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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통지표 그리고 상장

by *열무김치 2013. 8. 6.

 

 

 

참 오래 됐다.

저 통지표를 왜 지금까지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사를 다니고 건축을 하면서 무던히도 짐보따리를 쌌는데 용케도 남았다.

혹시 다니던 초등학교에도 저 통지표가 남아 있을까?

담임이셨던 은사님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계실까.

얼마나 늙으셨을까.

빛바랜 종이에서 유년시절의 얼굴이 슬며시 떠올랐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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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학교 까지는 시오리가 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산을 떨어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당시 철길 주변을 따라서 학교를 다녔는데 지금 같으면 겁도 났으련만 우리들은 대수롭지 않게 철로를 종횡무진 넘나 들었다.

한 학년이 끝나고 난 상장을 받았다.

담임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 앞으로 나가라고 해서 전교생이 보는 가운데 앞으로 나가 상장을 받았다.

하지만 난 그게 무슨 상장인지 알지 못했다.

아이들도 시큰둥 했다.

상장 보다는 부상으로 준 공책에 마음이 더 갔다.

공책은 얼른 보자기에 싸고 상장은 둘둘 말아서 집으로 가져와 어머니께 보여 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상장을 들고 이리저리 뒤집어 보시더니 이걸 누가 주더냐 물으시곤  봉당에 던져 놓으셨다.

난 부상으로 받은 공책을 보여 드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저녁 늦게 집으로 왔는데 작은아버지가 와 계셨다.

"아이구, OO 아.

우등상장을 받아왔네. 야,  장하다."

우등상장이란 글은 읽었지만 그게 무슨뜻인지 몰랐던 나는 작은 아버지 설명을 듣고서야 그 상장이 어떤건지 알 수 있었다.

글을 몰랐던 어머니는 작은아버지 설명을 듣고 상장을 이리저리 살펴 보셨다.

그리곤 나를 꼭 안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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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살 아래 여동생이 있는데 끝순이다.

하도 딸만 낳으니 그만 낳으라는 뜻에서 이름을 끝순이로 지었는데 이 끝순이의 효험은 신통치 못해서 막내가 또 딸이었다.여동생은 끝순이라는 이름을 원수로 삼더니 기어이 개명을 했다.그것도 아주 우아한 이름으로.

하지만 나는 동생을 만나면 끝순아~라고 불렀다.

새로지은 이름이 영 어색한데다 입에서 얼른 나오지 않았다.

동생은 제발 그러지 말라며  두주먹을 쥐고 달겨 들었다.

 

끝순이는 공부는 좀 못했지만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학교 육상반에 들어 달리기 대회에도 여러번 나가 수차례 상을 받아왔다.

가을 운동회가 열리면 마지막 릴레이시합에 끝순이가 당연 돋보였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달리기 시합에 나가면 꼴찌에서 위 아래를 맡아놓고 했다.

운동회 맨 마지막 시간에 체조가 끝나고 상 하나도 못받은 사람 손들라고 해서 공책이나 연필을 나누어 주었는데 영락없이 그축에 들었다.

끝순이가 의기 양양해서 집으로 가는길에 난 끝순이한테 매달려 통 사정을 했다.

두둑하게 탄 공책이나 연필 을 조금만 나누어 달라고.

하지만 동생은 약을 올리면서 도망을 갔다.

그러던 동생이 나한테 매달리며 사정을 하는 일이 생겼다.

매학년이 끝나면 통지표와 함께 개근상장이나 우등상장을 주는데 동생은 우등상장은 고사하고 통지표에는 수, 우, 미 대신 양이나 가 가 많아서

늘 매타작을 당했다.

글을 모르던 어머니는 그날은 이웃사람을 불러서라도 통지표 확인을 하셨다.

6학년이 끝나고 난 우등상을 받았는데 4학년에 올라가는 끝순이의 통지표는 별로 달라진게 없었다.

동생은 아껴서 모아 두었던 연필이랑 공책을 내게 주면서 엄마한테 거짓말을 하자고 제의했다.

