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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夜半逃走

by *열무김치 2014. 6. 13.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라고 시작하는 유행가가 있었다.

아니,그게 언제 적에 나온 노래여?

이 양반 말하는 거 보니 아주 푹 삭은 꼰대네.

 

왜 하필 앵두나무 우물가에서 바람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앵두의 붉은 빛깔을 바라 보노라면 피 끓는 젊음의 연정이 동 할 수밖에 없었으리란 짐작이다.

한창 피어나는 여인의 붉은 입술을 수많은 과일 중에 꼭 집어 앵두에 비교한 걸 보면, 앵두는 후대 사람들이 19세기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

그대의 입술이 앵두 같다는 표현이 전혀 낮 간지럽지 않았던 때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었다.

그러나 그 애끓는 표현은 평범함을 거부했고 그로 인한 억제된 소소한 觀淫症은 자신도 모르게 젊은 날을 기웃거리게 만들었다.

창조주가 여인에게 앵두 같은 입술을 허락한 게 얼마나 합리적인가.

만일 여인의 입술이 산적 두목같이 생겼다면 인류는 진작에 망했으렷다.

 

앵두 같은 그대의 입술이 그리운 밤이오.  어쩌구...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글거릴 만큼 상투적인 문구지만  빛나는 젊은 날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이처럼 강렬한 사랑의 표현도 없었다.

말 뼈다귀 같은 사람도 한때 나마 시인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앵두 같았던 여인의 붉은 입술은 세월 가면서 동시대를 살아간 남성들에게 순악질 여사의 입술로 변해간다.

모두 종족 본능의 기능이 쇠퇴 해 지는 변덕 많은 남자들 탓이다.

그럼에도 그 후광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역사는 실상 이런 유연함으로 후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정작 앵두나무 흔하던 시절엔 남녀의 애정 행각이 녹녹지 않았다.

동네 어른들 눈길이 도도해 연애질이 쉽지 않았던 때라,  전설의 고향에서 자주 등장하는 물레방앗간이나 보리밭 밀밭은 역사를 이루기에 아주 좋은 장소로 익히 알려져 있었는데, 요즘처럼 벌건 대낮에도 아예 대놓고 스킨십을 해대는 젊은이들이 과연 애틋한 기다림을 타고 흐르는 그 짜릿하고  황홀한(?) 맛을 알기나 할까?

주인 몰래 따먹는 사과가 더 맛나듯, 곁눈질 방해거리를 피해 긴박한 타이밍에서 극한값으로 이루어 지는 남 녀의 도킹(docking) 은 우주 정거장에서 이루어 지는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의 도킹보다 더 뜨겁고 숭고하며 다이내믹 하다.

그러나 이제 농촌에서 보리밭이나 밀밭을 만나기도 어렵거니와 보리밭을 망쳐가며 사랑을 속삭일 젊은이들이 없다.

가슴 한 편 옛 기억을 숨긴 노인들만 남았다.

 

마당 한쪽 귀퉁이에서 멀뚱하게 익어가는 앵두를 땄다.

앵두나무 우물가 처녀는 그만두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는데도 용케도 제구실을 했다.

먹을 사람도 그러하니 보기나 좋게 놔두자고 했더니 이내 타박이 돌아왔다.

"따기 싫다고 이실직고를 하시오"

 

한국전쟁 때 미군이 버리고 간 포탄 껍데기로 만든 허름한 종을 돌멩이로 텅텅 치면 동네 꼬맹이들이 열 댓 명 모여 들었다.

산골 교회당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일학교 교사가 두 사람이 있었다.

남자 선생님은 나이가 많았고 여자 선생님은 어린 우리들이 보아도 앳되어 보였다.

집구석에 있어봐야 소 꼴이나 베어 오라는 엄마 잔소리나 들을 테니 난 일요일만 되면 부리나케 교회당으로 내달렸다.

