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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단편

첫사랑

by *열무김치 2012. 5. 27.

 

 

 

 

 

 

1975년 4월초순무렵. 
나무를 심기 위해서 아버지와 나는 깊은 산골로 들어갔다.
당시에는 강원도 산골짝마다 화전민이 많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목상(木商)을 하셨기 때문에 일을 하시면서 여기저기 버려진 화전이나 쓸모없는 벌거숭이  야산을 사들였다.

사들였다기 보다는 받지 못한 벌목 대금이나 공사비용으로 대신 받은게 더 많았다.

그때는 전답을 우선으로 알고 산은 당장의 소득이 없었기에 땅값은 형편이 없어서  평당 10원에서 많아야 100원 정도였다.

요즘이야 산의 가치가 좋아 투자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당시의 산은 화목이나 채취하고 산나물이나 뜯는 정도로 별다른 대접을 받지 못했다.

국가에서도 치산녹화 사업을 벌리던터라 나무를 심게 되면 묘목이나 비료등을 지원 받을 수 있었다.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고 경제개발의 구호가 한창이던 때였지만 가난하기는 똑같아서 강원도 산골에는 전국에서 찾아든 화전민(火田) 이 골짜기마다 몇가구 씩 살고 있었다.
군으로부터 지원받은 묘목을 사람을 사서 현장까지 일일이 등짐으로 나르느라 며칠동안 끙끙 앓았다.
당시 그런 깊은 산골에는 차가 다닐만한 길도 없었고 차가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한달 가까이 심어야 될 묘목을 옮기고 우리가 묵을 집까지 정한 후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나무를 심으면 장래를 볼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긴 했지만 이짓을 뭐하러 하나 싶어서 난 불만이 가득했다.
더구나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건강문제로 휴학한 상태였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논이나 사서 농사를 하지 왜 사서 고생 하느냐며 아버지와 많이도 다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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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는다고 온 산골에 소문을 냈다.
벌이도 시원찮은 시절이라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사람이 많이 오려니 생각은 했지만 막상 모여든 사람들을 보니 입이 벌어졌다.
겉으로 봐서는 전혀 사람이 살것같지 않은 골짜기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왔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나이가 많은 노인과 어린 사람을 돌려 보내고 아버지와 난 사람들을 두편으로 나누어 나무를 심기로 하고  골짜기로 올랐다.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하던 밭이 많아 깊은 산골임에도 제법 평평한곳이 많았고 나무를 심기에도 비교적 용이했다.

당시 시골 아가씨들은 머리를 길게 땋았는데 그날도 보니 머리를 길게 땋은 아가씨들이 여러명 있었다.

옷차림도 남루했고 세상과 등지고 사는경우가 많아서 물정에도 어두웠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나오다니....

그들에게 돈이 필요 할까?

어린 나의 마음에도 의구심이 들었다.

 

처음부터 옷차림이 눈에 띄는 아가씨가 있었다.
난 일을 하면서 흘끔흘끔 그 아가씨를 쳐다보게 되었는데 그런 느낌을 눈치 챘는지 그 아가씨는 되도록이면 나와 멀리 떨어져 있으려 했다.

일을 하러 나온 복장이 아니라 야외에 소풍을 나온듯한 모습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핑크빛 상의에다 검은 모자에 목에는 붉은 머플러까지 매고 있었다.

그녀의 옷차림은 허름한 주변의 사람들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어서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웃음이 나왔지만 자석에 끌리듯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나오지도 않는 헛기침을 했다.
그녀와 마주치기를 바랬지만 그녀는 땅을 내려다 보고 나무만 심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무 심는데 영 서툴렀다
화전을 일구던 밭은 나무심기가 비교적 쉬워서 긴 줄을 치고 마치 논에 모내기 하듯 심어 나갔는데 그녀가 미처 심기도전에 다른사람들은 다 심고 일어났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서 있는 동안에 빨리 심느라 애를 썼지만 너무 서툴러 보였다.
보다못해 내가 줄을 잡겠다고 나섰다.
그리곤 그녀가 심을때 까지 다른사람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앉아서 기다렸다.
"아따, 감독양반.. 뭐하는거더래유? 일을 할기유 말기유."
그러는 내가 이상 했는지 몇몇은 얄궂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쉬어 가면서 천천히 하세요"

"웬일이래?.."

 

사람들은 양쪽을 번갈아 보면서 수근 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일이 힘이 드는지 연신 땀을 닦았다.
그녀만 부르기 뭐해서 아주머니 한 분과 그녀에게 묘목을 날라 달라고 딴일을 시켰다.
아줌마들이 입을 내밀었다.

그녀는 이런일을 전혀 해보지 않은 듯 했다. 

괜한 조바심이 났다.

 

점심시간에 모두들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갔다.
4월이라곤 하지만 산골의 봄은 안심찮아서 땅을파면 얼음덩이가 쑥쑥 빠져 나왔다.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난 그녀가 있는곳을 자꾸만 힐끔거렸다.
멋적게 주뼛 거리다가 일행과 떨어져 혼자 도시락을 먹고있는 그녀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몇번을 망설이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건넸다.
"왜 혼자서 점심을 드세요?."
하지만 그녀는 한번 나를 바라다 보았을 뿐 아무런 대꾸도 없이 먹던 도시락을 얼른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나는 너무 민망하고 겸연쩍어서 도망치듯 산위로 올라왔다.

오후 시간에도 난 그녀를 따로 불러 좀 쉬운일을 시켰다.

