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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1월하늘

by *열무김치 2016. 1. 6.

 

 

 

평창 , 해발 800  고산지대다.

요즘 나무를 잘라내는 벌채 일 때문에 자주 간다.

이곳은 말 그대로 하늘아래 첫동네라고 부를만한 지역이다.

사진으로는 실감이 덜하겠지만 그야말로 첩첩 산중의 오지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면서 화전이나 일구어 먹고 살았던 이곳에도 예외없이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후미진 골짜기에 폼나는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한겨울 눈이라도 많이 내리면 꼼짝없이 갇히는 흉악한 산골짜기에도 어김없이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산다.

그들은 누구일까.

필자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얼른 보아도 이런곳에 살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각자의 사연을 안고 첩첩산중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에겐 삶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그들중엔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 시기를 잘 참아내고 정착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한군데 들렀더니 그림을 그린다는 사람이 있었다.

낮에는 밭에나가 일을 하거나 짐승을 치고 시간이 날때마다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처음엔 힘이 들었지만 무엇이든 손으로 해야하고 또 천천히 사는 일들이 몸에 배이면서 이제는 그 생활을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경제적인 여유는 있으면 좋겠지만 오히려 그 여유로움이 정착을 방해 할 수도 있다는 말에 일면 수긍이 가면서도 꽤 오랜간 농사를 경험했던 나로서도 받아 들이기에 어려운 말이었다.

또 한 사람은 사과농사를 하고 있었다.

전 같으면 추운 날씨로 어림도 없었겠지만 기후가 변하면서 강원도 첩첩산중에도 사과농사를 할 수 게 되었다면서.

그에게 얻어먹은 사과맛은 일품이어서 결국 몇 상자를 샀다.

낮과 밤의 큰 기온차가 단단하고 식감이 뛰어난 고랭지 사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요즘 층간 소음으로 끔찍한 일까지 벌어지는 세상이지만 이곳에서는 산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러도 얼른 달려 올 사람도 없다.

적막 그 자체다.

아마 이곳에 삶의 터를 잡은 사람은 그 적막감이 좋아서였는지도 모른다.

끝없는 경쟁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돈, 좋은직장, 명예, 풍족한 문화생활이 주는 절대적 가치를 외면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하루도 놓을 수 없는 물질문명의 편리함을 배반하고 어느날 홀가분해진다는 게 쉬운일이 아니다.

 

겨울 복판인데 산위에서 바라 본 고산지대의 하늘은 마치 봄날 같다.

차고 시린 하늘이 아닌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이다.

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야 할 고산준령은 화장기 없는 아가씨 얼굴 같다.

미세먼지로 온통 찌푸리던 하늘을 보다 저렇게 맑고 순 한 하늘을 만나니 저절로 호흡이 가벼워진다.

편리한 물질문명을 얻은 댓가로 치루어야 할 환경공해가 사람들을 오지로 오게 만드는 것 같다.

지금 봐서는 그런 느낌이다.

 

전과 달리 극도로 혼탁해지는 대기 때문에 사람들의 고민이 늘어간다.

우리가 정착해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일까.

모든 걸 뒤로 하고 돌아 갈 곳이 있기나 할까?

 

 

 

 

 

 

 

 

요즘 도시인들의 꿈은 한적한 곳에 정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도회지를 벗어난다는 것이 두렵거나 낯설어 실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보다 내려 놓는 삶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내려 놓는 삶이 경쟁에서 밀릴까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아무튼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한적한 곳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산골이라곤 하지만 인터넷이나 전화 자동차가 거의 다 있어서 무대만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흉악한 산골에서 1년 내내 산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지요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나름의 삶의 방식을 유지해간다면 이것처럼 좋은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나이가 어느정도 든 사람들은 경쟁에서 밀리고 말고 할것도 사실 없습니다.
경쟁의식을 갖고 한적한 곳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그곳에도 그곳의 삶이 있으니 스스로가 경쟁의 상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고산중령 해발800m.
첩첩 산중에 사시는 분들과 그들이 살아 가는 이야기를
열무김치님께서 기행문식으로 담담하게 써내려 가신것 같습니다.
그런 오지에 사시는 분들에게는 거기서 살게된 다 다른 사연들이 있는것이지요.
한국의 노령인구가 앞으로 1000만에 가까운데 이런곳에서 노년을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어느정도의 경제적인 기반은 필요 합니다.
사진 설명이 없으면
고산지대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정말 많이 추울것 같습니다
누구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면
어디든 살만한 곳이겠죠

그런데 저는 20여년을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는 부모님 곁에서 살면서
느림이 왠지 싫었는데
직장이 아주 오지 산골초등학교 영양사로 4년을 근무하면서
힘들었어요
하루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는 그런 심리
말리는 주변 사람들이 있는데 과감히 사표를 내고 도시로 왔죠
올겨울 엘리뇨인지 뭔지 때문에 춥지 않아서 그렇지 혹한지대지요.
저곳에도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이제 페교가 되고 고랭지 채소를 하는 사람들과 서울등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섞여서 삽니다.
여전히 산골은 기피의 대상입니다만 그 농도가 많이 희석이 되었습니다.
글 잘 보았습니다.~~~~
전 ..가끔. 핸드폰이 없는 세상도 도시속에 오지를 경험할수 있겠다 싶어요
치워버리고도 싶습니다.

