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

편지대필

by *열무김치 2014. 6. 4.
JB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군대에서 받았던 편지글을 회상 하는걸 보고  마음이 끌렸다.

 

친구들보다 1년이나 늦은 77년, 안동 모 사단에 입영을 하고  거친 훈련을  받느라 몹시도 고단하던 때였다.

먹는 게  부실하다 보니 1주일에 한두 번 배급해 주던 건빵을 받는 날을 기다리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건빵..

군대와 건빵은 아주 희한한 관계였다.

지금도 건빵은 여전한 모습으로 건재를 과시하지만  당시의 군대 건빵은 맛도 좋았지만 자주 보는 게 아니어서 훈련병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매주 수요일인가로 기억이 되는데 그날만 되면 모두들 목을 빼고 건빵을 기다렸다.

지금 그렇게 맛나는 건빵이 있을까.

늘 군복을 빳빳하게 다려 입던 훈련교관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점호를 마친뒤 모두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교관이 건빵 몇 봉지를 들고 들어 오더니 우리 모두를 일어나 앉게  한 뒤

"에.. 혹시 대학교 국문과에 다니다 온 사람 있나? 있으면 침상 앞으로."

그러나 웬일인지 한 사람도 나서지 않았다.

"그럼 여기는 모두 중졸이나 고졸이냐? 대학 다니다 온 놈 없어?"

밍그적거리며 눈치를 보던  우리들 중 몇 명이  주위를 살피며 손을 들었다.

"전.. 국문학과가  아니고요. 다른 관데요."

"뭔데?"

"지리학과 인데요."

"면상을 보니 딱 지리학과 다니게 생겼네. 근데 지리학과는 뭘 배우냐?

땅 파는 거 연구하냐?"

동료들이 킥킥대고 웃었다.

몇 명이 무슨 과를 다닌다고 소개를 했지만 교관이 바라는 대상이 아니었는지

"뭐야, 이거.. 모두 공부도 안 하고 쓸데없는 짓만 하다가 군대 온 거야?

에라, 이 무식한 놈들아. 빨리 취침~"

짜증 섞인 소리에 우리는 모두 얼른 모포를 뒤집어쓰고 누웠다.

"빌어먹을.. 어느 놈이 무식한 건지 모르겠네."

 

 

*(옮겨온 사진)

 

 

당시 군부대에서 보내는 편지는 사전검열이 있지 않았나 하는  짐작이다.

군부대와 관계있는 내용을 쓰거나 편지 문구가  좀 야릇하다 싶으면  퇴짜를 맞기도 했으니 편지검열을 한 걸 본 적은 없지만 심증이 그렇다.

때로는 애인이나 친구에게서 온 편지를  당사자 허락도 없이 뜯어본 걸 확인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훈련을 마치고 들어 왔는데 그 교관이  나를 불렀다.

모두들 그 교관을 뺀질이라고 불렀고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터라 겁이 덜컥 났다.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나와  몇 사람이 그 교관에게 불려 가  건빵 한 봉지와 사이다 한 병 씩을 받았는데  우선 먹으라는 말에 모두들 별생각 없이 좋다고 먹었다.

먹는 일이 대충 끝나자 그 교관은 우리들을 편하게 앉게 하고 빙그레 웃으며

"자 자.. 먹었으니 그 대가를 해야겠지?

다른 게 아니고 내가 말이야. 글 쓰는데 아주 맥주병이거든.

마음에 드는 여자 친구한테 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이게 영 잘 안된단 말이야.

무슨 좋은 수가 없냐?   야, 너, 너.. 좋은 수 없어?"

우리들은 눈알만 멀거니 굴린 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서로 눈치만 살피며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번엔 명령조의 기합이 떨어졌다.

"야,  박 OO, 윤 OO, 니들 편지 쓴 거 보니 잘 쓰더구먼. 그렇게 쓰면 된다니까.

내일까지 시간 줄 테니 무조건 한 장씩  써 와. 시간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줄게."

편지지와 볼펜을 반 강제로 돌리면서 그 교관은 여자 친구에 대한 신상을 대충 알려 주었다.

 

"야, 이거 개똥 밟았네. 우리가 무슨 대서소 직원도 아니고 이게 뭐냐?"

