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시냇가에 나가 멱 감고 물고기 잡던 기억 한 두가지쯤은 있을것이다.
특별한 도구 없이도 맨손으로 미꾸라지를 잡고 돌멩이를 들추어 가재를 잡았다.
놀이문화가 지금에 비해 턱없이 적었지만 꼬맹이들의 여름해는 짧기만 했다.
들과 산, 시냇가는 동네 꼬맹이들의 훌륭한 놀이터였다.
여름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이 자주 하는게 있었는데 바로 물고기 잡기였다.
당시의 시냇가에는 물고기들이 참 많았다.
동네 꼬맹이들이 몰려 다니며 그렇게 잡았는데도 비 한번 내리고 큰물 한번만 나가면 언제 그랬냐는듯 여전히 물고기들이 많았다.
그중 아이들 몇명만 모이면 하는게 있었는데 바로 돌멩이를 쌓아 작은 보를 만들어 물길을 돌리고 물이 어느정도 빠진 개울쪽에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었다.
얼른 보아서는 물고기가 없는 듯 보였지만 물이 줄어든 개울의 돌멩이를 걷어내고 족대를 대고 훑어내면 손가락만한 미꾸라지, 퉁가리,피라미들이 줄줄이 걸려 들었다.
환호성을 지르며 한참을 몰려 다니면 어느새 주전자나 종다래끼에 그득하니 물고기들이 담겼다.
또 하나는 개울가 근처에 많이 자라는 여뀌라는 식물을 이용하는거였다.
당시 싸이나라고 하는 사용이 금지된 독극물을 몰래 개울가에 풀어서 고기를 잡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는 개울가에 서식하는 물고기와 수생동물들을 몰살 시키는 잔인한 방법이었다.
이 약을 풀면 수 km에 걸쳐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무지했던 농촌 사람들은 물고기들을 건져다가 별 거리낌도 없이 매운탕이나 국을 끓여 먹었다.
독극물에 죽은 물고기가 아무래도 좋을리 없었으니 그 중 일부는 배앓이를 하거나 설사를 하는등 부작용도 심심찮게 뒤따랐다.
단속이 뒤따랐지만 이 독극물을 이용하는 경우는 그 후에도 잦았다.
여뀌를 돌멩이로 찧어 그 즙을 망에 넣어 냇물에 뿌리면 가까운 거리의 물고기들이 비실거리며 떠올랐다.
여뀌가 지닌 강한 독성 탓이었다.
하지만 여뀌의 효과는 단 10m도 가지 못하고 또 비실거리던 물고기도 재빠르게 잡지 않으면 이내 정신을 차리고 도망을 갔다.
자연물을 이용 한것과 사람이 만든 독극물은 이렇게 결과가 달랐다.
군대를 다녀 온 후 한동안 농사를 지었다.
당시 경제개발의 물결을 타고 농촌의 인력이 서서히 빠져 나가는 때여서 농촌에도 젊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반 강제로 맡겨진 새마을 지도자를 하면서 새마을 운동의 상징인 마을안길 넓히기와 시멘트 포장을 여러번 했다.
그중에 장마에 떠내려간 냇가의 제방을 쌓는일을 한적이 있었는데 몇번의 공사를 거치면서 자연적으로 깨닫는게 있었다.
사람 생각대로 물길을 돌리고 나름 많은 계산끝에 쌓은 제방은 그 이듬해 단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홍수에 쓸려내려 갔다.
많은 예산과 노력이 든 마을 제방이 힘없이 쓸려내려가자 동네엔 부실공사 논란이 일었고 동네 이장과 나는 추궁을 당했다.
그 이듬해 다시 제방을 축조했는데 그해 여름, 전과 같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돌렸던 물길은 다시 제자리로 찾아갔고 공들여 쌓은 제방은 동네 사람들 염장을 질렀다.
결국 이장은 쫓겨났다.
제방을 쌓는 과정에서 얼마 되지않는 금품이 오간게 들통이 난 까닭이었다.
난 새마을지도자고 뭐고 다 귀찮았다.
생기는건 아무것도 없고 뒷말만 들으니 동네사람들이 싫어졌다.