어쩌다 주전부리도 얻는 행운도 있었으니 나중에 집에 들어가 엄마한테 혼쭐이 나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여자 선생님은 옷을 환하게 입고 머리도 예쁘게 꾸미고 나와서 우리들 앞에서 춤을 추면서 노래와 율동을 가르쳤다.

나는 그 여 선생님이 좋았다.

나를 볼 때마다 환하게 웃어 주는 보름달 같은 얼굴이며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좋았다.

서투르게 따라 하는 율동이나 노래도 그랬거니와 실감 나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재미에 빠져 난 한번도 거르지 않고 교회당에 쫓아 나갔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노래도 부르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난리가 났다.

갑자기 커다란 지게 작대기를 든 아저씨가 교회당 안으로 들어서더니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고 교회당 안의 물건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우리들은 한쪽 구석으로 몰려가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그 아저씨는 말리는 남자 선생님의 멱살을 잡고 마루 바닥에 꿇어 앉히더니 이내 여선생님의 머리채를 낚아채어 밖으로 끌고 나갔다.

예배당 안은 엉망이 되었고, 놀라서 쫓아 나온 목사님이 그 아저씨를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선생님이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아저씨에게 달려 들었다.

"선생님께 그러지 마세요."

그러나 난 이내 땅바닥에 엎어졌다.

"이놈의 종자들이.."

 

일요일이 되었지만 두 선생님은 교회당에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날 보고 교회당에 나가지 말라고 하셨지만 어린 마음에도 걱정이 되어 어머니 몰래 계속 나갔다.

몇 주 후, 두 선생님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교회당에 나왔지만 여선생님은 잘 웃지도 않았고 노래나 율동을 가르치는데도 맥이 빠져 있었다.

예배시간에 늙수그레한 목사님이 나와 지켜보고 있어서 우리들은 신나지도 않았다.

몇 주 그렇게 재미없는 시간을 보냈는데 갑자기 두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두 선생님 대신 나이 많은 목사님이 우리들을 가르쳤는데 너무도 재미가 없어서 아이들이 하나 둘 빠지더니 나중엔 나와 친구 두 명만 남았다.

선생님들이 왜 보이지 않는지 궁금했지만 알 방법이 없었다.

알고 있는 거라곤 그 여 선생님 집이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자집이라는 거였다.

교회당에 나가는 횟수도 점 점 줄어 들었다.

어느날 꼴짐을 지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창수가 나를 보더니

"야, 나, 선생님들이 어디로 갔는지 안다. 밤에 몰래 둘이서 도망갔대. 너 몰랐지?"

나는 꼴짐을 지고 부리나케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 선생님 두 사람이 도망간 거 맞아? 왜 몰래 도망을 간 거야?"

 

"고걸 어떻게 알았노? 니가 그게 뭐이 궁금 한데?  빨리 소 꼴 이나 더 베어오지 몬하나.   대그빠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사랑의 야반도주를 한 두 사람은 어느 하늘 아래서 늙어갈까.



 

 

 

작년 고궁 뒤뜰에서 본 앵두나무,
올해 처음 이곳에서 탄성을 지르며 봅니다.
알알이 터질 듯 어찌 이리도 영롱한지요.

사랑의 야반도주를 아니 해도 되는 싱겁고 멋없는 시절이라
앵두나무도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 동네는 추억을 여태도 간직하고 저리도 곱게 고향 마을 지키고 있었군요.
아마도 서울 고층 아파트에서 이 앵두를 그리워하며 손주들 쓰다듬고 있을 테지요.
그 주인공 님께서는....

하하...꿈보다 해몽이 더 좋습니다.
마당에 앵두나무 한그루를 심었는데 해마다 붉은 열매를 내어 줍니다.
먹는 사람이 별로여서 그렇지 보기는 참 좋네요.

