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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가을이야기19.. 명화속의 가을

by *열무김치 2019. 11. 9.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의 <알리스캉의 가로수길>

 

 

 

 

                                                                   (부산 해운대에 있는 고흐의 그림과 닮은 가로수 길)

 

 

부산 해운대에는 네덜란드의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풍경화  알리스캉의 가로수 길과 꼭 닮은 가로수 길이 있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

사실 저렇게 비슷하게 생긴 가로수 길을 찾으라면 전국에 꽤 있을 것이겠지만 유명화가의 그림과 비슷한 길을 우연하게 발견했다니  우연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닌 셈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특색 있는 지명을 만들어 지역을 홍보하고 나아가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그림은 반 고흐가 1888년 프랑스 아를에서 친구 폴 고갱과 함께 두 달 동안 머물면서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일생을 가난하고 불운하게 살다 간 화가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어두웠던 생활과는 반대로 그의 그림은 밝은 기운이 돋는 작품들도 많은 편이다.

이 그림은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6630만 달러(717억 원)에 팔렸다.

반 고흐는 평생 동안 한 점의 초상화 그림이나 붉은 포도밭이라는 풍경화 그림을  팔았다고 하는데 전해지는 것과 달리 이후에도 여러 점의 작품들이 팔렸다고 주장하는 곳이 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박물관은 고흐가 자신의 생애 중 몇 점의 그림을 팔았는지 정확히 모른다고 밝히고 있다.

(고흐는 그의 파리의 첫 그림을 페인트 및 아트딜러인 줄리앙 탕기에게 팔았다. 그리고 그의 동생 테오는 그의 그림을 런던에 있는 갤러리에 성공적으로 팔았다. 고흐가 1888년에 그린 (붉은 포도원) 은 고흐의 친구인 외젠 보흐의 누이인 안나 보흐가 샀다)

고흐의 박물관이 이렇게 밝혔지만 학자들은 고흐가 생애 중 그 닥 많은 그림을 팔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시대가 흘러 고흐의 그림이 수백억대의 천문학적인 금액에 팔리는 걸 보면서 묘한 생각이 든다.

우스개 속담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긴다는 말이 있는데 정작 불운한 생을 살다가 간 그의 생애가 거액의 그림값과 극한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종교와 미술을 가까이 하며 한때 미술상으로, 감리교회 목회자로 일했지만 가난한 주변사람들을 보면서 회의를 느끼게 된다.

마침내 그는 벨기에의 탄광으로 가 가난한 광부들을 도우며 선교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구제사업을 하게되지만 그일로 고흐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방황하던 고흐는 선교사업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닫고 평소 고흐의 재능을 알아본 동생 테오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거의 독학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나갔다.

고흐는 고향을 떠나 프랑스와 주변도시를 돌며 화가의 견문을 넓히려 애를 썼지만 화가로서의 정착을 하지 못한 채  변방을 돌며 불운하게 살았다.

한 때 파사로, 고갱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기도 했지만 가난과 매춘에 찌들은 그의 괴팍스러운 성격으로 인해 그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대립하면서 고독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고흐는 생을 마치기 전 몇 해에 걸쳐 수 십 점의 작품들을 남기게 되는데 처절한 무명화가로 이어지는 그의 고단한 여정은 그나마 친분이 있었던 고갱이 그의 곁을 떠나자 회복불능의 상태로 빠져들었고 마침내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다가 1890년 37세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추수 풍경. 1888년 6월. 캔바스에 유화. 빈센트 반 고흐 재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Rijksmuseum

 

 

 

   ▲ 생을 마치기 전 1889년 투병생활 중 그린 자화상(Self-Potrait) 1889, 캔버스에 유채화(Oil on canvas), 65 x 54cm,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 Paris, France  

 
"나의 사랑하는 동생, 테오야.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고 너에게 항상 말해왔지만, 사실 너는 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영원한 동반자란다. 내가 항상 너의 의견과 생각을 나의 그림에 반영했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야. 아무튼 나는 그림에 내 운명을 걸었으며, 이제 그 반은 성취한 느낌이란다.  나머지 반은 어쩌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같이 인정 많고 사랑 많은 사람은 나에게는 없다. 나는 항상 너와 같이할 것이며, 결국 내 그림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줄 것이야.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느냐..."  (생을 마치기 전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후대에게 큰 유산으로 남는 그림이나 음악 등의 작품들의 뒤안길엔 어두운 인생의 그림자들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신이 인간에게 달란트를 주실 때 그 달란트가 빛을 내기위해 제 살을 깎아내야 하는 연마과정을 주시는 것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남다른 재능을 지닌 인간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명암이 분명해서 그 명암으로 인해 빚어진 작품들이 결국 후대들에게 복음이 되기 때문이다.

