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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기다림

by *열무김치 2009. 2. 1.

기다림
조회(133)
| 2007/01/31 (수)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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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하기만한 여름 오후가 그저 지겹기만 했다.
방과후 찌그러진 툇마루에 누어 멍하니 하늘을 보는것도, 동생이랑 술래잡기도 심드렁해지면
우리 남매는 동쪽으로 길게 그림자를 내리는 미류나무아래  등을 기대고 앉곤했다.
소가 끄는 달구지가 덜그덕 덜그덕 무심히 지나간 누런 황토길을  보고 또 보고...
하지만 여름해는 길기만해서  그러다 스르르 잠이들곤 했다.
동네 저편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들리고 땅거미가 몰려 올때면 동생과 난 언덕위로 올라가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 왜 안와?"
"쫌만 있으면 올거야."
"오늘 과자 사온댔는데..."
땅에다 그림을 그리던 시커먼 손으로 코를 훔치던 동생이 날보고 손가락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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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슴프레 땅거미가 깔린 언덕 아래로 키작은 어머니께서 올라오시면 동생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이내 투정을 부리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곤했다.
"또 안사왔잖아.씨~"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채 집으로 들어 오셔서 늦은 저녁을 하셨다.
안먹는다고 투정을 부리던 동생이 숟가락을 손에쥐고 잠들면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셨다.
늦게까지 뭔가를 계속 꿰메신것 같다.
그러다 잠이 들곤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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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행상을 하신건 오래였다.
돈벌러 객지 어디론가 떠나신 아버지는 몇해가 가도록 소식이 없었다.
행상이라야 보따리에 생활용품 몇가지가 전부였지만 어머니는 비가 많이 오는날 말고는
하루도 그일을 쉬지 않으셨다.
우리  세남매는 비오는날만 기다렸다.
그러다 그일이 시원찮으면 품팔이를 나가셨다.
농삿일도 하시고 남의집 허드렛일도 하시며 먹을걸 얻어 오시곤 했다.
어머니는 먼 이웃 마을로 일을 자주 나가셨다.
일해 달라고 부탁하러 오는 동네 아저씨가 그렇게 미울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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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어머니는 밤이 깊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으셨다.
동네어귀 성황당 처마아래서 우리 남매는 엄마를 기다렸다.
캄캄한 밤, 동생은 무섭다고 울었다.이상한 새 울은소리에 나도 겁이나서 동생들을 꼭 껴안았다.
늦어서야 무거운 보따리를 머리에 이신 어머니께서 돌아 오셨는데, 우리는 누가 죽기라도 한것처럼 대성통곡을
했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으신채 우리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눈물을 닦아 주셨다.
늦은밤 우리남매는 보리밥에 물 말아 된장에 고추찍어 저녁을 먹었는데, 그때 우리를 바라보시던 어머님의 젖은
눈길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
어머니는 지금도 정정 하시다.
왜 그렇게 말씀이 없으셨냐고 여쭈면 어린 너희들에게 눈물을 보이실까봐 그러셨단다.
기다림.
또다시 누군가를 이토록 절실히 기다리는날이 또 다시 내게 찾아올까?
그때가 그립다.
 
 

 

 
 

답글(3) | 관련글(0) http://blog.empas.com/dudgus2511/18111048

콩새  07.02.01 22:06  삭제 | 답글 신고 
가슴이 찡하고 아려오는 이맘...
 
 
거북이  07.02.07 21:01  삭제 | 답글 신고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지요.
테레비도 없고 컴퓨터도 없어서 장독대가 놀이터이고
마당의 닭이 친구가 되며 냇가의 가재가 장난감인 시절 말이죠.
 
 
열무김치  07.02.07 21:08  열무김치" name=ScreenName6228960> 수정 | 삭제
거북님 가만보니 시인이시네요. 운치 있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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