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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6월 단상

by *열무김치 2016. 6. 24.

 

 

 

 

 

 

 

 

 

 

*장마

밖의 빗소리가 변할 때 마다 방안의 소리도 달라졌다.

엿장수에게 주려고 정지깐 구석에 쑤셔박혔던  찌그러진 양은냄비는 운 좋게도 방 복판을 차지했다.

햇수로 이미 5년

고래실 닷마지기 농사가 끝이었으니 초가지붕 굼벵이는 제 수명 다 누렸겠다.

누런 초가지붕이 언제였나

누르끼리한 빗물이 실로폰소리로 떨어지는 밤

마분지로 이어붙인 너덜한 천장에서 더도 덜도 아닌 괘종시계의 부랄같은 심심한 사선이  어두침침한 공간을 꿰뚫고 있었다.

밤이 깊자 이에 질세라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바가지,요강, 깡통, 심지어 밥주발까지 들여다 받치자 어두침침한 윗목까지 빗방울 하모니가 극치를 이룬다.

팅, 통, 툭, 텅..

굳이나 맞추지 않아도 저절로 아우러지는 빗물의 화음.

"미슨 넘의 비가 저리도  우라지게 내리노."

어머니는 세숫대야에 고인물을 쏟아부었다.

쏴아..

 

팅, 통, 툭, 텅..

아랫목 구석에 웅크리고 누운 남매는 엄마 자장가가 필요 없었다.

"엄마, 안 자?"

천장에서 새는 빗물의 화음은 너무도 영롱해서 남매는 이내 잠이 들었다.

가난이 들려준 장맛날의 화음..

 

비 한 방울 새지않는 콘크리트 더미 안에서 난 소쩍새가 된다. 

 

 

 

 

 

 **사는 일

 

 

 

사는 일

별 놈의 구실을 다 갖다 붙여 회유를 해도 

하루 밥 세 끼는 묵묵부답이다.

숟가락 들다가 놓는 게 다여도 세월은 그저 옹고집으로

 

피였

계절과 타협한 덕으로

 

살아야 세상이 아름다워진다지

네가, 그리고 내가

피울 수 있을 때 까지

 

晩秋

그날이 이르도록

 

 

 

 

 

부실공사(우리의 특징 중 하나!)였기 때문이지만
누수가 되어 강물 같은 곳에서 어린 것들이 좋다고 뛰어놀고
아내와 제가 그 물을 퍼내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살던 날들이 그리워집니다.

어느 카툰에 적혀 있는 글도 생각납니다.
"잘 산 인생이란
출세하고
돈벼락 맞은
인생이 아니라...
중도 퇴장 없이 쓴맛단맛 다보며 '끝까지' 산 인생이다..."
참으로 희한했던 것은 예전의 집들이 대부분 비가 샜습니다.
그리고 장마에 비도 억수로 내렸지요.
저의 초가집도 뻑하면 비가 샜는데 지붕을 무던히도 고쳤음에도 여간해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더군다니 물을 퍼내기까지 하셨다니..

중도 퇴장 없이 쓴맛 단맛 다 보며 끝까지 살아야 비로서 아름다운 생이 된다는 말씀이 새롭습니다.
장마...라는 글이 그림으로 그려져요.
가난이 주는 장마철의 화음..
팅, 통, 툭, 텅,
탕, 퉁, 탁, 탱..... ㅎㅎ
그런데..
그 가난이 그렇게 슬프게 보이지 않아요.
그땐...다들 힘들게 살았거든요.
지금은 이런 화음 듣기 힘들죠.
모르죠.
또 우리가 모르는 어떤 곳에서
정말로 어렵게 사는 그 누군가가
이런 장마철 화음이 듣고 있을지~
맞아요.
가난이 결코 슬프게 느껴지지 않았던.

그런데 어디선가 이런 화음을 듣는 친구들이 있기나 할까요?
아마 거의 없을거라는 생각입니다.
지 밖의 허름한 창고도 거의 완벽하니까요.
오히려 서울 도심의 오래된 집들이 그럴 가능성이 있겠네요.