그해는 예산 문제로 제방을 쌓지 못하다가 홍수 피해가 커지자 몇년 뒤 다시 축조가 됐는데 그당시 어느 돌쌓는분이 물길을 돌리거나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말고 개울이 흘러 가는대로 , 생긴대로 쌓는게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제방 모양세가 좀 이상해지고 예산이 더 들어 간다는게 걸렸다.
그러나 그것을 제안한 사람이 그방면에 유명한 사람이란걸 안 동네에서는 그사람의 주장대로 해보자고 했다.
그는 있는 그대로에서 공사를 했다.
축조된 제방은 일렬이 아닌 타원형 이었고 물길도 있는 그대로였다.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몰라도 그해 여름 장마에도 제방은 멀쩡했다.
아니, 내가 그곳을 떠나 올때까지도 튼튼하게 동네를 잘 지켜 주었다.
모처럼 물고기를 잡으러 강가에 나갔다.
반듯하게 잘 정비된 강가는 보기에 시원하고 유려했다.
그러나 강바닥엔 돌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강 준설을 하면서 모두 퍼올린 까닭이었다.
돌멩이가 없는 강바닥에 물고기도 사라져 버렸다.
물고기가 없어 진다고 당장 큰일이 나는건 아니다.
그러나 물고기가 살 수 없는 강은 사람 역시도 살아가기 힘들다.
4대강으로 말들이 많다.
보를 많이 만든 까닭에 유속이 느려지고 고인물들이 많아지면서 이에 따르는 부작용도 많아졌다는 언론 보도가 공분을 일으킨다.
정작 4대강 공사를 할때는 아뭇소리 안하고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더니 이제와서 화장실 들어 갈때와 나올때의 태도를 보이는것이다.
그러나 나는 4대강에 대해 무조건 비판을 하거나 딴지를 걸 마음은 없다.
아직 검증된 데이터가 부족하고 세월이 더 흘러서 결과물이 구체적으로 나와봐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와 감정에 치우친 섣부른 행동은 수십조원을 들인 공사비를 생각하면 쉬운 결정이 아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있는 녹조는 전문가나 관계기관의 이해차가 너무도 커서 국민들이 혼동 스럽다.
마음에 걸리는것은 녹조가 4대강 이전엔 이렇게 심하지 않았다는것이다.
일각에서는 4대강 건설로 가뭄이 해소되고 홍수가 잦아 들었다는 주장을 하지만 환경론자들은 그 반대가 됐다고 주장한다.
설령 홍수예방이 되고 가뭄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당장 먹는물에 비상이 걸리고 주변생태계가 변하는 등 피해가 커졌다는 주장이다.
사실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듯 온 강물이 녹색으로 뒤덮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이미 작년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져서 곤역을 치루었는데 올해는 그상황이 더 심해졌다.
유독이 심해진 더위도 한몫을 했겠지만 아무래도 범상치 않은 일이다.
당장 그 강물을 농업용수나 식수로 사용해야 하는 국민들로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더 두고 봐야 겠지만 앞으로도 4대강 문제는 우리들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것 같다.
선진국들 말대로 보를 허물고 다시 옛날처럼 강물이 흐르게 되돌릴건지 그냥 두고 볼건지는 결국 우리들의 숙제가 된 셈이다.
옛 개울가를 보면 개울가 돌멩이들도 자연 그대로 있어서 나름 제역할을 하고 냇가 양 옆으로는 버드나무도 무성하게 자랐다.
버드나무는 시냇물을 정화하고 수생식물이나 물고기들의 서식지 역할을 했다.
알고보니 이 모든게 우연도 아니고 제멋대로도 아닌 하천의 생태적인 밸런스였다.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물줄기는 결국 자기 가고싶은대로 흘러간다.
인위적으로 막고 돌리면 당장은 아니지만 결국은 피해를 남기고 자기 갈길로 가버린다.
수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가뭄과 홍수를 위해 댐을 만들고 해마다 되풀이 되는 홍수와 이에 따르는 범람을 막기위해 제방을 쌓고 인공물을 설치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자연적인것만 소중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개발을 막으면 자연보호의 취지는 살리겠지만 우리들 삶이 고단해 지니 양쪽을 아우르는일이 그리 녹녹치 않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자연에 인위적인 힘을 너무 가하면 보복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개발의 취지는 살리되 최대한 자연모드로 가야한다.
내 작은 경험상 그렇게 생각한다.
물고기가 떠난 강이나 시냇가는 결국 사람도 살 수 없다.
