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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아내의 내기바둑 *

by *열무김치 2015. 7. 10.

몇 달 전의 일이다.

바지를 바꿔 입고 주머니를 뒤지다가 영화표 한장을  발견했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생각해 보니 오래전에 옷을 사면서 사은품으로 준 걸 주머니에 넣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마침 주말이라  밤 늦게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 관람권을 내미니 친절한 아가씨는 팝콘까지 한 봉지 먹을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아버님..11시30분 OO 이구요. 2관입니다.즐거운 관람 되세요."

예쁜 아가씨 복받을거야.

극장안을 들어가니 온통 젊은이들 뿐이었다.

흠...이를 어쩐다.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나 말고는 노땅은 보이지 않았다.

좀 머쓱한 기분이 들었지만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 복판에 끼여 앉았다.

웬 아버지 뻘 되는 사람이 복판에 끼여 앉나 싶었는지 바로 옆의 연인으로 보이는 한쌍의 젊은 커플이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앞쪽의 빈 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허..이제 부터 주제를 좀 알고 살자.

슬슬 피해 가잖아. 마음만 옛날이야.

낮에 오던가 하지, 왜 심야 영화관을 찾아와서 청춘의 밀애에  찬물을 끼얹냐고..

 

그냥 나올까 망설이다가 공짜 영화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슬그머니 자리를 이동해 영화를 보고 나왔다.

이제는 문화생활도 눈치를 보며 하게 생겼네.

구 세대들이 관심이 없는건지 귀찮은건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관 풍경이 온통 젊은 사람들 위주로 흘러서야...

이보게..그거 남 탓 말게나.

자네가 이상 하고 별난거야.

 

 

 

 

 

 

영화 제목 "신의 한수".

젊잖은 두뇌 스포츠, 신선놀음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바둑을 주제로 했지만 무슨 게임이든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속성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폭력을 끌어들여 지극히 영화적인 재미에 촛점을 맞춘 작품이다.

영화가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는 허구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 전개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웬만한 자극엔 꿈쩍도 않는 관객들의 냉정함을 생각 한다면 제작진들의 입장도 한편 이해가 간다.

 

프로 바둑 기사인 태석(정우성 분)은  내기바둑에 빠져있는 형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바둑 마피아격인 살수(이범수 분)의 계략에 걸려들어 마침내 형을 잃고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 쓴다.

교도소에서 복역 하던 중 얼굴 모르는 바둑의 고수를 알게 된 태석은 출소후 복수를 위해 교소도에서 알게 된 바둑의 고수를 찾아가고 그 인연들과 접속하게 되면서 마침내 바둑계의 검은손 살수와의 한판 대결을 위해 고수들을 모아 팀을 꾸린다.

단 한번이라도 지면 절대로 그냥두지 않는 살수를 향한 준비된 승부를 펼쳐 나가는데..

결국 팀원중 맹인으로 바둑 고수 역할을 했던 주님(애주가를 일컫는 말. 안성기 분)을 잃게되고 악명높은 내기바둑의 검은 아이콘이었던 살수는 태석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마친다.

바둑의 고수가 내뱉은 진정한 고수는 正道 라는 말이 무색해지긴 했지만.

그런데 아무리 영화지만 이렇게 대놓고 살인을 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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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극장에 걸린 많은 영화들 중에 이 영화를 보게 된것은 순전히 아내 때문이다.

연애를 하고 결혼하여 아들아이를 낳을때 까지 난 아내가 바둑을 좋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바둑을 남자들의 전유물로만 보았던 당시의 흐름으로 보아 보통 여성이었던 아내가 바둑을 좋아 하리라곤 짐작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연애를 할 당시 처가에서 바둑에 관한 두꺼운 책을 본 기억이 있는데, 이런 시골집에 저런책이 왜 있을까 하고 신기하게 생각한적은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동네에서 바둑으로 기침깨나 한다는 어른에게 바둑을 배울 기회가 있었지만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걸로 보아 이쪽 방면으로는 취미가 없다는게 맞는 말일것이다.

가끔 동네 복판에 있는 초등학교 느티나무아래 동네 사람들이 모여 고성을 지르며 바둑을 두는 풍경을 보고 할 일 없는 한심한 잡놈들 쯤으로 생각하는 정도였으니.