장마라고 해도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서 장마라는 단어가 머쓱합니다.
시골 초가집에 살 때는 비가오면 이곳저곳 새니까 양재기나 함지를 갖다놓기도 하고
그리고 어찌나 쿰쿰한 냄새가 나던지요
그러다 양철지붕으로 바꾸니 비가 올 때 시끄럽기는 어지간히 시끄럽고요
그 쿰쿰한 냄새는 초가지붕이 썩어서 나는 냄새지요.
누르끼리한 빗물을 받아보면 마치 콩기름처럼 보였거든요.
초가를 새로 얹으려면 이엉도 많이 들고 일손이 많이 들어서 농촌에서는 대 공사였지요.
보통 몇 년은 그대로 버텼으니 안 새는게 되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양철지붕이 나오고 비는 많이 새지 않았지만 말씀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무척 시끄러웠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 시끄러운 빗소리가 잠시뒤면 잠을 부르는 화음으로 변했다는겁니다.
자연의 소리는 모두 음악이었던 셈입니다.
전 시골출신이라 초가집도 양철지붕집도 다 살아봤는데, 남편은 나서부터 서울서 살다보니 명색이 기와집인 한옥에서만
살았다고 합니다. 시골외가 집도 가면 하루도 못자고 오게 했다네요. 혹여나 외가에서 장남인데 다친다며 시아버님이 바로 올라오게 해서
제대로 시골정취를 느껴보지 못해서 어느 부분은 잘 이해를 못한답니다.
저 나무가 저렇게 잎을 피우고 있는게 참 신기히가도 합니다
사진촬영을 하면서 몇 번을 보고 또 보고..
저도 그 생명력에 놀랐답니다.
금방 쓰러질 듯한 고목에서 푸른 싹을 피워올리는 생명력..
거의 기적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나무는 어미이고, 해동되고 잎눈을 열고, 푸른 싹을 피워 올리는 생명력,
준서할미세대는 그에 못 미치는 것이고, 우리 할머니, 우리 엄니 세대분의 자식 사랑이었다면 가능하지 싶은데요.

붉은 꽃잎에 묻혀 갈까 얹혀 갈까 그냥 딩굴어 버릴까~
초록 이파리에 가 닿으려면 아직도 먼데..

엿으로 못 바꿔진 찌그러진 양은 냄비가 요긴하게 쓰이고
속타는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먼 미래에서 들려주는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든 어린 남매는 무슨 꿈속에서 뛰어 놀까요.

심장을 다 뜯어 먹힌 듯한 저 나무는..
어찌 저리도 무성한 잎을 이고 있답니까?

멋진 댓글에 눈이..

겨울에 보면 영락없이 죽은 나무인데 봄이면 어김없이 싹을 피워올립니다.
존경스러운 나무입니다.
아마도 이동네 사람들은 느끼는점이 너무도 많으리라.
빨간 장미는 그때 쓰레기통 사태 때 그 장미가 피어난 거예요?^^
이 나무를 보니까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가 떠오르네요.
위대한 나무에게 기립박수 짝짝짝짝 칩니다!!!
단편소설의 서두 같은 '장마'와 시심 가득 '사는 일'도 잘 읽었어요!^^
윤흥길 선생님의 <장마> 안 읽어 봤는데, 읽어 보고 싶네요.
이념과 대립의 갈등을 그렸다는 장마를 얼른 가서 대충 읽고 왔습니다.
이왕 수박 겉을 핥았으니 잘 읽어보아야겠습니다.

기립박수를 받았으니 저 나무는 앞으로도 몇 십년은 더 버틸 것 같습니다.
고래실 닷마지기 농사를 끝으로
남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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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의 어머니가 마당으로 쏴아 ~ 하고 내다 버린 세수대야 속 누리끼리한 빗물에는
그게 다아 ...빗물만이 아니었지 ....싶어요....
몰라요 저도..
에전 논농사를 하지않은 집은 초가를 얹는일도 쉽지않아서 그야말로 비와의 전쟁을 치르는 집들이 많았지요.
문밖으로 물을 내어 쏟으며 어머니가 한탄을 했지요.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있으나 마나라고..ㅎㅎ
예전엔 쉽게 볼수있었던 풍경이었죠..
제가 다니던 중학교교실도 그랬습니다..'비가오면 양동이 받쳐놓고..
그래도 그땐 그소리가 싫지않았던건 꿈많던 소녀였기때문일까요?