붉은 과일이 보기 어려웠던때라 젊은 남녀의 연애감정을 여기에 빗댄것 같은데 그 은유법에 감탄 합니다.
바로 고거이..
사랑의 모습이겠지요...?
야~반~도~주~~ ^^* ㅋ
야반도주를 할 만큼 죽고 못사는 그 연애 감정이 물질이나 사회적 위치등을 각별히 따지는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힘 든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시 그시절로 돌아가 야반도주룰 할만큼 연애를 해 보았으면 좋겠네요.ㅎㅎ
ㅎㅎㅎ 어느 동네에서나 일어났을 법한 일이지요
누구와 누구가 얼레리꼴레리 해서 밤기차 타고 떠나버렸다고
앵두나무는 말하자면 우리 재래종 체리니께 열심히 잡수셔요
하하..얼레리 꼴레리..
누구네집 숟가락이 몇개라는것 까지 달달 외울만큼 서로의 집안 사정을 잘 아는 동네가 대부분이라 야반도주를 했다하면 동네가 들썩할 만큼
난리가 났지요.
저도 그런거 몇 번 봐 놔서리..
이야기 정말 재미있게 넘어갑니다. 옛 이야기지만 너무 즐겁네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주도 여전히 바쁘고 힘들었지만
주말만은 마음을 풀어놓고 쉬어야겠어요
오늘도 행복한 마음 가득이시길 바래봅니다!
감사 합니다.

요즘 중부지방은 너무 가물어서 큰일입니다.
밭작물이 배배 꼬일만큼 땅이 메말랐습니다.
촉촉한 다음주를 기다려 봅니다.
휴일 남은시간 평안 하세요.
어린 시절을 생각케하는 추억의 앵두이네요
요만때는 포리똥나무라는 것도 있었는데
그게 보리수라고 하드라구요
포리똥나무가 딱 우리키만 했을 때 손만 뻗으면 빨간 열매를 딸 수 있었는데
얼마나 예쁜지 내내 황홀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운 그시절입니다.
열매도 예쁘고, 잘 익은 보리수는 맛도 괜찮답니다.
열매가 달린 모습이 정말 아름답지요.

6월도 중순으로 갑니다.
즐거운 한주 맞으십시요.
물에 씻어 소쿠리에 건져놓은 앵두
한 알 입에 넣고 싶습니다.
어쩜 저리도 아름다울까요?

부모가 무섭다고 사랑이 깨지지는 않지요.
아마도 두분은 아름다운 노후를 보내고 있겠지요.
재미있습니다.
아름다운 노후를 보내고 있겠지요. 분명..
사랑의 맹세를 따라 선택한 길이니 후일 부모님도 용서를 하셨겠지요.

6년전 앵두나무를 사다가 마당에 심었는데 이제는 제법 많은 열매가 달립니다.
열매가 자꾸 마당에 떨어져 청소하기 귀찮아서 따서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맛 보다는 나무에 달려있는 모습이 아름답고 보기 좋습니다.
앵두나물 우물가에 선생님이 바람이 났네요 ㅎ
별도 이 노래를 써먹은 적이 있지요
그 여선생님을 좋아해서 교회를 나갔다고 봐야겠어요
피도 안 말라가지고 그런거나 알라고 해서 엄마한테 꿀밤 맞은 것은 아닌지요
우리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연애라는 것은 부정이나 다름 없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리 숨기고 도망가고
연애가 흉이 되던 시절이 그래도 그때가 좋아보이기도 합니다 ㅎ
그 선생님은 어떻게 늙어가나 찾아보십시오 ㅎㅎㅎㅎㅎ
그럴까요?
아마도 많이 늙었지 싶습니다.
마음속에는 나를 바라보며 웃어주던 보름달 같은 하얀 얼굴만 남아 있는데요.