쉬운 일이래야 인부들이 심을 나무를 날라 준다거나 물 을 떠오는 등의 심부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불편하다면서 그냥 나무만 심겠다고 했다.

주변의 눈치를 보는 듯 하여 걱정하지 말라고 일렀는데 그 말을 하면서 난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주머니들이 입을 삐쭉 거리며 불만을 나타냈다. 

 
일을 끝내고 하산 할 무렵 임금을 주기위해 이름을 적었다
그녀의 이름이 궁금하고 가까이서 보려고 두리번 거렸지만 그녀는 없었다.
"저...구두신고 일하던 아가씨는..어디 갔나요?"
힐끔 나를보던 한 아주머니가 뭐가 우스운지 낄낄대며 내 등을 툭 쳤다.
"아, 정림이.. 바쁘다고 먼저 갔걸랑요.대신 적어 달래든데."
..............
난 노트에 O정림이라고 정성스레 적었다.

 

다음날 약한 보슬비가 내렸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산으로 올랐는데 생각외로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아버지는 볼일이 있어 어디를 다녀와야 되니 오늘은 매형하고 둘이서 일을 시키라고 하셨다.

이거 큰일났네.

그녀도 왔을까..

혹시나 하여 슬쩍 살펴보니 그녀가 나와 있었다.

옷차림도 달라져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창이 넓은 모자를 쓰고 청색 스웨터를 걸친 그녀는 역시나 어제처럼 많은 사람들 틈에 확연히 구분이 갔다.

난 짐짓 모르는체 하며 사람들을 불러모아 작업 지시를 했다.

사람이 50 여명이 넘다보니 통솔 하는데도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10 여명씩 조를 짜서 골골마다 배치를 했다.

10명당 조장을 뽑아 세우고 그에게 책임을 주었다.

산골 사람들은 꾀를 부릴줄 몰라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일을 잘 했다.

다행이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해가 났다.

그녀를 따로 불렀다.

그녀는 자기 혼자 따로 남는걸 그리 반가워 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간식을 만들어야 한다며 예정에도 없는 일을 만들었다.

아저씨 한분에게 내가 묵고 있는 집에 내려가 국수와 김치, 그리고 그릇을 많이 가져 오라고 시켰다.

"뭔 일이여..전노리(참)를 다 준데고.."

현장 아래 다 찌그러져 가는 화전민 농가가 한 채 있었는데 그곳에 가서 커다란 솥 을 빌려 왔다.

그리곤 개울가에 돌을 이리저리 얽어서 솥을 걸었다.

그녀는 물끄러미 내가 하는일을 지켜 보았다.

"저기요...아저씨가 국수 가지고 오면요..여기에 삶으면 되거든요."

난 엉뚱한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이런거 안해봐서 잘 모르는데,,"

그녀가 짧게 말했다.

"다른 아주머니 같이 하라고 할께요. 걱정 마세요"

거의 사정을 하다시피 그녀를 솥 앞에 앉혔다.

하지만 그녀는 불을 잘 지피지 못했고 보다못해 내가 달겨들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불을 땠다.

심부름 시킨 아저씨가 지게에 지고 온 국수를 삶아 개울물에 행구어 바구니에 건져 담았다.

그녀는 열심히 했지만 이것 역시 영 서툴렀다.

따로 부른 아주머니가 솜씨좋게 척척 해내는 바람에 안심이 됐다.

그러는 동안에 반나절이 되었다. 골짜기에 올라간 사람들을 소리쳐 부르고 개울가 바위에 국수그릇을 죽 올려 놓았다.

"웬 일이래..국수를 다 주고.."

"특별히 오늘만 드리는겁니다.맨날 주는거 아니예요"

국수 한그릇에 신 김치가 전부였지만 모두들 낄낄 대면서 잘도 먹었다.

매형이 나를 부르더니

"아니..국수 준다는 말은 안 했잖어..아버지 한테 혼나면 어쩌려고 그래."

"걱정 마세요. 그래야 일도 잘 하잖아요.대신 아버지 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처남..저 아가씨 때문에 그래?"

"아니..뭐 그런거는 아니구요."

담배를 피워 문 매형은 나를 보며 피시식 웃었다.

사람들이 다시 일하러 간 뒤 난 그녀와 둘이서 먹은 그릇을 닦아서 정리 했다.

그녀가 옆에 있다는 생각에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다.

일을 하면서 몇 번 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별 말이 없었다.

그녀의 동작 하나 하나가 부드럽고 신비하게 비쳐져 왔다.

힐끔거리며 자꾸만 쳐다보자 그녀는 다른쪽을 보면서 말했다.

"내일부터 이런일 시키지 마세요,  다른 사람도 있고..."

난 갑자기 대꾸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왜 자꾸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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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끝내고 하산 할 무렵 조장을 시킨 아주머니 한분이  내게 오더니 불만을 털어 놓았다.

"저기..이런말 안 하려고 했는디유.."

"뭔데요?"

" 정림이라는 아가씨 말인데유. 아무래도 일에서 좀 뺐으면 좋겠어유."

"아니, 왜요?"

난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놀라는 내가 보기에 좀 그랬는지 주춤거리더니

"일 하는게 옆 사람하고 너무 안맞아서 사람들 불평이 많아유.

영 줄도 안맞고..."

"그래서 어쩌라구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니까 안 나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뜻은 아니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니..일 시키는 감독이 아무소리 안 하는데 인부들이 왜 그래요?

그냥 자기일만 하면 되는거지..도데체 누가 그래요?"