장마라곤하는데 오늘도 비가 내리다말다를 반복합니다..
중부지방은 비가 좀 흠뻑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저도 그랬습니다.
그 소리가 결코 싫지 않았던.
밤새 떨어지는 빗물소리가 자장가로 들렸으니까요.

가뭄에 모두들 힘들어 합니다.
올해도 큰 비가 내리기는 힘들 것 같네요.
많이 와도 탈이고 적게와도 탈입니다.
그래도 장마보다는 가뭄끝은 있다니..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실로폰 연주하는 소리처럼
들리는 날이 있어요^^
그런 모습이 정겹게 그려지는 시로군요...
변화하는 문명의 이기속에서 어찌보면
잃어가는 것들이 참으로 많은 세상입니다.
모든게 스마트폰으로 통하는 전혀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투박하고 거친 자연을 접하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든 지금, 정, 그리움, 따스한 가슴이 차츰 옅어져 갑니다.
작금 벌어지는 핑계치 못할 수많은 사건들을 보면서 이런 느낌이 더 듭니다.
단상,,감사히봅니다,즐거운 주말되세요
감사합니다.
비 그치고 맑은 주말이 된다고 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영화를 보듯이 비오는 날의 장면이 보입니다.

그릇마다 빗물 받아 내는 장면.
우리집 천장 창문에 틈이 벌어져서 그런 적도 있었는 데요.
사람불러서 창문을 바꾸고 빗물은 더 안샙니다.
빗물 떨어지는 소리는 여기 미국에서 사는 저도 듣습니다.
빗소리 들으면서 잠이 든다는 소리도 이해가 갑니다.
처음 소나기 올때는 시끄러운것 같다가
이내 그 소리가 안들리고 낮잠에 빠지니까요.

비오면 꽃봉오리에 물이 젖어 무거워 꽃들이 늘어 지지요.저 장미꽃처럼요.
사람 사는게 어디나 같지요.
가난했던 때나 지금 세월이 좋아져서
한국사람 밥굶는 사람은 더 없어 보이는 것같은 때나
사는게 힘들다고 생각하면 다 힘들고
사는게 그럭 저럭 살수 있다면 사랑이
그래도 살수 있게 서로를 지탱해 주는것 같습니다.

6월 장마가 시작되었나 봅니다.
소나기 내리면 함석이나 쇠붙이로 지붕을 한 집들은 정말 요란하지요.
폭포수 같은 그 요람함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을 부르는 화음으로 변하는 건 자연의 조화입니다.
신이 자연을 보고 핑계치 못한다고 하신것은 나무나 사람의 생이 비슷해서이고 무언의 교훈을 새겨놓으신 까닭이겠지요

요즘은 밥을 굶어서 불행한게 아니라 원하는 삶의 근사치에 이르지 못한다는 열등감에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나라들이 볼때는 모든 게 사치스러운 고민 쯤으로 보이겠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공감가는 댓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열무김치님!
저는 차라리 시골 초가집에 살 때는 매년 초가를 새로 이었으니 비가 새지 않았습니다.
초가 새로 이는 날은 연세가 몇살씩 차이 지시는 분들, 그 중에서 동네 어르신인 연세가 높으신 할아버님의
지휘아래 2어명씩 짚과 새끼로 하는 일이 다르고,
날씨는 쌀쌀하고 참에, 따신 점심에 마당은 일 하느라고 잔치집마냥 분산스럽고, 막걸리는 미리 담아 둔 것을 아침에 걸렀고,

지붕에 올라가서 하는 일이라 장날 나가서 생선이라도 사 두었다가 따신 점심하면 동네 안어른, 바깥어른 다 모이셔서
점심을 드셨지요.

그런데 도시에서 기와지붕인 집에 살 때는 열무김치님께서 말로 그리신 그림처럼 비슷 했습니다.
새는 곳마다 그릇을 다 받칠 수 없어서 천장에 비닐을 좀 넓게 부치고, 빗물이 한 곳으로 흐르게 했었지요.
토기와 지붕 고치다 고치다 슬레이트 기와로 갈고 나니 그런 일 없어졌습니다.

