시시한분이 아닌 열무님이라서요 ㅎ
감사해요

요번 명절엔 수금이 착착 잘 되었음 좋겠어요
제발 떼이질랑 마시고요 ㅎㅎㅎ [비밀댓글]
열무김치님의 스토리전개는
다음을 궁금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진짜 실화인듯한 느낌도 들구요^^
저도 조금 바빠서 조용히 읽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용하게 읽어보세요.
그래야 힘이 난답니다.
블로그 친구분들꼐만 고백. [비밀댓글]
오랜만에 들려 갑니다.
올려주신 글 잘 보았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월중순으로 가네요.
독감환자들이 병원마다 무척 많습니다.
건강하세요.
등장인물을 보고 언젠가 여기에서(이 블로그 글에서) 들은 이름 같은데... 했고, 읽으면서 이 작품은 새로 쓰신 건가 했더니..........
주제넘지만 문장이 아주 자연스럽다고 느껴졌습니다.
실화 같고요. ㅎ~ 실화는 아니라고 하시겠지만요. 실화든 아니든 그 중간이든 다 괜찮은 일 아니겠습니까?
실전에서라면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건 참 어려운 일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 있었던 일이지만 글을 쓰려다보니 살을 많이 입혔습니다.
가끔 있는 그대로만 쓴다면 얼마나 딱딱할까 싶어서 이리저리 고민도 합니다만 타인이 편하게 글을 읽게하려면 각색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오바하면 곤란하겠지만요.
몇 줄의 일기를 바탕으로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쓴다는 게 참 어렵네요.
잠시 들려 봅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많이 포근하군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해를 뒤돌아 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윗글을 읽어 내려오며 중간중간 이 내용은 지난 어느날에 이곳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라고 생각나는 부분이 있었어요
미완성이던 글이 이제야 후편이 써지고 있구나 ..조도 오래 헤어진 사람을 만나는 설램으로 콩당 거렸습니다.

요즘 좀 한가하신가봐요
여러편의 글이 이어져 올라와 있으니 대박 ~ 만난 듯 합니다 ㅎㅎ

방 문 밖은 추워요
나가지 마시고 어짜든동 ....컴 앞에서 이렇게 예쁜 소설 더 쓰면 좋겠네요 ㅎㅎ
어짜든둥...
오랜만에 들어보는 다정한 말입니다.

요 며칠 정말 추웠어요.
밖에서 떨다가 들어오면 귀찮아져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힘듭니다만 힘 나는 댓글을 보노라면 행복해집니다.
이렇게 글을 대하는 게 물리적인 것들이 주는 편안함과 행복보다 더 귀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었네요. 시간을 특별히 내서. ㅎㅎ
저 많이 바쁘거든요. 업무로~ ㅎㅎ

그러니까
자전소설같구요. ㅎㅎ
백치미 바보 등신~ 글에서 한바탕 웃었네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만들었어요.
무척 재밌네요. 어쩜 이렇게 재밌게 쓸수가 있죠???

단편소설 한편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먼훗날 만덕이를 재회하는 일이 또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이후 이야기도 재밌을 것 같구요.
와 이글 넘 감동인데요!!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하하하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네요.
이글을 읽으며 서울 올라와 처음 살았던 집의 준호
엄마가 생각이 나네요.
마당을 사이에 두고 주인집까지 8세대가 살았었지요.
대학생들도 있었고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살다보니
별일도 많았었습니다.
요즘 가끔 뉴스에 나오는 한의사도 그때 대학생이었었지요.
아뭏튼 여러 상상들을 해보며 실감나게 읽었습니다.
편안한날 되세요.

기성회비 안낸 사람.. 여중 때 부도가 나서 온 집안은 난린데 교실 내 자리를 찾아 앉으면 바늘
방석을 궁디에 깔고 앉은 양 쿡쿡 찔러대고 담임이 출석부를 들고 나가시고 나면 잠시의 안도감도
무심 하게시리 교탁위 네모칸을 통해 불러지는 살생부.. 몇 반 누구 누구.. 교무실로~ 출석부를 흔들어
대는 담임보다, 방송으로 온 학교를 철렁이는 이보다 더 밉던 등떠밀어 교문밖으로 밀어내던 수위 아저씨..

아직도 그 여운은 울다 지친 속눈썹에 메달린 눈물만큼이나 서럽게 기억됩니다.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말도 못하고 ‘니, 왜 벌써 왔더노? 어데 아프나?’ 엄마의 걱정스런 말에는 ‘어데요, 배가 아파서 조퇴 했십미다’
그런 기억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순정이 만덕이들의 또 다른 1977 년으로 명동 어딘가를 기억해 냅니다.

아! 너무도 감동의 글입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듯..
작품집 내셔야죠?
감사합니다.
네 ~!
용기를 내 보겠습니다.
공감하며 읽어 봅니다.
안녕하세요?
쾌청한 주말 아침입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요
인생은 참 드라마틱하지요
아니
그냥 드라마이지요 ㅎㅎㅎ

참 오래 전 일인데...
그 분께서 어디선가 잘 살기를 빕니다.
인간애가 느껴지는 글입니다.
아무리 각박하고 힘들어도 어떤이에게는
그 한번의 배려가... 마음씀이 있어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도 있는거 같습니다.

추운겨울날씨를 잠시 잊게한 훈훈한 이야기, 잘 보고가요~
그때만 해도 참 순수했었다는 자화자찬을 합니다.
철도 없었고 계산도 거의하지 않았으니까요.
세월을 건너며 영악해진 자신을 발견합니다.
기억은 잠시라도 이를 부드럽게 만든다고 우기고 삽니다.
이글을 또 읽습니다
벌써 세번째요 ....

이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교과서를 구입할 돈이 없었습니다
친구의 오빠가
자기 지난 교과서를 팔아 내 책을 세권인가 사서 보내 주더라구요
그 신세가 문뜩 떠 올라
슬그머니 읽는 내 내
그 친구 오빠를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휘문고교를 다니던 오빠였는데 .......

엮어졌던 로맨스의 고운 추억을 상상했었지요
로맨스가 아니면서도
흥미 진진 읽혀졌습니다
열무님의 고운 심성은 아주 타고 나셨었네요 ...^^

쓰시는 글마다
끝까지 읽게 만드시는 마력을 넣으신거 같습니다
아주 재미 있었습니다 ...^^
글 읽으시면서 추억이 떠오르셨다니 글 쓴 보람이 있습니다.
휘문고교를 다녔다는 그 오빠분은 당시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했을까..
아마 당시를 살았던 그 누구라도 비슷한 추억들이 몇 가지씩은 있을겁니다.
시대적으로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았던때였지요.
그러고 보면 풍부한 물질문명이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병정님의 그 기억은 평생토록 함께 가겠습니다.
고운 기억은 늙어 힘들때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

두 번이나 읽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또 읽으면서
다방위치까지
도시락 공장
여인이 힘들게 살다 졸도한 그집까지 그려지네요
아무래도 나 신들린거 아닐까요 ...^^

요즈음은
책한줄 읽기에도 꾀바리
신문 구퉁이 조금 훑다가는
그도 온통 맘에 들지않아 탱탱 놀아 제키는데
단편집 잘 읽었습니다

날씨가 풀렸습니다
미세먼지가 있어도 좋아 좋아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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