갑작스런 큰 소리에 놀란 아주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왜 소리는 지르세유. 난 상의를 한거 뿐인데.."

"그냥 가만히 계세요. 제가 알아서 할께요."

그 아주머니는 불만스러운 얼굴을 비추고는 휑하니 산을 내려갔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그냥 국수 삶는거나 시킬걸.

나에게 말을 건넨 조장 아주머니도 며칠간 일을 나오지 않았다.

며칠만에 일을 나온 그 아주머니를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봤지만 아는게 별로 없었다.

자꾸만 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봄을 알리는 이름모를 산새가 울고  산골짝 여기 저기에 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턱을 괴고 산 아래만 내려다 보았다.

인부들은 처음엔 그러는 나를 이상하게 보더니 나중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조장을 하던 아주머니는 나를 보면 슬슬 피해 다녔다.

나 대신 나이 든 아저씨를 시켜서 대신 감독일을 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만 집으로 올라 가라고 했다.

내가 하는 행동이 몸이 좋지 않아 그러는걸로 아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을 떠나오기 싫었다.

그녀가 내일 아침이면 일터로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봄비가 내렸다.
산골의 봄은 야속하기만 해서 밤만 되면 도로 겨울이 되었다.
별 하는일도 없이 산에 올라 그녀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입안이 깔깔하여 밥맛이 없어져 갔다.
노트에 적힌 그녀의 이름을 멍하니 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내린 봄비로 골짜기 물이 제법 불었다.

눈이 볼록해진 산버들이 연한 녹색을 띠었다.

나는 그것이 예뻐서 자꾸만 꺾었다.

흐르는 산골물에 버들을 담그고 바위에 드러누어 하늘을 보았다.

일하는 사람들이 저런 사람이 무슨 사람을 부리냐며 놀렸다.

하지만 산골 사람들은 순박하여 일 끝날 쯤 이면 산더덕을 한보따리씩이나 캐서 가져 가라고 주었다.

더덕이 흔하던 시절이라 굵은놈 몇개만 빼고는 모두 개울가에 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보물을 버렸던 것이다.

동네 아주머니 몇사람에게 또다시 그녀에 관해 물었다.

아주머니들은 그건 왜 묻느냐며 킥킥 댔다.

 

일을 마치고 하산 하다가 산아래 개울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를 보는 순간 심장이 요동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주춤 거리다 나도 모르게 그리로 달려갔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간 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그녀는 얇은 치마에 분홍색 스웨터를 걸치고 머리에 여러개의 핀을 꽂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주변의 경관과 묘 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는 떨고 있었다.

"저기...돈을 받으려면 나오셔야지, 왜 안나오세요?"
............................

웃는건지 화가 난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그녀는 별 관심이 없다는듯 들고있던 신발을 개울물에 씻었다.

그녀는 내를 건너며 짧게 말했다.
"안주셔도 돼요."

"그러시면 안되는데... 저기,,여보세요"

 
산 위로 올라가는 그녀를 보면서 난 머리를 쥐어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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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여 그녀와 만났던 개울가로 여러번을 나갔다.

틀림없이 그자리에 다시 올거라고 혼자 주문을 외웠다.

개울가에 앉아 한나절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곳에 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식사도 거른채 밤이 늦도록 앉아 무언가를 중얼 거렸다.

지금 생각하니 구구단도 외우고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 가사나 싯귀를 중얼 거린것 같다.

주인 아주머니가 아침상을 차려오면 서 너 숟가락을 뜨고 상을 물렸는데 주인 아주머니는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원,,젊은놈이 그렇게 깨작거려서야 사내 구실을 하겠나..쯧.."

아버지가 마당에서 놓아 기른 장탉을 잡아서 배안에 한약재를 넣어 푹 고은걸 내어 주셨다.

"이거 총각 아버지가 시켜서 한거유. 뜯어 봐. 맛이 괜찮을테니."

국물 몇숟가락과  한 두 고깃점을 뜯은 나는 슬그머니 상을 내밀었다. 

상을 들고 나가던 아주머니가 내가 못 들을걸로 알았는지 심술 사납게 말했다.

"무슨놈의 화상이 닭괘기를 싫대..

호강에 겨웠지. 성질이 지랄 맞구먼.."

 

그녀를 다시 본건 오일 장날이었다.
집에 옷가지를 가지러 왔다가 길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갑자기 할말이 없던 나는 불쑥 그녀에게 돈을 내 밀었다.

 

 

 

 

 

의아 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던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다른곳을 바라다 보았다.

얼른 그녀 앞으로가서 또 돈을 내밀었다.
"이거 일한 임금 이예요.받으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내가 건네는 돈을 받아 들더니 그중 얼마를 내밀었다.

"너무 많아요."

내가 받지 않으려 하자 그녀는 돈 을 길 옆 돌맹이 위에 올려 놓았다. 

" 저...부탁이 있는데요. 내일 산으로 일 나오시면 안될까요?"
...................
그녀는 나를 한번 바라다 보았을뿐 아무런 대답도 없이 총총이 시장을 내려갔다.

밝은 봄옷을 입고 걸어가는 그녀는 딴세상 사람이었다.

"안돼...그냥 가면 안되는데.." 

난 멍하니 그자리에서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때 까지 서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난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가슴이 무겁게 요동치고 있었다. 

 
 

 

며칠을 기다려도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산 아래를 내려다 보며 부처 처럼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니 얘야, 너 무슨 근심 있냐?"
아버지는 사람 감독도 잘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는 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는지  그만 집으로 올라 가라고 했다.

