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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女高時節

by *열무김치 2016. 2. 5.

 

 

 

 

 

 

 

지금도 사정이 비슷하지만 70년도엔 인문계고교와 실업계고교의 진학은 명암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대학진학을 위해서는 반드시 인문계고교에 들어가는 것을 원칙으로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배우는 과목도 달랐고 방학도 없이 보충수업을 받는 등,  대학진학을 위해서 밤이 늦도록 수업에 매달리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별 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어렵게 진학한 고등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낙제생 제도가 있었는데 일정점수에 미달한 학생은 다음학년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다시 한 학년을 더 다녀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보통 한 학급에 세 네명은 되었는데 당시 한 학년이 6~7 개반이었으니 모두 합하면 25명 쯤 되었다.

지금도 왕따문제로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지만 성적의 일정선을 그어놓고 그 선 밖으로 학생들을 내치는 일은 그것으로 인해 얻고자 하는 이익에 반하는 일이 더 많았다.

다음학년으로 올라가지 못한 학생들은 심한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끊임없는 문제를 일으켰다.

그 중 상당수는 졸업을 하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바라보아도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문제는 오랫동안 무슨 전통처럼 이어졌다.

내가 속한 반에도 네명이 있었는데 문제는 그 학생들 중 한 두 명이  끊임없이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대부분 그 학생을 피해 다녔지만 별 잘못이 없어도 여차하면 얻어 걸려서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

이리저리 쌓인 스트레스를 다른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함으로  일정부분 해소하는 꼴이었다.

당시 학교를 다닌 사람은 알겠지만 이런 사실을 선생님이나 부모에게 알리기도 쉽지 않았다.

집단구타를 당하거나 자칫 학교를 다니지도 못 할수도 있는 보복이 두려워서였다.

또 학교나 부모에게 알린다고 해도 뾰족한 해결책이 나는것도 아니었다.

교사의 구타나 친구들간의 싸움은 그럴 수도 있다라는 암묵적인 시선이 엄연하던 때였으니 어찌보면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냥 좋은 게 좋은것이니 슬슬 피해가며 그 순간만 넘기면 된다라는 생각을 모두 하고 있었다.

 

국민윤리 선생님이 여선생님이었는데 그분은 여성이라고 보기엔 기골이 장대하고 너무도 우악스럽고 험악해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마녀라고 불리웠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남학생들을 다루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떤 기준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여차하여 잘못 걷어 들리면 귀밑머리를 눈물이 쏙 빠지도록 잡아 당기키거나 막대기로 인정사정없이 매타작을 당했다.

당시 교련을 담당한 우락부락한 남자교관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외려 그양반보다 국민윤리 선생님을 더 두려워했다.

그 여선생님은 한손에 교과서를, 한손엔 늘 짧은 지휘봉 같은 막대기를 들고 다녔다.

다행이 국민윤리 수업이 많지 않아서 자주 부딯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그 선생님 수업시간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조심을 하느라고 했는데도 딴전을 피웠다는 이유로 귓볼이 벌겋도록 귀를 잡아 당기킨 후에 정나미가 딱 떨어진 까닭이었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낙제생이 졸다가 그 여선생님에게 걷어 들렸다.

여선생님은 교단앞으로 불려나간 그 학생에게  내가 이모양이니 낙제가 되었다 라고 크게 외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동생들 앞에서 자존심이 몹시 상했는지 그 학생은 이를 거부했고 몇 번의 고성이 오가다가  마침내 지휘봉 막대기로 인정사정없는 매타작이 자행됐다.

맞다 못한 학생이 얼떨결에 선생님에게 달겨들었고 격분한 여선생님은 두팔을 걷어 부치고  얼굴이며 가슴팍에 사정없이  주먹을 날렸다.

우리들은 모두 겁에 질려서 고개를 숙이고 마른침을 삼켰다.

