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난감했다.
한 두번 웃어 넘겼지만 어르신의 말을 흘려 듣고 무심히 넘어 가기엔 좀 그랬다.
여러번의 고심끝에 난 남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그 결과가 어찌 되려는지도 모르고.
바로 이웃에 할머니 한분이 사신다.
가끔 우리집으로 놀러 오시는데 어느날 부터 그것도 어렵게 되었다.
고령이신데다 다리가 많이 아파서 3층을 오르내리기 힘들게 된것이다.
휴일날 청소를 하다보면 골목 귀퉁이 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서 담배를 피신다.
"할머니, 담배 끊으세요. 자꾸 기침을 하시잖아요."
" 이제 끊으면 뭘 해. 피우다 죽는거지. 이거라도 안 하면 적적해.
저기..나, 마을 금고에 가서 돈 좀 찾아다 줘."
다름아닌 기초 노령연금이었다.
처음엔 그러는 할머니가 이상해서 귓등으로 들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혼자시라 대신 타다가 줄 사람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승용차에 모시고 마을금고로 가서 돈을 타 드렸다.
그럴때마다 할머니는 만원짜리 한 두장을 내 주머니에 넣어 주셨는데 참 곤란한 일이었다.
끝내 사양을 하면 어떤 날은 두유를, 어떤날은 과자를 사서 아내에게 주셨다.
그러기를 여러차례.
아내는 그래도 그분 자식들도 있을텐데 그래도 되냐며 자칫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너무 나서지 말라고 말렸다.
아내말이 일리가 있어 모른척 했지만 할머니는 나만 보면 이런저런 부탁을 하시고 가끔씩 사탕을 손에 쥐어 주었다.
어느날 출근을 하는데 대문앞에 할머니가 서 계셨다.
"저기..저녁에 집에 좀 들러."
"왜 그러세요?"
"부탁할게 있어서."
또 무슨 부탁이람?
퇴근후 할머니께 들렀다.
할머니는 내 앞에 봉투 하나를 내 밀었다.
"이게 뭐예요?"
...........
대답을 하지 않으셔서 봉투를 열어 보았다.
봉투안에는 만원짜리가 꽤 많이 들어 있었다.
"이게 웬 돈이예요?"
할머니는 내게 딸이 살고있는 남쪽에 당신을 좀 데려다 달라고 부탁 하셨다.
경비도 대 주고 돈 도 줄테니 시간을 좀 내달라고 하셨다.
딸 하나가 그곳에 시집가서 살고 있는데 너무도 오랫동안 보지 못해서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해도 잘 받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면서, 내려가서 아이들도 보고 딸 얼굴도 보고 싶다고 하셨다.
어려운 부탁인줄 알지만 꼭 도와 달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이 없느냐고 여쭈었지만 할머니는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허..이것 참..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 이야기를 하자 아내는 벌컥 화를 냈다.
"당신이 거기를 왜 가요.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이상한 할머니야 정말. 그거,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신 알기나 해? 모르는 척 해요."
난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고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할머니는 더이상 내게 부탁을 하지 않았고 난 그 일을 잊었다.
출 퇴근을 할때면 자주 보이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딸네 집으로 가셨나?
며칠 뒤 퇴직하여 놀고있는 박씨가 청소를 하고 있기에 물었다.
"요즘 할머니가 보이지 않네요. 어디 가셨나?"
아프시다고 했다.
바깥 출입도 못하신다고.
걱정이 되어 퇴근후 할머니 집을 찾았다.
"감기에 걸렸어. 원간이 추웠어야지..이제 좀 살만해. 와 줘서 고맙구먼"
할머니 모습이 많이 초췌해 보였다.
"전 번에 말한 거 ...내,돈 줄테니 좀 데려다 주면 안될까?"
"그러지 마시구요. 택시 타시고 가세요. 제가 택시 태워 드릴테니."
"나두 그 거 알어. 하지만 집에 못 찾아와."
"제가 주소 적어 드릴께요. 그거 택시기사에게 주면 금방 모셔다 줄꺼에요. 지금 집 못찾고 그런 거 없어요."
"그만 됐어..."
할머니는 다시 자리에 누으셨다.
집으로 오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토요일, 난 할머니를 모시고 집을 나섰다.
아내는 자기말을 안 듣는다고 밖으로 나와 보지도 않았다.
어떻게 할거냐면서.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입력을 하고 무작정 고속도로에 올랐다.
목적지 까지는 제법 멀었다.
"이 주소가 맞기는 한거예요?"
"딸애가 적어 준거니 맞을 거여.."
할머니는 내 손을 잡아 주시며 연신 고맙다고 하셨지만 난 마음이 어두웠다.
네 시간을 달려 어느 마을에 도착을 했다.
하지만 주소만 보고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종이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착신이 되지 않는 전화번호로 나왔다.
몇 번을 오르내린 끝에 딸이 살고 있다는 집을 찾았다.
주인을 찾자 젊은 새댁이 나왔는데 물어보니 할머니 딸이 세를 들어 산다고 했다.
