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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단편

안개

by *열무김치 2015. 2. 28.

비탈밭을 갈기 위해선 별수 없었다.

쑤셔 박힐 것만 같은 비탈밭은 반나절이면 될일을 종일 매달려도 시원치 않았다.

겨우내 놀고먹었는데도 생 볏짚만 주어서인지 쇠 잔등 뒷태가 암팡지지 못해서 보구레 를 끌고갈까 싶었지만 이웃 송가네 놈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기도 그랬다.

듬성 듬성 낙엽송을 심어놓긴 했지만 워낙 땅심이 좋은곳이라 콩이나 팥 을 부치미 하고 처삼촌 벌초하 듯 한 두번 북 만 주어도 가을거두미가 제법이어서 여전히 미련이 남은터였다.

쇠먹이도 그랬다.

바깥 갯가풀은 동네놈들이 워낙에 극성이어서 게으른 놈은 차지를 못했다.

납작골은 콩 팥도 그렇거니와 워낙에 쇠꼴이 보기 좋았다.

"이자는 낭구를 심었으이 그만 부치거라."

잔소리를 그만 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지팡이를 짚어야 겨우 앞마당을 나서는 노친네는 일일이 간섭을 하며 성질을 돋구었다.

"내 나가 몇이요. 이자는 내 알아서 할낀데 무신 간섭이 그리도 많소"

짧은 곰방대를 피워 문 호식이 싸리나무 바소구리에 쟁기를 얹으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무신놈에  종자가.."

 

 

 

 

 

땅심이 풀려서인지 새벽부터 낀 자욱한 안개가 한나절 가깝도록 도무지 걷힐 줄 몰랐다.

희한한 버릇이 생겨서 운좋게 담뱃보루가 들어와도 담배개비를 일일이 까서 공방대에 쑤셔넣어 피워야 직성이 풀렸다.

소싯적 동네 할방구들의 곰방대를 흉내내다 붙은 버릇이었다.

소를 앞장 세우고 천천히 좁은 자갈길을 올라갔다.

이놈도 이제 이길이 익었는지 굳이 고삐를 잡지 않아도 되었다.

손바닥만한 논빼미를 얻어 부치던 오가 놈이 부칠 밭이 없다며 개울가 잡풀이 우거진곳을 몇 년간 일구더니 모양새가 제법인 밭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천수답이 구실을 해야 오가 놈 밭도 먹을알이 생겼다.

지척이 개울인데도 조금만 가물어도 꼬여돌아가는 강냉이가 꼴사나워 오가 놈은 뻑하면 주먹만한 돌멩이를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호식이 오가 놈 강냉이가 잘되길 바랬던 건 순전히 여물탓이었다.

강냉이대를 묶어서 군데군데 세워 두었다가 쇠여물에 보태면 아주 십상이었다.

오가 놈이 소와 원수가 졌는지 몇해가 지나도 외양간은 허드렛 창고로 쓰고 있었다.

"이쪽으로 댕기니 자네가 우선이지."

벼룩도 낮짝이 있어 그것도 한 두해가 아닌지라 고깃근이나 끊어주어야 얼굴이 덜 간지러웠다.

"올게도 일찌기 가져 가라구."

두 어근 돼지고기는 묻지 않아도 답이 되었다.

 

어슴프레한 길에 키가 제법인 여인이 서 있었다.

짐승도 그런 낌새는 아는지 멈칫 하는 듯 했다.

안개탓인지 옛날 이야기에서 듣던 귀신 같은 모습이어서 호식은 섬칫했지만 가까이 다가 갈수록 안심이 되었다.

그 여인은 개울가를 바라보고 었었는데 아래 경사가 매우 급해서 조금만 앞으로 가면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 같았다.

쟁기를 지고 있었던지라 마냥 서 있기가 힘에 부쳤지만 호식은 잠시 멍하니 그 여인을 바라다 보았다.

"저기..여기 골 이름이 뭐지요?"

가느다란 물줄기 같은 음성이 얕게 들렸다.

소리나는 쪽을 바라다 보았지만 여인은 호식을 보는건지 개울가쪽을 보는건지 애매한 자세였다.

긴 머리를 한 여인이 호식앞에 서 있었다.

"뭐라 했써유?"

