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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10.26, 그리고 문무대 그 아가씨들

by *열무김치 2017. 1. 5.

 

10,26 사태가 일어난 후 계엄군으로 서울에 진입한 내가 소속된 부대는 육군사관학교 근처에 태릉에 주둔해 있었다.

낮에는 연병장에서 착검을 한 채 데모진압 훈련을 받고 밤에는 야외텐트에서 잠을 자는 식이었는데 초겨울로 진입하는 11월의 날씨는 견디기 힘들만큼 고역이었다.

완전군장을 한 우리들이 시내로 행진을 할 때 는 주변풍경과 우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 때문에 그런대로 견딜만했으나 저녁을 먹고 야외텐트로 들어 간 후에는 몰려오는 추위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도 한창때의 젊음으로  긴 밤을 버티어 냈는데  일과시간 중 햇볕이 잔잔해지는 오후에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모두들 조느라 정신이 없었다.

11월 중순

만추의  거리는 떨어지는 낙엽과 서늘한 바람으로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나라에서는 국가의 원수가 시해되는 엄청난 사건이 불러온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계절은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햇볕이 심심한 오후의  도보에 앉아 우리는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거니는 연인이나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다보았다.

모두들  말이 없었고 더러는 군인의 신분도 잊은 채 우수어린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다 보았다.

거리를 거니는 그들에게 국가의 비상사태는 별일 아닌 것 같았고 일상은 언제나 그랬던것 처럼 평온해 보였다.

낙엽 속삭이는 거리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앉아 있을까.

우리에게 저 아름다운 풍경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리고 분주하게 대열을 가다듬으면 우리는 다시 거리를 행진했다.

해가 떨어지기 바쁘게 야외배식이 이루어지고 저녁식사가 끝나면  물이 부족했던 탓에 각자의 식기세척을 위해 긴 줄을 서야했는데 이것 또한 보통일이 아니었다.

 

12.12 사건이 있은 뒤 우리부대는 문무대로 자리를 옮겼는데 우리에게 그 일은 대 사건이었다.

우선 반듯하게 지어진 내무반에서 잠을 잘 수 있었고 먹고 씻는 문제가 여유로워 졌다.

무엇보다 교육이 없는 주말엔 빨래도 하고 TV를 시청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 중 가장 반가웠던 것은 계란 한 개와, 빵 한 개, 우유 한 팩, 한 알의 사과로 짜여진 간식이 매일 나왔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별 것 아닌 것이었지만 당시 이만한 간식이 주어진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우리들은 아이처럼 그 시간을 기다렸다.

예외 없이 데모진압훈련은 이어졌으나 쉴 수 있는 주말이 주어지고 맛 나는 간식이 매일 나오자 훈련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끔 문무대 체육관이나 연병장에서 영화를 보여주곤 했는데 기억으로는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나바론, 빠삐용, 황야의 7인 등이었다.

그러나 찬바람 부는 서늘한 연병장에 앉아 영화나 위문공연을 보는일은  간단하지 않아서 모두를 내켜하지 않았다.

 

 

 

 

어느 주말이었다.

생기발랄한 아가씨들이 통기타를 들고 우리부대를 찾아왔다.

가끔  모 어머니회에서 떡과 음료를 들고 찾아온 적은 있었으나 싱그러운 아가씨들이 여러 명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연병장이 아닌 내무반에 작은 무대를 차리고 노래를 불렀는데 온 포 대 원들이 아가씨들이 왔다는 말에 기겁을 하고 몰려들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웠기에 그녀들은 고깔모자의 산타복장을 하고 기타를 치면서 캐롤과 가요를 번갈아 불렀다.

부대원들은 입을 벌리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칠세라 열심히 바라다 보았다.

가장 환호를 받았던 부분은 그녀들이 산타복장을 벗고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나서서 현란한 춤과 함께 팝송을 불렀을 때였다.

시국이  그런데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모습이어서 처음엔 깜짝 놀랐으나  물오른 아가씨들의 관능적인 춤에 모두들 입이 딱 벌어졌다.

