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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철길

by *열무김치 2013. 2. 13.

 

 

충주 달천초등학교를 다닐때다.

내가 살던 만적리라는 동네는 학교와 시오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마을 복판으로 철길이 나 있었고 난 철길을 따라 학교를 다녔다.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책보를 둘러메고  학교를 갔는데 그 중 예쁘장한 가방을 메고 다니는 아이가 있었다.

그 가방은 책 너댓권 정도 들어가는 아담한 사이즈로 지금으로 보면 청소년들이 소품으로 지고 다니는  악세사리백 정도였다.

난 그 가방이 못내 부러웠다.

보자기에 그날 배울 책 몇 권과 몽당연필이 든 필통을 싸서 어깨에 대각선으로  메면 아이들과 장난을 치거나 뛰어 가기엔 좋았지만 필통에서 나는 덜그덕 거리는 소리는 귀에 영 거슬렸다.

학교에 도착해 보면 연필심은 여지없이 부러져 있고 책 도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그럴때마다 녀석의 예쁜 가방을 자꾸만 바라다 보았다.

 

 

 

 

 

 

 

 

학교가 끝나면 신작로 대신 또 철뚝길을 따라 집으로 왔다.

비오는 날 빼고는 신작로는 먼지가 너무나서 아이들이 모두 싫어했다.

어쩌다 좁은 신작로로 버스가 지나가면 미류나무 꼭대기로 먼지가 사라질때까지 멀거니 서 있거나  먼지를 따라가며 두팔을 휘젓기도 했다.

우리들은 대못을 철길에 군데군데 일렬로 놓았다.

기차가 오겠다 싶을 때 철길에 귀를 대고 들으면 댕강댕강 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멀리 기차가 보이지 않아도 조금뒤면 기차가 지나 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기차가 온다 싶으면 모두 기찻길옆 밀밭이나 보리밭에 들어가 빼꼼이 눈만 내밀고 철뚝길을 올려다 보았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기차가 지나가면 우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달려 나갔다.

굵은 대못은 여지없이 납작하게 변해 있었다.

누구께 더 납작하게 되었나 서로 대보면서 킬킬거렸다.

그걸 숫돌에 갈아서 칼을 만들었는데 연필도 깎고 나무도 깎는등 제법 쓸모가 있었다.

또래들은 누구칼이 가장 큰가 서로 재보면서 되도록이면 큰 대못을 구하려고 집안을 뒤졌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위험한것이란 걸 우리들은 모르고 있었다.

 

결국은 큰일이 나고 말았다.

우리보다 몇 살 더 많은 아이가 철로에 제법 굵은 쇠붙이를 놓았는데 그게 원인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지나가던 화물열차의 객차가 끊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멀찍이 숨어서 기차가 지나 가기를 바라던 우리들은 그 광경을 보고 기겁을 하여 줄행랑을 쳤다.

동네언덕 높은 곳으로 도망가서 바라다보니 잠시뒤 객차가 끊어진 채로 앞서 갔던 기차가 뒤로 후진을 하여 오더니 끊어진 객차를 연결하여 다시 끌고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린가슴에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들은 얼른 집으로 가지 못했다.

지서에서 순경 아저씨가 잡으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일이 없자 그제서야  우리들은 다시 철길에 모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못을 철로에 놓지 않았다.

큰 쇠붙이를 철로에 놓은 우리보다 몇 살 위인 아이는 주먹을 치켜 세우며  우리들을 윽박질렀다.

 

"너네, 내가 큰 쇠꼽 올려 놨다는 거 말하면 알지? 죽을 줄 알어."

 

 

 

 

ㅎㅎㅎ...
어릴적 얘기는 이렇게
언제 들어도 우리 입가에 웃음 짓게 만드네예....
특히나 열무김치님이 쓰신 글은 언제나처럼
고운 수필 한편이 되고....
아련한 그 시절로 돌아가 잠시 쉬렵니다...저도...
오늘도 기분좋은 날 되세요
아드님 만나고 오시고 이제 마음이 편하시겠어요.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추억에 빠지게 만드는 글이네요!!
참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비슷한 경험이 있으시나 봅니다.
철로 근처에 살던 아이들은 아마도 비슷했을거예요.
어릴 대 이야기는 미소를 머금고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다정한 연애 이야기보다 훨 따스해요.