여인은 벙거지를 쓴 호식을 잠시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늘 이골이 무슨 이름일까..궁금 했거든요.분위기가 참 좋아요."

호식은 등짐이 제법인데도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이짝은 범골이구유, 저 잘 안보키는데가 여우골 이라고 부르지유."
여인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름이 참 재밌어요.짐승들이 많이 살았었나봐요."

"그겐 몰르지유. 어른들이 그렇게 불른거니께"

호식은 곁눈질로 여인을 훔쳐 보았다.

날씨가 아직인데도 여인의 옷차림은 너무도 가벼워 보였다.

흰 목덜미가 하얗게 드러나고 팔과 다리도 껑충해서 호식은 닭살이 돋는 듯 온 몸이 근질거렸다.

호식이 물끄러미 바라다 보자 여인은 들고있던 머플러를 목에 둘렀다.

"새벽공기가 너무 좋아요."

여인이 짧게 목례를 하고 천천히 내려갔다.

짧게 일렁이는 치맛자락 위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엉덩이가 탐스럽게 일렁였다.

여인이 그림처럼 안갯속으로 숨어들자 등에 걸머진 쟁기의 무게가 다가왔다.

도리질을 하던 호식은 쇠잔등을 철 썩 때렸다.

"얼릉 가자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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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부터 시름거리던 마누라가 겨울에 곡기를 거르던 날들이 많더니 이내 자리를 깔고 누웠다.

노친네가 거드는 부엌살림이 말이 아니어서 차라리 하지 않음만 못했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이사람아. 곰탱이처럼 그러지 말고 병원엘 데리고 가게. 아직 한창 바람인데.."

호식은 그말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주춤 거렸다.

이제 국민학교 5학년인 둘째 딸래미에게 부엌일을 거들라고 일렀더니 눈치빠른 애가  그럭저럭 부엌 살림을 하는지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늦봄에 콩 부침이를 끝내고서야 호식은 마누라를 데리고 시내 큰 병원으로 갔다.

"진작에 오시지.왜 이렇게 되도록 계셨습니까?" 

의사가 나가자 호식 마누라가 통곡을 했다.

"저놈의 씨가리가 날 눈꼽만침이라도 생각을 혔을라구.이제 속이 션 하요?"

호식은 창가로 다가가 병원 밖을 멍하니 내다 보았다.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창문 너머로 무심하게 핀 철쭉이 붉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입원 수속 하셔서 올라 오세요."

간호원이 링겔을 꽂으며 빠르게 말했다.

"어디로 가야혀유."

"원무과 가세요."

 

이불 보따리와 생활용품 몇가지를 챙겨들고 문밖을 나섰지만 호식의 마음은 영 개운치를 않았다.

무엇보다 외양간의 소가 문제였다.

한 이틀 셈치고 마른여물을 여물통 가득하게 부어 주었지만 안심찮았다.

하루에 두번 들어오는 완행버스를 타기위해 먼지나는 신작로에서 버릇처럼 곰방대를 꺼내 물었지만 담배맛을 모르고 있었다.

시간보다 한참이나 늦은 버스에 오르자 현기증이 일었다.

운전사 바로 뒷 쪽 자리에 쑤셔 박히듯 앉자 이내 졸음이 밀려왔다.

밤새 뒤척인 탓 이었다.

"어머, 어디 가시나 봐요."

희멀그레 뜬 시야로 그 여인이 들어왔다.

이불보따리에 얹었던 다리를 내리자 정신이 들었다.
여인은 검정 정장을 하고 있었다.어깨에 작은 가방을 메고 한손엔 서류 같은게 들려져 있었다.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자 호식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예, 애 어무이가 병원에 있어서.."

"그러셨군요. 그럼 OO시내로 가시겠네요."
"그라긴 한데.."

호식은 그 여인을 바로 보기가 힘들었다.

뒷자석이 비었는데 굳이나 서서 말을 붙이는게 안심찮고 불안했다.

읍내쪽이나 나가야 포장도로가 나오기에 버스는 마치 드럼통 굴러가는듯한 굉음을 내며 억지로 고갯길을 올랐다.

"본전도 안 나온다니까. 이게 어디 차가 다니는 길이냐구."

버스 기사는 호식에게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떠들었다.