한창 힘이 솟아나는 남학생 이었지만 유도와 합기도를 수련했다는 여선생의 우람한 덩치를 이겨내지 못했는지 그 학생은 교실을 박차고 나갔다.

그 사건은 결국 학교와 학부모간의 한바탕 소란으로 이어졌고  결국 학생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여선생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수업을 했고, 그 사건으로 인해 잔뜩 주눅이 든 학생들은 끽 소리도 못하고  선생님을 슬슬 피해 다녔다.

국민윤리와 여차하면 서슴지 않았던  매타작...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참으로 언바란스한 일이었다.

 

한가지 위안이 있었다면 매주 월요일에 한 과목을 정해 시험을 보았는데 그 시험성적에 따라 주말에 극장을 갈 수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것이다.

그러나 시험성적이 일정선에 미달하는 학생은 극장에 가지 못하는것은 물론 주말에 교실에 남아 나머지공부를 해야했다.

모두들 극장에 가기위해 열심히 시험공부를 한 것 같다.

당장 나부터 그랬으니까

당시 시내근처엔 네군데의 극장이 있었는데 극장에 들어가 보면 아랫층이나 바로 옆에 여고생들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남학생들끼리만 있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우리들은 여고생들을 만나자 환호성을 지르며 어쩔 줄 몰랐다.

풋풋한 여고생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설레임은 자연 주말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지금처럼 남녀간의 자유로운 만남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데다 쉼없이 이어지는 수업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를 주눅들게 만들었지만 대부분 순진하고

가슴이 따스한 학생들이었다.

당시 보았던 영화는 페이더너웨이 주연의 파리는 안개에 젖어, 지금 생각해도 청순미가 가득했던  나타리우드 주연의 초원의 빛, 황야의 7인 등등 이었다.

그 이 후,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걸출한 배우를 탄생시키게 만든 마카로니웨스턴의 영화가 주를 이루었고 관람한 영화의 대부분이 서부영화 중심의 외국영화나 홍콩의 무협영화였다.

한국영화는 거의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군대에서 10,26 사태가 난 뒤, 흙먼지 이는 문무대 연병장에 쭈구리고 앉아 원치않는 영화를 본적이 많았는데  정작 그 때 한국영화를 많이 보았다.

겨울여자, 영자의 전성시대, 한창 주가를 올리던 문희 주연의 미워도 다시 한 번, 나바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도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연병장에서 보았다.

지금도 여전히 아리송한  것은 시국이 평안치 못한던때에 왜 그런류의 영화를 보여주었는지 하는것이다.

드넓은 연병장 복판에  별다른 보호장치도 없이 대형 스크린만 덜렁 걸어놓고 두시간 가까이 영화를 보는일은 고역에 가까워서 모두들 내켜하지 않았다.

 

 

짙은 감성의 목소리를 지녔던 가수 이수미씨가 부른 여고시절이라는 가요가  힛트를 치자 얼마 안 있어 같은 제목의 여고시절이라는 영화가 나왔는데 그 영화를 모 여고 학생들과 같이 보게 되었다.

보통 남학생과 여학생이 따로 자리를 잡고 영화를 보았지만 그날은 어찌된 일인지 남 여 학생이 어울려서 일반인들과 앉게 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제목과 달리 사랑에 눈뜨는 젊은학생들의 진부한 사랑이야기를 그렸는데 단지 여고시절이라는 제목 때문에 관람을 시켰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에 뚜렷하게 남는것은 영화초반  여주인공이 통기타를 들고 여고시절의 주제가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당시 통기타가 유행을 타고 있었고 대부분 남자들이 기타통을 메고 다녔던 터라  예쁜 여학생이 기타를 치는 모습은 너무도 매혹적이어서  그녀의 모습은 오랜간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틈만나면 그 여학생을 떠올리며 슬그머니 미소를 짓곤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영화속 그 여학생을 짝사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보던  말미에 결국 사단이 났다.