철길에 못을 놓고 그런 장난을 쳤군요,
저는 철길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 생소하지만 무척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철길을 걷는 아이를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에 살짝 눈물지는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런 감정을 여러번 느끼곤 했습니다.

달천,
참 오랫만에 들어보는 정다운 지명입니다.
고향이 그리운 이유는
어린 날 내가 거기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달천을 지나 왔는데 많이 변하긴 햇더군요.
학교도 그냥 남아 있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았던 동네는 흔적도 없더군요.
마음이 이상했어요.
열무김치님 안녕하세요
고향이 제천이라
달천교에는 많은 추억이 있는데
고우신 추억의 글에 쉬어감에
감사드립니다
그러시군요.
제천에서 충주가 코앞이고 달래강도 그 옆이니...
이곳엔 충청도 분들이 많네요.
달천...시오리길 책보 몽당연필...
그리고 철길에서의 코 묻은 추억들..
코끝이 찡해져 오는 알싸한 추억에 괜시리 먹먹해지는 시간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아련한 그 즈음..
시간이 가면서 지난 시간들은 반추 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그게 비록 실리적이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본능으로 그리 되는듯 합니다.
비슷한 분들이 많아서 다행입니다.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반갑습니다.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감사 합니다.
그런일이 있었지요.
우리의 고장에는 철길이 너무나 먼곳에 있어서 그런 장난을 하면서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어쩌다 한번 여름방학때가 되면 동무들끼리 철길이 있는 곳까지 가서
철길에 귀를대고 기차가 오는 소리를 듣고는 하였었습니다.

이리시(현익산시) 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은 기차통학을 하였지만
왠만한 집안에서는 가까운 면내 중고등학교를 다녔지요.
재미있는 추억이네요.
특별한 놀거리가 전무했던 당시엔 기차는 특별한 존재였지요.
제가 초등 1학년때만 해도 증기 기관차가 다녔으니 지금으로 보면 전설의 고향같은 이야기입니다.
철로에 가면 장난 치는거 말고도 기차가 지나가면 사람들의 모습도 구경하고 기차의 굉음이 왠지 긴장감을 주곤 해서 그걸 즐겼던것 같습니다.
지금도 기차 여행을 하면 공연히 가슴이 설레는건 우연이 아니지 싶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꿈의 회상 입니다
너무도 소중한 추억이 언재나 응어진 마음을 풀어 놓콘 하지요

충주면 조치원 제천 가는 철도이지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전 오래전 일이라 당시 그곳으로 기차가 다녔는지는 모릅니다.
이곳에 게실때 한 번 뵈었으면 했는데...
제가 먼저 연락을 할껄 하는 후회가 되는군요.
게시는 곳 늘 건강하세요.
열무김치님!
철길을 따라서 학교를 다니셨군요
그런 추억을 가지고 계셨군요
저도 철길 근방에 살았던 친구들에게
들었습니다, 참 그 시절을 뒤 돌아 보면 아득 하기도 하지요
저는 중학교를 이십여리 걸어 다녔었는데
걸어가다 보면 큰 고개(집재)가 있는데 그 위로 송전탑이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하교길에 칡덩쿨에 돌멩이를 매달아서
고압선에 던지면 불꽃이 튀었지요
그러다가 산에 불이 나서 모두 도망 쳤던 기억이 나는군요
유년의 추억 즐겁게 감상하여 봅니다
고운 저녁 시간 되십시오
이십여리를 걸어 다녔으면 먼길이었네요.
새벽같이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갈수 있었지요.
오히려 학교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지각을 했지요.
아마 당시는 학교가 많지않아 먼길을 걸어 다녔던 아이들이 많았을겁니다.
먼길을 걸어서 통학을 하셨으니 다리는 아주 튼튼하시겠어요.
근데 저보다 더 위험한 장난을 하셨네요.
열무김치님은 남자라 어릴적 추억이 많으시네요.
저는 서울서 살아서 추억이 거의 없습니다.

어릴때 강위에 철길을 건너는데 다건넌 아이들이 기차가 온다고 해서
울면서 겁에 질려 건너던 생각이 납니다.

열무김치님 연애 하실때 친구(지금 와이프) 데려다 주고 오다 어두워서 논두렁에 빠졌다는
이야기 읽은 기억이 나서 입가에 미소가 ~~~
오늘 모처럼 날씨가 따스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제주도로 휙 날라서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유채꽃이 피고 동백도 핀다는데..