엄격한 시부모 밑에서 시집살이를 했던 아내는 유달리 말수가 적어서 집안일에 관해 내가 묻지 않는이상 먼저 말을 꺼내거나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 성격이었다.

신혼시기를 그런 환경에서 보내게 된 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틈나는 대로 아내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아들아이를 낳고 4살이 될 무렵 이었다,

외출 후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내와 아들아이가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웬 바둑판이야? 어디서 났어?"

아내는 묻는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않고 얼른 바둑판을 치웠는데 처음 보는 광경이라 의문이 들었다.

"왜, 애한테 바둑 배우게 하려고?  당신이 바둑을 알아?"

아내는 빙긋이 웃기만 할 뿐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아내는 틈만 나면 바둑판을 놓고 아들아이와 자주 놀았다.

육아법의 한 방법이겠거니 생각하고 무심하게 넘기던 나는 어느날 아내 혼자서 바둑을 두고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가 들어 온줄도 모르고 바둑판을 들여다 보는 아내가 아주 낯설어 보였는데 그렇게 진지한 모습 또한 처음이었다.

나는 모르는체 한동안 아내를 바라다 보았다.

미동도 하지않고 앉아있는 아내에게 인기척을 내기가 그러해서 몰래 뒤란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내는 여전히 바둑판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들어 오시고 나서야 아내가 방으로 얼른 들어왔다

"당신 언제 왔어요?"
"내가 들어와도 모르던데 뭐..뭘 그렇게 열심히 본거야?"

"바둑판이잖아요."

"누가 그걸 몰라? 사람이 들어 오는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들여다 보니 하는 말이지."

"원래 그래요.재밌잖아요."

"재미? 당신이 바둑을 둘 줄 알아?"

아내는 대답대신 눈을 찡끗 감았다.


아내가 서울에서 한복일을 배우면서 바둑을 배웠다는것을 결혼 후 4년만에 알았다.

한복가게 주인 아저씨가  바둑을 아주 잘 두었는데 처음엔 어깨 너머로 보기만 하다가 주인의 권유로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주인은 한복일 보다는 바둑에 심취해 가게 안에는 내기 바둑을 두기위해 종일 동네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3년간 한복일을 하면서 배운 아내의 바둑 실력이 상당 했던지 동네 어른들과 벌린 내기 바둑에서도 지는일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하여 마침내 주인과 맞짱(?)을 뜨는 단계까지 갔었다는데..
"에이..거짓말 좀 작작 해라. 당신이 무슨 내기바둑을 해. 그렇게 잘 두었다는거야?

그런데 어떻게 지금까지 감추고 살았어? 거, 희한한 일이네."
"당신은 속고만 살았어요? 기껏 힘들게 말 했더니.."
아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평소 과묵한 성격이고 여간해서 말을 많이 하지않는 편이라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아내의 모습에 난 깜짝 놀랐다.

"그래, 맞다고 치고 , 그럼 나하고 한 판 두자."

아내가 피식 웃었다.

"왜? 상대가 안된다는거야?"

"그만 두시지요. 서방님. 난 저녁 해야 해"
"뭐야, 날 아예 무시하는거야?"

"뭘 무시해,두기 싫으니 그런거지."

그때까지만 해도 난 아내가 거짓말을 하던지 장난삼아 날 놀리는줄 알았다.

하지만 평소 과묵한 아내가 거짓말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에 강한 호기심이 동했다.

"당신이 하도 한 판 하자니까 하기는 하는데 나중에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말아요."

"어이구, 아예 이긴걸로 간주하고 말하는구만. 뭔 실력이 얼마나 되기에..."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아내와 마주 앉았다.

"尹가님이 흑을 잡으시지요."

"흑이건 백이건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러나 바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싱겁게 끝이 났다.

내가 너무도 형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엔 내가 아홉점을 깔고 달겨 들었지만 달라지는 건 별로 없었다.

아내가 하품을 하면서 주섬주섬 바둑돌을 챙겼다.

"우리 저녁이나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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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이 우리집으로 발길을 한것은 순전히 내가 한 자랑질 때문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난 아내의 바둑 이야기를 했고, 내 얘기에 의심을 품던 사람들이 우리집에 찾아와 아내에게 바둑을 한 판 두자고 부탁 하는일이 생긴것이다.

"아이구, 무슨 말씀이세요. 애기 아빠가 모르고 한 얘기예요.

전 바둑 같은거 몰라요. 애기 아빠가 왜 그런 말을 했나몰라.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세요."

