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없는 시선,
바짝 여윈 초췌한 얼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당신만의 언어
밤과 낮의 구분이 필요 없는 단조로운 일상
밤 낮 이어지는 분변 물과의 씨름
어머니의 요즘 일상이다.
102세를 맞으신 어머니는 작년 여름부터 조금씩 빨간 신호등이 켜지더니 이제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실만큼 사셨고 떠날때가 되어서 그런 것이니 그것은 하늘의 뜻이요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한 세상 잘 살았으니 떠날 때 무슨 미련이 있으랴.
훌훌 버리고 속히 떠나야 한다.
그게 모두를 위한 일이다.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일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후일, 병마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연명하느니 후손들에게 짐이 되지 말고 속히 떠나는 게 본인이나 후손들에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하여 조금이라도 활동력이 있을때 미리 서약을 해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게 다 맞는 말일까?
정말 그런가?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동서고금 장수를 꿈꾸지 않은 이들이 없다.
무병장수라는 단서가 붙지만 늙어 무병장수는 없으니 이미 이 거 하나만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라는 속담은 수많은 세월이 후대들에게 귀 띰으로 남겨놓은 유산이다.
우리는 늙어 병들고 죽는 일에 관하여 되도록이면 먼 훗날로 미뤄두기를 좋아한다.
성서엔 부모를 잘 섬기면 후대가 복을 받고 장수하며 그 장수는 축복이라고 하면서도 결국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결론을 내린다.
보는 사람에 따라 시야가 다르겠지만 사람의 명은 인간이 결정지을 수 없는 하늘의 일이다.
존엄 사를 말하고 연명치료 중단을 말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나 처한 환경의 속박이나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후손들의 자기 합리화다.
분명 상황에 따라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절박한 경우도 없지 않다.
숨만 쉬고 있을 뿐, 더 나아진다는 희망도 없이 끝없이 들어가는 병원비와 이에 따르는 극심한 갈등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모른다 라고 항변한다.
제 3자의 도덕적인 눈으로 바라보다가 막상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이면 모두 맞는 말이다.
긴병에 효자 없고 병수발에 있는 재산 다 탕진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고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게다.
문제는 그 명을 인간이 어찌 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부모의 육신을 빌어 하늘로 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우리가 자신이나 남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강제하거나 변형시키는 일이 하늘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철학이나 사고로 애 둘러 합리화 시키거나 포장할 수는 있어도 결코 정당화 시킬 수 없는 일이다.
물리적인 방법을 통해 상대를 가격하거나 괴롭히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나이 듦에 뒤따르는 불편한 시선들 역시 사회적인 폭력이다.
인간은 나이들어 늙으면 어떤 방법으로 든 어디엔가 의지할 수 밖 에 없다.
그 의지의 대상이 사회의 시스템이던, 후손이던, 아니면 종교 던 간에 이는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죽음을 책임 진 조물주의 프로그래밍이다.
우리는 처해진 환경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죽는다.
더 편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우리들이 바라는 바 우아한 죽음을 맞기를 바라지만 그건 우리들이 하기 좋은 말이지 우아한 죽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한시적인 생을 살다가 가는 우리에게 태어남의 기쁨과 분홍빛의 젊은 날, 그리고 힘겹게 살아야 하는 중년기, 마침내 늙어 병마와 고독에 시달려야 하는 노년기는 영원과 영원 사이에 놓인 시간세계 안에서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노년의 고독은 괴롭고 쓸쓸하지만 그 스스로 맡겨진 사명이 있다.
그러함이 없다면 필연으로 떠나고 속히 피어남이 없기 때문이다.
그 피할 수 없는 과정을 인간 스스로가 제어할 수 없음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다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해결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 자유의지는 내 생명이나 타인의 생명을 시대의 변화나 사회적 합의에 따라 가감하거나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 내면에 숨겨져 있는 카르텔이다.
그 기조는 고령사회에서 초 고령 사회로 이동하는 은빛사회에서 또다른 바벨탑을 세울 확률이 커졌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초 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속도가 빠른 나라다.
지금도 피부로 느끼겠지만 고령인구 1000만을 바라보는 15년 안팎의 멀지않은 미래엔 사회적으로 무슨 합의가 이루어질지, 또 노인을 대하는 후손들의 시선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시선으로만 본다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
가을을 불러다 기어이 데려가고야 마는 화려했던 봄날은 오고 오는 후대들에게 본을 심기위한 신의 뜻이다.
꽃잎을 떨군 늦가을 나무들을 볼품이 없다고 자를 수는 없는 일이다.
또다시 피워올릴 푸르름과 화려한 꽃잎이 보이지 않는 시공간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무와 닮았다는 걸 논한다면 이는 핑계치 못할 불변의 가치다.