전에 한동안 등산에 미쳐살앗던 적이 있지요
그리고 야간 산행이라고 뒷동네 산을 주로 많이 다니기도 했었는데요
근데 늘 다니던 그길을
밤에 혼자 떨어지게 되면 한발자국도 못 띠고 얼어붙게 되드라고요
그래서 산은 무서워서 못살것 같아요 ㅎㅎ

그저 풍경으로 지나쳐 구경하는것은 멋진 풍경이 되겟지요 ^^

아마도 핸드폰과 자동차 없이 두 어 달만 살아도 우리의 삶은 확 바뀌지 싶습니다.
너무 길이 들어서 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나치는 경치로는 괜찮지만 막상 살라고 하면 곤란할 것이라는 얘기는 자주 듣습니다.
분명한것은 이제 산골이나 농촌이 예전의 풍경이 아니라는것입니다.
전혀 의외의 사람들이 와서 삽니다.
제가 살았던 곳에 가보곤 저도 깜짝 놀랍니다.
어려서 시골에서 살았던 준서할미 같은 사람, 더구나 직접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주부들은 적막한 첩첩 산중에서
살 것을 용기 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준서외할아버지는 저가 같이만 간다면 산중으로 들어 가고 싶어 합니다.
자연 환경도 오염되고, 강물도 오염되고, 사람도 오염되고, 편리함 보다는 산골에서 한적하게 살고픈 것은 어찌보면 로망이지 싶습니다.
정말로 얼마나 더워도 추워도 비가 와도 자기 몸 하나로 다 떼워야 하는 절박감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싶습니다.

저도 예전 어린 시절로 돌아 가고 싶다 싶어도 막상 가라면 못 갈 것 같습니다.
학습효과라고 할까요.
가난의 그 지긋지긋함이 돌아다 볼때는 좋은 추억이지만 막상 다시 하라면 망설여지게 되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그때 같지야 않겠지만 여전히 시골생활은 부대끼는게 많습니다.
저도 귀향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여전히 아내와 갈등입니다.
아내도 첨첩산골생활을 알거든요.
제 욕심을 고집하기는 어려워서기다리고 있습니다.

막상 가보면 어찌나 집도 잘 짓고 살림살이도 잘 꾸며 놓았는지 방안에서만 보면 이곳이 산골이라는 생각을 잊게 됩니다.
저런 곳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이곳에 이렇게 앉아 있고 창 너머로 시도때도 없이 달리는 자동차의 물결을 보면서도 마음은 수십 년 전의 저런 그 마을 속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일 때가 흔합니다.
그런 걸 보면 이제 저도 저런 곳으로 떠날 때가 된 것 같은데, 그게 어렵습니다.
용기를 내어볼까 자주 생각하며 지냅니다.
가고 싶어도 부동산 문제로 걸림돌이 됩니다.
땅 가격이 예전과 비교 불허여서 집칸이나 짓고 살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지요.
그 땅값을 사실은 도시인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도 땅 가격이 그리 비싼편이 아님에도 그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가격을 올려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한적한 곳에 살아보려고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냥 별장삼아 오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 괴리가 상당 합니다.
초창기 이런곳은 땅 값이라는게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냥 버리고 도시로 나간 사람들도 많았으니까요.
모두 도시에서 밀려든 사람들이 묻지마 투자를 하다보니 아주 기형적인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기회의 땅은 많습니다.
여전히 용기를 내기가 더 어렵습니다.
도시에서 온 외부인들에 배타적이어서 그 동네에 정착하지 못하고
더 깊은 산골로,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 곳으로 들어가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귀촌을 생각하다가 이런 실패담을 듣고 좌절해 하는 사람들 또한 많지요.
고향이 있으면 그곳에 가면 그래도 뭔가 기댈 데가 있는 셈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는 답답하기도 합니다.
얼마전만 하더라도 정착률이 성공 30% 실패 70%였지만 이제 많이 바뀌어서 거의 반 반 정도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확장과 교통망의 발달이 원인이 되었지요.
다만 인내심을 요구하는건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으면 좋지요.
노령인구가 급증하면서 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서서히 준비를 해보시지요
저 곳이 바로 한겨울 눈이라도 많이 내리면 갇힐 수 있는 곳인가 봅니다
갇힐 수 있는...^^
눈 내린 마을을 상상해 봅니다

밤하늘 별빛도 시리도록 맑겠지요
좋은 곳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밀댓글]
요즘 눈이 내리지 않아서 그렇지 눈이 많이 내리면 꼼짝없이 갇혀야 합니다.
외부와 단절된 자유..
그게 길면 안되겠지만 잠시 단절된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밤하늘 별빛이 쏟아지는 건 당연하구요. [비밀댓글]
마치 가을 하늘 처럼 푸릅니다
고즈넉한 산중 생활이 때론 행복의 원천이...
늘 행복하시구요
정말 겨울하늘같지 않았습니다.
마치 연한 봄하늘 같이 부드럽고 온화했습니다.
겨울이 겨울다워야 할텐데요.
올 겨울은 이러다 지나갈 듯 합니다.