동생의 제안을 받고 처음엔 망설였지만 공책과 연필의 뇌물에 넘어간 나는 동생이 시키는대로 하자고 했다.

먼저 공책과 연필을 챙긴 나는 집으로 가서 기다렸다.

한참만에 돌아온 동생이 나를 보고 눈을 찡긋 하더니 어머니께 통지표를 잃어 버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곤 징징 우는 얼굴을 하더니, 이번에 상장을 받기로 되었는데 상장을 나누어 주다가 그만 자기 앞에서 상장 종이가 떨어지는 바람에

선생님이 다음에 줄테니 오늘은 그냥 가라고 해서 공책만 타서 왔는데 오빠도 그걸 보아서 안다고 나를 쳐다 보았다.

상장 종이만 안 받아 왔을 뿐이지 받은거나 마찬가지라고 아주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나는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한동안 바라 보시더니 가서 놀라고 했다.

동생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 올랐다.

 

하지만 그 기쁨은 저녁나절을 넘기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방문을 걸어 잠그었다.

아뿔싸..

어디서 알고 오셨을까.

그날저녁 나와 동생은 요즘말로 뒤지도록 두들겨 맞았다.

 

 

 

 

 

 

 

 

 

 

 

 

 

어릴적 추억이 주마등처럼
저도 성적표와 상장을 이때 간직하고 있더라구요
추억에 젖어봅니다
날이 많이 덥지요? 건강하게 여름 잘 나십시오
통지표, 상장
아마 올드세대들은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을겁니다.
어찌보면 개인의 역사니까요.

매미 울음소리가 아침부터 요란합니다.
저녀석도 여름의 상징인데 일부에서는 공해로 여기던데 숫자가 많아 진건지 사람들 가슴이 메말라 진건지..
누구나 성적표에 관련된 어릴적 추억들은 하나둘 가지고있지요^^
그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왜그랬나 싶을때도있지만
가끔 추억에 잠겨 그때를 회상하곤 한답니다^^
수 우 미 양 가..
지금은 이런게 없어진것으로 아는데 당시엔 아이들이 이에 민감했지요.
하위기 많을 수록 매타작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부모님 도장은 왜 그리도 찍어 오라고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입니다.
마치 단편소설을 읽은듯한 느낌이에요..ㅎ
우리막내 이모님 함자가 끝순이 인데요..
참 정감이 가고 재미있는 이름지요..ㅋ
사람은 저마다 타고나는 소질이 따로 있는거 같으죠~?
꼭 한가지씩은 잘하는거 같아요~
추억록 넘 재미나게 읽었답니다~!
오..
끝순이가 많았네요.
옆에서 보는 사람은 정감이 있는데 막상 본인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당시 개명이 참 어려웠는데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더군요.
하지만 지금도 전 끝순이라고 부릅니다.ㅎㅎ
캄캄한 하늘에 천둥소리 까지 요란하여 별로였는데
열무김치님의 통지표 이야기를 즐겨 읽다가 마지막에 삽입된
고개숙인 순둥이 같은 강아지 녀석이 그만 폭소를 자아내게 하고 말었습니다. 아주 절묘한 삽입입니다.
고맙습니다. 궂은 날 웃음을 주셔서.
좋은 글, 아름다운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제가 어제 평택을 갔다 왔는데 정말 대단했어요.
시커먼 하늘에 천둥 번개가 치는데..
왜 죄지은 사람들 괜히 놀란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놀라니 알고보면 우리모두 죄인입니다 ㅎㅎㅎ

아마도 저 통지표는 대를 물릴것만 같습니다.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다시 보아도 명작입니다.

