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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단편

공순이

by *열무김치 2016. 10. 13.

 

 

수호는 날건달이었다.

지금까지 해온 일이라곤 공사판 날일이 전부였다.

한창바람 때는 목돈을 제법 쥐었으나 주색잡기가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손에 잡히기 바쁘게 타작마당 검불같이 날아갔다.

늦가을이 되면 일감도 줄어드는지라 느는 게 담배와 술이라 공사판 함바집 밥값도 그러려니와 구멍가게 외상값 채근도 성가실 지경이었다.

"아, 원제 줄 거야? 젊은 사람이 미신 놈의 셈이 그리도 질긴 거야?"

아니나 다를까 수호 면상을 보기 바쁘게 구멍가게 장 씨가 입을 내밀었다.

"내 참 드러워서. 안 떼먹을 거니까 걱정일랑 붙들어 매쇼."

"보더라고, 고것이 지난봄에 처마신 술값이여. 뭘 알기나 하고 씨부리는 거야?"

장 씨가 삿대질을 하자 수호는 가래침을 냅다 뱉고는 휘하니 달아났다.

이미 가을이 깊은지라 고층 아파트에 가려진 해는 오후 3시인데도 보이지 않았다.

 

"밀린 밥값이 150인데 워쩔껴?"

들어서기 바쁘게 밥집 아줌마가 수호를 불러 세웠다.

이리저리 주머니를 뒤지던 수호가 8만 원을 내밀었다.

"이게 다요."

"설마 하니 저녁부터 굶지는 않을 테고 배 째라는 겨?"

" 일 나면 벌어서 갚으면 되지. 좀 삽시다. 너무 그러지 말고."

"아이고야. 똥 낀 놈이 성낸다더니. 난 흙파서 장사하는 줄 아나 보네."

밥집 아주머니가 주방으로 들어간 지 꽤 됐는데도 밥상을 내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원수도 밥은 먹이는 거요. 치사하고 드러워서. 잘 먹고 잘 사시우."

식탁을 냅다 걷어찬 수호가 미닫이를 부서져라 하고 밀고 나가자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염병할, 아주 죽이 척척 맞네."

밖으로 얼른 나서지 못한 수호가 담배를 꺼내 물자 언제 나왔는지 공순이 멀뚱이 서 있었다.

"그냥 가요?"

"그럼, 저 여편네 잔소리 또 들으라고? 밥도 안주잖아."

"아줌마가 뭐 잘못인가. 그 딴 소리 들어도 싸구먼."

휘하니 불어내는 담배연기가 빗속을 타고 사라졌다.

무더기로 쏟아져 내리는 가로수 잎들이 겨울을 재촉하고 있었다.

"들어가요. 내가 밥상 차려줄게."

실눈을 뜨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바라보던 수호가 피던 담배를 발로 짓이기다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 어이구, 다신 안 올 것처럼 나서더니 별 수 없는갑네."

주방아줌마가 빈정댔지만 수호는 식탁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공순이 주섬주섬 밥과 반찬을 내어오자 주방 안에서 날카로운 고음이 들렸다.

"저런 지랄같은 인간한테 밥상 차려 주려고 밥집 하는 거 아녀. 니가 뭔데 니 맘대로야."

공순이 얼른 먹으라고 눈짓을 했다.

수호는 뜨거운 순두부국에 밥 한 그릇을 말아서 급하게 퍼 넣었다.

 

"시골에 아버지 혼자 사시는데 같이 가보지 않을래요?"

"내가 거길 왜 가."

"여기서 빈둥대는 거보다는 낫지. 거기 가서 겨울나고 와도 되고요."

수호는 공순을 여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차도 많이 났지만 어딘가 덜 떨어져 보이는 공순이가 막내 여동생 같아서였다.

공순이가 식당에서 일을 한지도 여러 해가 지났지만 품값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중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이 측은하던 차였다.

수호는 밥집 아줌마를 언젠가 한 번 손을 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며칠을 빈둥댔지만 일거리가 나타나지 않았다.

수호는 속이 탔고 팔뚝 같은 부아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 없었다.

"여름에 벌이를 했어야지. 베짱이 얘기도 못 들었나."

비아냥을 견디다 못 한 수호가 공순이를 불렀다.

"저기, 돈 모아놓은 거 있걸랑 좀 꿔 줘."

"알잖아요. 나 돈 없는 거."

"그러지 말고 어떻게 해 봐."

마음 여린 공순이 그동안 꽁쳐놓은 얼마간의 돈을 내밀자 수호가 번개같이 낚아챘다.

"내가 빌려간 돈 걱정은 말고 기다려 보더라고"

그날저녁 수호는 바람같이 사라졌다.

돈을 빌려간 수호가 근 한 달여 나타나지 않자 공순이보다는 밥집 아줌마가 난리가 났다.

"옘병할 놈이지. 지 처먹은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등신이 부랄 달린 사내놈이여?"

그러나 공순은 그가 밉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그랬다.

겉으로는 한심하게 보여도 마음은 따스한 사람이라고.

 

공순 아범이 치매끼가 있다고 했을 때만 해도  설마 했었다.

그러나 가끔씩 공순을 알아보지 못하자 공순은 식당에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식당일을 걷어치우고 후미진 산골로 들어오자 이내 찬바람이 불더니 곧바로 눈이 한자 가까이 내렸다.

아궁이에 땔 화목이 없는지라 눈길을 헤치고 땔감을 구하러 나섰지만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 땔감을 구하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물에 푹 젖은 솔가지 몇 개를 끌고 내려오자 집 근처에 누군가 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수호였다.

"어머, 어떻게 찾아왔어요. 여기 잘 찾지 못하는 곳인데"

반가움에 와락 안기고 싶었지만 공순은 목소리를 낮추고 몇 발자국 떨어져서 수호를 바라다보았다.

국방색 허름한 외투를 걸친 수호는 초췌한 모습이었다.

공순을 본 수호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찬 허공으로 몇 모금 담배연기를 뿜어 올리던 수호가 공순을 쳐다보지도 않고 마치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이런 산꼴짝엔 뭐 하러 들어왔어. 사람 살 데가 아니구먼."

공순이 바닥을 내려다보고 서있자 수호가 공순의 팔을 잡아끌었다.

" 나 밥이나 좀 주지. 속이 쓰려 죽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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