"학교도 안 가..일도 안 해..어떻게 하려는건지 모르겠다."

햇볕에 그을린 아버지의 검은 얼굴이 무서웠다. 

그렇게 또 며칠이 흘렀다.

이제 나무를 심을 화전 면적도 줄어들고 잡목이 우거진곳에 제거 작업을 한 후 식목 할 일만 남겨두고 있었다. 

일을 끝내고 하산 할 무렵 한 아주머니가 나를 불러 세웠다.
"감독양반, 정림이라고 아시지? 아, 첫날 나와서 이름도 안적고 간 그 아가씨 말이여. 국수도 삶았잖여"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아가씨가 좀 보쟀단다. 전해줄게 있다면서.

 

그 아주머니를 따라 올라간 골짜기에는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옴직한 지붕낮은 초라한 갈대집이 있었다.
아주머니는 집을 가르키며 중간에 내려갔다.
난 죄를 지은 사람처럼 주춤 거리며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 저... 계세요?"
침묵이 흘렀다.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산위에서 내려왔다.
" 어서 오세요."
낮은 그녀의 목소리에 난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허둥댔다.
"저...전해줄게 있다고 해서.."
그녀는 상기된 나를 웃는 얼굴로 바라다 보았다.

집 주인인듯한 늙스구레한 아저씨가 힐끔거리며 나를 훔쳐 보았다.

좁은 마당과 다 넘어 갈듯한 갈대집은 산 애래로 푹 꺼져 있어서 아늑해 보였지만 조금은 답답해 보였다.

그녀가 내어 놓은 옥수수 뻥튀기를 몇개 주워 먹었지만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다.

 

나를 보고 몇살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몇번 보던 얼굴과는 다르게 좀 야위어 있었다. 

방 한구석에 놓인 작은 라디오와 허름한 책상과 낡은 옷장이 전부인 그녀의 방은 정갈 했다.

난 나이를 속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학교 다니다가 휴학한거 다 안다고.

난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녀를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왜 이런곳에 나무를 심을까..이곳에 오니 사람들이 생각외로 많이 산다는 이런 저런 기억에도 남지 않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내성적이었다.

그녀는 카세트 테잎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인데 가지고 가서 들어 보라며.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들었다.

그녀 머리에서 풍겨오는 무어라 표현 할 수 없는 향기에 난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그녀에게 받은 테이프..                                                                       37년이 흘렀다. 

 

 

 

 

 

 

그 이튿날도 그다음날도 그녀는 일을 나왔다.

올때 마다 옷차림도 달라져 있었다.
난 일찌감치 노트에 그녀의 이름을 적고는 그녀를 다른 골짜기로 데려갔다.
화전밭에서 냉이며 달래를 캤다.
눈치로 가져온 묘목은 땅에다 모두 묻어 버렸다.
이러면 안되는거 아니냐며 내려 가려는 그녀를 자꾸만 잡았다.
그리곤 냉이와 달래를 캐달라고 졸랐다.
그녀는 정색을 하다가도 그러는 나를 보고 웃어 주었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그녀의 도시락 대신 내가 가져간 도시락으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 지겹던 하루의 해가 너무도 짧았다.
 
해가 뉘엿해서 내려온 나를 아버지는 모른척 하셨다.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수근댔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종일 캐 온 달래와 냉이를 이사람 저사람 나누어 주자 사람들은 키득대며 수근거렸다.
내일도 많이 캐서 주세요 감독총각~ 

 

봄날은 그렇게 흘렀다.
아버지와 일을 같이 했던 사람이 맡긴 것까지 150여 정보나 되는 산도 그럭저럭 일이 끝나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짐을 꾸리고 그동안 일한 임금을 지불해 주었다.
난 할 일도 없는 산에 뒷마무리를 한다는 핑계로 며칠 남겠다고 아버지께 말씀 드렸다.
아버지는 할 일도 없는 산에 뭐하러 있느냐며 말리셨지만 아들이 남으려 하는 이유를 알고 계셨던터라 얼마동안 묵을 비용을 계산해 주시고 올라 가셨다.

혼자 나오라는 말에 망설이던 그녀가 흔쾌히 나와 주었다.

일이 없었지만 난 일을 만들었다.

잘 못 심은 나무를 다시 심고 너무 배게 심은 나무는 솎아 주는등의 간단한 일 을 구실로 그녀를 불러 냈다.

하지만 한 두 시간 흉내만 내고는 냇가에 앉아 자꾸만 쉬자고 했다.

처음엔 일 없으면 돌아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그녀도 체념 하는듯 내가 하자는대로 했다.

할 일이 있을리 없는

 

 

 

산에서 그녀와 나는 또 봄나물을 뜯었다.

 

점심땐 개울가에 마주앉아 긴 시간동안 점심을 먹었다.

산에서 뜯어온 여러 나물을 삶아서 무쳐 먹기도 하고 캐 온 더덕을 까기도 했다. 

그녀는 산나물을 잘 몰랐지만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운 나는 아는게 더러 있었다.

그거 가르쳐 준다며 억지로 산으로 그녀를 끌고 올라갔다.

피어나는 봄꽃을 꺾어 그녀의 머리에 꽃아 주었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정색을 했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나를 보더니 가만히 있었다,

딴전을 보며 미소짓는 그녀는 천사였다.

장발을 하고있는 덥수룩한 내 머리에도 그녀가 꽃을 꽂아 주었다.

