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개떡
살기 팍팍했던 지난날
뭐든지 많기만 하면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초근목피 (草根木皮)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겠지만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른 봄 마을 뒷동산의 소나무는 고역을 치러야 했다.
송고라고 해서 소나무의 연한 가지를 벗겨내면 달그스름한 액체와 함께 하얗고 끈적한 속껍질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을 모아다가 찧어서 음식을 해 먹는데 보탰다.
필자가 먹어보았던 것은 송고를 찧어 연하게 만든 다음 보릿가루나 밀기울에 섞어서 만든 개떡이었다.
요즘에 이르러 어떤 목적하는 바가 잘 되지 않거나 어떤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떡 같다는 표현으로 본래의 의미를 추락시키는데 개떡은 그야말로 민초들을 살려낸 버젓한 만나(1)였다.
개떡이 그리운 사람들은 쌀가루에 쑥이나 산야초, 콩을 섞어 이와 비스름한 떡을 해 먹는데 그것은 개떡의 흉내만 냈을 뿐 이런 고급음식도 없다.
얼굴은 개떡같이 생겨가지고...
이렇게 얘기하면 개떡에 담긴 철학을 모르는 사람이다.
얘기가 옆으로 샜다.
평창의 처가 앞마당에 있는 대추나무다.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으나 동네 어르신들의 말을 빌리자면 족히 150~200년은 묵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그 오랜 세월 용케도 버티고 살아남았다.
몇 해전, 대추나무에 큰 병이 돌아서 상당량의 대추나무들이 고사했다.
도시 근처에도 대추나무를 심은 집들이 많았는데 추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얼어 죽는 경우도 많았다.
당장 나부터 여러 해에 걸쳐 대추나무를 사다 심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다행히 겨울기온의 상승으로 그런 경우는 줄어들었지만 이번엔 대추나무의 에이즈라고 불리는 소위 "빗자루 병" 이란 게 유행해서 웬만큼 자라서 열매를 맺던 나무들이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사진의 나무는 고지대의 혹독한 겨울날씨를 잘 이겨내고 오랜 세월을 버티어 낸 토종대추나무다.
그래도 세월은 어쩔 수 없었는지 죽은 가지들이 생겨서 일부를 잘라 냈다.
봄이 돌아와 지난겨울 얼어 죽지 않고 또 잎을 틔울까 하고 기다리노라면 어김없이 새잎을 피워 올린다.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잎이 늦게 핀다.
토종대추나무라고 명명한 것은 이 나무가 고령인 데다 대추알이 잘고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개량종 대추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이다.
해거리를 하지만 어느 해에는 정말 많은 양의 대추를 내어준다.
대추알이 잘다 보니 털거나 줍기에 힘들지만 생대추맛도 유독 달고 잘 말려두면 훌륭한 약재나 먹거리가 되었다.
이 대추맛을 본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중에 넘쳐나는 게 대추지만 사람들의 입맛은 간사해서 굳이 전문가가 아니어도 금방 그 차이를 가려낸다.
다른 대추보다 늦게 달리고 시중의 개량대추에 비하면 알이 무척 잘다.
귀가 질긴 편이라 잘 떨어지지 않지만 맛 하나는 정말 좋다.
햇볕에 꾸득하니 잘 말리면 빛 좋은 모습으로 변하는데 작은 알은 더욱 작아진다.
잘 말린 대추는 차로 우려먹는데 쓰거나 떡이나 한약재료등으로 사용한다. 한방에서는 토종대추의 약리작용이 매우 우수하다고 말한다.
해마다 슬그머니 가서 대추를 얻어온다.
다른 건 주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지만 이놈은 눈독을 들인다.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간 산골 외딴집 한 모퉁이에 배나무가 서있다.
사람들은 제살길 찾아 떠나 버렸지만 배나무는 그럭저럭 버티고 살아남았다.
요즘 알이 굵고 달달한 배가 얼마나 많이 생산되는가.
하니, 저 재래종 돌배나무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저렇게 외로이 세월과 타협하다가 어느 날 슬그머니 옛이야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관심을 갖는 이 있다면 돌배를 따다가 술이나 담는 사람 정도일까.
그러나 저 배나무는 6~7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가을철 제법 달달한 열매를 제공하는 효자나무였다.
배알이 아주 작은 나무도 있었지만 어떤 나무는 제법 쓸만한 열매를 주었기 때문이다.
근간에 돌배의 약리작용이 밝혀지면서 잠시 관심을 받는 듯했으나 돈이 되는 게 아니다 보니 금세 잊히는 모양새다.
세월의 뒤안길에 쓸쓸히 서있는 재래종 배나무는 이 시대의 마지막 유산이 될 처지다..
마치 집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서있는 밤나무..
어지간한 시골엔 이런 밤나무 한그루쯤은 다 있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곳이 많을 것이다.
개량종 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세상이니 여차하면 목이 잘려 나갈 신세다.
그런데 옹고집쟁이 농부의 철석 같은 믿음으로 잘 버티고 살아남았다.다.
지금의 5~60대는 잘 알겠지만 저 밤나무의 밤알이 그리 신통치 못하다.
사람이나 짐승도 다 때가 있어 한창 바람일 때 생산도 왕성하 듯 밤나무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10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생각하면 대단한 유전자인 셈이다.
저 밤나무 역시 토종대추나무와 마찬가지로 열매가 잘고 손이 많이 가지만 맛 하나만은 뛰어나다.
해마다 귀찮은 손길이지만 그 맛을 잊지 못해 부산을 떤다.
밤맛을 전혀 모르는 딸아이가 밤맛을 들이더니 해마다 부탁을 해온다.
딸아이를 핑계로 가을이면 밤나무 아래로 달려간다.