오늘도 무척 더울 모양입니다.
바쁘신 일상 중에서도
심안의 촛점을 보다 넓고 밝음에 두고 여유로우심에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이러함이 빛의 전달이겠지요. 오늘도 힘 있게 내 디디세요.
하하하 어린시절에는 통지표가 아이들을 많이 괴롭혔지요 .
통지표를 나눠주면서 부모님의 도장을 꼭 받아 오라고 하였지요 .
그저자 심한 아이들은 몰래 부모의 도장을 훔쳐서 찍어 가기도 하고
몰래 부모님 이름의 도장을 파기도 했었지요.
지나고 보면 다 웃음거리가 가득한 추억이 되기도 하네요 .
늘 건강하세요.
당시의 아이들은 통지표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지요.
부모님 몰래 도장을 훔쳐서 찍는것도 그랬고 심지오 도장을 몰래 파서 찍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대부분 들켰어요.
요즘은 수우미양가로 평가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다 통지표가 많이 바뀐걸로 압니다.
초암님은 어땠는지 궁금 하군요.
어머.. 제가 태어나기 전 통지표예요.ㅎㅎ
저렇게 멀쩡하게 보관하고 계시다니 대단하세요.
어머님이 잘 보관해 주셔서 지금까지 가지고 계신 것이지요?
사실 저도 세 녀석들 생활통지표를 1학년꺼부터 다 보관하고 있답니다.
녀석들이 커서 열무김치님처럼 추억할 날이 있겠지요.
학창시절 공부를 아주 잘 하셨군요..
시골 초등학교였으니 잘하고 못하고 할것도 없습니다.
도토리 키재기였으니까요.
아마 성적이 형편없는 통지표였다면 저렇게 생명부지를 하지 못했겠지요.
그나마 괜찮으니 살아 남은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만보니 당시의 학교 생활사를 엿볼 수 있어서 아주 오랜 시간이 가면 이도 한 사료가 될것 같습니다.
아이들 통지표를 잘 간수 하신다니 어머님 마음은 같네요.
아.. 열무님..잘 계시지요?
통지표 연도를 보니 저보다 두살 위시군요..
저도 초등학교 통지표와 상장을 가지고 있어요..
한 번씩 책장 정리를 하다가 까마득한 추억에 젖어 보지요..

저는 당시 우리지방에서 부잣집 아이들만 간다는 학교에 입학을 했지요..
단지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요..ㅎㅎ
입학을 해보니..다른 친구들은 그 당시로는 흔하지 않은 유치원을 모두 졸업을 하고 왔더군요..

그 당시에 그 학교는 입학시험을 쳤어요..
시험볼 때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시험이라는게 지금의 아이들 학습지 수준이었어요..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어떤 것을 가지고 꺼집어 내야 하는가? 등등..

제가 유일하게 틀린 문제도 또렷하게 기억하고요..
사람을 그린 도화지를 4등분 해서 제게 주었는데
저는 그걸 무얼하라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꾸 한 조각을 집어서 시험관에게 내밀었더니..아니라고..
한번 더 기회를 주었는데..다시 한 조각을 집어서 내밀었더니..도리도리..
다음 코스로 가라고 하더군요..
조각 그림을 맞추라는 거였는데...ㅎㅎㅎㅎㅎ

제가 그때부터 띨~~한 끼가 있었나 봅니다.
그래도 합격은 해서 소위 명문 초딩학교를 졸업했지요..ㅋㅋ

열무님의 통지표를 보고 저도 추억 한조각 떠올려 보았습니다..

더운 날 건강 잘 여미세요~~

반갑습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일찍 학교에 들어 갔으니 비슷할것 같네요. ㅎㅎ
그때 그만한 학교를 다니셨으니 집안 환경이 좋으셨나 봅니다.
그때도 지금같은 일이 있었군요.

띨 ~ 한건 저도 같았어요.
말씀을 재미나게하셔서 더운데도 웃음이 납니다.
휴가는 다녀 오셨습니까?
윤선생님 글 내용과 이 강아지의 포즈가 잘 어울리네요.
어렸을 때 이런 추억이 많이 있지요.
남매의 합작이 허무러졌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 작은 아들이 통지표를 가지고 왔는데 성적을 지우고 고쳐 가지고 왔드라구요.(초등학교때)
그것을 보는 순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고쳤을까 하고 겁이나서
지금까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때 해야지요.

형이 원래 너무 잘 해서 작은 아들이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학교에서도 누가 아니라 누구의 동생이 이름이였으니까요.

