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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5월의 추억

by *열무김치 2009. 4. 20.

비가 내린다.

이제 들에도 산에도 녹음이 더한층 빛을 내리라.

 

軍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평에 파견을 나간건 5,18 광주사태가 있기 보름전이었다.

한해에 한번은 나왔기에 처음과는 달리 익숙해져 있었다.

주로 산에서 하루를 보냈다.

정해진 일과가 끝나면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다.

책을 보다가 답답하여 근처를 산책하게 되었는데 산나물이 눈길 닿는데마다 보였다.

시골에 있으면서 나물 박사셨던 어머님 어깨 너머로 익히 보아온 터여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별 생각없이 나물을 뜯었다.

그리곤 반합에 물을붓고 삶아냈다.

산골에 지천으로 흐르는 물에 씻어 담그었다.

양념이 시원찮으니 간장과 고추장을 적당히 버무려 식사시간에 동료들에게 내밀었다.

 

"누가 만들었냐?"

"尹병장인데요."

"이리 오라고 해"

 

부대장은 나물을 더 뜯어 오라고 부탁을 했다.

늦봄의 햇살이 가득한 산허리에서 난 산나물을 뜯었다.

물론 교육은 열외였다.

저녁시간

고추장 간장으로만 무치던 산나물에 들기름도 넣고 갖은 양념을 넣을 수 있었다.

파견을 나갔던터라 인원은 많지 않았다.

동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산나물 그릇으로 달려들었다.

 

"자네 산돼지가 득실거리는 흉악한 산골짜기에서 살다왔지?"

그걸 어떻게 알았데?

 

 

 

 

혹시 취사병을 하셨으면 탁월하신 기량을 더욱 발휘하셨을것 같습니다
산채 향기가 진하게 스며오는것을 느껴 봅니다
님 께서 사신곳이 어딘데 산돼지가 득실거리는 곳이라 하시는지요
전에 올린 글로 보아 치악산 부근이 아닌가 싶기는 하였습니다 만...
깊은밤에 잠시 들러 갑니다
편한 시간 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70년대 군생활 할 무렵엔 취사병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었지 싶습니다.

하하~
강원도 평창의 기가막힌 산골짜기였지요.
산골밭에 옥수수를 심으면 산돼지 때문에 거의 수확을 할 수 없었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당시는 더 심했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오셨네요.
저역시 요즘은 늦게야 잠자리에 듭니다.
저편에 묻어 놓앗던 기억의 주머니에서 우리들은 잊혀져 가는 자신을 가끔 들여다 보곤합니다. 이러한 시간이 있기에 웃고 사는지도 모르죠. 오늘도 잊지 못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먼 훗날 기억의 주머니에서 꺼내볼 수 있도록.
기억은 가끔 자신을 괴롭히기도하지만 미소를 짓게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나이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그말이 헛말이 아니지 싶네요.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은 삶이 각박하다는데 아직은 그말이 실감나지 않는걸보니 이야기거리를 더 많이 쌓아야할까 봅니다.
들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전 쑥 말고는 암것도 구분 못하는데..
그래도 가끔은 냉이 국도 그립고...
쑥 버무리도 그립고..
반가워요.

지금 시각이 혹시 저녁무렵 아닌가요?
아닌가?

웰빙식을 선호하면서 그렇게 흔하던 쑥도 뜯기가 쉽지만은 않네요.
시골에 가면 아직은 많습니다만 정작 그곳에 계신 분들은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쑥 버무리가 해 먹을 수만 있다면 좋지요.
영양 만점이잖아요.
요즘 아이들도 잘 먹더라구요.

고향생각이 많이 나시는듯 합니다.
아마 냉이국은 한국 말고는 없을것 같습니다.
오시면 원풀이 하세요.

고맙습니다.
저는 산행중에 많은 산나물을 만나지만 어느것이 식용 할 수있은줄 몰라서 그냥 지나치지요..
부럽습니다..
하하~
그것도 늘 그래야 되는데 어머님 연세 많으시고 이제는 산나물 구경 하기도 여간 어려운게 아니어서 저도 같은 신세 입니다.
그래도 아내 보다는 더 압니다.
하지만 산나물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자칫 잘못 먹어서 예상외의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가끔 있으니까요.
하하~
덕분에 교육 열외를...

전 시골서 오래 살지를 못해서 나물에 대해 잘 모릅니다.
군시절 같은 횡성에서 온 동기가 그런쪽으로 잘 알아서 열무님처럼 버섯,더덕 등을 캐러 다녔지요.
특히 반합에 라면을 끓이고 거기에 느타리버섯을 넣어 먹은 게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아..
그런경우를 보셨군요.
군시절 독특한 손재주나 지식으로 남들보다 편하게(?) 지내는 동료들을 보았지요.
어떤 동료는 바둑을 기가 막히게 두는바람에 소문이 나서 부대장에게 불려가 남들은 교육 받는라 죽겠는데 시원한 그늘에 앉아 풍류를...
그것참 배 아프더군요.
군애기가 나오면 남자들은 마냥 거워하구 할말이 많아지는건 왜일까요

여자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지만 남자들 군대 얘기만 나오면 접시가 가루가 된다고 하잖습니까.
그런데 가만 들어보면 진짜도 있지만 뻥 이 50%는 됩니다.

전에 블러그에 글을 올린적이 있지만 제 살던 동네엔 군대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말을 붙일 수 없는 사람이 있었지요.
월남까지 갔다온 무용담을 듣노라면 정작 군대에 갔다온 사람들은 하품을 할 정도였지요.

어찌 하다가 나중에 밝혀진거지만 알고보니 군대 근처도 안 가본 사람이더라구요.
동네 사람들이 그의 현란한 말솜씨에 홀라당 넘어간거지요.


어째 요즘의 모..누구를 보는것 같네요.
재밌습니다 군시절의 추억담이...ㅎㅎ
남자분이셨군요~
열무김치란 닉을 보고 당연하게도 여자분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가 44년전의 통신표나 첫사랑의 글을 읽다보니...ㅎㅎ..
좋은글이 참 많습니다.
더더욱 반가운건 통지표에 찍한 학교를 보니 달천초등학교를 다니셨더군요.
저는 충주가 고향입니다.열무김치님.
고향분을 만나뵙게되어 더욱 더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아..
답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글을 읽으셨다는것도 그렇고 달천초등학교를 아신다는데 더 놀랐지요.
좌우간에 더욱 반갑고 기쁩니다.
전 당시 만적리라는 동네에서 기찻길을 따라 달천 초등학교를 다녔지요.
아무래도 더욱 가까워 질것같은 예감이 드네요.

먼곳까지 오셔서 글을 읽고 답글까지 주셔서 고맙습니다.
미국에서 냉이를 화분거름 흙속에 심어서 먹었지요.
한국 것하고는 맛이달라도 그런대로 냉이맛은 느낄수 있었지요.
충북선
소이역 주덕역 달천역 충주역 목행역

달천강 탄금대 충열사 노루목

77. 3. ~79. 2. 충주공전 시절
옛 추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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