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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단편

파란 초등학교1

by *열무김치 2016. 12. 19.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참을 만했던 음산한 하늘은 기어이 흰 가루를 쏟아냈다.

공 선생은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렇게만 내려준다면 한 시간쯤 뒤에는 분명 다른 세상이 되리라.

찻잔 마주한 백설 분분한 풍경과 또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세상의 온갖 더러움은 물론 자신의 복잡한 심정도 잠깐이나마 감출 수 있겠지.

"에이, 갑자기 웬 눈이야.귀찮게 시리."

시장바구니를 주방에 내던진  아내가 부리나케 이층으로 올라갔다.

한때 여린 꽃잎 같은 감정으로 어떻게 거친 세상을 살아갈까를 염려하던 여자였다.

세월은 그녀를 장부로 만들었고 초로의 자신은 그때 느꼈던 여린 꽃잎으로 변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손아귀에 쥘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

"여보, 이 옷 어때요?"

아내는 무슨 짐승가죽인지는 몰라도 털이 수북한 코트를 들어 보였다.

잠깐 아내를 바라보던 공 선생은 눈 내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옷 어떠냐니까?"

"내가 보면 알겠소? 좋아 보이는 구만."

"저렇게 멋이 없어요. 요즘 나한텐 아예 관심도 없다니까."

삐리리 중저음의 벨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삼락이었다.

"선생님 시간이 되시면 잠깐 오셨다 가시지요."

"거기도 눈이 오는가?"

"예, 잠깐 오다가 그쳤어요."

"무슨 일인가?"

"와서 얘기하시지요."

"무슨 일인데 그래?"

"의논드릴 것도 있고.. 뭐, 그런 거 아니어도 물고기도 잡아놓고 했으니 유람 삼아 오시지요."

한겨울에 유람이라니 싱거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따스함이 밀려왔다.

간이라도 빼줄 것 같았던 사람들이 곁에서 멀어진 지가 꽤 오래라는 걸 알았지만 내심 서운하던 터였다.

알았노라 대답을 하고 다시 창밖을 보았을 때는 나무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털외투를 걸치고 분주하게 오가던 아내가 현관을 나서며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말했다.

"국은 덥혀 놨으니까 냉장고에서 반찬만 꺼내서 식사하세요. 좀 늦을지도 몰라요."

대답이 없자 아내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는 이내 현관을 나섰다.

대문으로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이 쏟아지는 눈으로 반쯤 덮여서 한 편의 동화처럼 보였다.

그래, 저렇게 수채화처럼 보이던 날들이 있었지.

엄마 무릎을 베고 반쯤 감긴 눈으로 듣던 동화 같은 날들이.

공 선생은 아내가 사라진 대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가설극장 낡은 필름이 보여주는 빗금 친 화면이 사선과 곡선으로 내리는 눈 속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넓은 집안에 혼자 남았다는 사실이 오늘 같으면야 싶었다.

순전히 저 눈 때문이리라.

반쯤 마시던 커피잔을 들고 창문을 열자 후드득 눈이 쏟아져 내렸다.

 

공 선생은 아까부터 매캐한 연기 내음이 난다고 생각했다.

입성이 시원찮은 시커먼 녀석들이 희끗한 눈발 속에서 마른 장작을 둘로 빠개고 있었다.

두 손으로 가득 장작을 안은 녀석들이 왁자지껄 교실 안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솔방울과 헌 종이로 나무난로에 불을 붙였다.

불쏘시개가 시원찮은 장작을 욱여넣은 난로는 금 새 교실 안을 연기로 가득 채웠다.

난로 당번인 녀석이 공 선생에게 혼쭐이 나는 건 다반사였다.

교실에 가득 찬 연기를 빼겠다고 창문이란 창문을 다 열어 제키면 기다리고 있던 칼바람이 부리나케 들어왔다.

아이들은 이내 조용해졌다.

그래도 바깥바람 덕분으로 장작 난로는 이내 제구실을 했다.

난로당번 녀석이 부지런히 장작을 욱여넣은 탓에 첫 수업이 거의 끝날 때쯤 난로의 열기로 얼굴에 화색이 돈 아이들이 꾸벅거리며 졸았다.

"첫 수업부터 조는 녀석들은 변소 청소시킨다. 다음 시간에 또 연기 피우면 난로를 끄도록 하겠다. 알았지?"

짧은 지휘봉으로 교탁을 내려치자  난로 당번 녀석이 희번덕한 눈으로 공 선생으로 올려다보았다.

교실마다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던 하얀 연기..

눈발 희끗하던 날의 지난 그림들이 퍼즐 조각처럼 하나둘씩 맞춰지기 바쁘게 눈 속으로 사라졌다.

내리는 눈을 손바닥으로 받아 혀로 핥자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그래, 눈은 그리움이 맞아.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의 조각들이 나와 너, 그리고 모두의 가슴에 참고 참았다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땅거미가 밀려온 하늘엔 그리움들이 하염없이 내려오고 있었다.

 

이어서..

 

 

 

비록 개인의 생각을 쓴 글이지만 위 주제는 이웃이신 파란 편지님 블로그 (http://blog.daum.net/blueletter01)에서 얻어온 것임을 밝혀드립니다.