야반도주를 할만큼 사랑의 힘이 강하긴 합니다.
동네 우물가에 누구누구 눈 맞아서 도망 갔다더라 하고 흉을 보면서도 부러워 했다고 합니다. ㅎㅎ
옛날의 사연을 들으니 별도 떠오르는 게 있어 생각좀 해봐야겠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달라던 그 누나, 별이 조치원에 있을 때 서울 전릉에 산 것으로 기억나는 그 누나 ㅎㅎ
방학때마다 갓던 외갓댁에서 먹어본 앵두 그맛이 좋아서
요즘도 앵두만 보면 샷을 터뜨리며
앵두 한알씩 따먹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요 몇년간 앵두를 못보네요...

도망 갈수 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랑의 용기
야반 도주한 두 선생님들이 궁금하군요
황혼을 잘 보내고 있겠지요...
도망을 갈만큼 사랑의 힘이 강하지 못했으면 우리 후손도 존재하지 못하겠지요.
사진을 잘 찍으시는 분이시니 앵두의 붉은 열매는 좋은 작품감이겠다 여겨 집니다.
뚝배기보다 장 맛이라듯 앵두가 딱 그렇습니다.

좋은 한주 맞으십시요.
당연한 일이 일어난 것이죠.
제 고종사촌 누님은 모두 네 분인데 그 중 둘째 누님은 연애가 들통나서 집을 나갔고,
그 길로 여군에 입대했다가 서울에서 혼자 시집을 갔었습니다. 참 오래된 얘깁니다.
1966년, 미아리, 그렇게 시집을 간 누님댁을 찾아가서 오랫동안 쳐다봤었습니다. '그렇게 그러더니 이렇게 사네요?'

까짓거 이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일보다는, 그 일을 이렇게 쓰신 솜씨가 감탄스럽습니다.
집집마다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사연들이 숨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감정이 변할리 없지요.
여군에 입대 했고 혼자 시집 갔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아득하게 들립니다.
어릴 적 우리 앞집에는 교대 졸업 후 임용 대기 중이던 키 작고 귀여운 누나가 있었는데요.
그 누나는 교회당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유부남과 눈이 맞아서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며칠 후 집으로 끌려온 누나는 몇 년 후 우리 형이 소개한 버스회사 사장 아들과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답니다.
하하, 무릇 인생이란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아닐런지요.
야반도주했던 이웃집 누나는 사랑의 힘이 약했던가 봅니다.
붙들려 온게 잘 된 일이지요.
유부남의 한계는 분명 있으니 말입니다.
버스회사 사장아들이라..
무슨 영화제목 같습니다.
이건 해피엔딩입니다. 부러운 일입니다. ㅎㅎㅎ
해피엔딩 이라는걸 어찌 아셨을까나..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거니 해피엔딩 맞습니다.
앵두같은 입술이 순악질 여사의입술로 변해간다는 표현에 웃음이~ㅎ
어릴때 저희집에도 앵두나무가 있었습니다.앵두를 오랜만에 봅니다.
동네 마트엔 영두같은건 없으니까요.

저희 아버지도 교회에 가는걸 말리셨었습니다..
예배당이 아니라 연애당이라구여..
맞아요.
연애당이라고 했지요
사실 당시 젊은 남녀가 몰래 만나서 연애를 하기엔 교회당이 최적의 장소이긴 했습니다.
해서 시골 교회당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젊은이들이 많았어요.
지나고 보면 모든 일들이 다 아름답고 기억에 남습니다.

비가 너무 내리지 않아서 심어놓은 곡식들이 말라 죽습니다.
올해 5월 6월은 증부지방은 너무 가무는군요.
어머나~
앵두 참 예뻐요.
앵두나무 우물가에서 동네 처녀 바람났다는 말, 후훗,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ㅎㅎ

어릴 때 저희집 마당에도 앵두나무가 있어 빨갛게 익은 열매를 따 씻어 설탕 뿌려 먹던 기억이 납니다.
앵두나무를 심은지 꽤 됐는데 이젠 제법 많은 열매를 내어 줍니다.
주변에 앵두나무를 심은 집이 없어서 구경하러 오기도 합니다.
앵두나무는 겨울에도 여간해서 얼어죽지 않아 키우기도 좋아요.

야반도주를 할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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