쓰신 댓글을 따라 지난세월로 되돌아 가 보았습니다.
딱 그때의 풍경과 같은 이야기라서 현장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도심에 여전히 기와집들이 남아있는데요.
오래된 집들은 장마철이면 비가 샐 가능성도 있겠다 싶습니다.
천장에 비닐을 붙여서 새는 빗물이 한곳으로 흐르게 했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데요.
그때는 왜 그런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아..그때 비닐이 흔하지 않았지요.
열무김치님의 이야기 속은 열무김치님께서 어린 시절이셨을 것이고,
저는 저가 엄마이던 시절이어서 그 때는 비닐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옥 고가를 구경가면 비는 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왓집이 새면 기술자가 올라 가도 잘 잡지 못합니다.
거창의 정온선생 종가에 갔더니 기와 벗겨 놓은 것이 따로 모두어 두었던데요.
나중을 생각해서 유렴 해 둔것이겠지요.
장마라고 하는데
경상도 이곳엔 금요일 하루만 비가 좀 내렸답니다

단비,비가 오는것이 좋아
산안개 구름 둘린것 볼수 있는 금오지 길을
우산쓰고 걷고요

오늘도
복된 날 되시와요
반갑습니다.
말씀처럼 이곳도 장마라는 말이 무색하게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답니다.
금오지길이 어디인지 검색을 해 보아야겠어요.

비오는 날 ,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걸어본지가 언제인지 ..
좋은 한 주 열어가세요.
장마때가 되면 생각나는 풍경..
성인이 되어 서울에 올라와 큰 비가 내린적이 있는데..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미아동쯤?? 집안에 가구들은 다 밖에 나와있고
집집마다 사람들이 집안에 가득찬 다 물을 퍼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비는 계속 오고 있는 상황이었구요.
한강쯤 갔을때는 더이상 버스가 가질 못했는데 앞을보니 바다에서 물이 들어오듯
넘친 강물이 주택가를 향해 서서히 들어오고 있더군요.
정말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공포스런 광경이었습니다.

제가 공포를 느꼈던 그해에 남편은 반지하에서 살고 있었다고 해요.
새벽에 동네사람들이 문을 막 두드리며 깨워서 일어나 왠일인가 싶어 문을 열었더니..
문을 열자마자 순식간에 집안에 반이 물이 들어찼다고 합니다.

요즘은 상하수도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옛날에 그런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거 같아요.
그 습한 환경에서 온갖 전염병들을 이기고 잘 살아온 우리는
저 나무의 끈질긴 생명력과 비슷한거 같습니다.
수도 서울이 하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다고 하면서도 기습폭우엔 여지없이 시내가 물바다가 되는 경우가 있더군요.
저역시 서울에 갔다가 2층에서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 길거리가 온통 물바다여서 기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모습은 마치 꿈속 다른 나라에 와 있는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공포스럽더군요.
넘친 한강물이 주택단지로 밀려들어오는 광경을 보셨다니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릴만도 하겠습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비가 거의 내리지않아 수해문제로만 볼때면 다행입니다만 반대편에서는 가뭄으로 난리를 치는 걸 보면 세상사 중간을 가기가 참 어렵습니다.
올해도 큰 풍수해 없이 잘 지나가기를 빌어봅니다.
구수한 옛날 이야기가 올라오면 뎃글쓰시는 분들의 뎃글 읽는재미도 쏠쏠합니다
묶어 책을 낸다면 정말로 베스트 셀러가 될듯한 실감나는 이야기들 이쟌아요 그쵸?