 

 

 

 

정작 저는 다 잊어버린 옛 기억들이 새로 돋아납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ㅎ~
이 좋은 글을 제 글을 보고 쓰셨다니, 쑥스럽습니다.
꿈꾸시는 대안학교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어서 (물론 상상이 되겠지만..) 요.
어떡합니까.
이렇게라도 해 보아야지요.
와 눈이다
눈이 나리면 당장에 불편할텐데도 우리의 마음은 들뜨게 됩니다.
그렇다고 뭐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아 파란편지님의 블로그에서 글을보시고 창작하여 쓰신 글이라고요ᆢ
참 대단하세요
추운교실 ᆞ장작넣어 매케한 연기속에 교실
그리고 문열어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 순식간에 몸둘바 모르던 냉랭함 ᆢ
마치 그 어렸던 날이 오늘인양 그시절로 데리고 갔었던 글이였어요 ᆞ

저도 가끔 위 글처럼 이옷저옷 입어보곤
이것 이뻐?
잘 어울려? 하고 물어보고
저기 간식도 있고 등등 하면서 나 갔다올께 하고 나가기도 하는데 후후 하고 웃어봤어요 ㅎㅎ
펄펄 내리는 눈이 보고싶어지네요
그분이 교육자시니까 그 이야기에 숟가락을 얹어보고 싶었지요.
앞으로 잘 써질런지 모르겠네요.
아 맨끝에 글은 지금 다시 와서 봅니다
참 두분이서 환상적입니다
솔직히 저는 글을 차분히 읽는 편이 아니라서
두번 세번 와서 읽고서야 아 하고 이해하고
느끼는 바입니다
ㅎㅎㅎㅎ
그러시구나 했어요.
두 세번 읽으신다니 글을 쓴 사람 입장에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앞으로도 쭈욱~~
ㅇㅎㅎㅎㅎ
공쌤이 주인공이래요?
파란편지 님은 변소 청소 대신에
졸린 애들 깨려고 눈싸움 했을라나요?^^;;
2탄 기대합니다!!
그랬을런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엣 스승들이 아이들과 눈싸움을 했던 기억은 없어요.
연기 자욱하던 교실에서 콜록거리던 아이들은 어느 하늘아래서 늙어갈까.
눈 내리는 날에.
열무김치님은 그간 살아온 세월들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나봐요.
그렇치 않으면 남달리 상상력이 풍부하시거나요.
아니 둘 다 이어야 이런 글이 술술 써 지는 것이겠지요?
읽는 이들이 쏙 빠지게 맛갈스럽게 글을 쓰시는 분들이 저는 참 신기합니다.
하하..
글쎄요.
둘 다 맞겠지요.
큰 도움이 된다면 그동안 빼먹지 않고 쓴 일기장이 허접한 글쓰기에 효자노릇을 합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분명하니까요.
색바랜 오랜 일기장을 들여다 보노라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 보는듯한 느낌이 들때도 있습니다.
늘 좋게 평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난로 불 피울 때 연기가 나서 눈물 찔금거렸던 나,
활활 타올라서 얼굴 벌겋게 달아 올랐던 나,
도시락 난로에 층층이 얹어 놓으면 달아 올라 뜨겁고, 골로로 따뜻하라고 우리들 가르치시다가, 아니면 판서 필기 할 때
아래 위로 바꾸어 주시기도 하셨고, 난로 불살개 한다고 학교 뒷편 산으로 올라 솔방울 줍고, 따고 하던 일,
딱 그 교실 풍경입니다.

혹여 쇠죽 끓이면 나는 냄새 기억하세요? 하하
그럼요.
쇠죽 정말 많이도 끓였지요.
그거 하기 싫어서 도망도 갔는데.
보통 사랑방이나 문간방에 쇠죽을 끓이는 가마솥을 걸었지요.
쇠죽 끓이기는 힘들었지만 대신 쇠죽솥이 걸려있는 방은 늘 따스했지요.

솔방울..
그거 화력도 별로인데 그걸 왜 그렇게 주워오라고 했는지.
참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ㅎㅎㅎ 저도 난로 때는 세대인데
처음엔 장작난로라 때는 그 부근은 뜨겁고 멀리 떨어진 자리는 추워서 벌벌 떨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단열이 제대로 되지않는 교실은 그야말로 냉장고나 마찬가지였지요.
나무난로가 그나마 좀 나았는데 문제는 쉼없이 나무를 집어넣어야 해서 수업도중 난로당번은 제대로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는 기억입니다.

서정적이고 아름답던 시골학교의 모습을 가상으로나마 재현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을 하기는 했는데...
읽고 ..한 번 더 읽습니다.
읽은 내용보다 더 많은 살을 보태고
읽은 내용보다 더 많은 풍경을 보며
읽은 내용보다 더 큰 옛그리움을 잡았네요.
그땐 그랬는데....그러게나 말입니다..
강적을 모시게 됐습니다.
부디 많이 보태서 좀 나누어 주십시요.
뽀따리는 큰걸로 준비하겠나이다.

옛 그리움을 잡으셧다니 아주 다행입니다.
한편의 이쁜 동화를 읽는기분^^
어릴적 초등학교교실 풍경이 그려집니다.
난로위에는 아이들의 도시락이 어김없이 올라와
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따뜻한 이야기에 잠시 웃으며 오랜 기억들을 더듬는
저녁시간입니다~
가족들이 모이셨는지요.
아니면 외출을 하셨을라나?
그도 아니면 교회 성탄절이브행사에 가셨을 것 같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이즘 파란편지님의 닉이 자주 오르내리네요
저두 열무김치님의 블에서 댓글을
읽고 그분 블에 가본적이 있습니다
멋지게 각색 각본? ᆢ
어쩜 저 사무치는 풍경이
손으로 잡고 싶어집니다
제글에 풍경으로
주황 가로등을 담고 싶었는데
아직도 못 했네요

한편에 추억이 실루엣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잘계신거지요?
안 보이시면 괜시리 걱정되는건
왜 인지
제걱정이 무슨 대수일까요 마는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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