올해도 여행을 많이 하시겠지요.
외가와 친구가 있어서
가끔 들려오는 평창의 하늘
아름다운 자연과 삶의 이야기
좋은 글을 감상하고 쉬어감에
감사드리며
즐거운 저녁 보내시기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가끔 평창을 들러 가시나 봅니다.
올겨울은 눈이 없는데다 그리 춥지 않아서 다닐만 하답니다.
외가가 어디쯤 있는지요.
혹시 제가 다니는 가까운데 있지는 않은지 궁금해 집니다.
어렵네.
바스락거리는 베개를 베고 잠들기 어렵네.
깔끄러운 옷을 입고 가만히 앉아 있기 어렵네.
시끄러운 마음으로 편히 지내기 어렵네.
마음 맞지 않는 사람과 오래 사귀기 어렵네.
사랑 없는 사람과 함께 살기 어렵네.
오늘도 우리들 작은 미소가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작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햐세요
-불변의흙-
제 지인들도 농촌으로 제주도로 많이 떠나기도 했습니다.
다시 돌아온 분들도 있고요!!
인터넷과 도로사정이 획기적으로 좋아지면서 다시 도시로 리턴하는 사람은 많이 줄어 들었습니다.
다만 문화생활의 격치를 해소하지 못하여 고민하는 분들은 많더군요.
어디에서 살든 역시
사람과의 문제가 제일 크군요
혼자살수는 없으니
원활한 대인관계를 위해서는
건강할때 내려가야 하겠습니다 ㅋㅋ
내 고향 구례가
우리나라에서 작기로 몇 번째 안가는 군인데요
옛날 첩첩산중이라고 했던 간전면 효곡리라는 곳이 지금은 길이 좋아져
금방 올라가게 된다는 ...
그런 곳에 좋은집들이 드문 드문 지어져있는데
모두가 서울사람들이 공기좋은곳으로 와서 산다고들 하네요
귀농이 아니고 여유있는 사람들의 별장식이 맞는거겠지요
그럴것입니다.
가진것 없이 귀농을 한 경우도 있지만 아직은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내려옵니다.
그러나 잠시일 뿐 다시 도시로 가는 사람들이 더 많지요.

아마 이런일들은 앞으로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자리를 잡게 될것입니다.
고령인구가 늘어나니 자연히 그렇게 변하지 않을까요.
지자체에서도 인구 늘리기 차원에서 적극 지원을 하는 모양세인데 여전히 젊은사람들은 아이들 교육문제로 내려오기가 쉽지 않지요.
평창이 동게 올림픽때 한껀 한다고 부동산 복부인들이 투기를 하더 군여
제가 아는 목장하는 분이 안양에서 땅이 좁아 원이되어 해발 800고지 산꼭대기에 4명이 어우러 땅을 사고 젖소 목장을 지엇지만 3가족은 이사 오기전에 포기를 했고 그집만 몇년 하다가 부인이 죽고 남편이 평창읍에서 노가다를 한다는 소식을 듣은지 9년쯤 되네요
그때 산중턱에 200평 짜리 평당 십만원이라 해서 입이 안다물러 졋는데
촌 땅값을 누가 그리 올려놓았는지
망망 산위에서 보이는것은 산넘어 구비 구비 표개진 산박에 없더군요
......

뜻은 좋았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네요.
실제 산골의 땅값을 올려놓은 건 그곳에 사는 현지인들이 아니라 서울사람들이고 이를 중계한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심 좋았던 동네가 서울사람들이 이주하면서 땅 문제로 인심이 사납게 변한곳들이 많지요.

세상이 변한다지만 아직 강원도 오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이고 또 변하는게 반드시 좋은것도 아니지요.
근간에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땅을 사 집을 짓는 경우가 많아졌고 제가 살았던 시골에도 그런 사례가 몇군데 됩니다.
실패를 한 경우도 있지만 적응을 해서 잘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
사전준비를 잘 해야 하고 인내심이 필요 합니다.

귀농이나 귀촌은 생각만큼 멋진일은 아니예요.
또 돈을 벌기도 쉽지 않구요.
지금도 그 언덕에 오르면 그날에 사람들이 같은 모습으로 만나지고 같은 하늘이 웃고 있고 그러하겠지요...
세월이 흘러 도시로 떠난 사람과
도시에서 떠나온 사람들로 풍경이 변했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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