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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감자 익을 무렵

by *열무김치 2023. 6. 13.

 

한해의 허리로 오른다.

노루 꼬리 같은 봄을 한숨 몇 번으로 보내고 나면  턱에 닿을 듯이 여름이 들이 다친다.

옷장을 뒤져 반팔옷을 꺼내 입고 거울 앞에 서면 이미 가버린 반년이 나를 보고 씩 웃는다.

아차 싶은 것이다.

그렇구나, 한 해의 절반이 흘렀구나.

계절이 변하고 주변이 변하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당장 난리가 날 것인데도 마음은 거부권을 들고 공연한 트집이다.

이봐요, 무슨 세월 타령?

아직 반년이 남았는데.

세월이란 놈 자기 갈길 바빠서 쳐다보지도 않아.

 

그래봤자  두달

감자는 눈치가 빨라서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신접살림을 끝내야 한다는 걸 안다.

오랜 세월 경험으로 습득한 데이터를 유전자에 기록한 것이다.

저 무뚝뚝한 감자가 태양의 앱을 깔고 수 천 번 업그레이드를  했다지. 

우리만 약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재빨리 줄기를 키우고 꽃을 피워 올린다.

오뉴월 태양이 머리를 달구고 연초록 잎이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눈치 구단 감자는 이미 꿍꿍이를 차린다.

태양이 흘린 빛의 조각들을 재빨리 긁어모아 가둘 줄 아는 애늙은이다.

감자와 태양의 텔레파시.

짧은 시간에 감자가 저축한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작은 태양은  우리가 호흡하는 또 다른 산소다.

인간이 누리는 수많은 빛의 은혜 중 짧은 시간에 물리적으로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얼마나 될까.

 

 

수더분한 감자가 마실을 나서는 계절이다.

덕분에  포실한 감자를 삶아 먹으며 세월 간다고 한탄도 하고,  왜 이모양으로 사나 원망도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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