고난이 없었다면 얻어지지 못했을 결과물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베토벤의 운명은 베토벤의 귀가 먹지 않았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작품인지도 모른다.

비록 왕 서방이 고흐의 작품을 팔아 막대한 이득을 남겼지만 그의 지난한 생이 만들어 낸 세기의 작품들로 인해 후대들은 역사가 남긴 명화라는 이름으로 큰 위안을 받는다.

이 위안은  편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성을 파괴해 가는 디지털문명의 독소를 제거하는 대언자다.

후대들이 그림에 매겨놓은 천문학적인 그림 가격은 금전의 액수를 논할 수 없는 절대가치로 비쳐 질만 하다.

거액의 그림 가격으로 인해 명화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면 그림이 이윤을 추구하는 투자대상으로 비쳐진다고 해도 작품에 매겨진 가격자체가  대중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쓸쓸히 저물어 가는 가을에 만나는 고흐의 작품엔 역사는 이긴 자의 펜으로 쓰여 진다는 말을 逆說로 들을 만하다.

 

 

 

 

 

 

 

부산이고, 해운대에 있어서 저 길이 유명해 졌겠지만,
열무김치님께서 보여 주신 올 가을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제 고향을 몇년 전 찾아서 계단식 논 윗 쪽에서 내려다 보이는 벼가 익어가고
있는 풍경은 정말로 맘 짜릿할 정도 였습니다.
그렇게 찾아서 볼 수 있는 것은 것은 쉽지 않고,
아랫 쪽 그림은 보는 각자의 맘의 눈으로 보아 집니다.
남해안 다랭이마을을 가셨네요.
하긴 다랭이마을 말고도 그런 장소가 더러 있다고 합니다.
가을과 고흐는 어딘가 닮아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흐 제가 참 좋아 하는 화가이지요
그가 좋아 그에 관한 책들도 수집하고 고흐에 관한 영화 몇편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영화중 커크 더그러스가 분한 장면이 제일 닮았습니다.
파리 오르세 미술간에서 그의 작품외 미술교과에서 보던 명화를 직접 대했을 때의 감격이 기억납니다.'
여행중 가장 뜻 깊었던 일은 고흐가 마자막 시간을 보내다 자살한 "오베르 쉬르 오아즈"를 방문하고 그가 그림을 그렸던 시청,오베르 쉬르 오아즈 교회,까마귀날던 밀밭 위치-마지막으로 고흐와 테오가묻힌 묘지를 찾아 간 일입니다.
수백억씩에 팔리는 현시대에 서서 생활비와그림 재료를 사기위해 동생에게 기대었던 고흐의 심정은 어떠했을 까 짐작해봅니다.
상상은 자유롭고 상상의 날개로 기쁨은 커집니다.
고흐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 더 반갑습니다.
가을의 막바지를 충분히 즐기시기 바랍니다.
고흐에 관한 영화는 저도 dvd 한 편이 있는데 좀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여행을 통해 직접 대하셨다니 감회가 남다르시겠다는 생각입니다.
더구나 고흐의 무덤까지 가셨다니.

작가가 지고나면 그의 작품이 빛을 보는 일이 지금도 많은데 예술의 눈은 경험철학으로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가 봅니다.
철부지 시절에 날아들었던 부산!
천지분간 못하던 나이에 만난 남편과
살림을 차렸던 그곳을
방황하던 나를 데리고 대구로 떠나왔을때나
지금이나 ᆢ
그닥 부산에 살며 가볼만한 곳을
즐기며 살지 못햇단 생각이드네요
칠흑같이 어두운 신리 둔덕에 홀로 나와 앉아서
고향을 그리듯 ᆢ부산을 그리워한적도 있었는데
다시금 부산에서의 생활들이 떠오르네요
미술시간에서 배운 고흐를
철학적으로 포스팅해주신 덕분에
몇번을 반복해서 읽어보곤 합니다
그러다
저는 잠시 가수 김광석이 오버랍 되네요
그분이 살이있다면 꼭 공연보러 갈터인데 ᆢ
김광석을 좋아하시네요.
말씀을 듣고보니 그의 노래나 생애가 좀 닮아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신혼시절을 참 드라마틱하게 보내셨네요.
아마 두고두고 회상하실겁니다.
저 역시 수채화님이 대화 신리 때문에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반고흐 전을 보려고
서울 시립미술관을 찾아서
두.세시간 가량의 긴 줄을 서서 들어갔던 때가 생각납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줄 서 있을때의 마음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에 그 시간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생활에서 나는 아직도 반고흐를
그냥 해바라기 작을 그린 화가라고 생각하며 지낼 것이다 싶어요.
다시금 반고흐 전이 온다면 한번더 달려가야지 싶습니다.
좋은 추억을 떠올렸네요
해운대 저 길이 어디즘 일까요?
저도 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검색을 하면 지명이 나오겠지요.
계시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다녀오세요.
그리고 그곳에서 고흐를 떠올리시면 특별한 길이 되겠군요.