어느 남학생이 여학생의 손목을 잡았는지 아니면 어디를 더듬었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비명소리가 났고 영화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우리들은 모두 밖으로 불려나와야 했다.

인솔햇던 선생님은 누가 그랬느냐고 다그쳤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일어난 일이니 심증은 가도 지금처럼 몰카가 있는것도 아니니 딱 잡아떼면 그만이었다.

거듭된 다그침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자 성질이 난 인솔교사는 결국 우리들을 대로변까지 오리걸음을 시켰다.

마침 영화가 끝나고 쏟아져 나온 여고생들이 우리들의 몰골을 보며 킥킥대며 웃었는데 정말 창피해서 견딜 수 없었다.

더욱이 그 여학생들 속에는 내가 하숙을 하고있었던 주인집 딸이 있었는데 난 혹여나 그녀가 나를 볼까봐 땅에 머리를 박다시피 하며 오리걸음을 했다.

오랜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때 왜 그런 수모를 주었는지 인솔교사가  너무 야속 했다는 생각이다.

우리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인해 여고시절이라는 영화가 그 여고생들에게는 잊지못 할 영화가 되는 순간이었다.

 

*여고시절 줄거리*

oo여고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인솔교사의 지도 아래 합숙을 하며 각종 봉사활동을 펼친다. 여고생들의 근처엔 남자고등학교의 생물반 학생들이 야외학습을 오게되면서 여고생들과 만나게 된다.태호는 설악산 상봉에서 고산식물을 채집하다 해가 저물어 하산하던 중 산속을 헤매는 미례를 만나게 된다. 둘은 짙은 안개속을 헤메다 어느 산장 안에서 날이 새기를 기다리던중, 그들을 찾아 나선 인솔교사들에게 발견된다. 기성 세대와 학교 선생들은 이들의 순결함을 믿지 못하고 교칙과 규율을 내세워 퇴학처분을 내린다. 파멸과 고민 속에서 갈등하던 둘은 점점 사이가 좁혀져 간다. 세월이 흐른후, 미례의 결혼식장 단상에서 미례를 기다리던 남자는 태호가 아닌 다른 청년이다. 아마 미례와 태호의 지난날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은것 같다.

여고시절이라는 제목과는  조금 동떨어진 내용이지만 당시 사랑에 눈 떠가는 젊은이들의 갈등을  그렸다.

 

 

 

 

"여고시절" 참 매력적인 단어입니다.
또 온갖 상념을 다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추억담은 길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 중에서 고르라면 저는 그 국민윤리 선생님을 좀 만나보고 싶습니다. 사실은 그런 분의 마음이 더 고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좀 "평정"하는 멋스러움을 지닌 교사가 그리워지는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화관람은 하필 마지막 장면 직전에 그런 조치를 내린 선생님들이 원망스럽군요. 일단 영화는 다 보게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날씨가 좀 풀려서 다행입니다.
좋은 명절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그렇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을 잘 다스리는 일도 요즘엔 보통일이 아니다보니..

남녀공학인 학교가 당시엔 거의 없었지요.
그러다보니 이성에 관한 일들이 주요관심사였지요.
전 많은 여고생을 만나는 길이 극장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날씨가 괜찮다고 하더니 연휴기간내에 눈도 오고 심술궂을 것 같네요.
오가시는 길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丙申年 새해가 밝아오고 있어요.´°³☆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 가득~ 사랑 가득한 하루되시기 바라며
정성 담은 블로그 잘 보고 다녀갑니다.³☆
방문 감사 드려요.
좋은 명절 되십시요.
시대의 배경이 제가 태어난 시기보다 10여년 이상 앞서 있는 것 같습니다.
공감은 많이 가면서도 그런 때도 있었구나 하고 느끼니 말입니다.
얄개시대류의 소설이나 영화같은 장면이 머리속에서 떠오릅니다.
서부영화하면 클린트이스트우드지요.
시간나면 담배물고 인상쓰고 있는 멋진 모습을 한번 그려봐야겠습니다.
그 배우는 처음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일약 스타덤에 오른 말 그대로 스타가 된 배우지요.
시거를 비딱하게 물고 인상 팍팍 쓰는 그의모습은 당시 서부영화의 한 장르가 될 정도로 유명했지요.
나이들어 찍은 사선에서 라는 영화를 보니 세월엔 장사가 없더라는...