그리곤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 주었다.

난 그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봄비가 이틀이나 내렸다.

아침에 그녀를 만나 산에 올랐지만 비가 내려 사람이 살지않는 농가로 들어갔다.

화전밭을 정리 하면서 많은 마찰이 있었는데 아버지와 화전을 일구던 사람들간에 심한 몸싸움이 있었다.

화전 자체가 무단으로 들어와 소유권이 없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것으로 여겼으나 막상 이를 해결하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정착지를 자기 소유라고 우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도 그럴것이 당장 이곳을 떠나면 살길이 막막하기에 그들로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을것으로 보인다.

결국엔 어느정도 보상을 해주는 식으로 해결을 보았지만 이로인해 아버지는 큰 손실을 보았고 결국에는 나무를 심었던 산 일부를 팔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그 중 한 농가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살던집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산불로 이어졌고 상당한 면적이 소실됐다.

불을 지른 사람은 술이 취해 있던터라 화상까지 입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추적이는 봄비가 그치기를 바랐지만 비는 더욱 세차게 내렸다.

농가로 쫒겨 오느라 옷이 많이 젖어서 마른가지를 모아다 불을 피웠다.

언기가 온 집안을 가득 메웠다.

그녀는 웅크리고 앉아서 잠시 바라보더니 기침을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마음이 급해 입으로 후 후 바람을 불어 불을 살리려 애를 썼다.

제법 불이 붙었는데 그녀가 들어오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보니 그녀는 비를 맞으며 산 아래를 내려가고 있었다.

난 급한 마음에 윗옷을 걸치지도 않고 뛰어내려 갔다.

"가지 마요."

소리를 질렀지만 그녀는 못들었는지 그냥 내려갔다.

너무 급하게 달리는 바람에 길가로 쳐박혔다.

어디선가 피가 흘렀다.

숨을 몰아쉬며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가지마요..가지 말라구요."

그녀는 비에 젖은 나를 한참동안이나  바라다 보았다.

"어쩌라구요."

"올라가요.불 피워 놨어요."

"비 많이 와요. 그만 가요."

그녀는 잡은 내손을 뿌리치며 돌아섰다.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요."

난 울다시피 말했다.

" 왜 이러는건데? 거기가서 어쩌겠다구''"

 

그녀와 나는 비를 맞으며 다시 빈 농가로 올라왔다.

내리는 비에 그녀와 나는 흠뻑젖어 있었다.

불 을 더 크게 피우고 마주 앉았다.

하얀 김이 피어 오르고 그녀의 젖은 머리에서도 김이 올랐다.

나는 천정을 자꾸만 바라다 보았다.

기침을 여러번 하던 그녀가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나도 웃었다.

젖은 그녀의 몸은 생각보다 말랐고 비에 젖은 얼굴은 수척해 보였지만 난 그녀의 모습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 집으로 올라 가요.  그리고 학교도 빨리 가고.."

그녀는 나즉하게 말했다.

"그냥 여기서  살면 안될까요?"

그녀는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며 말했다.

"아직 아기야..말하는거 보면.."

그녀에게 다가가 살며시 손을 잡았다.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양손으로 내손을 잡았다.

"내 손이 좋아?"

"좋아요."

"그러면 됐어. 내가 잡아줄께"

그녀는 내곁으로 다가 앉으며 나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좋은 사람 만날거야.아직 공부도 해야하고.."

.............

"그런말 하지 마요"

난 그녀의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에서 아주 좋은 냄새가 났는데 난 그 냄새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빗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무슨노래인지 알수가 없었다.

비가 그칠 기미가 없자 그녀는 나를 잡아 일으켰다.

"우리 손잡고 내려가자."

그녀와 나는  손을 잡고 좁은 산길을 내려왔다.

비가 너무 내려서 산골물도 제법 불어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잡아 준다며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거리가 꽤 멀었지만 내려오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헤여지는 길에서 난 눈물을 보였다.

"집에 가지 말아요."

..................

 

"그냥 우리집으로 가요."

"이러지 마..감기 들겠다."

"그냥 내말대로 해요."

그녀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이 대책 없는 아이야..그럼 엄마한테 혼나..내일 보자. 응?"

그녀는 내손을 꼭 잡아 주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그녀를 보며 난  엄마에게 떼를 쓰는 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아침을 기다렸다.

행여 비라도 내리면 나는 좌불안석 이었다.

지금처럼 연락을 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런날은 초조하게 비 그치기를 기다렸다.

만나기로 한 산위에서 그녀를 보아야 헝클어진 가슴이 진정이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 같아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주로 내가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채 듣기만 했다.
그리곤 지난번 처럼 공부를 계속 해야 되지 않겠냐며 조금은 쓸쓸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러는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허전하게 느껴졌다.
봄날은 정말 짧았다.
헤여질 시간이 되면 난 그녀의 집에 가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그녀는 의외로 냉정해서 뒤도 한 번 안돌아보고 집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녀와 헤여져 돌아 오면서 난 열병을 앓고 있었다.

