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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연애편지

by *열무김치 2013. 2. 16.

 

 

 

 

 

 

 

 

셋째 누님은 동네에서 인기가 많았다.

서울에서 남의 집 봉제일을 하다가 건강이 좋지못해 시골 집으로 내려와 1년정도 있었는데 그동안 누님에게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농촌에 젊은이들을 만나보기 어렵지만 1966년도 당시 동네엔 나이가 찬 처녀 총각들이 정말 많았다.

기껏 초등학교를 나오는 정도였고 어쩌다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거나 서울로 유학을 가는 사람은 그야말로 동네에 한 명 있을까 말까였다.

우리집 역시 거시기가 찢어질 정도로 가난했으니 형제들이 많아도 국민학교를 나오는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째누나는 서울로 가 늦나이에 돈을 벌어가며 중학교를 다녔고 야간고등학교 과정을 다니다 너무 힘이들어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래도 서울서 상당기간 지내다 와서인지 세째누나는 세련되어 보였고 아는것도 많아서 난 둘째 누나보다는 세째 누나를 더 따라 다녔다.

마을 윗쪽에 엉성한 교회당이 있었고 난 일요일이면 주일학교에 나갔는데 그곳 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일학교 남자 선생님이 누나를 좋아했다.

난 과자를 들려주는 그 선생님의 의도도 모르고  가만히 쥐어주는 쪽지를 누나에게 여러번 전했다.

십자 모양의 쪽지만 전해주면 과자와 돈을 주니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해 주라는 쪽지가 내 실수로 아버지 어머니께 들키면서 몽둥이 찜질과 더불어 막을 내렸는데 그 후로도 여러번 나에게 편지를 주었던 교회 선생님은 아가씨 손목도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채 이사를 가버렸다.

모르지..나몰래 손목도 여러번 잡고 뽀뽀도 했는지.

용감하게 우리집으로 쳐들어 왔던 그는 아버지께 혼찌검이 났다.

난 아버지의 불같은 모습을 처음보았다.

지게작대기를 든 아버지의 불호령에 교회학교 선생님은 물론 누나도 삼삽육개 줄행랑을 놓았다.

그바람에 애꿎은 나도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후로 누님들은 꼼짝도 못하고 집에 갇혔다.

하지만 젊은 청춘들이 그런다고 수그러 들리가 있을까.

동네 총각들의 들쑤석거림은 여전했다.

뒷집에 석기 라는 총각이 살고 있었다.

그의 아래동생 현기는 나와 서너살 차이가 났지만 나와 잘 어울려 다녔다.

창순이네 집에도 와서 밥도 같이 먹고, 산에 나무도 하러 가고  소 꼴 도 베러 갔다.

하지만 형수가 보통 사람이 아니어서 시동생인 그 형제들은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다.

산에 나무를 하러가면 현기는 울기도 하고 집에 가기 싫다면서 자기랑 함께 도망을 가자고 했다.

현기는 초등학교를 다니다 그만두었는데 허구한날 나무를 하거나 꼴을 베러 다녔다.

현기보다 한참 위 인 석기형은 키가 작은데다 얼굴이 가무잡잡하여 어린내가 보아도 볼품이 없었다.

늘 말이 없었고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려 다니지도 않았다.

가끔 현기네 집에서 싸우는듯한 큰소리가 나고 현기가 울면서 나한테 오는날이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런 걸 이해할 수 없었다.

현기랑 어울려 놀때면 석기형이 나에게 누나에 대해 물었다.

몇 살이냐, 어디에 있다가 왔냐 등등.

어느날 석기형이 나에게 작은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먹을 건 아니었고 종이로 만든 작은 상자를 누나에게 전해 주라고 했다.

난 전에도 이런일을 하다가 아버지께 두들겨 맞은적이 있는터라 싫다고 했다.

몇 번 내 눈치를 보던 석기형은 더이상 부탁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현기가 그 상자를 가지고 와서 세째 누나에게 갖다 준다면서 누나가 집에 있는지 물었다.

"그게 뭔데?"

"나두 몰러."

우리집 뒷쪽으로 허름한 돌담이 있었는데 현기는 돌담을 넘어 몰래 들어갔다.

내가 누나가 있는 방문을 두들겨 누나를 불러냈다.

"이거...석기형이 주랬어."

"야..너, 아버지 알면 죽을라고 그래?  빨랑  가."

누나는 작은 상자를 받아들기 바쁘게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난 작은 상자가 너무도 궁금했다.

저녁을 먹기 바쁘게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아까 그게 뭐야? 먹을거 들었지."

"암것두 아니야."

"좀 갈켜 줘."

"쬐끄만게...너, 앞으로 이런거 받아오지 마."

 

1년여를 집에있던 세째누나는 다시 서울로 간다고 했다.

건강도 좋아졌고 시골에 있는게 지긋지긋 하다면서.