그 여인은 서류를 든 손으로 입을 가리고 큭큭 웃었다.

호식은 버스기사가 앞쪽에 나있는 거울로 슬금슬금 여인을 훔쳐보고 있다는 걸 아까부터 알고 있었다.

"빌어 먹을 놈"

 

터미널에 버스가 도착하자 여인이 얼른 이불보따리를 들었다.

"괜찮아요. 든게 많네요."

여인이 상큼하게 웃자 호식은 머리칼이 주뼛 서고 등날이 뜨끔했다.

"이리 주서유. 그게 뵈기보담 무겁걸랑요."

"OO 병원이라고 하셨지요? 같이 가요. 저도 그곳에 볼일이 있어서."

"어이구, 이라지 마서유."

호식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안절부절 못했다.

깨금발로 택시를 부른 여인이 호식을 뒷좌석으로 밀어 넣고서야 얼굴에 흐른 땀을 훔칠 수 있었다.

"사모님이 많이 아프신가봐요."

강렬하게 풍겨오는 여인의 체취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향기로운 냄새에 호식은 머리가 붕 뜨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 예..쫌"

짧게 입은 치맛 탓인지 여인의 실한 넙적다리가 유독 하얗게 시야에 들어왔다.

 

애 써 외면해 보았지만 벌렁거리는 심장은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마누라는 잠이 들었는지 이불을 덮어 주어도 반응이 없었다.

극구 말렸는데도 기어이 들려준 음료수병을 작은 냉장고에 넣고 휴지와 비누등을 정리하고서야  맑은 정신이 돌아왔다.

물끄러미 바라다 본 잠든 아내의 얼굴에 그 여인이 웃고 있었다.

도리질을 하자 다시 정신이 흐릿해져 왔다.

화장기 없는 아내의 푸석한 얼굴이 나이보다 한참이나 늙어보였다.

 

병원을 나온 건 삼복더위가 한창인 때였다.

집안꼴은 말이 아니어서 제대로 치우지 못한 외양간 탓에 집안엔 파리 투성이어서 들마루고 방안이 온통 새카맸다.

노친네가 파리채를 들고 연방 두들겨댔지만 달겨드는 파리떼를 감당하지 못했다..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파리떼를 쫒는 외양간에 널브러진 비쩍마른 암소는 갈빗대가 성성해 보였다.

그 꼴을 보던 호식이 소리를 질러대며 엄한 아이들에게 성깔질을 해댔다.

짚단을 가져다 땠는지 아궁지엔 타다남은 재가 가득했다.

방안에 누운 마누라가 파리떼 때문에 견디질 못하자 모기장을 꺼내 가림막을 해 주었지만 병원에서 시원하게 지낸 탓인지 연방 신경질을 내었다.

"다시 가든가 해야지 못살겠어."

"호강에 받쳤구먼. 무신 돈으로."

호식은 부아가 난 속을 삭이려 호미를 챙겨들고 납작골로 치달았다.

콩 꼴이나 봐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웃자란 낙엽송 사이로 뻘쭘하게 키가 자란 콩대가 잡초에 파묻쳐서 콩나물처럼 되어 있었다.

등이 흠뻑 젖도록 호미질을 했지만 반의 반도 매지 못한채 해가 기울었다.

말복이 코앞인데 콩 꼬라지가 우스워 올 농사는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호식의 한숨이 피워 문 곰방대에서 올라가는 연기보다 더 길게 늘어졌다.

백씨네 한테 빌린 병원비가 마음에 걸렸다.

워낙에 호인이라 빌릴때는 스스럼 없었지만 도둑같이 다가서는 빚이 눈이나 깜짝할까 싶었다.

외양간에 매인 비쩍마른 암소나 믿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새끼나 한배 빼 주었으면 바랄게 없을텐데 그 꼴로 새끼를 배는 건 애당초 글른 일이었다.

곰방대로 머리를 쥐어박자 휭하니 머리가 어지러워 왔다.

앞고름을 풀어 헤치고 산아래를 내려오자 이내 땅거미가 밀려왔다.

딸래미가 있으니 설마하니 저녁은 해서 먹었으리라 짐작 했지만 마음이 급해 발걸음이 빨라졌다.

큰 바위가 있는 구비를 돌면 바로 퐁퐁소였다.