저는 생각해보니 인천토박이에다 기와집였고
시골에 친척이 없어
초가집을 경험한적이 없드라고요
기껏 수원에 있던 외갓댁도 기와집였어요
그런데 어디서 경험했던가.. 분명 방안에 그릇이 놓여젔던 기억이 나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꼭 미스테리 드라마 같단 생각이 들어요 ㅎㅎㅎ

대신 시집와선 지하에 방수가 잘 안되어
비만오면 지하에 물을 퍼내던 기억이나네요
그해.. 물을 어지간히도 퍼내고
또 추석을 맞이했었고.
그가을..첫애를 6개월에 미리조산을 하여 하늘로 보낸 아픈기억이 있었지요

어려서 친정집은 대청 마루가 있고 집이 아랫채가 잇어 거의미음자로 되었어요
안 마당에도 채앙을 해놔서 비가오면 가운데로 모여져서
빗물을 큰 통에 받아썻어요

그 기억때문에 지금도 그 빗물이 그냥 버려짐이 아까워요
열무님 때문에 예날 생각을 했네요


지금도 여전하긴하지만 반지하 셋방에서 여름이면 물을 퍼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라는 노래가 참으로 원망스럽던..
그래도 기억은 곧 잊혀지는거라서 사람 마음이 종잇장 같습니다.

ㅁ 자로 지어져있던 시골의 기와집 기억납니다.
그정도면 부잣집이었지요.
글을 읽으며 타임머신을 탑니다.
저역시 옥상에 커다란 물그릇을 놓아두고 빗물을 받아 채소에 주는등의 용도로 씁니다.
그나저나 도통 비가 내리지 않아서 그 물퉁에 빗물을 받은지 오래입니다.
논두렁 옆의 거목이 참 논과 어울리는 배치입니다.
서울 빈민춘 판잣집 출신이라 여름이면 늘 비가 샜지요.
아부라라고 불리던 검정색 방수처리된 판잣집에서
정말 여기 저기 물받이를 놓고 낙숫물을 피해서 눕고 . . .
이제는 추억이 되었지만 천막을 치고도 살았지요.
초가집 생활은 하지 못했지만 소담한 느낌이었지요.
늘 아름다운 풍경을 표현하는 소품으로 등장하지만
실은 말없이 피어나는 궁기도 사실이었지요. ^^
- 청청수 -
왠지 제 주소가 안찍히는군요.
이거 노트북 상전입니다.
매일 로그인 새로 해야 하고, 켤 때마다 시간 변경해주어야 하고 ㅠㅠ
반갑습니다.
늘 어떻게 지내시나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1년이 갔군요.

도시의 판잣집은 정말 여름오기가 겁이 났지요.
초등학교저학년때 지붕을 그때말로 루핑이라는 시커먼 골타르를 입힌 비닐장판같은 것으로 지붕을 했는데 그게 툭하면 줄줄 샛습니다.
하여 비오는 날이면 늘 근심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아마 그당시 이와 비슷한 형편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겁니다.
말씀처럼 지나온 추억은 모두 아름답게 기억됩니다.

올여름 정선을 다녀 가시겠군요.
청청수님을 안지도 오래인데 이렇게 안부만 묻고 있다는게 좀 미안합니다.
예... 비가 오면 작은 세수대야를 방에 너댓개 배치하는 것은 일상이었지요.
원래 비 오면 그렇게 해야 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천장에서 쥐가 뛰어다니던 소리도 기억합니다.
지금 같아서는 기겁할 일이지만 집집마다 천장에 쥐가 많았지요.
바늘로 천장을 콕콕 찌르면 쥐들이 조용해하던 기억도 납니다.

지난 번 마쳤던 사진교실에서 야외 출사를 여러번 갔었는데
판자촌이나 과거 피난민촌을 가면
유독 힘들어 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가난에의 고통에 관한 기억들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축에 속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계속 힘들었습니다.
내용은 심각한데 읽으며 웃음이 났습니다.
천장에 쥐가 우루루 몰려 다니면 뾰족한 쇠붙이로 콕콕 찌르던 생각이 나서..ㅎㅎㅎ
다른 지방에 살고 환경이 좀 달랐을 뿐이지 사는 방식은 거기서 거기였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더 납니다.

이것도 과거세대의 트라우마라면 그럴만도 하겠습니다.
에고..
글이 힘들면 안되는데...

이제 나가려 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시멘트 블록으로 벽을 쌓고 양기와를 얹은
삼선교 언덕 꼭대기 자취방에도 비가 샜었지요.

세월이 수십년이 흘렀고
지금 그곳에는 고층아파트가 서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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