두 세시간을 기다려 만나본 고흐의 작품전
기다림으로 인해 오랜간 기억에 남으실 것 같습니다.
천재작가들의 삶은 대체로 당대에 큰 각광이나 인정을 못받고
후세에 비로사 빛을 발하는...그래서 더욱 사연이 유명하고 애틋한가 봅니다.
고흐도 마찬가지고 베토벤도....
우리나라도 빛을 다하지 못하고 불운하게 가신 시인 작가분들....
그래도 그 작품들이 내내 우리 곁에서 회자하고 잇으니
하늘나라에서라도 흐뭇해 하실것 같아요.
50-60년대 예술가들이 더 애틋해 보여집니다.
노벨 문학상을 보면서 이웃나라 일본보다는 더 위대한 작가들이 많은 우리나라가 왜 그 반열에 들지 못하는지...
노벨상도 국력의 위치가 상당한 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해학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화가들도 고흐 못지않다고 봅니다.
초야에 묻혀버린 위대한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세월이 더 가면 빛을 볼 작가들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고흐의 그림 사진첩이 있는데
오늘 다시 꺼내봐야겠단 생각을

살아 불행했던 화가를
죽고나니 알겠더라라고 한 화가의 그림

고흐는 지하에서 많이 억울하겠단 생각도
지하에 잠들어 있는 고흐가 자신의 그림이 수 백억에 팔린다는 걸 알면 기뻐할까 슬퍼할까...
얼른 대답을 할 수 없겠네요.
이제야 사람들이 나의 진가를 알아보는구나.
기뻐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살아 있을때
그궁핍한 생활을 생각하면

좀 억울하지 않을까요 ㅎ
여기 와서 보는 고흐의 그림들은 더욱 좋은 느낌입니다.
음악이 곁들여져서 무슨 카폐 같은 데서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그림 같아서일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예술의 전당이나 또 어디서 본 그 고흐의 그림들을 더 열심히 봐 둘 걸 그랬구나 싶기도 하고,
고흐의 영혼의 편지를 얼른 꺼내어 읽어야겠다는 조바심도 일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밤이어서 가을의 끝자락이 서글퍼집니다.
말씀을 둗고보니 어제밤에 비가 내렸네요.
비가 내리면 대개 기온이 큰폭으로 떨어지는데 그렇지 않다보니 앞 초등학교 은행나무에 아직도 잎이 많이 달려있습니다.

이곳 예술관에서 미술전이 열리면 대부분 찾아가 봅니다.
횡성댐 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이 가끔 열리더군요.
하지만 막상 찾아가보면 관람객이 너무 없어서 작품앞이 썰렁해 보이고 웬지 미안해집니다.
어디선가 고흐전이 열리면 찾아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을이야기의 끝무렵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군요
유명하여 익히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고흐
초상화를 한참을 들여다보고 갑니다
힘든상황에서 그림만이 그의 위안이 되어주었으리라
천문학적인 숫자에 팔리는 그의 그림값으로 후손들이 득은 볼 수 있으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아마 후손들은 큰 관계가 없지 싶습니다.
예술작품 경매시장이 냉혹한 자본에 의해 움직이니 우리들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큰 차이가 있을겁니다.
가끔 전혀 엉뚱한 장면을 대합니다만 예술과는 거의 관계가 없을법한 부호들의 창고에 엄청난 작품들이 잠들어 있다고 하니 예술품들이 대중들에게 다가가 삶의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순진한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모 대통령의 창고에서도 예술품들이 대거 쏟아져나왔으니까 멀리 볼 것도 없지만요.
고흐의 가을도 그림처럼 아름다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의 생을 기억하며
오늘은 `Vincent` 그 노래를 들어야겠습니다
그렇지요.
적어도 범인들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애가 탄탄대로였다면 그만한 작품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분법인 잣대를 들여밀고 적어도 명성을 떨치는 세기의 작품들에겐 특별한 사연이나 장구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우긴다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이 부분은 철저한 신의 영역이라는 생각입니다.
<빈센트>라는 노래를 듣다가
반고흐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반 고흐를 읽다>를 읽고
고흐에 대해서 궁금즘이 좀 풀렸어요.