노인이 된다는 것과 노후를 살아가는 일을 이미 물리적인 자연으로 증명했음에도 우리는 삶의 순환에 따른 생산성이라는 고약한 잣대를 대어 미래의 부가가치를 위해 속히 청산 되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른가지에 보이지도 않는 실바람이 불면 우리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증명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다.
우리는 이 물리적으로 나타나는 변화에 대해 가슴보다는 머리로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신은 이미 우리들에게 모든 걸 다 보여주고 우리의 삶의 방향을 알려주었다.
가을단풍이 곱듯 인생 말년도 누구나 거쳐야 할 소중하고 이름다운 길이다.
비록 아프고 괴롭더라도 이는 나무가 잎을 떨구고 다시 새봄을 준비하기 위해 혹한의 시기를 맞이하듯 다음세대를 위해 본향으로 떠나기 위한 아름다운 과정이다.
노인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꽃과 나무를 보면서도 바뀌지 않는다면 이는 생명과 죽음을 마련한 신을 우습게 아는 일이다.
왜 우리는 수 십 년 교육을 치르면서도 늙음에 관하여 너그럽지 못 할까.
첫 사진의 꽃은 수만개일텐데, 그 봄은 가고 지금은 겨울 삭막한 가지만 있겠지만, 그렇다고
봄이 되어서 새싹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새싹이 피어나고, 꽃송이가 피어나고, 꽃잎은 꽃비처럼 내리겠지요.
그러면서 녹색 숲을 이루고 바람도, 햇빛도 안아 주면서 전송하면서 또는 바람을 따라 가겠지만,
그 본연의 실체 나무는 죽은 듯 겨울을 또 견디어 내겠지요.
열무김치님께서 많이 도우시겠지만, 부인께서 체력의 한계를 넘으시겠습니다.
생각의 갈등, 체력의 한계 어찌 넘길실까? 걱정이 됩니다.
쓸쓸하실 맘에 응원을 보냅니다.
모르시는 것도 아닌 책임 없는 말로 심사가 더 혼란스러우시지요?
어쩌면 모친께서 자신께서도 의식하시지 못해도 지금이 정리중이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열무님의 어머니는 좀더 긴 여정을 걸어가며 자연의 멋진 풍경을 천천히 볼수 있어서 참 좋으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든든하고 살가운 아들 며느리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덜 외로우셨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병상에 입원 중인 제 엄마를 3년째 케어하면서 엄마의 외롭고 고독함을 지켜봐야 하는 죄스러움에 마음이 아프고
인생이 뭔가,라는 생각과 사람이 왔다가 가는 것이 이런 모습일까, 여러 생각을 하게 하고, 순간 문득 눈물바람을 한 시간이 많았어요.
침상에서 점점 굳어가는 엄마를 보면서 세수시켜드리고 딸기 먹여드리고 한두마디씩 농담할때 엄마가 웃어주면 부자가 된것 같고....
점점 꺼져가는 불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네요. 열무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비밀댓글]
아무래도 어른들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봄"을 한 줄 한 줄 여느 때와 다르게 최선을 다해 해석하며 읽었습니다.
어느 한 가지도 제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늙고 병들어 죽는 일을 최대한 미뤄두게 된다는 것부터 그 예입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도 장년층, 노년층을 자신들과 별개의 그룹으로 여기는 걸 발견하고
그것이 노인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든 아니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저도 그럴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의 기본 특성 중 가장 핵심적인 특성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참으로 감명 깊은 글입니다.
직접적인 말씀이어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 효성과 노력에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더불어 연로하신 자당께서 조금이라도 편안하신 시간을 영위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어찌할까 무엇이 답일까 결론은 없습니다.
장기기증을 서약 하면서 제가 저에게 바라는 것은
내 삶에 미련이 남을까봐 조금이라도 남을 위해 나눠 줄 수 있을때 가는 것에
최선을 걸어보려는 결단입니다.
하지만 막상 102세에 닿으면 어느것 하나 물려 줄수 있는것이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미는 그렇습니다 언제까지든 사시는데로 사셔야지요
너무 오래 살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자식을 앞세웟을때 드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일 없도록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서라도
영육간에 강건하십시요 !!
93세였던가? 몸을 다 사용하고 닳을대로 닳으니 영면을 하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모님과 열무김치님 정말 대단하세요.
우리 부모님은 70대까지 할머니를 모시고 사시다가 도저히 케어를 할수 없으셔서(치매)
요양원에 모셨고 요양원에 가신지 1년쯤되어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우리도 나중에 자식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요양원에서 지내다 가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 요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근무하며 노인분들의 죽음을 자주 접하게 된다고 해요.