그러면서 동료들이 슬그머니 나를 바라다보았다.

"야, 윤 OO,  너 애인 있다고 했잖냐. 어떻게 좀 해봐라."

"내가 무슨 애인이 있다고 그래."

"지난번에 그랬잖아. 너 약혼까지 하고 군대 왔다고."

이런..

 

그 교관을 잘 알지 못하는 데다 느닷없는 연애편지를 쓴다는 게 한마디로 웃기는 거였지만  어쨌든 우리 몇 명은 그 이튿날 종일 그 일로 끙끙댔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그 교관은 우리들에게 쉬는 시간도 연장해 주었고 식사 당번도 바꾸어 주었다.

어쨌든 그날 저녁 나와 동료들은 각자 쓴 편지를 들고 교관에게 갔다.

"야, 넌 뭐라고 썼냐. 쫌 보자."

서로 편지를 들여다보며 아웅 댔지만 얼른 보기에도 그놈이 그 놈이었다.

그중 한 녀석은 연애편지를 본 적이 있었다면서 기억을 짜내고 짜내서 써왔다고 편지를 보여 줬는데,  아.... 편지 내용은 경험 없는 우리가 보기에도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거 들고 갔다가 신나게 얻어터지는 거 아니냐?"

 

그 이튿날 훈련을 끝내고 들어 왔는데 교관이 우리를 불렀다.

불안한 마음으로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내 교관이 들고 다니는 지휘봉 세례가 머리로 날아들었다.

"야, 이놈들아. 앞집 개가 써도 이거보다는 낫겠다.

뭐?  바닷가 하얀 모래사장의 갈매기 같은 그대여?. 이거, 어느 놈이 쓴 거야?"

교관은 편지를 각각 들어 보이며 엊그제 준 건빵이 아깝다며  면박을 주었다.

내무반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들은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혹여나 마음에 들면 자꾸 귀찮게 할 테니.

"그렇게 잘 알면 제 놈이 쓰던가. 남 대필시키는 주제에 까다롭기는.. 에이, 재수 없는 자식.

저거 보나 마나 학교 다닐 때 받아쓰기 빵점은 도맡아 논 놈이지."

 

그러나 며칠 뒤 나를 부른 교관은

"야, 그나마 네가 쓴 게 쫌 낫더라. 너 애인 있다고 그랬지?"

"없는데요."

"다 알고 있어 인마. 몇 통 더 써 봐."

빌어먹을 일이었지만 난 마음에도 없는 편지를 몇 번 더 써야 했다.

하지만 들고 갈 때마다 면박은 여전했다.

"애인 있는 거 맞냐? 너 편지 쓰는 거 보니, 니 애인 제대하기 전에 도망가겠다.

무슨 연애편지가  이렇게 무드가 없냐? 좀 달콤하게 쓸 수 없어?  다시 한번 써 와 봐."

 

이거 큰일이다 싶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며칠 뒤 그 교관이 보이지 않았다.

"뺀질이 그 자식 어디 갔지? 안 보이네."

"다른 소대 교관으로 갔다던데. 잘 됐지 뭐.

그나저나 그 소대원들 또 건빵 얻어먹고 방귀 뀌게 생겼네."

 

 

 

 

 

 

 