 

그녀와 같이 강릉을 가 보자고 약속했다.버스를 타려면 두시간은 족히 걸어 나가야 했으므로 아침 일찍 묵고있는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찾아간 산골짝 집에도 그녀는 없었다.  나를 훔쳐보던 아저씨도 보이지 않았다. 
한나절을 기다리다 내려오는 길에 처음 그녀에게 데려다 준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 아주머니는 뜻밖의 말을 했다.
오늘 이른 아침에 전북 어딘가 집으로 아주 내려 간다며 큰 가방 들고 가는 걸 봤다면서. 처음엔 딴 사람인줄 알았는데 먼저 인사를 하더란다. 
그 아주머니에게 매달려 물었지만 자기는 아는게 없단다. 나는 부리나케 그녀가 버스를 탔을곳으로 내달렸다.하지만 그곳은 너무 멀어서 내가 도착 했을떄는 이미 버스도 끊긴 늦은 시간이었다.날이 어두웠지만 나는 다시 그녀가 살던 집으로 내려 갔다.주인 아저씨는 늦은 시간임에도 집에 오지 않았다. 
캄캄한 밤에 동네 여기저기 찾아가 물었지만 몇달전에 이곳에 왔다는것 외에는 다른걸 알아 낼 수는 없었다.

 

그녀가 살던 집으로 다시 찾아가 주인 아저씨에게 매달려 물었지만 먼 친척 뻘 되는데 자기도 어디 사는지는 모른다고 했다.거짓말을 하는 듯 하여 간곡하게 물었지만  그 아저씨는 더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이봐..그 아가씨는 여기 사람이 아니여. 보아하니 나이도 어린 사람이 공부는 안하고 이런곳에 뭐하러 쫒아 다니나?다시는 오지 말게나."
할 수없이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혹시나 하여 집에서 수십리나 떨어진 산골짜기의 그 집을  또 여러번 찾아 갔지만 그녀의 소식은
그때 그것으로 끝이었다."아..이사람아 뭐하러 여긴 자꾸 와?"한 두번 대꾸를 하던 그 아저씨는 이상한 놈 이라며 아예 상대도 해 주지 않았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날들이 늘어갔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지만 난 더 이상하게 되어 있었다.
몸은 몰라보게 수척 되었고 하루종일 말 한 마디 하지않는 날들이 늘어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도데체 왜 그러느냐며 꾸짖으셨지만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복학을 해야 함에도 난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둘 수는 없어서 마음을 다잡고 억지로라도 공부에 매달렸다.
하지만 책을 펴면 그녀의 얼굴이 두겹 세겹으로 포개져 왔다.

밤마다 그녀의 꿈을 꾸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신이 땀에 젖어 있는때가 많았다. 

 

그녀와 같이 점심을 먹던 골짜기를 찾았다.

만추의 낙엽으로 쓸쓸하게 변해 버린 골짜기는 허전해진 내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불러 보았지만 도무지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었다.

며칠을 드러누어 앓았다.

이놈이 왜 이러느냐며 어머니는 밤이 새도록 물수건을 이마에 얹어 주셨다.

그렇게 가버린 그녀를 원망했다.

가끔씩 화가 치밀어 올라 캄캄한 밤에 뒷마당에 나가 수십번 맴을 돌았다.

공부를 하던 노트엔 영어 단어 보다는 그녀의 이름이 더 많이 쓰여져 있었다.

 앞 텃밭에 마늘을  심고 김장독을 땅에 묻고 첫눈이 내렸다.

 

 

 

 

겨울로 접어 들면서 그래도 조금씩 공부를 할수가 있었다.

마침 대학에 들어간 동네 형이 어머니 부탁을 받고 방학동안에 내 공부를 도와 주었다.

시간을 정해 집으로 왔기에 난 하기 싫어도 공부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 형이 돌아가면  방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러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탄식을 하셨다.

밤늦게 집을 나오면 새벽에 집으로 들어가는 횟수가 잦아졌다.

어느날 아버지는 나를 부르더니 호되게 꾸짖으셨다.

그럴거면 다 그만 두라고 불호령을 내렸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내 문제로 자주 다투셨다.

집에 있기가 싫었다.

하지만 이듬해 3월이면 다시 학교로 가야 했기에 마냥 그렇게만 지낼 수는 없었다.

 

 

다음해 1월 말.

그녀의 기억이 조금은 옅어지고 수척했던 몸도 조금은 나아지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의 기억에서 헤여나지 못하고 있었다.

 

 

 

집으로 전보 한통이 날라 들었다.
군산?
군산 모 병원에서 보낸거였다.
정확히 생각이 나진 않지만 급하게 내려 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걸로 기억이 된다.
난 갑작스런 전보에 놀랐고 정확하게 쓰여진 내 이름에 또 놀랐다.
 
얼마를 망설였지만 난 이미 전라도로 내려가는 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보내온 전보 쪽지만 들고 난생 처음으로 가보는 남쪽이었지만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이미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몇번인가 차를 갈아 타고 물어 물어 찾아간 그 병원은 생각과는 달리 시내에서 한참 떨어져 있었다.