윤기 흐르는 피부와 빛나는 머리칼, 유려한 허리라인, 풍만한 엉덩이를 흔드는 육감적인 몸놀림이 이어지자 우리들은 동공이 풀린 채 정신 줄 을 놓고 있었다.

그 중 일부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괴성을 질렀는데 그 순간을 참지 못한 몇 명이 무대로 뛰어나가 그녀들을 얼싸안자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이내 부대장이 그들의 공연을 중지 시켰고 분위기는 이내 싸늘해졌다.

부대장이 그녀들에게 다가가 무언가 의논하는 것 같더니 이내 무대가 치워졌다.

당황한 그녀들이 악기를 챙겨 자리를 뜨기 무섭게 우리들은 완전군장을 꾸려 연병장에 집합했다.

그  중 그녀들을 안았던 몇 명은 앞으로 불려나가 사정없이 얻어터졌다.

구보로 드넓은 연병장을 얼마나 돌았을까.

오후부터 심기가 불편했던 하늘에서는 눈이 날리고 있었다.

힘에 부쳐서 내뿜는 부대원들의 허연 입김이 흩날리는 눈에 섞여서 허공을 날았다.

그러나 우리들은 완전군장의 고된 구보 후에도 그녀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모두들 아쉬워하고 있었다.

혼쭐이 나도 좋으니 그녀들을 다시 보았으면 싶었다.

" 아, 그 눈동자, 뽀얀 얼굴, 매끄러운 피부, 휘어지는 부드러운 허리..걔들은 사람이 아니야."

"아..난 그 아가씨 풍만한 엉덩이를 생각하면 미치겠어."

두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던 국문학도 사병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실실 웃었다.

한창 피 끓는 젊은 날, 모진 환경에서 마주한 그녀들은 아가씨들이 아닌 천사였다.

 

우리들이 그녀들을 다시 만난 건 타 부대원들과 함께 위문공연을 보던 때였다.

모 방송국에서 가수들이 위문공연을 왔는데 그들의 공연이 끝나고 그녀들이 그때 모습으로 다시 나왔던 것이다.

타부대원들과 함께 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난번과 같은 공연을 했음에도 별다른 제지는 없었다.

우리들은 반가움에 우루르 앞으로 나갔다.

그녀들은 그때와 같이 미니스커트를 걸치고 현란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혹시나 몰라 괴성을 지르는 부대원은 없었지만 그녀들의 공연이 익어가자 타 부대원들이 난리가 났다.

아니나 다를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무대 위로 뛰어나갔고 무대는 삽시간에 군인들이 몸을 흔드는 파티 장으로 변했다.

우리들은 겁이 나서 모두들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렸지만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들이 조용한 노래를 부르자 춤을 추던 대부분의 군인들이 무대를 내려왔고 몇 몇이 그녀들 주변에서 아쉬운 표정을 짓다가 모두 내려왔다.

부대장은 별다른 표정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후로도 20여분 가량 공연이 더 이어졌고 우리들은 아름다운 그녀들의 몸짓을 놓칠세라 열심히, 아주 열심히 바라다보았다.

농익은 그녀들의 표정은 가끔 어머니 같았고 누나 같았다.

부대원들은 나지막히 신음을 토했고 일부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나 역시 뭐라고 표현할 수없는 마음으로 그녀들을 바라다보았다.

오랜 간 만나지 못한 아내의 모습이 스쳐갔다.

그것은 발산하지 못 한 젊음의 욕정만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각박하기만 했던 군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이 되어 있었다.

연이 끝나고 내무반으로 들어왔을 때 그녀들이 섹시하다, 한 번 사귀어 봤으면 좋겠다는 말도 있었지만 대부분 두고 온 여동생이나 애인, 그리고 가족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것은 처음과 달리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 그녀들을 보았을 때는 참기 힘든 육감적인 이성으로 바라보았으나 두번 째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들의 모습에서 잠시 떠나 있었던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린 것이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냥 가만 두었어도 자연히 정리가 될 일인데 ..

부대장 그 놈이 희한한 놈이지. 분명 집구석에서 마누라한데 쥐어뜯기거나 열등감에 쩔은 놈일지도 몰라.