건빵 숨기느라 눈물겹던 시절이 생각나요
그때는 그랬어요
여기저기 잘 숨겨서 온전히 내것으로 먹던
그 맛이 전부였어요
사실 숨길것도 없었지요
먹기 바빴으니..
온전히 내것으로 먹는다는 말이 우스우면서도 왠지 슬프게 들립니다.
이어지는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건빵이 참 귀한 것이었는데 예전엔
언젠가 국도변에서 건빵 정말 한 푸대에 만원을 받더라구요
대필하셨으면 그 당시에도 글솜씨 출중하셨을텐데 그 교관 정말 보는 눈이 없나봐요 ㅎㅎㅎ
보리건빵이라고 하던데 아예 부대로 팔더군요.
사먹어보지 않아서 맛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군대에서 먹던 맛은 나지 않을것 같습니다.
당시 군대건빵이 민간인들도 알아줄 만큼 맛이 좋았지요.
남에게 편지대필 시켰던 그양반이 혹여나 이글을 보면 뭐라고 할까요.ㅎㅎ
내가 그랬었나 그러겠지요
예전엔 글솜씨 좋은 친구들이 대신 연애편지 많이 써주곤 했어요
저희때도 고등학교때 옆학교에 맘에 드는 남자에게 쪽지를 건넬땐
필히 필체도 이쁘고 글도 잘 쓰는 애가 도맡아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모래사장 갈매기 같은 그대요...는 조금 심하긴 했네요. ㅋㅋㅋ
이보다 더한 표현이 많았지요.
짧은 지식에 온갖 미사여구를 다 갖다가 붙였던것 같습니다.
만일 지금 읽어 본다면 체증이 내려갈 만큼 재미 있을걸요
아~~
반합에다가 건빵 삶아 먹던 군바리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 ㅎ
맞아요.
건빵을 삶으면 반합 하나 가득 부풀어 올랐지요.
별사탕 가미해서 그걸 좋다고 먹었는데 회식때 특별한 안주가 없으면 이게 안주 대용으로 쓰이곤 했지요.
지금도 건빵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병들이 거의 먹지를 않을것 같습니다.
연애편지 대필 부탁하면서 타박이 대단하네요
열무김치님의 대필도 타박하다니
그 교관은 정말 뭘 모르는 분인것 같네요...ㅎ
저희 오빠의 군생활 이야기를 듣던 생각이나서 슬며시 웃어봅니다...ㅎ
늦은 밤 잰 걸음으로 다녀갑니다^^
그나마 아날로그의 아려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요즘 편지를 손수 쓰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만일 누군가에게 손으로 쓴 편지를 받는다면 그 감동이 대단할거 같습니다.
마음을 다해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으면서 되돌아 올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카톡으로 대신하는 요즘 세대들이 공감 할지 모르겠네요.
휴일 좋은 시간 되세요.
그 시절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에 배치되자
내무반장인 하사가 제게 애인에게 보낼 연애편지를 쓰라고 하더군요.
저는 애인이 없어서 제대로 된 편지를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날 밤 주임 일병이라고 불리던 고참들이 줄줄이 얻어맞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무반장이 제대하는 날까지 편지를 써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햐..
거기는 아예 폭력까지 써 가면서 대필을 시킨셈이군요.
얻어 맞으면서 쓴 연애편지는 어떻게 썼을까요.
그 내무반장은 제대하는 그날로 들통이 났을거 같은데요.
언덕에서님은 저보다는 훨씬 리얼(?)하게 잘 쓰셨을것 같습니다.
글솜씨가 좋으셔서 편지 대필을 잘 쓰셨을 거 같아요
삭막한 군대에서 덕분에 대리만족도 느끼셨을 거 같고
군대에서 편지를 쓰면 시간도 잘 가고 건빵이랑, 다른 특혜도 좀 받으셨을 거 같고
ㅎ~
긍정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대리만족을 했을까요?
고역이었던 기억밖에 없어요.
모두 거짓말로 써야 되는거니 ..
건빵은 더 얻어 먹었지만 말입니다.ㅎㅎㅎ
하하하 이것도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되겠는데요!!
제 생각엔 편지를 받은 여성도 상식을 가졌다면 이게 대필이라는걸 금방 알았을겁니다.
보나마나 차였을겁니다.ㅎㅎ
아마도 그랬을지요!
그래도!
혹시 알아요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ㅋㅋ
열무김치님
늦은 저녁에
편지 대필
애틋한 추억
좋은 글에 쉬어감에
감사드리옵고
좋은 밤 보내시기 바라옵니다
감사 합니다.
그런데 애틋하지 않으니 그게 탈입니다. 하하~
즐거우 휴일 보내세요.
♡꼭 광고만 보고 오는건 아닙니다.
감사 합니다.
편지대필 재미있는 글입니다.
예전에 우리도 연애편지 쓸때 이책 저책에서 좋은글
베껴쓰던 기억이 납니다.