설 잘 보내십시요.
영화 줄거리까지 있어서 참 잘 읽엇습니다
여고시절 이수미가 부른 노래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 기억납니다
요즘가수들도 노래를 잘 합니다만 이수미씨의 목소리는 정말 특이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듣는이들의 가슴을 저절로 내려놓게 만들었지요.
아마 앞으로 이만한 목소리의 가수가 나오기도 힘들겁니다.
갠적인 생각이여유~
윤리선생님에 대한 글을 읽다가 제 고등학교때 체육선생님이 떠오르는군요.
기골이 장대하고 남자같은 성격이었던 그분.. 하지만 우악스럽지도 험악하지도 않아서 아이들이 다
좋아했었던 선생님.. 마지막 수업날이었나? 선생님께 편지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반 아이들 앞에서 제가 쓴 편지가 읽혀졌던 기억이 있는데 너무 좋아했던 선생님이라
제 편지 내용이 선생님을 무척 행복하게 했던거 같습니다.
글 읽으며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여러 추억속에 헤맸습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ㅎㅎ

행복한 명절 보내시길요..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우리인생에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꼽으라면 고등학교때가 아니었을까..
요즘이야 공부에 쫓겨 무슨 말이냐 하겠지요.
그때도 공부에 시달리는 건 여전했지만 지금과 다른 분위기가 분명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다시 간다면 무엇부터 해 볼까요.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즐거운 명절 되세요.
부산은 일본과 가까운 관계로 생활 속 용어 중에 일본말 잔재가 유독 많이 남아있습니다.
오뎅, 덴뿌라, 사시미... 등 지금도 그렇습니다.
찹쌀떡을 찹쌀모찌라고 지금도 일본식으로 칭하는 성인 세대들이 많습니다.
학생 주임의 별명이 찹쌀모찌였는데 뺨을 찹쌀떡처럼 하도 아프게 때린다고 지은 별명이었습니다.

고2 때 얌전한 앞자리 친구를 꼬여 용감하게 '별들의 고향'을 보러가자고 유혹했고
교복을 입고 극장에 들어간 둘은 즉각 교외지도반에게 잡혀서 학생주임에게 인계되었습니다.
'죽었구나' 각오하고 있었는데 찹쌀모찌를 맞지 않고 가벼운 훈방으로 풀려났습니다.
알고 보니 같이 간 친구의 아버지가 시경 국장인 총경급 인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금수저의 덕을 톡톡히 본 셈입니다.

좋은 명절되시기 바랍니다.
하하..
짭쌀모찌.
학생들이 지은 별명은 아주 위트가 넘쳤습니다.

당시에도 금수저의 파워는 여전했네요.
극장 몰래 들어가기.
아마 당시의 학생들 대부분이 한 두번은 그랬을겁니다.
저도 사복입고 몇 번이나 그랬거든요.

다시 추워지는군요.
명절, 좋은시간 되십시요.
고교 시절이 생각나네요...
그 당시는 정말 많이 맞았어요...
동급생에게도 많이 맞고, 선생님에게도 많이 맞았지요.
맞고도 집에 이야기도 못하고....
이제는 아득한 추억이 되었네요.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맞아요.
때리기도 잘했고 맞기도 잘했고.
아마 지금 같았으면 모두 구속감입니다.