논두렁에 빠진 이야기를 잊지 않으셨네요.
그때는 그래도 그게 즐겁고 행복했는데 지금 그러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것 같은데요.
저희도 어릴 때 그런 장난 많이 했습니다
겨울날 칼바람 맞으며 철길을 지나 학교 가는 길은 따뜻하지 않은 개실로 뜬 장갑 사이로
찬기가 들어와 손이 어찌나 시렵던지
글 읽으면서 어릴 때 추억에 잠겨봅니다
비슷한 시대를 사셨으니 아마도 느끼는 감정이 비슷하지 싶네요.
글쎄요.
자꾸 이런 이야기들이 그리워짐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시절에는 특별한 놀이 시설이 없으니 여름 방학때면
남학생들이나 선배 남학생들 따라 수박서리나 참외서리
친구네 제삿날 제수음식 바구니를 통채 가져와 나눠 먹곤
하던 시절이 생각 나네요...ㅎ
남자애들은 어쩔수 없이 개구스런 본능이 깔려 있었나 봐요
그쵸~ㅋㅋ
그런일들이 얼마전 일처럼 스쳐지나 가네요
한참을 웃으면서 짙은 공감하면서 즐감 합니다^^
전혀 아니실것 같은데 그러셨구나.
더구나 남 제사지낸 음식까지 통채로....ㅎㅎ
그거 맛나는 겁니다.
하기야 저는 굿 하는마당에 시루떡도 훔쳐오고 산골에 가면 성황당이 있는데 가끔 그곳에 팥 시루떡을 놓아 두는데 그것도 몽땅 훔쳐다 먹었지요.
그런게 왜 그리도 맛나던지.
오늘 새로운 면을 보았네요.
전 참 도시적인 분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좋은 오후시간 되십시요.
학교와 멀지 않은 시내 중심에 집이 있어서
철길을 걸어서 학교를 오는 친구들을
참 많이 부러워했었는데 열무김치님도
철길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계시군요.

몽당연필, 책보자기, 달그락 거리는 필통소리가
지금은 아련한 동화 속 이야기가 되어
자난 날을 회상하는 가슴에 순수를 심어줍니다.
철길에 못을 놓고 장난을 쳤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객차가 끊어졌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지라
경찰이 잡으러 올까 봐 한참을 숨어 있었다는 마음
웃음도 나오고 이해도 가네요.
어린 마음에 얼마나 놀랬을지........
당시 객차가 끊어지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며칠간 학교도 몰래 숨어서 갔지요.
그 후로도 아무일이 없었던걸 보면 우리 때문이 아니라 우연의 일치였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대못을 철로에 놓아 납작하게 한 뒤 칼을 만드는 일은 숱하게 했어요.
호기심에 강하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신기했던거지요.

지금은 철길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봉쇄를 한곳이 많아 다니기 쉽지 않습니다.
따스한 봄날 철길을 소롯이 걸어보고 싶습니다.
ㅎㅎ..
참 개구진 어린 시절이네요
그 시절엔 놀이가 위험하지만
잊을수 없는 향수 추억인듯 하네요
지금은 철길도 자꾸 없어지고 있네요
몇살 위인 아이의 협박이 어이가 없네요..ㅎㅎ

워낙 놀이가 없었던 때였으니..
딱지치기 구슬치기도 3~4학년때 많이 했던걸로 기억이 됩니다.
오히려 지금 아이들에게 딱치치기 구슬치기를 시키면 비만에도 도움이 될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비만인 아이들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먼저 듭니다.
학원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이 운동 할 시간도 없으니 말입니다.
열무김치님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이렇게 소소하게 올려 주시니
어린 시절이 생각나면서 웃어 봅니다 .
저도 괴산에 살다가 국민학교 5학년때 음성으로 이사를 왔는데
중학교 때 부터 기차를 이용하곤 했는데 저도 기차에 대한 추억은 많습니다 .
기차를 타러 10리는 걸어 다녔었지요 .
좋은글 올려 주셔서 즐겁게 머물다 갑니다 .
늘 건강 하세요.
제 블에 오시는 분들이 충청도 경상도 분들이 많네요.
괴산이면 충주와 그리 멀지도 않고 연풍과도 가까우니 사실 같은고장이지요.
가끔 음성을 갑니다.
살기좋은 고장이예요.
글 쓰시는 분이니 어린날의 추억들도 모두 소중한 글감이 되겠네요.
좋은 글 감사 합니다.
작가님!
코스모스 핀 철길의 영상을 감상하다 보니
간이역이 생각나는군요
강원도에 근무할 때 기차를 타고
여행을 좀 다녔기에~~~
추전역도 생각 나구요
다시금 추억의 한 페이지 들추어 보면서 머물러 갑니다
고운 밤 되십시오
추전역은 저도 여러번 가 보았습니다.
설경이 참 좋은곳이지요.
눈꽃 열차가 지금도 다닙니다.
작가라 하시니 어디 숨을곳을 찾고 있습니다.
정말 산마을님처럼 작가가 되고싶은 생각이 나는군요.하하~