윤선생님 글 잘 쓰시기에 물론 뽑히셨겠지요.
그러나 그 교관 마음에 들기는 힘들지요.
그 교관 자기가 하고픈 말이 없으니 꾀나 속이 상했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기가 많이 나으셨다니 우선 다행입니다.
오래가면 안되는데 걱정이 되었습니다.

편지를 써서 붙일곳이 있다면 써보고 싶군요.
언제 써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지리학과 다니다 온 사람이 바로 윤 아무개셨던가요? 그렇다면 저도 편입해서 지리교육과 학사, 석사 과정 다녔으니 그만해도 인연은 인연인데...... 저는 대학은 여러 군데 다녔어도 박사 과정은 구경도 못했고 쓸데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렸습니다.
그 좀 건빵 받아먹은 성의만 있었다면 두 분 다 웬만큼은 쓰셨을 것 같은데...... 가령 뭐 "이렇게 별이 총총한 밤에는 외롭습니다." 혹은 "개구리 소리가 적막을 흔들고 있습니다." "가을바람이......" ㅋㅋ
"부모님 전 상서/녹음방초 우거지는 춘절을 맞이하여... 용돈이 모자랍니다." 하던 시절이었으니......ㅎㅎ
제가 1967년에 대학 학보사 기자로 그 부대에 취재를 갔었습니다. "안동" 하시니까 온갖 생각이 다 납니다.
아주 아주 재미있는 글이어서 그럴 것입니다.
하하..
주신 그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동시에 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훈련을 받던 부대가 제 근처에 와 있지만 땀냄새 그득하던 그곳이 가끔씩 생각 나는건 참 이상 합니다.
제 생각엔 우리들을 못살게 굴던 그 교관은 틀림없이 여자친구에게 차이지 않았을까 하는데 ..
그때 써 준 편지 내용이 조악하기 그지 없었으니 말입니다.
연애편지를 써보질않아서..(ㅎㅎ)(ㅎ)
위문편지는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 시절 , 교복자율화 되었다고, 청와대에 감사편지 쓰던 기억.(ㅎㅎ)(ㅎ)
그시절 뭘 알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ㅎㅎ) 지금 보면 참..
제가 알기로는 군대 편지 심증이 맞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군사기밀때문이라고..(ㅎㅎ)(ㅎ)
그런가요(?)
위문편지는 초등학교때 위문품과 함께 여러번 써서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게 의무 사항이라.
편지 내용을 보면 거의 복사한듯한 ..(ㅎㅎ)
ㅎㅎㅎ
이 글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웃음이 터질만큼 유머스런 글은 분명 아닌데 웃음이 나는 건 뭔지...ㅎㅎ
워낙 글을 조리있고 짜임새있게 잘 쓰시지만 단편소설의 일부를 읽는 듯 해서 즐거웠습니다.
아마 열무김치님의 편지를 그 소대장이 무척 맘에 들어했을 겁니다. ㅎㅎ

추억은 아름답습니다.
지나갔기에 아름답고
회상할 수 있어서.
스마트폰이라 교정이 안되네요.
소대장이 아니라 교관. ㅎㅎ
군대 이야기와 연애편지 대필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는데
그 둘을 모두 가진 글이니 말해 무엇하겠어요.
한 참을 즐기다가 갑니다
하하...
많이 들어 보셨나봐요.
이제 그런 이야기들은 전설의 고향쯤으로 되었습니다.
편지를 언제 써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만일 너느 누군가에게 손으로 쓴 편지를 받는다면 아마 큰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리지도 모르겠습니다.
다 읽고 잼난 상상으로 벙글벙글 웃으며
아랫글 클릭하러 주룩 내려 왔는데...요....

그런데 위에 "렌즈로 보는 세상" 님 댓글이 있네요..
이분 요즘 무얼 하시느라 잠수 기간이 길어지는지...

문득 안부가 궁금합니다 ....
멀리까지 와 주셨네요.
그 성의에 경의를 표합니다.

편지대필이 지금도 남아 있으려나.
아득한 엣 이야기 입니다.

그러게요.
요즘 조용하시던데요.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월....이름 모를 산을 넘으며  (0) 2014.06.15
夜半逃走  (0) 2014.06.13
외출  (0) 2014.05.28
전원생활  (0) 2014.05.26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0) 2014.05.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