그래도 큰 탈이 없이 자랐고 모두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고향에 잘 다녀 오세요.
정말 오래된 추억속의 영화네요
저도 나탈리우드의 초원의 빛을 보며 사춘기를 보냈는데
다시금 추억에 젖어 여고시절로 돌아간 듯 합니다
그 영화 보고 며칠간 가슴앓이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참으로 오랫만에 다시 보았는데 오래된 영화임에도 전혀 그런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즐거운 명절 보내십시요.
저는 영화를 별로 본기억이 안납니다.
학교에서 가는 영화 몇가지 외에는 본기억이 없습니다.

그렇게 까지 영화를 갈 기회가 없었지요.
영화초대권을 아버지께서 몇번 주셔서 동생이랑 간적은 있었지요.

아이들이 학교 빠지고 '크리프 리차드'라는 가수가 한국에 왔을때
여러명이 갔던 모양인데, 신기하게도 그런데 저는 관심이 없었지요.

가서 울었다는 아이들도 있었는데,왜 우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극장에도 가는 친구들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여고시절이라....지나고 나니까 그렇지,어서 자라서 빨리 교복을 벗고 싶었지요.
그런데, 여자보다 남자들이 여학생들에게 환상을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하하..
모범생이셨네요.
아주 엄격한 가정에서 그런거 하면 큰일난다는 식으로 교육을 받은 경우도 많았고 실제 그렇게 얌전하게 학교생활을 한 학생들이 더 많았다고 봅니다.
저도 그 중 한사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런데 전 어서 자라서 하루라도 빨리 교복을 벗겠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어요.

남학생들이 여학생에게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지요.
설령 그런감정이 환상이라고 해도 당시의 나이대가 갖는 그런 환상도 후일 사랑을 이루어가는데 약이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그곳에서도 설을 쇠시는지요.
떡국도 끓여 먹겠지요?
사실 저희 여학교가 남학교와 딱붙어 있었어요.
서울 수송동에서요.바로 조계사 옆이었지요.
어느정도 인가하면 그 남학교에서 교실에서 남학생이 거울로
저희 학교 여학생에게 비취면 수업시간에 눈을 뜰수가 없었지요.
그런 에피소드도 많았는데,저는 왜 그렇게 학교생활을 꽉 막혀서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저희학교가 그 남학교와 얼마나 가까 왔는지 재미난 일도 많았을 텐데,저는 아무런 생각이 안납니다.
학교생활에서건 가정생활에서건
단 한번도
제멋대로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선생님말씀 부모님말씀을 하늘처럼 믿고 그대로 실행해왔던 터라서...

그래서 말인데요
열무김치님 그래서 말이지요
이렇게 이렇게요
이 나이에 그런 것들이 모두 그리움으로 차고 넘쳐서
주말만 되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저 하는거요
그 시절에 못해봤던 것들을 지금에라도 하고싶어서
그 나이로 돌아가는게지요

들녘에 가면 소녀가 되어 꽃을 보며 뛰어놀고 싶어지고요
흰 눈이 내리면 눈밭에서도 딩굴어보고요
비가 내리던 안개가 피어날때건
서슴없이 새벽길 세벽강 새벽바다를 용기내어 찾아다니는가 봅니다

그 시절 못해봤던 아쉬움을 지금이나마 느끼고 싶음이어서요
그래서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쌓인 그리움 하나하나 풀어가는거 같기도 합니다
그러셨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영화 친구나 , 써니 등을 보면 당시의 학생들이 상당히 폭력적이고 조직적인것처럼 묘사를 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았잖아요.
대부분 부모님, 선생님 말씀 얌전하게 잘 듣고 따랐지요.