새댁을 따라 딸이 산다는 방으로 갔는데 좁은 방에 아이들 둘 만 있었다.
할머니는 두 아이를 끌어안고 반가워 하셨지만 두 아이는 멀뚱하게 나와 할머니를 바라보기만 했다.
" 얘,엄마는 어디갔니?"
할머니가 들려 준 과자봉지를 손에 든 아이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멍하게 서있기 뭐해서 밖으로 나왔다.
"저기..이방에 살고있는 아주머니는 어디 갔나요?"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새댁은 나를 빤히 올려다 보았다.
"그러는 아저씨는 누구세요?"
시간이 없을듯 하여 자초지종을 말했다.
"애기엄마 혼자 살아요. 첨에는 아저씨랑 같이 왔는데..
일 갔어요.아마 좀 있다가 올거예요. 형편이 쫌.."
갑자기 맥이 풀렸다.
금방 온다던 할머니 딸은 땅거미가 밀려 와서야 돌아왔다.
갑작스런 우리들의 방문에 적잖게 놀라는 눈치였다.
할머니는 딸을 부둥켜 안고 눈물을 보이셨다.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좁은 부엌에서 덜그럭 거리며 저녁을 짓는동안 난 아이들과 멍하니 텔레비젼을 보았다.
몇 가지 찬을 곁들여 저녁을 얻어먹는 동안 애기 엄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도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있었다.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이 칭얼거리다 잠이 들고 할머니도 피곤 하셨던지 자리에 누으셨다.
앉아있기 뭐해서 또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서성거리는데 딸이 나왔다.
"저기..여기 잘만한 여관 어디 없나요?"
그녀는 주춤 거리더니 외투를 걸치고 나왔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근처 다방으로 갔다.
희미한 불빛에 비친 그녀는 40 초반으로 보였다.
말없이 앉아있는 그녀와의 어두운 공간이 어색하여 먼저 말을 건넸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전 이길로 올라 갈려구요."
한동안 앉아만 있던 그녀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여러모로 죄송하게 됐다면서.
그녀는 마치 모아 두었던 동전을 쏟아내듯 길게 이야기를 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 사는 형편이 너무 어렵고 어머니를 모실 형편이 되지 못한다고.
어떻게 어머니를 모시고 왔는지 궁금하다면서 자기는 너무 당황스럽단다.
난 딱히 할말이 없었다.
이웃에 살고, 할머니 부탁을 거절 할 수 없어 내려 왔다고 짧게 말했다.
단지 아이들과 딸이 보고싶어 내려 오신거 같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녀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듯 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녀의 긴 이야기를 듣고나니 그 자리에 더 앉아 있을 이유도 없고하여 근처 여관방으로 갔다.
그녀는 부득부득 여관까지 따라와 여관비를 지불하고 갔다.
아침엔 눈이 오더니 올라 올수록 비가 조금씩 내렸다.
푸른빛이 없는 남녁은 북녁처럼 쓸쓸했다.
빨리 봄이 와야지..
할머니는 올라오는 내내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가면서 먹으라고 차에 실어 준 떡도 그대로 있었다.
"저기요..다음 달 노령연금도 같이 가셔서 타게 해 드릴께요.
저희 어머님이랑 같이 가시면 되요."
할머니의 외로움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제 가슴으로 쏟아집니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도 떠오르구요.
할머니가 가엾습니다.
열무김치님은 정이 참 많은 분이십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존경스럽고 따스한 분 같아서
제 마음이 무척 행복합니다.
이런 분이 저와 이웃임이 뿌듯하기도 하구요.
할머니가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추운 겨울과 긴 고독, 외로움을 이겨내시려면
건강만이라도 충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신 말씀은 고맙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도 뜨끔하구요,예쁜 종이로 포장된 듯 하여 마음이 불편 합니다.
사실 저곳에 가기까지 아내와 싫은 소리를 많이 했고 나중엔 다투기 까지 했습니다.
괜히 잘못 나섰다가 생각외의 일이 생길 수 있다는걸 알면서도 어머니 같은 할머니의 부탁을 거절 할 수만은 없어서 마지못해 간거니까요.
부모님과 오래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밴 일종의 습성 같은 거 말입니다.
아마 저같은 처지의 누구라도 그리 했을거라고 봅니다.
글을 쓰면서 여러번 망설였지요.
이게 글의 소재가 될까 싶어서지요.
자칫 주변의 소외됨을 자신의 가십거리로 여기고 있는것은 아닌지 해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제 작은 글이 서로를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제 어머님이 다녀 오라고 말씀을 해 주신게 도움이 됐습니다.
할머니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할머니를 모시고 다녀오신 남쪽 이야기에 희비가 엇갈립니다.
열무김치님의 이웃 사랑을 실천하신 모습에는
훈훈함이 가득한데
딸과 손주를 만났지만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없는
딸의 형편 때문에 다시 돌아오셔야 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마음 아리기 때문입니다.
클로버님 말씀처럼 할머니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쪽에도 얼른 봄이 왔으면 좋겠구요.
열무김치님의 착한 이야기에
마음 부풀어갑니다.