옛날, 큰 이무기가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동네 어른들이 우기는 깊이가 제법인 沼였다.

무심코 지나가려는 호식의 눈에 소 에서 어른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

호식은 소나무가 서있는 곳으로 몸을 기대어 낮추곤 그곳을 바라다 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 여인이었다.

저기가 어디라고.. 이무기가 살았다 해서 동네 아낙들도 언감생심 꿈 도 못꾸는 곳인데 그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벗고 물에서 첨벙거리고 있었다.

깊은 골이라 이미 인적이 끊어진 이곳에 참으로 대담한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얼른 지나 가야지 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호식은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어둠이 짙어오고 있었지만 검은 밤에도 여인의 하얀 나신은 주변과 구분되어 비교적 뚜렷하게 보였다.

호흡이 거칠어진다고 느낀 호식은 두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지만 펄떡이는 심장은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듯 벌렁거렸다.

여인은 유유하게 헤염을 치고 가끔 가다가 물장구를 쳐댔다.

잠시 뒤 낮은 노래소리가 들렸다.

흥흥거리는 노래를 들으며 여인의 나신을 훔쳐보던 호식이 일어나려 했지만 왠일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나가면 여인이 금방이라도 알아챌 것 같았다.

여인이 물밖으로 나와 옷을 걸치는 동안 호식은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도 여인의 나신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아랫도리가 뭉툭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얼른 일어날 수가 없었다. 

여인이 천천히 옷을 걸치고 어둠속으로 사라질때까지도 호식은 일어서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었다.

어디서가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부지, 아부지.."

딸래미와 셋째놈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호식은 저린 다리를 끌고 길가로 나왔다.

"아부지, 왜 이렇게 늦게와요. 할머이가 걱정해요."

호식은 아이들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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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안개가 허리를 감싸고 돌더니 이내 한치앞도 보기 힘들만큼 짙어졌다.

결국 소를 팔아서 병원비로 진 빚을 갚았지만 올 농사마저 시원치 않아 큰 걱정이었다.

호식처도 그랬지만 아이들이 더 걱정이었다.

딸래미는 그런대로 공부를 했지만 셋째놈은 나머지공부를 도맡아 놓고 해도 도무지 나아지질 않는다고 했다.

벌써부터 학교에 다녀 가라는 학교의 연락을 받았지만 그럴 마음도 경황도 없었다.

복량(복령)을 캐면 괜찮다는 개울건너 차씨의 말을 듣고 그를 따라 다닌지 두어달이 지난 지금은 혼자 다녀도 그런대로 오일장 재미가 쏠쏠했다.

걸망태를 지고 나섰지만 안개가 너무 짙어서 오전일은 공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올라갔다.

아직 이른아침이라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콩밭으로 가는길의 중간 쯤 왔을때 안개속에 사람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차씨가 복령을 캐러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양반이 함께 가면 안되는데 싶었지만 혼자보다는 나을거 같아 얼른 다가갔다.

"차형이여?" 

그러나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그 여인이었다.

긴 치마를 입고 꽤 두꺼운 점퍼를 걸친 여인이 안개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머, 아저씨, 또 뵙네요.이른 아침부터 어디를 가세요?"

호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예..복냥을 캐러 가는길이지유."

"복냥이 뭐예요?"

"보약에 쓰능거 , 하얘튼 그런거 있어유."

여인이 호식을 바라보며 생긋이 웃었다.

호식이 헛기침을 하며 얼른 눈인사를 건넸다.

"여길루 자주 오시네유."

"네. 새벽 공기가 너무 좋아요.안개 낀 날을 좋아 하거든요."

희뿌연 안개가 좋다니 별난 여자다 싶었다.

그여인은 구절초를 몇가지 꺾어들고 있었다.

"이게 들국화 아닌가요?"

"비슥 행거지유. "

여인이 지난번처럼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안개속으로 멀어져 갔다.

호식은 무언가에 홀린 듯 한참이나 여인이 사라져간 안갯속을 멍하니 바라다 보고 있었다.

 

"아부지요. 핵교서 빨랑 오래요. 엄마는 아파서 몬 가잖아요."

셋째놈 등쌀에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와 오라카는데?"

"다른 아들은 다 왔다 갔어요. 우리만 빼고.."