녹조라떼라는 신종어가 전국의 유행어가 될만큼 풍자 된다면 속은 시원할지몰라도 당장 답답해 지는건 사람이다.
일본이 방사능 문제를 쉬쉬 덮고 있다가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지 보면 반면교사가 된다.
상당한 기술확보를 하고 있으리라 믿었던 일본은 방사능 폐수를 청청 태평양으로 무대책으로 쏟아붓고 있다.
입만 열면 자연재해에 관한 한 완벽에 가깝게 준비하고 있다고 큰소리 치던 일본이다.
자연의 불가항력으로 당한 일개 국가의 차후 대응을 보노라면 무책임을 넘어 인류의 재앙 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보다 훨씬 전인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태의 몇십배에 해당되는 방사능 폐기물이 태평양으로 흘러드는걸 세계인들이 눈을 멀거니 뜨고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기네들도 원전이 수없이 있으니 똥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식의 큰소리 칠 입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참으로 관대하다.
한때 세상을 놀라게 했던 체르노빌 사건은 지금에 비하면 양반인 셈이 되었다.
기술 최강국을 자부했던 일본의 엉망진창의 사후 처리를 보면서 차라리 후진국이 인류의 평화를 위해 훨씬 더 공헌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날 이웃국가들에게 끼친 수많은 피해도 사과하지 않는 막가파 일본이 이 엄청난 피해를 무엇으로 보상 할것인가.
저들의 행보를 보노라면 어느 먼 은하계의 별나라에서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들을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무슨놈의 종족이 저모양인가.
바로 이웃나라인 우리의 형편도 사실 큰소리 칠 입장만은 아니다.
당장 우리도 원전이 아니면 전기에너지를 지금처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을 향해 혈압을 올리지만 일본의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받지 못하면 우리라고 저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느긋한 입장이다
일본 수산물 수입의 규모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가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보면 먹고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라는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니라는걸 느끼게 된다.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을 과대평가해서 군중심리로 불안해 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천하태평이어도 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결국 전기적 에너지를 편하게 사용하려고 만든 원자력 발전소가 편하게 살아 온 생활의 근거지를 하루 아침에 말아먹고, 향 후 후손들의 삶의 기반 마저 송두리채 앗아가고 있다.
전 대통령이 4대강 공사를 그렇게 하고 싶었으면 강 하나만 우선 실시해 보고, 향 후 그 추이를 보아 가면서 예산을 투입 했더라면 이렇게 걱정이 많지는 않았을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반대를 했고, 그로인해 대운하는 포기 했지만 결국 정치인들의 이해득실과 담합으로 수십조원을 쏟아붓는 공사를 강행 했는데 이제와서 싸우면 뭘 어쩌자는건가.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아무데도 없고 서로 네 탓 공방이다.
이왕 건설 된것이니 미비점을 보완해 가면서 최대한 이익을 도출하도록 지혜를 모아야지 서로 혈압이나 올리면서 눈을 부라려 봐야 당장 결과물이 나오는것도 아니다.
굳이 아쉬운게 있다면 물길은 흘러가는대로 두고 보완 작업만 했었더라면 하는 경험상의 아쉬움이다.
어찌됐든 녹조를 없애는 연구를 해야 물고기가 살든 우리들이 마시는 식수 문제가 해결이 되든 당장의 숙제를 풀 수 있다.
정권만 막을 내리면 줄줄이 알사탕으로 쏟아지는 각종 비리에 정말 신물이 난다.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지금 내려 왔으면 어메야 날 살려라 도망을 갔을게다.
봉이야, 제발 강물 좀 어디다 팔아먹고 새걸로 바꿔 줘.
- pathfinder
- 2013.08.25 23:17 신고
- 수정/삭제 답글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날들 되세요
예전 어릴 때 어머니는 고추장을 빨갛게 풀어서 매운탕을 끓여주셨는데
지금 생각해도 입안에 군침이 돕니다.
요즘 정선에서는 물고기는 그때보다 훨씬 더 큰 놈들이 잡히는데
맛에 있어서는 두세번에 한번 성공이 고작입니다.
내 입맛이 변했나?
- 청청수 -
여기는 영향권 밖이라 상관없는 일이지만 당장 식수 문제가 걸려있지요.
우리동네 새마을지도자로 있네요.
