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갔다가 속이 상해서 나왔다.
꼭 넣어준다던 물품대금이 입금이 되지 않아서 마음이 초조해졌기 때문이다.
맥이 빠져서 은행 앞 낡은 간이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보통은 이런 식이다.
사람이 속이는 게 아니라 돈이 사람을 속인다고 합리화 해보지만 딱히 달라질 것도 없다.
의자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꺼운 옷을 벗어던진 하늘거리는 초봄의 하늘.
움켜쥐면 한 웅 쿰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옅은 구름이 가늘게 웃고 있었다.
봄이구나.
우리가 어떤 변덕을 부려도 싫은 기색도 없이.
달래, 꽃다지, 냉이, 씀바귀...
햇볕 단아한 담장밑 장독대에서 겨우내 숨죽인 장을 퍼다가 투박하게 버무려도 밉지 않았던 얼굴.
시어터진 김치에도 솟지 않았던 침샘이 터지고 모처럼 두 눈이 밝아지던 날
길게 머리를 땋은 열여덟 누나가 그렇게 웃고 있었다.
사랑채 아궁이에 앉아 쇠죽을 끓이는 누나 머리에 청포같은 봄햇살이 반짝였다.
봄시샘 겨울끝자락이 남긴 고뿔을 앓고 난 나른한 봄날.
이제 동동걸음을 시작한 버들 같은 햇살이 여전히 미열이 남아있는 이마를 간지럽히면 동그마니 기대어 앉은 툇마루는 엄마 품처럼 포근했다.
그 봄볕에 누워있는데 난 이렇게 먼 강을 건너왔구나.
이렇게 봄날은 또 사랑을 시작했는데.
누군가 옆에 앉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벌건 대낮에 누워있는 꼴이 이양반도 딱한 처지구나 하는 눈빛이었다.
머쓱하여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화물차가 서있는 골목으로 나섰다.
나른한 봄볕에 주인을 기다리는 화물차가 졸고 있었다.
어떡한다?
어디서 돈을 채워야 마감이 가능 할 텐데.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어림도 없다.
계산기를 두드리다 현기증이 나서 차창 문을 열고 멍하니 밖을 내다보았다.
속도 방지 턱을 넘느라 안간힘을 썼지만 다시 내려오길 여러 차례
팔순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고물이 잔뜩실린 수레를 온 힘을 다해 밀고 있었다.
좁은 골목에 저렇게나 높은 방지 턱을 해 놓다니..
얼른 내려가 수레를 힘껏 밀었다.
갑자기 수레가 쑥 올라가자 할머니가 깜짝 놀라셨다.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는 숨소리가 매우 거칠었다.
"누구신가?"
고물상까지 밀어드리겠노라 말씀을 드린 뒤 할머니 대신 수레를 밀었다.
작은 바퀴가 달린 임시로 개조된 수레는 크기에 비해 너무 많은 짐이 실려서 잘 굴러가지 않았다.
아니, 이 걸 어디서부터 밀고 오신거지?
고물상 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어서 한참을 밀고 가야했다.
할머니는 얼른 따라오시지 못하고 여러 차례 길가에 주저앉으셨다.
"아니, 윤 씨가 무슨 일이여?"
나를 알아본 이웃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사가 시원찮아서 이렇게라도 대신해 보려 구요."
할머니가 뒤따라오자 이웃 분은 손가락질을 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돈 냥깨나 하겠구먼."
약간 언덕이 진 고물상에 이르자 고물상 주인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다 보았다.
"주스 아저씨가 웬일이래?"
"흐흐..잘 좀 쳐 주세요."
할머니가 들어오시자 고물상 주인이 빙그레 웃었다.
"오늘은 일찍 가게 됐네. 고맙소."
"이거 얼마나 받아요?"
무게를 재던 고물상 주인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큰소리로 말했다.
"요즘 고물값이 형편없어서 몇 푼 안 돼요."
"엄청 멀리서 오셨는데.. 저도 힘들게 끌고 왔어요."
"예, 예. 그래서 후하게 쳐 드립니다."
오천원 짜리 한 장과 천원 짜리 두 장을 받아 든 할머니가 그 중 천원을 내게 내미셨다.
"이거, 하드라도 한 개 사 먹어."
하도 권하시기에 천원을 받아 들었다.
허리춤에 돈을 넣으시는 할머니 뒤로 고물상주인에게 돈을 건넸다.
"저기요. 이 거 제가 가거든 할머니께 드리세요."
얼굴의 땀을 훔치던 고물상주인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오늘은 저 할머니가 곱배기를 하셨네. 정말 힘겹게 사시는데 .."
화물차를 너무 오랜 간 세워두었다는 생각에 급하게 고물상을 빠져나왔다.
은행 앞 골목을 빠져 나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미안 , 미안, 입금이 좀 늦었어. 또 욕 엄청나게 했겠네.