군산 OO병원.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가 입원해 있다는 병실을 찾았다.
온갖 상상으로 머리가 어지러운 내앞에 나타난 그녀는 뜻밖에도 얼굴을 잘 알아 볼 수 없을만큼 바짝 야위어 있었다.
난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정말 오랜만에 그녀와 재회 했지만 그녀와 난 아무런 말도 못하고 바라만 보았다.
그녀 옆에는 가족 인듯한 몇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그녀와 나를 멍하니 바라다 보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 인듯한 분이 나를 불렀다.
생각보다 나이 어린 나를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지친 표정이 역력한 그녀의 어머니는 한참동안 나를 바라 보았다.
딸의 부탁으로 연락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내려 올 줄 몰랐다며 내손을 꼭 쥐어주며 눈물을 훔쳤다.
햇살 비치는 창가에 앉아 그녀의 어머니는 나즉하게 말했다.
그녀가 건강이 많이 안 좋았다는 것과,그래서 아는사람 통해서 강원도 깊은 산골짝 먼 친척뻘 되는 집을 찾아 갔다는 이야기, 나보다는 몇살이 위라는거, 지금 사정이 참으로 안좋다는 것과, 그녀의 간곡한 부탁으로 전보를 치게 됐다는것까지...
난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그녀 어머니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게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병실에 돌아온 나에게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모든게 미안하고 이렇게 애쓰게 해서 마음 아프다고.
하지만 정말 보고 싶었단다.
처음엔 동생 같아서 망설였지만 지나고 보니 너무 순진하고 맑아서 좋았다고.
자기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는것 같아서 겁도나고,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되어 연락도 없이 내려 왔노라고.
이런 모습을 보여 주어서 너무 미안하다며 그녀는 또 눈물을 보였다.
내가 내려올줄 알았단다.

병상에 누운 그녀는 산속에서 만난 그녀가 아니었다.

체구는 무척 작아져 있었고 손목과 발목도 가늘어져 있었다.

향기 풍기던 머리도 숱이 많이 줄어 있었다.

헐렁하게 걸쳐입은 환자복은 너무 커서 마치 어른옷을 아이에게 입혀 놓은것 같았다.

창가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내 가슴은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내가 심은 나무 잘 커?"

"그럼요..잘 커요."

"학교는 갔어?"

"이제 가려구요. 3월에요."

"그래...가야지.."

"저..말없이 떠나고 난 뒤그곳에 여러번 갔었어요.

아마 지금쯤 눈이 많이 쌓였을걸요,"

"거긴 뭐하러 갔어."

"그냥요...돌아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어?"

"아무 말도 없이 갔잖아요"

"그럴려고도 했어. 가고 싶었어."

 

그녀가 천장을 멍하니 쳐다 보았다.

그녀의 눈은 촛점이 없어 보였다.

침대에 걸쳐 앉으며 물었다.

" 그런데 그  친척 아져씨는 내가 그렇게 물었는데 왜 알려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그러라고 했어"

"정말 많이 물어 봤는데."

..........

"카세트 테잎은 들어 봤어?"

"네..지금도 집에 있어요."

"그런 노래 좋아해?"

"그냥요."

"별로였나 보네."

"아니예요.내가 좋아하는 노래 많았어요."

"여기 오는데 힘 안들었어?"

"아니..조금도 힘 안들었어요."

"나 밉지?"

"아니예요.정말 보고 싶었어요.

그런말 하지 마요. 얼른 나으세요"

 

 그녀와 나는 낮은 목소리로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가끔 기침을 했고 숨이 차 보였다.

그러는 그녀를 보면서 난 알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별 말이 없이 우리들을 바라다 보았다.

식사시간에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저..우리 정림이는 어떻게 알게 됐어요?"

"나무 심다가 ..일하러 나왔더라구요."

"우리애가 일을?"

"네, 산에다 나무를 심었거든요."

"학생 같은데 무슨 나무를?"

"아버지가 하시는거 도와 드렸어요."

"학교는 안다녀요?"

"3월에 다시 가야해요."

그녀의 어머니는 나를 한참동안이나 바라다 보셨다.

그리곤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지가..무슨일을 해 봤다고..

그래, 얼마간이나 일을 했어요?"

"예, 꽤 많이 했는데..."

 

"많이 안했어. 힘도 안들고.."

언제 왔는지 그녀가 말을 가로 막았다.

"무슨 그런걸 물어봐 엄마는.."

그녀의 어머니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하지? 그런거 물어봐서."

"아니예요.별것도 아닌데요 뭐."

그녀는 웃는 얼굴로 창밖을 보며 말했다.

"괜히 연락을 한거 같아.."

 

간호사가 들어왔다.

그녀가 오늘은 약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시면 안돼요."

그냥 두고 가라고 그녀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자 간호사는 나와 그녀를 번갈아 훑어 보고는 달갑지 않은 얼굴을 하고 나갔다.

잠시 뒤 그녀의 오빠가 들어와서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조금 큰소리가 나서 문틈으로 살며시 밖을 내다 보았는데  그녀는 창가에 기대어 섰고 그녀 오빠는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듯 보였다.

그녀가 그녀 오빠를 밀쳐내는 장면을 본 나는 겁이 더럭 났다.

왜 저러지?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난 그자리에서 꼼짝 할 수가 없었다.

한참뒤 그녀가 내가 있는 곳으로 들어왔지만 그녀는 말없이 창가만 바라다 보았다.

"힘들어요?"

"아니야..이곳 생활이 이젠 지루해서..놀랬지?"

그녀가 쵸컬릿을 내 밀었다.

그리곤 또 웃어 주었다.

 

그날 저녁 난 그녀의 어머니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갔다.

시내와는 한참 떨어진 농가였다.

희미한 전등불 밑에서 세수를 하고 그녀의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았다.

별다른 살림살이는 보이지 않았고 옛날에 쓰던 뒤주 같은게 방 윗목에 있었다.

"많이 먹어요.

오늘밤은 여기서 자고 내일 일찍 올라가도록 해요."

찬 몇가지와 보리밥 반그릇을 비우고 상을 물렸다.

 

낯선곳에 누운탓인지 밤이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얼마를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햇살이 창가로 훤하게 들어와서 부리나케 일어났다.

남의 집에 와서 늦잠을 자다니..

