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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때때수 이야기

by *열무김치 2023. 10. 6.

 

50~60년대를 산 사람들은 어머니나 할머니 무릎을 베고 호랑이나 여우가 등장하는 옛날이야기 몇 자루씩은 들었을 것이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이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박수를 치고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엄마 등 뒤나 치마폭에 숨기도 했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가난이 만들어준 선물이었다.

놀거리 먹거리가 시원찮던 시절에 듣던 이야기를 지금 아이들에게 들려준다면 어떨까.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상당수의 동화들이 게임시장에 진출해 있는 데다 눈만 돌리면 휘황찬란한 디지털 기기들이 손에 잡히는 세상이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식의 구전동화는 너무 시시해진 것이다.

 

필자가  몇 년간 교회학교 교사로 있을 때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짧은 시간에 아동문화가 널뛰기를 한다는 걸 느꼈다.

당시 TV와 VCR이 막 보급되던 시기였는데 월트디즈니 영상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아이들의 시선이  눈에 띄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시청각 장비 없이 오로지 이야기로만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나 전래동화에 흥미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서서히 교회학교에 출석하지 않은 것이다.

고민을 거듭하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VCR과 영상 콘텐츠를 구매하여 교육시간에 활용하자 아이들이 다시 모여들었는데 

문제는 그 효과가 오래가지 못하고 보다 흥미로운 것을 계속 찾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때가 1970년 중반이었으니 이미 컴퓨터로 구현되는 가상세계가 국가를 먹여 살리는 거대 산업으로 도약하는 도화선에 불이 붙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나라가 세계를 호령하는 반도체국가로 올라선 것은 수많은 동기부여가 있었겠지만 전 세계 아이들 손에 들려진 게임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리란 짐작이다.

작금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아이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첨단 디지털기기 속에서 유아기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세기를 바꾼 디지털 문명의 명암은 너무도 뚜렷해서 오늘을 사는 부모들에게 날카로운 양날의 검을 들어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끔찍한 일들의 뒷면엔 디지털 기기들의  두 얼굴이 숨어 있어서 그 혜택을 누리고 사는 현대인들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아주 고약한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숙제는 해답이 있기 마련이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인위적인 방법이 아닌 자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연으로 회귀해야  우리들의 본성을 회복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근간에 들어 많은 호응을 얻게 된 것은 경험으로 얻어진 생활 철학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무도 들어줄 것 같지 않은 옛날이야기를 한 자락 해보려고 한다.

옛날이야기에서나 나올법한 아주 이상한 장소가 있다.

커다란 구렁이가 물을 막고 있다가 물이 너무 많아지면 흘려보낸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

죄를 지은 사람이나  마음씨가 고약한 사람이 접근하면  부정이 타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전설이 사실처럼 전해지는 곳.

바로 강원도 깊은 오지에 있는 때때수 이야기다.

 

(때때수를 만나기 위해 오르는 길. 마치 신비의 나라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횡성 새말로 내려 42번 국도를 타고 전재를 넘어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을 지나면 과거 강릉으로 넘어가던 유일한 길이였던 문재가 나타난다.

문제를 넘어 5분 정도 내려가면 운교리라는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방림으로 가는 국도와 때때수를 만날 수 있는 군도가 갈리게 되고 군도를 따라 약 2km 내려가면 전국에 고랭지 채소로 이름이 나있는 계촌리가 나타난다.

이 마을은 규모가 제법 커서 국도변에 위치한 운교리와 계촌리를 중심으로 둔내 웰리힐리 파크(구 성우리조트)로 넘어가는 방위동, 방림 평창으로 내려가는 수동리, 때때수를 만날 수 있는 대미리가 합쳐진 한때는 인구 수천이 살던 큰 마을이었다.

지금도 고랭지 채소철이 되면 전국에서 야채상들이 몰려오고 작은 마을엔 제법 큰 돈줄기가 돈다.

그래서일까 작은 마을엔 식당이나 카페가 여러 군데 있고 하절기에는 수많은 외지 사람들과 차량들이 들락거린다.

계촌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3개의 분교가 있었고 본교는 학생수가 1,000여 명에 이르렀지만  급격한 농촌인구의 감소로 학생수 일 이백 명이 넘던 세 군데의 분교가 폐교되고 현재 계촌 초등학교에 40여 명의 학생만 남았다.

한 가지 특별한 것은 계촌 초등학교는 학생마다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재능교육을 도입하여 전국에 이름을 알린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는 점이다.

별빛 오케스트라 창단은 해마다 줄어드는 학생수 감소로 폐교를 걱정하던 분위기에서 농촌 학교도 교육의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지금도 도회지에서 산골초등학교로 전학을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니 요즘말로 교육의 대박을 떠트린 것이다.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지만 뜻있는 교사들의 열정과 학생들의 호응으로 길지 않은 기간에 전국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는데, 학생들을 지도한 교사 중  전국 내로라하는 교향악단에서 지휘를 맡았던 경력자가 있는가 하면 해외 유학파가 아예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열정적인 교사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현대 재단과 결연을 맺어 매해 7월경 한여름밤의 콘서트를 열어 전국에서 많은  예술인들이 찾아오는 평범한 농촌 마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2011년 2월 IOC 실사단이 평창을 방문하던 날 열린 ‘2018 동계올림픽 평창유치 기원 연주회와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기념 연주회, 대관령국제음악제에도 참여하고 어려운 이웃들과 병원 환자들을 위해 찾아가는 공연을 펼치고 있어서 계촌 별빛오케스트라는 이제 평창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때때수를 소개하다가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것 같지만 이곳이 고랭지 채소뿐만이 아니라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때때수라는 특별한 장소를 품고 있어서  내용 전개상 이를 연관시켜 보았다.

