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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기타 이야기

by *열무김치 2010. 4. 30.

 

1970년대는 7080 세대들을 다 알겠지만 통기타가 주름을 잡던 때였다.

 아무데나 달겨들것같은 긴 장발에 온 동네를 쓸고다닐듯한 나팔바지를 입고  웬만하면 어깨에 통기타를 메고 다녔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좀 산다하는 녀석은  당시에 구하기도 어렵다는 12줄 기타를 메고 다니면서  여렵사리 구한 싸구려 기타를 튕기는 동네 꺼벙이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동네 노래자랑이라도 열릴라치면 그놈의 12줄 기타를 메고 나와서 긴 장발을 휘날리며  촹~ 하고  줄을 튕기면  동네 아가씨들은 꺄악~! 하고 넘어갔다.

 

동네에 기타를 제법 튕기는 녀석이 이사를 왔다.

그런데 그는 좀해서 동네 청년들과 어울리지를 않았다.

 동네 다리난간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면서 가끔은 하모니커를 불기도 했는데  멀리서 들어도 괜찮은 실력이었다.

난 호기심에 일부러 그녀석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던 어느날 멀찌감치서 그를 바라보는데 그가 나를 불렀다.

밍그적 거리다 못이기는체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가보니 그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얼굴을 거의 가리다시피한 장발은 그렇다치고 걸치고 있는 옷이 영락없는 거지 꼴이었다.

눈에 번쩍 들어온건 그가 들고있는 12줄짜리 기타였다.

오~!

난 호기심에 그의 기타를 유심히 보았다.

" 처음보냐? 어때,  한번 쳐보시지."

처음부터 반말이었지만 하는짓을를 보아하니 나보다는 몇살 위로 보였다.

주춤거리다 그가 건네준 기타를 받아 들었다.

팅 팅..몇번 퉁겨 보았지만 6줄과 달리 감각이 무디었다.

" 쫌 하는데..야, 너 어디 사냐?"
그와 난 단시간에 가까워 졌다.

 

낮일이 끝나기 무섭게 그와 만났다.

꺼벙한 차림으로 다리 난간에 걸터앉은 그는 익숙한 솜씨로 어니언스의 "사랑의 진실" 을  불러 제꼈다.

12줄 기타의 아름다운 선률과 약간 쉰듯한 그의 목소리는 묘한 여운을 주었다.

밤이 이슥하도록 그와 어울려 다녔다.

그의 집에서는 가끔  다투는듯한 소리가 들렸는데 그런 날이면 그는 어김없이 우리집으로 왔다.

그는 어디에선가 기타를 배웠던것 같다.

순서도 없이 주워 들은대로 배운 나와는 격이 한참 달라보였다.

그에게 제대로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결국 부모님 몰래 값이 제법 나가는 기타를 마련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당시 나는 입영을 앞두고 집에 내려와 있었다.

추석날 저녁에 동네에서 열리는 노래자랑에 나가기로 약속을 하고 그와 연습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밤이 늦어서 집으로 오는날이 잦아졌다.

그날도 새벽이 되어서야 기타통을 메고 집으로 들어 왔는데 이를 본 아버님이 역정을 내셨다.

불호령을 받았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그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노래자랑을 며칠 앞둔 어느날 ..

늦게 집으로 와서 잠자리에 들었다.

잠결에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해가 둥그렇게 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려고 마당을 나서는 순간 마당 구석에 눈에 익은게 들어왔다.

오~!

나의 분신과도 같은 기타였다.

기타는 아주 요절이 나 있었는데 그 옆에는 도끼가 놓여 있었다.

아~! 안돼...

 

 

할수없이 그가 치는 기타에 맞춰 연습을 하고 추석 노래자랑에 나갔다.

당시엔 반주를 하는 기기나 밴드가  전혀 없었기에 기타 하나만 있어도 성공이었다.

그날 우리는 그럴듯한 솜씨로 노래를 불렀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먼 이웃동네서 온 아가씨들에게 오빠 소리를 들은건 물론...

그때 불렀던 노래가 가수 홍민이 번안곡으로 부른 "고별"이란 곡이었다.