같은방을 쓰시는 노인분들도 고문일거 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한분씩 한분씩 눈앞에서 사라지는걸 보며 사셔야 한다는게..ㅜㅜ
이런 얘기를 들으며 열무김치님 어머님은 행복한 노후를 지내고 계신단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100세(였는지 104세 였는지 기억이 잘안납니다.)이신 할머니를 모시고
산길을 억지로 운동삼아 걷게하시는 그분 아드님은 의외로 50대로 젊으셨습니다,
도대체 몇살때 아드님 둘을 낳으셨는지 가름하기가 어려운데 그 할머님의 주민들록증을 보여주더라고요.
요즘에야 요양원도 있지만 제 어릴때는 없던 것으로 압니다.
100세이셨던 제 증조할머님이 계셨는데,몇살때 돌아 가셨는지 모릅니다.
제 친할머님이 모신것은 아니었고,제 할아버지의 큰형님댁에서 같이 사신 것으로 압니다.
제가 5-6살무렵에 그 증조할마니께서 저를 무릎에 앉히시고 인삼미루꾸라고 부르던 캔디를 입에 넣어 주셨지요.
큰할아버지(목사님)는 일제때 독립운동하시다가 감옥에서 돌아가셨지요.
아마도 큰할머니께서 잘 모셔서이신지 증조 할머니께서 오래 사셨습니다.
열무김치님어머님께서 그렇게 102세 되시도록 사실수 있으신 것도 다 열무김치님 내외분의 정성이 많으셔서지요.
어머님께서 정신이 없으시면 양노원에서 지내게 하시면 어떤가요?
저는 지금 열무김치님 부인 건강이 많이 걱정됩니다.
제 친정어머님 지금 한국나이로 올해 90세가 되셨습니다.만으로 88세십니다.아직 어머님은 반찬도 만드십니다.
열무김치님 어머님일이 열무김치님 만의 일이 아닙니다.제 어머님도 곧 그렇게 되시겠지요.
미국에는 나라에서 나이드신 분들의 복지가 어느 정도, 자식이 없건 있건 나라에서 보조금도 나오고,의료혜택도 줍니다.
우리나라도 차차 좋아지고는 있다는데,이제 선지국대열에 들어 갔다고 하니,
나이드신 분들을 모시고 사는 자식들이 다 부담하게 하는 일이 없어지지 않았는지요?
제 친정어머님은 소유빌딩도 있어서 수입이 보통 젊은이들보다 좋습니다.또 어머니 집도 있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보다 다 받으실수는 없으시지만 나라로부터 의료혜택을 많이 보조 받는 것으로 압니다.
저는 가끔 어머니뵈러 친정에 가고 있습니다.아직 어머니께서 동생들과 같이 사시면서
어머니 스스로 목욕도 하시고 또 걸어 다니시고,
동생들 직장갔다 올때 쯤에는 별식반찬(생선조림등)도 만드십니다.
그러니 동생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것이 아니고.어머니께서 동생들을 데리고 사시는 셈입니다.
지금은 어머니께서 청소나 다른 부엌 일은 하지 않으시고 오직 반찬만 몇가지 만드십니다.
열무김치님이 올려 주신 꽃이 슬프게 보이네요.
어떤 꽃이던 꽃이 피면 지는 것을 ...
요양원에 모시지 않고 집에서 모시니 그 고통 괴로움 그저 느껴지지요
한집에 함께 사셨던 할머니의 죽음에 친정 아버지가 한동안 얼마나 슬피 우셨는지 모릅니다.
그후..
일찌기 사랑하고 존경하는 큰 오빠.올케언니.. 2년을 두고 하늘나라 가셨지요
그후 몇년후에
어머니를 보내드렸습니다.어느 죽음 하나 슬프지 않은게 없습니다..만
그래도 그렇게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은 그래도 사실만큼 사셨으니깐..하고 차라리 그렇게 받아들이겠는데
오빠와 올케 언니를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이 미여지던지요.
죽음에 대하여 ..
그리고 아무리 나이가 많으셔도 남의 어머니에 대하여 글을 씀이 참으로 힘듭니다.
지금의 어머니가 계시고 ..잠시 시골에 모셔둔 친정 어머니가 계신.
아내분의 고달픔에 가슴이 아픕니다.
그리고 늘 미안해 하시는 열무님을 생각합니다.....................................................**
저는 숙연해지는 글에 그 어떤 글도 내먀음을 쓸수가 없네요
솔직하지 못한 마음이 들통날까봐
자식된 도리가 어찌 연세들은 부모님을 내몰라라 할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근본이 부모님이신데.....
다만...부모된 입장에서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은 마음이라는 최희준씨 노래 가사처럼,
아들딸이 잘되라고, 행복하라고....그래서 부모된 입장에서 자식들에게 좀이나마
짐을 덜어내려는 마음에서 이지요.
103세까지 장수하심도 다 자식들의 정성된 섬김의 공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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