할 일도 없고 따라서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왜 있는가 의문이 들지요.
이장을 하기 위한 예행연습 정도라고 할까요.
개발론자들은 예산이 자기돈이 아니니 파헤칠 곳만 있으면 파헤치려 하지요.
나이든 분들은 파헤치면 무조건 좋은 줄 아니 반대의견은 소수의견이 되고 말죠.
한번 파헤치면 원상복구가 안되고 영원히 파괴되니 큰 문제입니다.
농촌에 젊은 사람이 많이 없으니 새마을 지도자나 이장도 어떤 동네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 합니다.
전에는 새마을 지도자가 할일이 참 많았지요.
주로 길을 닦거나 도로포장등을 많이 했어요.
전 개울의 제방공사도 여러번 했습니다.
수자원 확보와 홍수와 가뭄을 예방 한다는 취지아래 엄청난 예산을 들여 공사를 하긴 했는데..
예상외의 문제점들이 자꾸만 드러 나는군요.
어치피 돈은 들어갔고 일도 벌려 놨으니 효과적으로 사용을 하는 방안을 연구 하거나 아니면 원상 복구를 하던가 해야 되는데..
것 참..
긁어서 부스럼을 낸건지 답답하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군요.
여기저기 뇌물 먹은 놈들만 걸려드는것 같고..
정작 공사를 지시한 사람은 달다쓰다 말한마디 없고,
사람이야 처벌하면 된다지만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손해가 덜 날지 싸우지만 말고 머리를 맞대야지요.
동네에서 할 일은 공사 신청하는 것 정도입니다.
동네에서 자체 공사로 하면 오히려 부실공사가 될 가능성이 많지요.
시멘트 남겨 먹기 같은 것으로 부실한 콘크리트가 되어 수명이 짧아집니다.
지도자로서 하는 유일한 일이 하나 있네요 ㅎㅎ
동네 자체 상수도 검침과 요금계산하여 프린트 하는 것이지요.
이장 소관이라 안해도 상관없는데 컴퓨터를 아니 자원봉사 개념으로 돕습니다.
현재 동네에서 동네 일에 나설 만한 사람으로서는 제가 가장 젊은 사람입니다.
바로 위는 60대 후반이죠 .
사진의 강물 같은 것이 고향에 흐른다는 것은 4대강과 상관없이 축복이죠.
먹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아본다는 재미가 상당하지요.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내손으로 직접 잡은 것이 아니면 바다생선은 원산지를 알 수 없어
혹시 일본수입산 아닌가 겁이 나지요.
횟감용 활어도 일본에서 많이 수입할 정도이니 조심해서 먹어야 하지요.
인간의 욕심과 억지가 더해 지면 자연은 역정을 내기 마련이지요.
사대강, 이나라에 엄청난 재앙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릴적 추수 끝나고 듬붕물 퍼내고 굵디굵은 미꾸라지 한 소쿠리 잡아서
호박잎 넣고 긇여먹던 오리지날 추어탕 생각이 납니다.
한편의 수필 잘 읽었습니다.
이가을 운치를 안고 마냥 즐거우시기를 바랍니다.
육이오때 잠시 피난처였던 시골의 시냇물도 생각하고
그 시내에서 고기잡던 오래비들까지 추억합니다
그대로 그대로 놓아두면
자연은 스스로 치유할텐데
인간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으니
끄니꺼리 곡식과 채소들이 엄청 많이 필요할 터
예전처럼의 농사로는 모자라겠지요
이해하면서도 자연은 자연대로가 정답인거 같아 씁쓸합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오늘입니다
생각하시는 대로 척척 이루어지시길요 ....^^
- ★ 미다스 kan7ry
- 2013.09.29 19:38 신고
- 수정/삭제 답글
저도 물퍼내고, 붕어와 미꾸라지.. ..ㅎㅎ
저도 촌놈입니다.
글이 마음에 콕콕 박힙니다.
개울가 물길을 돌려놓고 고기 잡던 그 시절이 그립네요.
그때 그 친구들 보고 싶습니다...
4대강 하면 온국민이 한숨부터 나올거예요..ㅠㅠ
모든 데이터를 조작하면서까지 강행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모든 개발사업에 후손에게 물려줄 환경에 대한
환경평가만 이라도 정직하게 했으면 이렇지는 않았을수도 있었을텐데요..
정말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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