 

 

때때수

계속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때를 따라 흘러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명상 이곳은 평창군 방림면 계촌3리로 청태산과 태기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계촌에서 대미리로 들어서는 초입 굴아우라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가파른 산길을 따라 30~40분 정도 오르면 산 정상이 가까운 곳에 규모가 제법 큰 바위가 나타난다.

물이 나오는 곳은 산 정상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막상 현장에 도착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세계 여러 나라에 뜨거운 물을 뿜어내는 간헐천이 많이 산재하지만 찬 샘물이 때를 따라 솟아나는 일은 매우 희귀한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버덩이 아닌 산 꼭대기에서 간헐천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이는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설명을 할 수 없는 데다 수질도 특이하여 여전히 연구 대상으로 남아있다.

전설에 따르면 상태가 매우 심각한 피부병 환자가 이곳을 찾아 때때수로 목욕을 한 뒤 피부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지금은 그 명성과 달리 찾는 이  별로 없다.

특별한 지형으로 관광지로서의 조건은 갖추고 있지만 중부 내륙의 오지에 위치해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이곳엔 한때 구제사라는 작은 절을 짓고 사람이 거주했으나 지금은 빈집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세동으로 지어진 조립식 건물은 그대로 방치되어서 음산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주변엔 지금 여간해서 만날 수 없는 고목의 가래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나무 아래 많은 열매들이 떨어져 있었다.

추자(楸子)로 알려진 가래나무는 추운 북부지방에 자라는 토종나무다.

고소한 열매를 내어주어 인기를 끌었지만 망치로 두들겨야 깨질 정도로 단단한 껍질을 갖고 있는 데다 껍질이 얇고 맛이 더 고소한 호두가 들어오면서 그 자리를 빼앗기더니 작금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나무가 되었다.

필자가 찾아가던 날, 날씨가 흐려서 그곳의 분위기가 매우 음산했는데 인적이 전혀 없어서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여기저기 떨어진 가래를 줍다가 어디선가 들리는 물소리를 듣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작은 샘물이겠거니 상상했는데  상상과는 다르게 제법 큰 물줄기가 작은 폭포가 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산 아래라면 모르겠지만 산 정상이 가까운 곳에서 저렇게 많은 물이 쏟아지다니..

사진 몇 컷을 촬영하고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쭈르르 소리가 나고 물줄기가 갑자기 줄어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물줄기가 뚝 끊어진 것이다.

 

(갑자기 뚝 끊겨버린 물줄기)
 

놀라운 광경에 잠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멍하니 서서 30여분을 기다렸을까.

바람소리 같이 쉬이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쭈르르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쪼르르 작은 양으로 시작된 물은 금방 큰 줄기로 변해 쏟아져 내렸다.

이야기로만 듣다가 막상 현장을 목격하니 마치 이상한 나라에 들어온 엘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이왕에 올라왔으니 주변이 좀 음산하더라도 더 확인해 보기로 했다.

상쾌하게 쏟아지던 물줄기는 30여분 이 지나자  서서히 물소리가 줄어들더니 이내 뚝 끊겼다.

마치 귀신에 홀린듯한 느낌이었다.

윗부분을 확인하고 싶어서  시간을 기다렸다가 이끼가 잔뜩 낀 바위를  타고 간신히 올라갔다. 

그곳엔 커다란 바위가 서로 맞물려 있었고 그 중간에서 물이 나오고 있었다.

 

(바위틈에서 샘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왕 기다리는 김에 바위옆에 바짝 다가앉아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전해지는 얘기로 커다란 구렁이가 저 틈을 막고 있다가 열어 준다는데 동화 같은 얘기임에도 분위기 탓인지 나도 모르게  불안하고 겁이 났다.

물이 끊어지고 다시 30여분을 기다리자 스르르륵 하는 작은 소리가 들리더니 꾸르륵 소리를 내며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아까처럼 금새 많은 양의 물이 쏟아져 나왔다. 

아래에서 올려 보다가 바위옆에 바짝 다가앉아 물이 나오는 광경을 보니 더 놀라웠다.

희한하구나

스르륵 하는 소리?  꾸르륵하는 괴상한 소리?

 

학자들은 지표면 아래 물을 가두어두는 함지박 같은 바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한다는데...

땅 속에서 솟아오른 지하수가 가득 고이면 함지박 같은 바위가 더 이상 물을 가두어둘 수 없어 바깥쪽으로 쏟아지는 게 아닌가 추측하는 것이다.
물이 가득 차면 함지박 같은 바위가 바깥쪽으로 숙여지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위가 개폐식이어서 물이 차면 바위의 연동 작용에 의해 조개처럼 틈이 벌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의해 물이 나오고 그치는 현상이 반복된다고 하는 그럴듯한 설도 있지만 이같은 설은 모두 카더라 하는 주장일 뿐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설명된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이 쏟아지는 장소가 산 정상 가까운데 위치해 있는 데다 건기와 우기에 따라 수량의 변화와  물이 솟고 그치는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아무리 가물어도 물줄기가 끊어지는 일은 없으니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독자들이 동영상으로 확인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면상 동영상을 올리지 못하는 게 아쉽다.

희한한 광경을 목격하고 하산하는 길은 기대감을 갖고 오르던 오전 시간과 달리 마치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현실의 세상으로 내려오는 기분이었다.

 

어린 날 어머니 무릎을 베고 듣던 옛날이야기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고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가 사람을 홀렸다는 얘기가 여전히 현실로 남아있는 곳.

강원도 깊은 산 꼭대기에서 만난 때때수 이야기다.

할머니 엄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가 그립다면 강원도 평창 계촌리에 있는 때때수를 찾아가 보자.

그곳엔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시간에 맞춰 약수를 쏟아내는 동화 같은 샘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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