무안한 생각에 방문을 열고 나갔는데 뜻밖에 그녀가 서 있었다.

"잘 잤어?"

"아니..어떻게 여기를.."

"저기..밥먹고 나랑 갈데가 있는데.."

"어디를요?"

그녀 어머니는 왜 병원을 나왔느냐며 다그쳤다.

그녀는 그러는 어머니를 방으로 들여 보냈다.

그녀와  나는 손을 잡고 마을 신작로로 나왔다.

집앞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우리를 멍하니 바라다 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버스에 올랐다.

내가 살던 곳과 달리 그곳 버스엔 남자 차장이 있었다.

진한 전라도 사투리가 내가 먼곳까지 와 있다는걸 느끼게 했다.

그녀는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마스크를 했는데 차에 오르더니 마스크도 벗고 머리도 풀어 헤쳤다.

"춥지 않아요?"

"아니. 그냥 너 보는데 이렇게 하고 싶었어. 괜찮아 보여?"
"예뻐요.그 때 산에서 나무 심을 때 같아요."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눈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어. 오래만에 행복하네. 고마워."

난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 보았다. 

바다가 나왔다.

"여기가 어디예요?"

"응..조금 더 가면 옥구 미면이 나와."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그녀와 난 두손을 꼭 잡고 있었다.

도착한곳은 소를 키우는 커다란 농장 이었다.

주변에 말린풀을 둥그렇게 말아 놓은것이 보였고 소 우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렸다.

"여기가 어디예요?"

"우리 외삼촌 집이야."

그녀와 내가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녀 외삼촌으로 보이는 사람이 큰소리로 그녀를 맞았다.
"아이구..이게 누구야..아니, 병원에 있을 사람이 어떻게 온거야?"

나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녀와 그녀 삼촌은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 삼촌이 나를 몇번인가  바라다 보았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목장옆에 있는 산책로로 나왔다.

1월이면 참 추운 때였지만 내가 사는 북쪽과는 달리 이곳은 포근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말없이 걸었다.

"이렇게 나와도 돼요?"

"괜찮아 허락 받았어."

하지만 그녀의 걸음걸이는 힘들어 보였다.

불안한 생각에 그녀를 근처 나무 의자에 앉게 했다.

아무도 없는 농장은 쓸쓸했다.

하늘엔 점점이 구름이 흘렀고 바람도 잔잔했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지금 나무 심은곳도 하늘이 좋겠지?"

"그럴걸요.  하지만 눈도 많을거고 엄청 추울거예요."

그녀가 기침을 했다.

"그만 들어가요. 추워 보여요,'
아니..괜찮아. 좋은데 뭐..."

우리는 한참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녀가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가시고기에 대해서 알아?"

"가시고기라는것도 있어요?"

"응..알을낳고 돌보다가 나중에 새끼들한테 자기 몸까지 내어 준대.

요즘 그 고기에 대한 책을 봤어."

"그런 고기가 다 있어요? 그냥 물고긴데?"

"몰라..그냥 그 물고기가 생각나네."

부는 바람에 그녀 머리가 이리저리 날렸는데 머리숱이 너무 적어서 마치 딴사람을 보는 듯 했다.

그녀 삼촌이 우리를 데리러 왔고 그녀는 삼촌이 건네는 커다란 옷을 걸쳐 입었다.

난 도무지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녀 삼촌이 내어 준 차를타고 돌아왔다.

그녀는 오는 내내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그녀 역시 별 말이 없었다.

 

 

 

 

그녀는 이제그만 가라고 등을 밀었다.

하루만 더 있다 가겠노라 몇번이고 말헀지만 이제 그만 돌아 가라고 간곡하게 애원했다.
자신의 이런 모습을 더이상 보이기 싫다면서.
조금 화도 나고 야속스러웠지만 그녀 어머니의 권유에 더 있을 수 가 없었다.
원망과 분노와 쓸쓸함이 뒤범벅이 되어 가슴으로 밀려왔다.

어린 나의 가슴으로는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면 안된다는 중압감이 밀려왔다.

하루만 더 있다가 가겠다고 그녀에게 간곡하게 매달렸다.

하지만 그녀 가족의 만류를 더이상 뿌리칠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녀의 오빠는 화를 내었다.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그녀 어머니는 등을 다독이며 다 낫거든 꼭 연락하겠다며 지금은 말을 들으라고 했다.

 

 

 

 

 

병원을 나섰다.

그녀는 휠체어를 탄채 나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있었다.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손을 잡은 그녀는 바닥만 내려다본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뒤로 돌아서 있었다. 

 
 
 
 
그녀의 손을 놓고 병원을 나섰다.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조금을 걸어 나오다 뒤를 돌아다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자리에 없었다.

대신 그녀의 어머니가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을 가려면 시내 버스를 타야 했지만 난 도로를 그냥 걸었다.

남녁의 겨울은 모질지 않아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지 않아도 되었다.

황량한 들판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었던  병원 건물이 지금도 오버랩 되어 온다. 

 

 

 

 

                                하얀손 정답게 내밀며

                                빨갛게 익은 사과를 건네 주던 그대 

                                       연분홍 빛깔의 가을 열매로

                                            난생 처음 난 그리움을 배웠다.

                                                                                  *시마지키 토오손의 (첫사랑 )중에서

                               

           

 

 

                                    두근거리는 가슴 들킬까봐

                                             애꿎은 손톱만 깨물다가

                                                   그때부터 조금씩 가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 이해인 님의 (첫사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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