당시 홍민을 비롯한 김세환,윤형주,양희은, 송창식은 통기타로 대변되는 쟁쟁한 가수들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아버지께서 노래자랑에 구경을 오셨다는 것이다.

 

얼마 남지않은 군 입대를 앞두고 마음이 심란했다.

가을로 접어 들었기에 이것저것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을때였다.

어느날 저녁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셨다.

군에 가거든 딴마음 먹지 말고 군생활 잘 하라는 말씀을 하시곤 벽장에서 뭔가를 내리셨다.

두툼한 집에 들어 있는건 기타였다.

"이거..내가 사왔다.

잘 몰라서 무조건 비싼걸로 달라고 했는데 맘에 들려는지 모르겠다."

.........

 

군에서 전역을 하고 함꼐 기타를 치던 그를 찾았지만 그는 내가 군대를 간 그해 겨울에 어디론가 이사를 갔다고 했다.

여러군데 수소문을 했지만 더이상 찾을길이 없었다.

혹시 모르겠다.

어디선가 그가 이 글을 보게 될지도..

 

세월 흘러 아버지는 가셨는데 무슨 미련이 남아 줄마저 끊어진 기타를 지금까지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55

 

기타 야기라면 저도 사연이 있습니다
언젠가 제 블럭에서 보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해서 작년여름 우연히 집앞공원에서 <추억의 청바지,통기타 7080>이란 동호회가
주일저녁이면 공연을 하는걸 우연히보곤 열성팬이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못다한 통기타의 미련이 아직도

실은 저..내일 친척집에 결혼식이 있어 원주에 갑니다...
강원 인터불고 호텔이랍니다..
길이 막힐것같아 기차표를 예매 했습니다..
간만에 혼자서 기차여행을 하게 되었네요
원주하면 이젠 열무님 생각이

5월의 첫날
부서지는 햇살만큼이나 찬란한 5월 되십시오*
아..
그런 공연도 있었군요.
7080 세대가 층이 너무 두꺼워 앞으로도 이 문화는 상당히 오래 갈것으로 보입니다.

원주에 오신다구요.
허..
저는 반대로 인천으로 갑니다.
물론 결혼식 때문인데 11시라 일찍 가야 합니다.
흠..
만나뵐수 있는 기회인데..

기회는 또 있겠지요.
잠시라도 즐거운 기차여행 되세요.
싸한 그리움과 추억이 숨쉬고 있네요.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간만에 안부 전합니다.
조금 복잡해서 정리가 되면, 자주 올 수 있을련지...
저도 통기타의 노래가 그립습니다.
가성도, 입만 뻥긋도 아닌, 가슴에서 나오는 심금을요..
그래서 다시 읽게 됩니다.
하시죠/
반가워요..
잘 지내셨지요?
안그래도 늘 궁금 했지요.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정말 반가웠어요.~^&^
뭐든 전 디지털 보다는 아나로그가 좋습니다 ,
예전앤 통기타 인기 짱이였는데 ,,,,
저도 내일 예식이 있어서 이곳 익산에서 경기도 파주로 야간일 끝나고
올라갑니다 , 예식의 게절인가 봅니다 맛깔스런글 잘읽고 갑니다
디지털에 거부반응이 있는 세대가 우리세대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도 세월은 변하니 어쩝니까.

잘 댕겨 오이소~
열무김치님 음악을 많이 아시는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역시 멋쟁이시네요.
지방에서 그때 키타를 치셨으니....
지금도 키타 치시면 좋으실텐데요.

우리집은 남편이 먹구사는것 때문에 하고 싶은것을 못했다고 합니다.
요즘 기타을 배우는데 손이 굳어서 말을 않듣는데요.
육이오로 음악 공부를 않해서 악보도 못보는거예요.
악보 보는것부터 공부를 하니 아주 볼만합니다.
국립도서관에 가서 악보 복사해다 공부 하지요.
그러니 사법고시 공부하는것 같이한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루이틀에 되는것이 아니니까 매일 둥당둥당 벌써 6달째입니다.
공부는 젊어서 해야 하지요.
당시에 웬만하면 저런 겉멋을 부리고 다녔으니 잘 알고 말고 할것도 없습니다.