일년에 한 두번 입어볼까 말까 한 양복을 꺼내 입었지만 아무래도 점퍼를 걸치고 가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라도 선상님한테 가능긴데 그 꼴이 뭐고?"

노친네가 거들자 호식은 다시 양복을 꺼내 들었다.

시커먼 얼굴에 비쩍마른 몸은 도무지 양복과는 거리가 멀어보였지만 몇 번을 재고 잰 끝에 양복을 걸치고 대문을 나섰다.

동네 약방에 들러 피로회복제 한박스를 사 들었지만 학교정문이 가까워 올수록 발걸음은 더 무거워졌다.

다음에 갈까 하고 다시 몇 번을 망설이다가 교무실이라고 쓴 문을 열고 들어섰지만 호식은 앞을 보지 못하고 마룻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나잇살이나 먹은 영감이 나즈막하게 물었다.

"지가요.. 지가, 3학년 만식이 아버인데.." 

"아..김선생 반이구만. 김선생 ,여기 만식이 아버님 오셨는데 와 보세요."

영감이 큰소리로 부르자 여선생이 얼른 쫓아왔다.

"어서 오세요. 안그래도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이리로 오세요."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였다.

호식은 그제서야 앞을 똑바로 쳐다 보았다.

그 여인이었다. 야밤에 퐁퐁소에서 나신으로 목간을 하던.

"어머, 아저씨 아니세요.아저씨가 만식이 아버지셨어요?"

여인은 박수를 치며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앉았던 다른 선생들이 일제히 호식쪽을 바라다 보았다.

"어머, 어머,정말 몰랐어요.만식이가 엄마는 아프고 아버지께서 많이 바쁘다고 하길레  궁금했거든요. 잘 오셨어요." 

여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막힘없이 말했다.

들고 간 피로회복제 한 병을 받아 들었지만 도무지 무슨 맛인지 느낌이 오지 않았다.

호식은 생글거리며 아들 만식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여인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앉아있는 의자 아래만 바라다 보고 있었다.

"한글 깨우침이 다른 아이들보다 좀 늦지만 열심히 하니까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식이는 공부 보다는 운동에 재능이 많아요.달리기도 잘하고.."

호식은 아들 만식이 얘기보다는 여인에게서 풍겨오는 분 냄새가 더 크게 느껴졌다.

몇 가지 들려주는 참고서를 받아들었지만 어떻게 해 주라는 설명은 귓등으로 듣렸고 여인의 얼굴만 크게 다가왔다.

 

교문을 나서는동안까지도 호식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개속에 서있는 여인의 모습만 뚜렷하게 보일 뿐 그 여인은 선생님이 아니었다.

후질근한 양복이 오늘따라 더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이제 납작골은 가지 말아야 한다.

저 여인도 더이상 그 곳에 오지 않을것이다.

다시 만난다고 해도 피해가야 한다. 

호식은 슬퍼졌다.

올해 농사도 그렇고, 또 다른 기대감도 가을 안갯속으로 숨고 있었다. 

 

*1992년

 

 

 

*사진: (펌)

 

 

 

 

요즘 아이들에겐 읽기에 무리가 있겠어요
워낙 귀하게 도시에서만 자라놓았으니
안개낀 시골풍경과 소먹이는 농부의 심정
저는 한편의 그림처럼 읽었습니다. 괜시리 슬퍼지네요
쓴지가 오래라..

요즘 바쁘신 듯 합니다.
3월 들면서 날씨가 완연하게 바뀌는군요.

8~90년대만 해도 산골의 생활은 지금과 너무나 차이가 많아서 그때 쓴글을 보니 저 자신도 생소한 느낌이 듭니다.
읽다가 그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에 가슴이 철렁했다가...
그 여인이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라는 데서 또 철렁했습니다. ㅎㅎ

강원도 방언과 자연의 묘사가 절묘하게 어울러져 있어서
김유정 또는 이효석의 작품을 읽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강원도 사투리는 글씨로 쓰는것보다 말로 하는게 더 실감이 가지요.
여러 사투리중에 가장 어눌하다고나 할까요. 솔직히 상당히 촌스럽지요.
가만 들어보면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 있음을 봅니다.