아니면 연애를 제대로 해보지 않은 놈이거나."

포대 군종사병이 부대장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38년 전의 기억이 되어버렸다.

그 아리땁던 미니스커트의 아가씨들은 어디서 늙어갈까.

 

 

 

 

좋은 아침입니다! 소한이지만 다행히 그리 춥지는 않네요
새해 행복을 주는 사람이란 단어가 떠 오르는군요.
새해엔 블로그 이웃들과 즐거운 한해로 마음을 주고 받는
귀한 시간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보람있는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이 글, 참 좋습니다.
그날 그 현장의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글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 그런 분위기를 이만큼 보여주기는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리땁게 늙어가면 좋겠지만 사는 건 노래나 춤이 아니니까 그냥 우리처럼 늙어가겠지요. ㅎ~
안녕하세요....^^
겨울중 가장 춥다는 소한입니다.
날씨가 따뜻하여 다행입니다.
그래도 건강 챙기시며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데모진압.. 야외텐트..
글 읽으며 요즘 군인들은 한마디로 꿀을 빨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ㅋ
어제 샘이한테 전화가 왔는데 하루동안 부식담당일을 하게 되었다며 꿀을빨고 있다고 좋아하더군요.
내무반에 전화가 두대 있어서 언제든 가족과 통화를 할 수 있습니다.
큰애는 군대에서 가장 어려웠던 훈련이 혹한기 훈련이었다고 해요.
너무 추워서 얼어죽을꺼 같아 동기들이랑 껴안고 밤새 한숨도 못잤다고 했었는데
열무김치님은 그런 혹한기 훈련같은 경험을 너무 자주 하셨던 거군요.
군대 얘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합니다.
요즘 군대는 뜨거운 물 원없이 쓸수 있고 모두 개인 침대에서 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밖에서 근무서는 일은 힘들어 죽을꺼 같고 안에서 하는일은 꿀빠는 일이라고 좋아하네요.ㅎㅎ
열무김치님께서는 격동기 우리 역사와 함께 하셨군요.
멋지십니다.^^
빛바랜 사진에서 긴세월과 뭔지 모를 아련함이 느껴집니다.
혹시 운전대 잡은 분이 열무김치님? ㅎㅎ
오래전 일도 참 잘 기억하시고 글을 쓰시네요.
부대장님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요..ㅎㅎ
위문공연 왔던 그 미니스커트 천사 아가씨들도 지금은
거의 손자가 있는 할머니들이 되어 있겠지요.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쓰시는 열무김치님
참 대단하십니다!!
앞으로 일어날 또 다른 일은 알 수 없고 그 때의 계엄상황에서의 소설같은 일화입니다.
군대 경험은 누구나 힘든 때가 많이 떠오를 겁니다. 춥고 배고프고, 알지못하는 집합에 구타에...
문선대인가요? (저희 때는 그리 용어를 썼습니다.) 공연을 왔는가 봅니다.
젊은 혈기에 무대로 뛰쳐나갔을 병사의 돌출행동, 이해가 갑니다. 기껏해야 20대 초반의 아가씨들이었을 테니
얼마나 가슴설렜겠습니까? 그래도 지성의 소유자인가요? 뒤돌아보면 저 아가씨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나 또한 그리운 가족이 있는 몸, 서로를 존중해야겠다는 마음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는가 봅니다.
옛 군대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납니다.
제가 복무하던 후방 부대에도 문선대 위문공연이 왔는데
대구 인근의 밤무대 가수들을 불러 모은 듯했습니다.
다들 아주 야한 옷차림으로 디스코 노래를 불렀는데
공연이 끝난 후 부대장 cp에서 장교들과 맥주 파티를 하더군요.
회식 준비를 하느라 하루 종일 괴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정작 위문 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엄한 사람만 즐거워진 자리였지요.
무슨 단편소설을 읽듯,재미나고
군대 간 사람들은 더욱 공감갈듯 합니다

울서방이 군에 있을땐 가수중에
이은하가 가장 인기 있었다고 하대요
통통한 몸을 마구 흔들며 춤추던 그녀를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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