글 읽으면서 엄청 웃었습니다.
둥당둥당 6개월..
하하~

그래도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눈에 그려 지는군요.
사법고시 공부하듯 한다는 말씀이 너무 웃겨서...눈물이 납니다.

이왕 시작 하셨으니 좋은 결과 맺으시길 빌겠습니다.
음악은 다른 공부와는 달라서 어느정도 타고난 끼가 있어야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만 노후에 누구나 도전할만한 분야 같습니다.
형수님 만나실 때 기타가 작용했다고 읽었던 것 같은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전 걸음마할 때부터 집에 형들이 치던 기타가 있었는데도 배우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기타 굉장했지요.
산이고 바다고 젊은이들 있는 곳에는 항상 기타가 중심에 있었고
여름방학에 놀러가려면 역 광장에서부터 기타 소리가 시끄러웠지요.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회사가 통합이 되면서 제 신분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어서 몹시 심란합니다.
내일까지 책 한권을 읽고 감상문 열장을 써야하는데
하루 종일 인터넷 소설만 읽으면서 소일했습니다.

금년 봄은 참 더러운 계절이군요.
그 많은 사람들이 기타를 쳤지만 제대로 배운 사람은 많지 않았지요.
아마 그당시 세고비아 기타는 없어서 못팔 지경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합니다.
지금 손이 굳어서 그때만큼 되지를 않는군요.
그래도 가끔 기타를 들곤 했는데 어느순간부터 사는걸 핑계로 완전히 멀어졋습니다.

그런일이 있군요.
마음이 심란 하시겠네요.
그런데 감상문은 왜 쓰셔야 하는지..

저역시 시장이 바뀌면서 이런저런 압력으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오랜 경력도 계시니 좋은 쪽으로 가리란 믿음을 두어 봅니다.
늘 긍정적으로 사셨으니 기운 내십시요.
열무김치님의 젊은날 이야기에 푹 빠져 어찌 읽어 내려왔는지 모릅니다.
잔잔함에 제 가슴이 울렁였고,
그 장발머리 청년과 어울리며 기타를 배우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습니다.
기타를 참 잘 치시겠습니다.
열무김치님의 기타 솜씨에 동네 처자들 여럿이 몸살을 앓았겠습니다.
열무김치님의 기타 연주를 듣고싶은 욕구가 벌떡 일어나니 어쩌죠
아버님의 깊은 사랑에 제 코끝이 찡했습니다.
기타에 아버님 사랑이 서려있으니 부디 소중히 잘 간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철없던 때의 이야기지요.
당시엔 괜찮은 실력으로 인정을 받았는데 지금은 ...손 놓은지 오래 됐습니다.
당시에 녹음한 카세트 테입이 여러개 있었는데 좀 찾아 봐야겠네요.
혹시 찾으면 염치불구하고 한번 올려 보겠습니다.

늘 응원을 해 주셔서 다음을 떠나지 못합니다.
감사 합니다.
소중한 추억이니 가슴에 곱게 간직하십시오.
지금 만들고 싶어도 만들지 못하는 귀한 이야기가 되어 있으니....

정말요
테잎이 있다면 꼭, 꼭 올려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
열무김치님처럼 좋은 이웃이 계셔서
삶이 겁습니다.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
음악도 줄여두고..
푹 빠져서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네요..
그 장발머리 청년은 지금쯤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요? 멋진 해후를 할 수 있으면 좋을터인데..
열무김치님은 청년시절에도 무척이나 감성이 풍부하셨나봅니다..
그리고..넘 멋진 아버님이시구요...
저 기타 줄 이으면 연주할 수있으려나 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녹음한 카세트 테입 꼭 찾으세요..^^
글을 쓰면서 그때의 일을 생각 했습니다.
꼭 만날날이 오겠지요.
끊어져 없어져버린 기타즐을 사와야 겠습니다.
줄을 매어 놓으면 휘기때문에 빼 놓은것인데 어디다 두었는지..
오늘 몹시 더웠습니다.
그래도 한기가 물러기니 모두들 좋아 하는군요.
좋은 휴일 맞으세요.

늘 좋은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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