그런데 중학교에 가드니 그때부터 머리가 트이드니 아주 잘하드라구요.
재수하면서 연애하느라 연대를 갔지만 (지금 아내)

작은 아들 성적 고쳐온것 보고서 절대로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지 누구와 비교를 하며는
큰일 난다는것을 배웠습니다.
[비밀댓글]
자녀분들이 여럿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형이 너무 잘하면 밑의 동생들이 묻히는건 맞습니다.
제 밑의 여동생은 중학교 까지도 공부에 취미가 없었는데 고등학교에 가더니 확 달라지더군요.
늦게 머리가 틔이는 아이가 있습니다.

일이 늦게 끝나서 지금 들어 왔는데 덥네요.
앞으로 보름정도는 더위와 씨름을 해야할것 같습니다.
한동안 비가 너무 내려서 일에 지장이 많았습니다.
더위 잘 피하세요. [비밀댓글]
ㅎㅎ
어찌나 재밌는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어릴때부터 열무김치님은 영특하셨습니다.기타도 잘치고 글도 잘 쓰시고 농사도 잘 지으시니 요즘 말로 만능인이십니다.

끝순이,
참 정겨운, 옆집에 꼭 한 둘 있을 법한 우리네 추억속 이름입니다.
개명을 했다지만 오빠에겐 익숙하게 부르던 끝순이란 이름에 더 정이 갈 듯 합니다.

저에게도 저 성적표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엄마가 스크랩해 두셔서 결혼 후 제게 주셨거든요.
아름다운 글에 더위가 물러나네요.
이제 그만 부르라는데 전 조금 아쉽네요.ㅎㅎ
클로버님도 성적표가 남아 잇군요.
슬쩍 궁금해 지는데요.
어머니께서 간직하다 돌려주실 정도면 그 정성이 대단 하십니다.
와 계시는 동안 구경 많이 시켜 드렸는지요.
사실 어디 다니는것도 요즘은 고역입니다.

당시엔 끝순이 말고 언년이, 부뜰이, 갱자등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이름들이 많았지요.
알면 알수록 참 멋진 분이십니다
어린시절의 이야기가 유명하신 분이 쓴 수필보다
더 맛깔스럽습니다 오랜만에 블로그 나들이 하고 있습니다
화면이 크니 참 좋네요 요즘 카스만 하느라고 다시 블로그로
돌아야와 할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인사 여줍고 갑니다
반가워요.
더운데 잘 계시지요?
한동안 은하수님 블이 말 그대로 불이 날 정도로 문전성시였는데 말씀대로 다시 오셔서 그 불 지피시기 바랍니다.
휴가는 잘 다녀 오셨지요?
지주 뵙기를 바랍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 하세요.
글을 심각하게 읽다가 . . . . 강아지 모습을 보면서 폭소를 터트립니다.
으하하하하하하
속죄하는 누렁이 . . . . .
ㅎ ㅎ ㅎ ㅎ ㅎ ㅎ

그래도 부족해서 다시 왔습니다.
죄질이 아주 나빠요. 뒤지게 맞는 것이 맞습니다.
어차피 종범이거든요.
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
요즘도 끝순이 동생을 가끔 만나는데 여차하면 끝순아 하고 부르지요.
그것도 사람들 많은데서..ㅎㅎ
그 동생이랑은 추억이 많이 다른 형제들 보다는 더 가깝습니다.
저도 옛물건을 함부로 안 버리는데 ,국민학교 때 것은 안 보이네요.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그 당시 우등상은 기분 좋은 일이었지요.
개근상도 있었지만 한번도 받은 일이 없었죠.
반에서 6년개근상이 딱 한명인데 대단했지요.우리학년이 130명 쯤 되었는데
당시에는 홍역예방 주사가 없던 시절이라 홍역한다고 반에서 결석하는 애들도 있었죠.

끝순이 끝례 가끔 볼 수 있는 이름이었죠.
전 거의 다 있습니다.
그게 무슨 보물이라고..
6년 개근이면 보통일이 아니지요.
제가 졸업 할때도 6년 개근이 두명밖에 없었는데 아쉽게도 두사람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지요.
그떄의 통지표를 바라보니 사람만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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