1월 끝날 마무리 잘 하시고
희망 가득한 2월 보듬으시길 기원합니다^^*
다녀온 뒤 후회를 했습니다.
괜한 일을 했다구요.
할머니 따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더군요.
제 느낌에는 사람이 나쁘거나 상황이나 모면 하려는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형편이 좀 나아지면 모시고 가겠다는 말을 하더군요.
꼭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이곳에서 그렇게 어렵게만 사시는게 아니니 적당한 시기에 요양원이나 시설에 가시는것도 나쁘지만은 않을것 같습니다.
지금으로 봐서는 앞으로 자식의 유무와 관계없이 형편만 좀 다를 뿐 거의 그렇게 될거니까요.
돈 때문에 부모를 멀리하고 있는 딸의 심정이
어떠할까(?) 내내 밀려오네요.(ㅠㅠ)
착한 마음을 가진 열무김치님의 선행에 박수를
보냅니다. 누가 남의 집안일인데 할수있겠습니까(?)
복받는 오후시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단편소설 한편 읽은 것처럼 ....
눈앞이 아려옵니다.
마치 내 삶을 들킨것처럼 ....
열무김치님 할머니의 간곡한 청을 들어주신
모습에서 요즘 이기적인 사람들과는 너무도
다른 인간적인 모습에 매료되었어요
서민들의 삶의 단면을 보면서 내 삶도 되돌아 봅니다.
울엄마 보고싶네요
실제로 일어났네요.
열무김치님께서 끝까지 모른척 하기는 어려웠으리라 짐작되네요.
아내분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구요.
좋은 일 하신거예요.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데 대단하시네요.
하룻밤 여관잠까지 주무셔야 했으니 보통일은 아니지요.
그 할머니께서 딸의 사는 모습을 보고 참 마음이 아프셨겠어요.
그래도 열무김치님같은 이웃이 있어 다행이세요.
사모님 탓하지는 마십시오. 사모님 말씀도 옳고 윤사장님 처신도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미 오래전에 양친을 다 잃었지만 . . . 현실감이 너무 충만한 사연입니다.
어디선가는 이런 사연들이 많겠지요
나이들어 혼자 생활하면서
소식없는 자녀들을 그리움으로 삼고 살고 계신 어르신들
꼭 타인의 모습만은 아니겠지요..
절대로 하지도 않고, 해 볼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다녀오셨기에 지금 이 글을 쓰시지 그때 거절하셨음 열무김치님 평생 가슴앓이 하실거예요.
그래서 바르게 살며는 항상 마음이 편한것입니다.
열무김치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시엄니와 함께 살고 있지만 마음이 짠 하군요
연세도 많으시고 날씨도 차가운데 걱정이 됩니다
참 어려운 결정을 하신거 같아요
저는 정말 잘 하셨다고 말하고 싶네요..
아마도 그 할머님 그런 이웃에 좋은 분이
있어 마음 든든 하실꺼 같아요...ㅎ
그리고 열무김치님 참 대단 하세요^^*
남의 이야기는 쉽게 판단을 하는 버릇이 있지만 과연 나였으면 ....
아니 우리집 이야기였으면 ....점점 멀어져가는 이웃사람들...
때론 사람들의 관계가 무섭고 오해의 여지가 얄팍한 마음을 더 빗장을 걸게 하고 ..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지만 그 먼길에 그리던 딸을 만나보고 돌아오는 할머니의 시린 가슴을 ...
울컥합니다. 먼길에 편히 사는 딸자식 모습이라도 보고 오셨드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먼길 애쓴 보람도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서셨을 열무님과 할머니의 시간들이 아파옵니다.
그래도 애쓰셨습니다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더구나 1박까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
정말 따스한 열무님 그 마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안 모시고 가셨더라도 열무님께선 편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 합니다.
부디 할머니께서 건강히 ..그리고 좋은 따님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읽어 내려가면서 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이들어 연로하시면 자신이 하고싶어하는것을 말할때가 있답니다
아마 할머니는 앞으로 더 몸이 불편해지면 못갈것 같아서
아마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딸을 보러 다녀오신것 같네요
할머니 소원을 들어 주신겁니다
만약에 제생각 입니다만 부탁을 계속 거절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면
후회하실지도 모릅니다
참 잘하셨어요
글도 참 정겹게 잘 쓰셨구요
현대를 살아가는 부모님 세대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듯 ~~
참 열무김치님은 마음이 따뜻한분이시네요
저도 시골에서 자라 그마음 충분히 이해 합니다
할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두분도 행복하세요
가슴 한쪽이 미어지네요
이렇게 자녀가 있어도 사업에 실패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부모님 모실 형편은 커녕 찾아뵙지도 못하는 자식들이 꽤 있지요
열무김치님 정이 많으셔서 그래도 좋은 일 하신겁니다
그 할머니 얼마나 따님이 보고싶어서 그랬을지 눈에 선합니다
만약에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딸냄과 손주들 얼굴 못 보고 가면 가슴에 맺힐건데
그나저나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시면 좋겠고
따님도 얼른 형편이 나아지면 좋겠네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