어릴때 철도에 대못놓는 장난 저도 했습니다
다행이 객차가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ㅎㅎㅎ
열무김치님 글 읽다보면 잊고 살던 어린시절이
떠올라 웃음짖곤 합니다^^

주말입니다
좋은 시간 보네세요....
그러셨구나.
즈변에 철길이 있었나 봅니다.
지금이야 철로에 다니기 힘이 들지만 당시엔 거의 무방비였어요.
누가 뭐리고 하는 사람도 없고.

잠시 어린시절로 가셨다니 다행입니다.
주말 잘 보내십시요.
참 오랜만에 들렸습니다..늦었지만 설명절은 잘~보내셨죠?
전 독감예방주사를맞았는데도 감가로 한 이십여일째 고생을하고있는데 이제좀 살만 합니다..

실은 유학갔던 둘째딸부부가 한달여전에 돌아왔습니다..
둘째가 결혼전 쓰던방이었는데 컴터가있는 이방을 딸네부부에게 내어주고나니 컴터 쓰기가 쉽지않습니다..
가난한 유학생이라 난방도 안되는 싼월셋방을얻어 고생이많았겠지요..저도 재작년에 한번 가봤습니다만..
그렇게 4년4개월만에 돌아오니 한달여간을 두문불출하고 방콕만하다가 오늘에사 외할머니께
인사드린다고 나간틈에 잠시 들렸습니다.
열무님글을 늘~보아왔지만 일상적인 일들을 누구나 공감을 느끼게하는 글재주가 열무님께는 있으십니다..
제가살던 뚝섬에도 어릴때 기동차가 다녔지요..그길에서 같은 장난을 치고 놀곤했던 생각이 납니다..ㅎ

창밖에 부서지는햇살에서 봄의 기운을 느껴봅니다.이제 곧 봄이 오겠지요?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네요.
우선 유학을 잘 마치고 오셔서 축하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일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감기 얼른 나으시고 봄맞이 하셔야지요.
늘 제편에 서서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휴일 잘 쉬세요.
경기도로 이사오기 전에 서울 용산에서 살았습니다.
조금 걸어나가면 용산역이 있고 저희도 그런 짓을 했었지요.
전 국민학교 저학년이었고 두세살 위의 또래들이 주도해서
철로에 못을 올려놓았다가 칼을 만들기도 했고
유리조각을 올려놔서 박살을 낸 후 연실에 유리가루를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인터넷도 없는데 환경이 비슷하면 하는 짓도 전부 유사했던 모양입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군요.

- 청청수 -
사람 생각은 모두 비슷하니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히 그리 되는가 봅니다.
철길에서 놀던 기억이 참 오래 가는군요.
어른이 한참 된 지금도 기차역에 가면 웬지 설레고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건 참으로 묘한 일입니다.
가슴속 저 밑바닥에 잠겨있는 우리들의 어린시절 이야기....
또 들어도 누구것이나 정겹고... 그시절의 필림들이 다시 영사기를 통해 돌아가고 있습니다.
저희 동내앞으로도 철길이 지나가지만 ....
전 초등학교땐 전학으로 ...후엔 타지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철길을 이용하진 못했습니다.
중학교때 충주 호암지로 스케트를 타러는 몇번 갔었죠.
어릴적 이야기가 꿈속인양 ...정겹습니다.
아주 오랫만에 댓글을 보고 답글을 답니다.
살기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들은 후일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 합니다.
당시엔 고통이었는데도 말이지요.
아마도 가장 인간적이고 순수해서 그럴겁니다.

가끔 별 추억이 없이 디지털 문명속에서 커가는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일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싶어서지요.
하지만 시대가 다르니 그건 우리들의 생각이겠지요.
공감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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