난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히고 다시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옷을 떼어다 파는 진부집 사랑칸에  세들어 사는 조씨에게 자랑질 한게 화근이 되었다.

조씨는 아내에게 끈질기게 바둑 한 판을 두자고 졸랐고 견디다 못한 아내가 한 판만 한다는 조건으로 수락을 한것이다.

어머니가 외출을 하신사이 툇마루에 바둑판을 두고 조씨와 마주 앉았다.

"아이구 이거, 영광이 올시다.한 수 배우겠습니다."

조씨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고개를 조아렸지만 얼굴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동네에서 바둑이라면 헛방귀깨나 뀌던 처지라 설마하니 여염집 여편네가 자기를 감히 이길까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난 공연히 긴장되어 앉지를 못하고 서성거렸다.

그러나 자신감 넘치던 조씨의 모습이 얼마가지 못해  심각하게 변하더니 이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에이, 조형..바둑 두다가 무슨 담배야."

"가만 있으라니까..허.. 그것참."

바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죄송해요. 곧 어머님이 들어 오실거 같아서..일어 날께요."

아내가 바둑알을 집어넣자 조씨는 쓴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대문을 나서는 조씨가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왜요?"

"허..오늘 임자 만났네. 자네 봉 잡았네."

"그게 무슨 말이예요?"

"허허.. 하긴 尹씨같은 조무래기 참새가 봉황의 마음을 알리가 없지."

조씨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며 나갔다.
저놈, 백수 주제에  지금 무슨 헛소리 하는거야?

"당신, 어디 가서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아요.

동네 사람들 우리집에 오면 아버님 어머님 한테 나만 입장 곤란해 지는거 당신이 먼저 알잖아."

" 그럼 뭐해. 이미 조씨가 다 말했는데. 그나저나 당신 바둑 실력이 대단하던데.

그동안 손이 근질거려서 어떻게 감추고 살았어?

당신, 나하고 사귀면서 바둑의 바자도 꺼내지 않았잖아.참 희한한 일이야."

"당신이 뭔가 낌새라도 있어야 말을 꺼내든가 하지.엉뚱한데만 관심이 있는데.."

 

 

 

 

 

 

 

다시 조씨가 찾아와 싫다는 아내를 조르고 졸라서 바둑판을 벌렸지만 결과는 같았다.

조씨는 줄담배를 피우며 씨근덕 거리다 돌아갔고  언짢은 조씨의 표정을 본 나는 걱정이 되었다.

"여보, 그만 한 판 져 줘라. 저양반 앞으로 계속 찾아올거 같은데."

"그런게 어디 있어요. 깨끗하게 지고 승복 하는것도 바둑의 예의."

그 뒤로도 몇 번 더 조씨가 찾아와 씩씩 거리며 달겨 들었지만 거듭 대패를 당하자 어느날 아랫동네 사람을 데리고 왔다.

하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들어 오시는 바람에 아내와의 대결은 무위로 끝났다.

"저기요. 전 이제 아저씨랑 바둑 두지 않을것이니 오시지 마시구요. 그냥 놀러 오세요.

그리고 다른사람 데리고 오시면 제 입장만 난처해 지니 절대로 그러지 마세요."

그러나 조씨는 자신이 여자한테 크게 진것이 자존심에 상당한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하긴 동네에서 이제껏 자신을 이긴 사람이 없다고  콧방귀를 핑핑 뀌어 댔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었다.

논에 다녀 오는데 조씨가 나를 불렀다.

"尹씨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정말 자존심 상해서 ..

자네 와이프가 이젠 나같은건 상대를 하지 않겠다는거잖아."

"에이..그게 아니잖아요. 시부모님도 계시고 하니 혼날까봐 그러는거지. 쪼잔하기는.."

조씨는 그렇겠다고 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큰소리는 혼자 하더니 왜 그래요? 실력이 그거밖에 안되는데 뭘 어쩌라구요. 져 주라고 할까요?"

"시끄러."

조씨는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잠잠 하다 싶었는데 조씨가 또 사람을 데리고 왔다.

지난번에 왔던 아랫마을 사람 이었다.

자기가 기르는 토종닭이라고 하면서 커다란 장탉을 한마리 들고왔다.
그동네에선 바둑실력이 최고라며 꼭 한번 바둑을 두었으면 좋겠다고 사정을 했다.