하지만 아버지는 다 큰 처녀가 서울은 뭐하러 가냐면서 가만히 집에 있다가 시집이나 가라고 나무라셨다.

석기형은 그 뒤로도 나만 보면 이거저거 물어보고 몇번인가 무언가를 적은 쪽지를 주었지만 난 혼이 날까봐 싫다고 했다.

누나가 서울로 간다고 하자 석기형은 종이쪽지를 쥐어 주면서 이번만 꼭 전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할수없이 누나에게 쪽지를 전했는데 누나는 전처럼 나를 다그치지 않았다.

늦은 밤  오줌이 마려워 뒷뜰에 나왔는데 누군가 시커먼 사람이 우리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놀라 자세히 보니 석기형이었다.
석기형은 나에게 오더니 내 입을 막으며 귀에다 속삭였다.

"누나가 모래 간다는데 정말이니?"

"네, 간다는데 언제 가는지는 몰라요. 근데 왜요?"

"저기, 내가 여기 왔었다는 말 하지 마."

하지만 난 아침밥을 먹으면서 누나에게 일러 바쳤다.

밤  늦게 석기형이 여기에 와서 누나 언제 가는지 물었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는데 아버지가 들으셨는지 또 큰소리가 났다.

" 아니, 그놈이 서울로 가는건 어떻게 알어?

서울로 가건 말건 무슨 상관이여?"

누나는 내 귀밑머리를 쥐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내가 너 때문에 집에 못있겠다.이놈아.."

 

기어이 서울로 간다며 누나가 보따리를 챙겼다.

아버지는 그럴거면 다시는 집으로 들어오지 말라며 역정을 내셨다.

어머니가 달랬지만 누나는 시골집이 싫고 여기 있으면 다시 병이 날거 같다면서 울었다.

"아버지가 차비도 안준다는데 뭔 돈으로 서울가서 살래?"

누나는 있던데로 가면 된다면서 걱정 말라고 했다.

돈도 좀 있다고 했다.

 

누나가 서울로 가기 전날 밤 현기가 찾아왔다.

현기는 자루를 들고 왔는데 자기랑 어디를 같이 가자고 했다.

"그게 뭔데?"

"와 보면 알아."

현기를 따라 간곳은 곡식 장사를 하는 인순이네였다.

현기는 자루에 담긴 보리쌀을 인순이네 아버지한테 팔았다.

"그거 어디서 난거야? 훔친거야?"

현기는 보리쌀을 판 돈과 예쁘게 접은 쪽지를 내손에 쥐어 주었다.

"이거...석기형이 누나한테 꼭 전해주래. 아버지 한테 들키지 말고."

꺼림칙 했지만 돈과 쪽지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아침에 부산한 분위기라 돈과 쪽지를 몰래 전해주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왕 가는거 몸조심 하고 힘들면 내려 오라면서 왠일인지 손까지 잡아 주셨다.

어머니는 헐쯤한 보따리에 이것저것 싸서 내손에 들렸다.

"이거 버스 타는데 까지 들어다 줘라."

"저 학교 가야하는데.."

"아, 이놈아 빨리 갔다와서 가."

 

누나와 난 십리길을 걸어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로 갔다.

마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강릉이나 평창에서 서울을 가려면 이길 밖에 없었다.

누나에게 현기가 건네 준 돈과 쪽지를 주면서 어젯밤 이야기를 했다.

그것을 받아든 누나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먼지를 일으키며 완행 버스가 왔고 누나는 서울로 갔다.

 

 

 

 

                                                            *잠시 한국에 나왔을때 누나와 함께 서울 덕수궁에서.

 

지금은 경기도 평택에 살고있는 누나가 명절이고 하여 집에 들렀다.

세째 누나는 오랜간 외국에서 살았고 한국에 나온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 석기라는 사람 지금 어디 사는지 혹시 아니?"

"지금은 모르지만 현기의 연락처를 아니까 찾는건 어렵지 않지. 왜?"

"응..신세를 졌어. 내가 진작에 연락을 해 봤어야 하는데."

"무슨?"

 

누나가 서울로 갈때 보리쌀 판 돈과 같이 전해 준 쪽지엔 누나를 좋아 한다는 말과 올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글이 쓰여 있었단다.

차비에 보태라고 준 보리쌀 판 돈이 적은 돈이었지만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위안도 되고 마음의 짐도 되고 그랬다면서.

서울로 간 누나는 그 뒤로 집으로 오지 않았고 내가 중학교를 갈 무렵 미국으로 가버렸다.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온 가족 다시 한국으로 온지 몇해가 지났다.

" 미안하지 않아? 그렇게 신세를 졌는데..

순진한 총각의 마음을 몰라 줬잖아."

"마음에 걸렸지. 나같은 사람을 좋아해 주고 그렇게 신경을 써 주었는데.

근데..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어.

네가 찾아 봐 주었으면 좋겠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

"이제 만나서 뭐 하려고?

뭐..감동의 상봉이라도 할려고?"