글을 읽노라니 그때 독서한 시간으로 돌아간듯 합니다.
명화속의 그 길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 길을 거닐면서 잠시나마 고흐의 삶을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고흐는 무덤에서 본인의 작품이 이렇게 고가로 팔리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요.
그림 재료값과 당장의 생활비를 걱정했던 고흐의 처지로서는 지금의 그림가격에 대해 유구무언이겠지요.
작품의 가격을 떠나 소장인들이 그 가치를 잘 보존했으면 합니다.
그림가격이 있으니 투자가치를 위해서라도 환경이 좋은 곳에서 보관을 할 가능성이 크니까 그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고흐가 아를에서 그린 그림들은 밝은 분위기가 많으네요.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놓은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가슴 아프기도 하였구요.
고운 한 주 되십시오
남녘의 가을풍경이 참 좋더군요.
하늬바람님이 담아내시는 풍경은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이 있습니다.
고흐의 그림에서 풍기는 색채가 가을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추수 풍경>은 저희집 거실에 걸려있습니다.
그런데 해운대에 저런 길이 있나요?

지도를 찾아보니 대충 알겠습니다.
저기는 바다와 좀 떨어진... 외진 곳이기도 한데요.
가을이 가기 전에 한 번 들러봐야겠습니다.
하하..
등잔밑이 어둡기는 언덕님도 같네요.
원래 학교에서 제일 가까이 사는 아이가 지각을 맡아놓고 합니다. ㅎㅎ
혹여라도 가시거든 꼭 사진촬영을 해서 올려주세요.
고흐에 대한 언덕님의 포스팅을 보고 싶습니다.
"오매, 단풍 들것네."
설악에서 시작한 단풍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스며들더니
내장산에는 중국 단체 관광객들까지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단풍구경인지 사람구경인지 이런 인파는 처음 봤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단풍도 아름답지만 떨어진 낙엽도 아름다운 계절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군요.
지금 남녘은 단풍이 절정에 이르지 않았을까 합니다.
9월에서 11월까지의 나무들의 화려한 춤사위
우리나라 참 좋은나라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길입니다.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이 유명해지기전 세상을 떠나고
그 어렵던 삶이 애잔합니다.
과거만 그런 게 아니고 지금도 비슷하지 싶습니다.
예술가들이 살아생전 빛을 본다는 게 그리 쉬운일이 아니지요.
고난으로 인해 빚어지는 작품들이 후대에 빛을 내는 건 어쩌면 신의 뜻인지도 모릅니다.

비바람에 낙엽이 무더기고 쏟아지네요.
떠날때를 아는 자연의 섭리가 인간이 느끼는 쓸쓸함과 달리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남을 날 평안하세요.
우선 뛰어난 예술가들을 보면
궁핍에 견디는 힘이 강했고
그럼에도
절망하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제 살을 깎아내는 고통에도
영혼은 늘 맑았던것 같구요

예술엔 청맹관이지만
디지털에 밀린다는게
안타깝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남는건 영악스런 계산 뿐이라 ....

그러나
그틀은
누구에게도 보여지지 않을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만고에 없을 행복을 누렸을것도 같고 ......^^
육신의 고달픔이 외려 맑은 영혼을 만들었을거라는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가난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데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 같구요.
신께서 그런 환경이 아니면 도저히 탄생할 수 없는 후대에 전할 작품을 위해 한 영혼을 희생의 제물로 삼지 않았을까 하는 다소 과장된 생각을 해 봅니다.
고흐가
저승에서 얼마나 억울할까ㆍㆍ

그림 외에도 문학 음악
그리고 사진에도 그의 영향이

살아 생전에 인정 받아
그 외롭고 가난한 삶이 좀더 여유가 있었다면

이런 생각도 한 번 해 봅니다~~~""


고흐의 그림 속에 나오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처음 봤을 때
딱 그 나무 같더라구요
이탈리아에서
나무를 하나만 가져가라면 어떤 걸 가져 가겠느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남편은 사이프러스
저는 올리브나무였죠

지금도 키워보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대요

그나저나 부산에 고흐의 그림속 가로수길이 있다구요
부산 가끔 가는데 찾아봐야겠어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고흐의 삶을 이해할 것도 같은..

안그래도 부산에 가면 꼭 찾아가 보려 합니다.
집에 고흐의 복사본 작품이 몇 점 있는데 가능하다면 진품 한 점이라도 소장하고픈 욕심이 듭니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화가지요.
그러나 정작 작가의 생이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니 대작은 그냥 탄생하는 게 아닌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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