빌어먹을 수금이 되어야 약속한 날자에 돈을 주던가말던가 하지. 대신 오늘은 다 못 주고 70프로만 넣었으니까 그리 알라 구."
"아니, 이거 봐 .또 70프로야. 그게 언제 적 외매 대금인지나 알고 그러는 거야?"
"알어 알어. 돈이 없는데 어쩔 겨? 그럼 날 대신 잡아 가던가.
나, 요즘 누가 좀 잡아 갔으면 좋겠어."
어찌됐던 미지근하게라도 입금이 됐으니 급한 불은 껐으렸다.
내일은 날씨가 더 좋으려나?
들어가는 길에 고기라도 한 근 끊어갈까나.
속이 상한다고 하겠다 생각했습니다.
다 같이 잘 살자고 하지 않습니까? 베풀며 살고 사회에 환원하고 자선사업도 하고...........
그런데도 한번 굽혀진 저 허리는 펴지지 않고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갑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처럼 이야기해도 또 그런 일이 생기고 생기고 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기원전 이야기 속에서도 부정부패는 있었고
부자와 가난한 자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맨 위의 저 말없는 봄이 참 무정한 것 같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희망을 주는 것 같기도 해서
또 올라가서 보고 내려왔습니다.
이 노래 때문에 처음에 도무지 글이 머리속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ㅎ
착한일을 하시니 일이 해결되셨나 봐요.
읽으며~ '어머 다행이다.' 했네요.ㅎㅎ
급한불 끄게 되어 안심하는 모습이 전해졌거든요.
전화까지 하신걸 보니 사람이 속이는게 아니라 돈이 사람을 속이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저도 다음주에 4년 근무한 사범 퇴직금을 처리해야 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여전히 캄캄하고 어두운 겨울이라
봄을 맞이하면서도 마음이 무겁네요.
그래도 힘내시고...
저 할머니도 허리도 좀 피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툭툭 전지를 해서 땅에 구르기에 주어들고 왔다면서 저 강아지까지 함께 끊어왔더라구요
갤죽한 고추장 항아리에 담아 티비곁에 떡하니 ...
할머님의 구부정한 등위엔
만고풍산이 얹혀 있습니다
어려서 너무 배가 고프던 시절
엄니는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단다
각자 억척으로 벌어서 살아갈 수 밖에는 ...
그래서 억척으로 살았습니다
한푼 주으려고 백리를 뛰었을 정도로
그래도
여지껏 떵떵거리진 못했네요
엄니는 또 내려다 보고 살라 하셨지요
그래서
줄곧 내려다만 보았습니다 ...^^
오랜만에 듣는 정겨운 표현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이런 말하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해 하지요.
오능 날씨는 꽤 쌀쌀합니다.
봄이 오긴 오는 겁니까?
오랜만애 글을 쓰러니 자리를 찾을수가 없어요.
글 속에 삶이 그개로 표현 되어서 감동입니다.
글을 너무 잘 쓰십니다.
지난번 전화 주셨을때 미안했습니다
오랜만에 윤선생님 목소리를 들우나 친구같은 반가움에~~~
조금은 낳아졌습니다.
이제는 홀로 서기를 해야 하니까
이것 저것 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비밀댓글]
날씨가 확 풀렸네요.
다니는 데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지난 겨울 참 추웠거든요.
자주 전화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자주 연락 드릴께요.
언제나 건강하세요. [비밀댓글]
굽은 등이 가벼워 보이시려나요 ....
할머니께서 받아드신 7천원 속에 배춧잎 한장 ? 신사임당 한장 끼였으면
세상살이 유채꽃밭 가운데 선 듯이 화사 하려나요 ???
친구 신청을 하였는데 승낙 해주실거죠?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시지는 않으셨는지요
나만 안되는가 하면서 살다가 나보다 못한 이웃들의
힘겨운 삶을 보면서 이만하기 다행이다는 참 이기적인
생각을 할적이 많습니다
남의 불행을 보면서 난 안도의 한숨을 돌리곤 하지요
그렇게라도 해야 살 기운이 나곤 했었지요
그래도 열무김치님은 그 할머니의 수레를 밀어드릴 용기와
힘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다 잘될겁니다 항상 마음속으로 그렇게 나에게 용기를 주면서
또 하루를 삽니다. 힘내십시요
요즘 돈이 잘 안 돌죠 .
피부로 느낍니다.
좋은 세상이 와야 하는데 어째 자꾸 뒤로 가는지
우리처럼 없는 사람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죠.
고물할머니 선한 분 만나 주름살 좀 펴지셨을 것 같네요
대체적으로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 몰려서 정작 돈이 필요한 곳에는 잘 돌지 않아요.
자본주의의 한계가 아닐까 합니다.
올해 농사는 어떤 걸 하시는지요.
작년 작황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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