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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먹는 일

by *열무김치 2018. 1. 17.

 

 

 

 

 

 

 

마누라 집 나간 날

멸치조림 된장찌개 김구이
고추지를 꺼내 말아
어제 먹다가 남긴 라면 국물은 버려야 하나?
무슨 그릇이 이렇게 나 많아
가스는 꼭 주말에 떨어지더라

가끔 말이지
컴퓨터 마우스로 클릭만 하면 프린터가 인쇄를 하듯
뚝딱 반찬이 튀어나오면 얼마나 좋겠냐구
삶이 아주 지겨워지는 날
손가락 한 번 까닥으로 시건방을 떨어 보는 거야

간단하게 아주 간단하게 김치 하나만 놓고
5분 대기조로 밥그릇 한 개 숟가락이면 끝
설거지는 처 삼촌 벌초로 날리고
헐렁한 시간 꼬드겨
이불 뒤집어쓰고 뒹구는 거야
꿈에 떡 맛보기로 그렇게 했기로 뭐가 탈이 나겠어
새 털 같이 그 많은 날에
가끔 헛짓거리도 해야 숨이 트이지

눈 부릅뜨고 보시게나
수박 겉핥기도 이력이고
설거지도 큰 사업이오
김치찌개 된장찌개 벼슬이니
세계 2차 대전만 전쟁이 아니야

도둑처럼 가버린 장미의 날
하루 두 끼도 감지 덕지네
봄 날이 지고 여름 날 베짱이도 아니오

삼복 염천에 모든 게 늘어지고
저녁 해거름 조차 등날을 훅훅 볶거든 앞치마를 두루 오
이마에 땀 솟으면 사 십 년 부엌 데기 호령이라 여기고
오뉴월 하루가 섣달이면 열흘
耳順이면 알아차려야지

끊었다던 곁 눈 담배 질에
툭하면 골목 이바구던데
앞집 옆집 영감들 겉과 속이 다르단 걸 눈치 채오
이미 오래라
그 양반들 헛소리 골목 길냥이가 다 알지
새끼를 열 배는 더 낳았을 테니
담구멍 아래서 이미 다 들었어
특히 뭐시기 국장까지 해 먹었다는 허 영감 뻥 말이야
약발이 다해 갈 텐 데
십전대보탕 끗발도 다했고
먹고살려니 길냥이도 지겨웠을 거야
걔들 눈알 굴리는 걸 보라 구

아니 계란은 동그랗게 안 되고 왜 이렇게 달라붙지?
들기름은 왜 이렇게 찾기가 힘든 거야
맛나니는 어디다 감췄어?
지난번에 분명 봤는데
얼마 전 사다 준 굴비는 그 새 다 먹었나?

에미는 어데 갔냐?
예 급한 볼일이 있어서 친정에요
에라 이놈아
앞집 멍멍이를 속여라
멍석을 깔고도 남을 눈치 99단 어머니

냄비를 닦다가
멍하게 올려다본 봄 하늘엔
길게 머리 땋은 그 옛날 어여쁜 소녀가
너울너울 날아가고 있었다

부엌데기가 된
마누라 집 나간 날

 



 

 

 

 

 

마나님 외출하시고 어머니 진짓상 차리느라 수고스러움을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지어놓으니


읽는 사람 전혀 지루하지 않으며
다음 글이 미리 눈에 들어옵니다

역시 작가이십니다
별 사람 없겠지요.
때로 혼자 있을 때 저 역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저 멍멍이가 지키는 저 집에서만 들려오는 소리는 아니겠지요.
"그냥 먹자, 그냥 먹자."
그렇게 하며 흘러가는 게 삶이겠지요.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시는데
아주 재미있게 뽑아 내시네요.
정말 착착 달라 붙는 대단한 필력입니다.^^
요즘 제 마음도 좀 그렇습니다
그제 저녁엔 저녁을 하려니 갑자기 너무 귀찮아 지는거예요
어께는 아퍼서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데 자꾸 일을 하니 낳지를 않고
그렇게 자신이 한심스러울수가 ㅎㅎ
순전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보야~나 다 귀찮아.. 나 밥하기도 싫고 반찬하기도 싫어
그리 말햇더니 이사람. 그럼 라면 끓여먹자네요 ㅎ
전 라면 먹이는거 싫어하거든요 어쩌다나 한번 먹어야지 ..웬지 싫어요 건강 해칠것 같아서요.
저 혼자면 걍 배고플땐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으니 김치나 김이나 연근 조림이라든지. 그것만이라도 꿀떡같은데
차려줘야 하는 밥상은 웬지 미흡해요..
아들넘은 지 아빠도 잘 안찾는 국물이 꼭 있어야 하고요 물론 해달라진 않는데 해 놓으면 굉장한 찬사를 늘어놔요
그러니~~~~에효~
이렇게 귀찮아지면 금방 할매되는데 말이죠 ㅎ

열무님이 연세 많으신 엄니 진짓상 차리면서 고민되는 마음을 이런저런 비유를 들어 재밋게 올려주셨어요 ㅎ
늘 애많이 쓰셔요 열무님 꼽,,꼽,,꼽배기 아내분이요 ㅎㅎㅎㅎ
하루 삼시세끼 식구들 밥 챙겨가며 일하는 저 입니다
백번 동감하는 구절이 딱 제 맘 입니다
특히 클릭 한번에 밥상이 뚝 딱 ~ 차려지는 도깨비 허접산이라도 좋으니
우리집으로 콜 ~ 하고 싶어집니다 ㅎㅎㅎ
쩝...
저는 어머니가 안 계시니...
귀찮으셨을 일이 부럽기도 합니다.
참 좋은 분이시라는 걸 가슴 가득히 느끼겠습니다
주부들도 가끔 오늘 저녁은 뭐해 먹지 그런 스트레스가 좀 있지요
주말에 오향장육에, 닭볶음탕, 표고버섯 어묵볶음등등 이런저런 밑반찬을 해놨더니
일주일이 편안해서 좋더라고요
출사를 나갔다가 짙은 안개로 인하여 헛걸음하고
들어와 님께서 정성으로 올려주신 작품을 접하며
아쉬움의 하루를 정리 하려 한 답니다.
감기조심 하시길 바랍니다.
어느날은 너무 귀찮아서
부엌구퉁이에서 숨죽이고 살아갈 요정이라도 찾게 됩니다

책읽기 싫어하는 두째에게 주느라 사주었던 요정 동화
마루에서 과자를 먹다가 흘리면
아주 작은 요정이 나와서 마루밑 자기짚으로 끌고 들어간다나요
그 책을 본 후론
줄창 방구석이나 거실구석을 찬찬히 보는 습관이 생겼답니다

어떤날엔
도수장간에 끌려가듯 귀찮은 끄니준비를
고 요정들이 나와서 도와줄수도 있을텐데
평생 내가 흘린 부스러기들을 먹고 살았으니 ....

그런데
후헤헤헤
요정은 다름아닌 영감님으로 정하렵니다 ...^^

영감님을 요정으로 임명하고 내가 한 일들은
훤히 보이는 선반에
가느스름하게 눈뜨고도 보일만큼 커다랗게 내용물을 써 붙이는거
열무님처럼
여기 저기 들 들 뒤지지 않아도 단박에 해결된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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