지금 읽어보니 참 같잖은 글이 꽤 되는데 앞으로 더 올려도 될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수정을 많이 하면 의미가 없을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올리기는 낮간지럽고 그렇네요.
하하..언덕님이니 해보는 소립니다. [비밀댓글]
등단 하셨습니까?
작가님이시군요
더 건필하셔서 훌륭한 소설가가 되시기 바랍니다
반가워요.
하하..
등단하고는 거리도 멀고 아무 상관도 없는, 블로그에서 개인일기처럼 쓰는 글이니, 이곳에 오시는 블로거분들이 읽어 주는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와~ 드라마 작가를 하심 참 좋을것 같아요.
정말 푹 빠져서 읽었습니다.
92년이면 우리 큰애가 태어나던 해군요..
열무김치님 아이들은 초등학생쯤이었겠죠?
자식들이 아빠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그렇게 멋진 어른으로 성장했단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 대본 한 번 써 볼까요?
금방 망할거 같은데요 하하..

블로그 친구분들이 아니면 읽어보지도 않은 글입니다.
감사 합니다.
'안개'는 지금까지 보여주신(그중에서 제가 읽은) 소설 중 가장 좋은 작품입니다.
묘사나 전개에 무리가 없고,
마치 김유정의 단편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좋게 보시니 감사합니다.
그동안 쓴 습작을 블로그에 올려볼까 말까를 고민했는데 용기를 얻게 됐네요.
그래봐야 블로그 친구분들이 몇 분 읽겠지만 이것도 영광입니다.
염화나토륨(NaCl)
우리네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이 소금의 량을 줄이시면
울 님들의 내일의 인생은 오히려 짭잘해진답니다.
일신천금이라,
천금을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벗꽃 길 거닐 그 날을 꿈꾸시며 건강을 지키시길 빕니다.
제가 요즘 몸이 좀 불편하다 보니 건강의 소중함을
강조하게 됩니다.
끼 모아 올리신 작품 잘감상해봅니다.
늘 강건하소서.
늘샘 / 초희드림

와 직접 쓰신 소설이군요
너무도 재미있는데요
사진도 예술이고,
글을 읽는내내
제맘이 다 두근거리는데요!!ㅋㅋ
사진은 참고용으로 옮겨왔는데요.
그동안 남의 작품을 인용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터라 마음이 쓰입니다.
사지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 드려보는 말씀입니다.

그동안 습작으로 끄적거린 글들이 있는데 염치불구하고 블로그에 올리고 있어요. [비밀댓글]
대학때 졸업 공연을하고 늦은밤 귀가 하는데
안개가 어찌나 자욱한지 한치 앞을 분간 못할 길이였지만
그 길을 이세상 끝까지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옛 생각이 나는군요...안개하니까...ㅎ

읽어 내려가면서 좀 궁금했는데
만식이 선생님이라니....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을 듯하네요...
몸이 아프다는 핑게로 책을 통 못읽었는데
책 한권 읽은것 같은 뿌듯함이....^^
감사히 읽었습니다~~
그동안 몸이 좋지 않으셨던것 같습니다.
요즈 감기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더군요.
병원 가보고 깜짝 놀랐어요.

블로그에 용감하게 글을 올려보고 있습니다.
2월에서 3월로 가는 길목이 고르지 못한 날씨로 어수선 합니다.
감기조심 하세요.
예전에 듣던 용어들이 정감이 가서 좋습니다
바소구리같은 말은 지금은 잊어버린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ㅎ
쇠잔등을 철 썩 때렸다.....어서 가자 이놈아 ㅎ
별은 이럴 용어들이 재밌고 달라붙은 느낌이 있어 좋아요 ㅎ
꽃샘추위라고 합니다 ㅡ감기조심하세요 ^^
그러시고도 남지요.
농촌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은 날씨 변덕이 참 심했습니다.
감기 환자들이 무척 많네요.
한 번 걸리면 여간해서 낫지도 않습니다.
건강 조심 하세요.
별님이 글 많이 쓰시는 계절이 왔네요.
참 잘 읽었습니다.
어릴적 생각도 나고
오래전 30년전 저는 산골에서 4년을 직딩생활했기에
이글을 읽으면서 예전생각이 물씬났습니다
그때 그시절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변하고 다른 세상이 왔는데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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