 

몇번의 연락끝에 석기형이 사는곳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아내와 사별한지 오래 되었고 건강이 몹시 좋지않다고 했다.

지금 어떻게 해야하나 망설이고 있다.

오래전 전해준 작은 종이상자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누님을 만나면 다시 물어 볼 참이다.

 

 

 

 

 

 

 

 

누님이 미인이라서
동네총각들이 많이 설렜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전 일을 자세히도 기억을 하시네요
세째누나, 정말 미인이시네요~
동네 총각들 설레었을 마음이 보여요
콩닥콩닥 ^^
♣옥시젠 산소발생기:현대인들은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정말 열무님누님 보통미인이 아니십니다..
누가봐도 한눈에 반하겠는데요~~
그러구보니 열무님도 누님과 많이 닮으셨어요..ㅎ
열무김치님에게는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 하네요.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지만 전개를 너무 잘 하셔요.

머지않아 내가 수필집을 읽을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아버지, 고모 인물들이 너무 좋아서
아드님과 따님의 모습이 보고싶습니다.

참 어려운 집에서 검사, 교수가 났으니 할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할머님이 감히 생각이나 하셨겠어요?
열무김치님이 아이들을 잘 기르셨습니다.
어릴 때의 경험담이 또 하나의 단편소설이 되었네요.
어릴 때 일을 기억도 잘 하시고 정리를 잘 해서
재미있게도 쓰셨네요.
세째 누님의 빼어난 미모에 많은 총각들이 속앓이를 했겠어요.
오래전 사진인가봅니다.
지금은 누님의 모습도 많이 변하셨겠지요.
열무김치님의 모습도 순박해보이면서도 미남이시네요.ㅎㅎ
누님이 인상이 참하고 예쁘십니다.
총각뿐 아니라 어르신들도 탐을 냈을 것 같아요.
누님에게 연해편지를 전달해준 과정을 읽어가는 내내
제 가슴이 뛰었습니다.
혹여 아버님께 들킬까 염려가 되어서요

오랜 시간이 흐르고 소식을 알아낸
석기 형~~그분의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이왕이면 행복한 가정 이끌고
건강하게 사셨으면 누님의 마음도 편안할 텐데
사별과 몸까지 아프시다 하니.........

저도 궁금합니다.
그 상자 안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누님 뵙거든 꼭 알아보시고 저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
즐겁고 행복이

가득하세요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묘한 부늬기를 가지신 누님이시네요.
한편의 수필을 읽은 느낌입니다.
알싸한 옛 추억에 빠져들어 함께 호흡한 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열무김치님!
그 시절에는 그렇게 연애를 했지요
특히 교회당은 마을 어른들이 연애당이라고
부를만큼 깨어 있던 공간이기도 하지요
누님의 연애사를 읽다 보니(일방적인 연애사지만)
가씀 찡한 감동입니다
그 시절 연애하다 머리 깍인 마을 누님들이 몇몇 있었지요
그래도 누님게서는 머리는 깍이지 않으셨으니 다행이십니다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하시는 누님의 마음이 참 곱습니다
앞으로 좋은 일들만 가득 하시기 바랍니다
열무김치님의 글은 늘 한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기분이예요.
옛일들을 어쩜 그렇게 속속들이 다 기억하고 계신건지..
정말 흥미있습니다. 지난일이어서인지 다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잔잔한 물결이 일듯 제가슴이 그랬습니다.
단편소설을 읽는 듯 사실감이 더 긴장감을 안겼어요.
사진 속 누님이 예쁘십니다.

연애편지를 흔히 핑크색으로 표현하는데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청춘과 열정이 넘치는 나이에 연애편지는 끝없이 달려도 지치지않는 젊음의 에너지원이었을 겁니다.

저는 이렇게 잔잔한 글을 사랑합니다.
황순원님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와 상통하는데 열무김치님의 글은 저를 착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좋은 글 가슴에 채울 수 있는 이밤이 고맙고
감사합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충분히 있을 만한 일입니다.
가슴이 쨔안해집니다.
육십년대의 애잔한 마음이 다가오네요,
누님이 나이가 어느정돈지 알겠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중요하지 않아서
순애보를 보듯합니다, 떨쳐버린 님의 누님이 미워서 ㅎㅎㅎㅎ
그래요 한시절 지난 뒤 만나보면 달라지는 것 아마도 그옛날 생각이 좋았지,
그러나 막상 만나면 그 곱든 얼굴이 생소해 그래서 대다수 그리움으로 만났어도
이내 본연의 생활로 돌아 갑니다,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생각해야 될걸요,
암튼 사이에서 심부름하다 열나게 매 맞은 글 보면서 웃고 있답니다,
이 글 읽고서 보름 날 저에게도 남아있는 상들 달집에 태워 버릴래요, 감사합니다,
깊어가는 세월의 향기속에
지난 세월이 풋풋함이 마음에 전해 오네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늘 ~ 건안하신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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