그러다 보니 자기 하고싶은 걸 못해보고 학창시절을 보낸 건 맞습니다.
그런면이 좀 후회가 되지만 요즘 공부에 치여사는 학생들을 보면 한편 아타까운 생각도 듭니다.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학창시절에 해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제 그렇게 자신을 돌보며 살아야지요.
몸과 마음으로 즐겁고 유쾌하게 사노라면 건강해지고 결국 이게 행복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도 딱히 달라질것도 없지 않습니까.
사진을 촬영하는 일이라던지, 여행을 자주 하는일이 생각만큼 쉽진 않겠지만 주어진 환경안에서 최대공약수를 찾는다면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그시절 해보지 못했던 취미생활,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일들을 지금이라도 열심히 하시는게 다행이고 그런 환경이 됨이 더욱 다행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한 삶을 찾아 나서시는 그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강 , 바다, 산, 들판..
앞으로도 부지런히 찾아 다시니며 행복한 삶을 누리시구요, 그 에너지를 다른분들에게도 나누어 주세요.
멋진 생각과 삶을 사시는 가실님~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아 고맙고 고맙지요 이해를 해주시고 격려를 해주시니요
그러고보니
창문도 바뀐게 여고시절 같은 화사함이어요

2월이 주는 특별선물
5일간의 연휴를 받았으니 어디로부터 달려가야하나
차오르는 설레임에 지금 검색중입니다

가래떡도 떡국용으로 잘 썰어놓으셨니 설 명절 가족들과 함게 즐겁게 보내십시요
영화 그 이상을 읽었네요

그땐 그랬지 ...
그럼에도 순박했고
그럼에도 아름다웠어 ...하네요.

저는 설날 저녁에
여고시절과는 너무나도 다른 검사외전을 봤습니다
요즘 이런 내용이 유행인가 봐요
드라마 영화...모두 엇비슷한 내용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결코 쉽게 넘을 수 없는 약자의 몫 ...

영화관을 벗어나는 순간에 줄거리는 잊어버리고 싶더군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그시절, 특히
여고시절에는 특별한 뭔가가 깃들어 있는거 같아요.
찬란한 그 시간들...
다시 돌아갈수없기에 더 빛나보이는 것일까요?
초원의 빛
약혹자와 얼떨김에 본 영화지요
웨렌비티였나요
내 약혼자의 키는 167
가므잡잡하고도 왜소
벼란간 영화속의 남자주인공이 떠올라 ......... ^^ ^^ ^^

국민윤리라는 말이 이상한 말인데 당시엔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죠.
인간윤리가 오히려 이상한 시절이었으니.. 지금도 그 당시 학교 생각만 해도
화가 나곤 합니다. 지금 학생들이 아마 그 시절 학교를 다닌다면 아마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김미영이 출연한 영화였네요.
당시 고교얄개 등 고교생 영화의 전성기가 영화가 참 많았는데
어쩐 일인지 영화를 거의 못보고 지나가버린 것 같네요.
지금은 영화를 보고자 해도 극장이 없어 못 보고 있지요.
여기 해남이 군단위로는 괜찮은 곳인데도 그렇지요.
그래서 요즘은 인터넷사이트에서 영화를 많이 찾아 보네요.
혹시 아직 모르신다면 사이트 하나 알려드리지요.
고화질 영화 회원 가입 안 하고도 마음껏 보는 사이트입니다.

https://genvideos.org/watch?v=Midway_1976#video=gL7azYx-5JvZ8W4DAyjgIE2WOileki78YmmubxH2MOM

배너 광고가 좀 거슬리지만 무료로 보여주는 곳이라 감수하고 있네요. [비밀댓글]
이 사이트 저작권 문제로 영화 거의 전부 삭제되고 없네요.
새로운 무료영화사이트 찾아서 요즘 다시 영화보기 합니다.
http://123movies.to/
화질은 좀 떨어져도 다양한 영화가 있네요. [비밀댓글]
"여고시절!"
제가 매우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영화도 보고 싶네요.
기타를 치면서 자주 즐겁게 부르고 있어요.
우리 고교에서는 낙제는 시키지 않았어도 우열반을
편성하여 K리그 강등제처럼 2학기에는 1학기 성적에 따라
반을 달리하는 친구도 있었지요.
인생은 공부가 전부가 아닌 것이
그 시절 강등했던 친구 중의 하나가 지금은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즐거운 연휴를 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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