거듭 거절을 하던 아내가 내가 여러번 눈짓을 하자 마지못해 툇마루에 앉았다.

아내와 그양반이 마주앉자 나와 조씨가 마치 보초를 서 듯 양쪽에 섰다.

3~40분쯤 지났을까

조씨는 담배를 피우며 바둑판을 뚫어져라 바라다 보았고 난 바둑에 대해 별 지식이 없었던 터라 아내가 두는 바둑돌만 열심히 바라다 보았다.

바둑판을 쳐다보던 조씨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바둑을 두던 아랫마을 양반을 일으켰다.

"그만 일어나게. 눈치없이 퍼질러 앉아있지 말고.."

그양반은 머쓱하니 뒷통수를 긁으며 일어났다.

"아이구, 이거 폐만 끼치게 됐습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두사람이 후다닥 나가자 난 잽싸게 장탉의 목을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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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 기어이 사단이 났다.

조씨가 이웃면에 산다는 바둑깨나 둔다는 사람과 아침 일찍 집에 찾아 왔는데 같이 온 사람은 면사무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방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얼마간을 서있던 조씨가 밖으로 나가더니 점심무렵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다시 찾아왔다.

사람을 무시 한다느니, 얼마나 대단 하기에 그러느냐는 등, 헛소리를 지꺼리던 조씨가 툇마루에 벌렁 드러 눕더니 일어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농삿일로 들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왔는데 그때까지도 조씨는 마루에서 자고 있었다.

내가 조씨를 깨우자 조씨는 얼른 일어나 나가더니 곧 아침에 왔던 그양반을 다시 데리고 왔다.

면에 다닌다는 그양반이 조심스레 아내에게 바둑을 딱 한번만 더 두자고 부탁을 했다.

다시 거절 할 줄 알았던 아내는 웬일인지 얼른 바둑판을 꺼내어 왔다.

마주앉은 두사람이 바둑을 두기 시작하자 어디서 모여 있다가 오는지 마을사람 대여섯명이 우르르 들여 닥쳤다.

큰일났다 싶었다.

이러다 만일 아버지라도 들어 오시는 날이면 난리가 날게 뻔했다.

가슴을 졸이며 아내의 대국을 지켜보는데 동네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큰소리로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아이고..제껴야지, 그걸 막으면 죽잖아. 어쩌고 저쩌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양반들의 말 수가 줄더니 면에 다닌다는 양반이 슬그머니 돌을 놓고 일어났다.

"무례를 범했습니다.잘 배우고 갑니다."

나는 얼른 조씨의 표정을 살폈다.

" 뭐야..면서기도 안돼?"

동네사람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불쑥 들어 오셨다.

"여기서 뭐하는거야?"

아버지의 벼락같은 소리가 들리자 아내는 잽싸게 방으로 들어가고 동네 사람들이 후다닥 대문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아내가 너무 급하게 방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미처 치우지 못한 바둑판을 들켜 버리고 말았다.

이미 눈치를 채고 계셨던 아버지는 바둑판을 들어 대문 밖으로 내던졌다.

길거리에 바둑알이 와르르 쏟아지고 얇은 바둑판이 두동강이 나자 동네 사람들은 꽁지가 빠져라 하고 줄행랑을 쳤다.

그런데 면사무소에 다닌다는 양반이 눈치없이 다시 들어오더니 아버지께 사과를 했다.

다 자기 때문에 생긴 일이니 노여움을 푸시라고.

알지도 못하는 양반인데 왜 함부로 남의집에 들어와 가정집 여자와 그따위 짓을 하느냐고  혼쭐이 난 그 양반은 거듭 머리를 조아리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황급히 대문을 나섰다.

"건달놈의 새끼들..어데 남의 집구석에 들어와 분탕질이고."

아버지는 대문밖으로 고래같은 소리를 내 지르셨다.

" 노인네, 성질 고약하네. 동네 사람들 바둑 한 번 둔 걸 가지고..누가 잡아먹나?"

조씨가 눈을 부라리며 입을 내밀었다.

그날저녁 나와 아내는 아버지의 노여움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근처에 사는 누님집으로 쫓겨났다. 

 

(이어)...

 

 

 

 

어이쿠~~
(이어...)가 궁금해집니다.

저도 바둑을 좀 두는데...
사모님 몇 급일까요?
(몹쓸 호기심이 또 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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