밤송이도 작고 밤알도 잔 데다 어느 해는 벌레가 많이 먹어서 먹는데 불편한 경우도 있지만 한 번 맛을 들이면 다른 밤은 잘 먹게 되지 않는다.
처가를 자주 가는 이유가 된 수탉.
속이 들여다 보이지만 장탉의 그 황홀한 맛(?)을 본 뒤로 처가에 가는 일이라면 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아내는 엉큼한 내속을 몰랐겠지.
고추를 따 준다거나 감자를 캐는 등의 일손 거들기 뒤에 닭을 잡아먹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다.
염불보다 젯밥에 신경이 가는 경우여서 난 툭하면 처가얘기를 꺼냈다.
"한창 바쁠 텐데 좀 거들어주러 가야잖겠어?"
"어쩐 일로 먼저 가재? 당신 이제 보니 참 괜찮은 사람이야."
얼씨구.
난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처갓집에 풀어놓은 닭들이 나를 원수보 듯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속셈은 곧 탄로 나고 말았다.
처가의 비탈진 밭 정리문제로 공사가 벌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닭 숫자가 줄어들자 이내 발걸음이 줄어들었고, 어느 날 대화 중에 나도 모르게 본심이 나왔다.
"거길 뭐 하러 가, 닭도 없는데.."
저놈이 토종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나마 계속 알을 낳아 그놈으로 부화를 시켜 길렀으니 다른 닭보다는 낫겠다는 판단이다.
요즘 토종을 접목시켜 토종닭에 가까운 (맛닭)이라는 걸 개발해서 시중에 판다기에 사다가 고아먹어 봤는데...
어림도 없었다.
마트에 나가면 토종닭이라는 상표를 떡하니 걸고 배짱 좋게 파는 닭이 있던데, 먹어보면 일반 산란계보다야 낫지만 토종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막 갖다가 붙여서 팔아도 되는 건지 참 걸쩍지근한 일이다.
그만큼 토종이라는 단어가 주는 믿음이 강하다는 방증이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무조건 크고 많이 생산되는 종에 밀려서 청산해야 할 유산쯤으로 도태시키더니, 알고 보니 토종이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신토불이라고 손바닥 뒤집 듯 입장이 바뀐 것이다. .
이쯤 되면 우리들의 변덕이 뺑덕어멈 뺨을 치고도 남을 일이다.
토종을 사수한다는 농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집 마당엔 검은 닭을 기르고 있었는데 혹시 오골계가 아닐까 싶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더니 오골계는 아니었다.
오골계는 덩치가 크지 않은 데다 눈으로 보기에도 모습이 달라서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전문가가 아니니 닭을 기르는 농가의 말을 믿을 수밖에.
덩치가 무척 큰 데다 얼마나 윤기가 흐르는지 한 마리 사다가 기르고 싶은 욕심이 들 정도였다.
그 양반 말로는 어렵게 씨를 구했고, 어느 정도의 양이 될 때까지는 판매를 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꽤 오래전의 일이니 지금 쯤 그 수 가 많이 불어나지 않았을까.
한 번 찾아갈 요량이다.
덧붙여...
치킨(닭고기·실용계)의 조상은 대부분 태생이 ‘외산’이다. 그것도 가축 육종기업이 거대한 자본을 들여 만들어 낸 것들이다. 따라서 치킨을 먹을 때마다 외국 육종회사에 로열티가 줄줄이 나가는 구조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대한양계협회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육계 원종계의 약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원종계는 대부분 코브-반트레스(Cobb-Vantress·미국), 아비아젠(Aviagen Broilers·네덜란드), 하바드(Hubbard·프랑스) 등 3개 육종기업에서 수입하고 있다. 원종계는 시중에 유통, 소비되는 닭고기의 할아버지가 될 병아리를 말한다.
국내 육용종계 시장은 국내 수입사가 외국에서 원종계를 로열티를 내고 사 들여와 종계(실용계를 낳는 닭)와 실용계(최종 소비되는 닭고기)를 생산 후 판매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로열티의 책정은 기업 간 계약에 의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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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국내 닭고기 수입 및 가공업체인 하림·동우·체리부로·올품·마니커 등이 외국에서 수입한 원종계, 병아리를 각 계약 농장을 통해 키우고 교배시켜 또 다른 닭(종계)을 만들고 이들이 다시 교배해 실용계가 탄생하면 이를 가공한 상품이 식탁에 오르는 식이다. 원종계 수입 후 식탁에 오르기까지 소요되는 최단기간은 대략 1년 5개월(514일) 정도 걸린다.
옥수수 수요가 폭발적이다.
한때 사료용으로 황옥재배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미각을 중시하는 풍토가 일면서 맛 중심의 종자들이 쏟아져 나왔고 옥수수 역시 그 중심에 서있다.
대부분의 재래종 메옥수수들이 설자리를 잃고 도태되었다,
재래종 옥수수들은 병충해에 약하고 도복이 심한 데다 생산량이 적고 대부분 메옥수수여서 식량의 역할 외에 간식으로서의 매력은 별로였다.
새로 개발된 대학 찰옥수수등은 알이 치밀하고 부드러운 데다 찰기가 강해 간식용으로 인기를 구가 중이다.
한우의 주 먹거리가 외국에서 들여오는 옥수수를 이용한 사료라는 걸 알면, 옥수수는 그리 간단한 종자도 아니려니와 지구인의 육식을 해결하는 슈퍼종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옥수수를 먹은 쇠고기를 비싸게 먹으면서도 일반 찰옥수수는 간식용으로 여기고 있으니 우리의 이중 플레이가 이만하면 갑 아닌가.
위 사진은 그나마 남아있는 재래종 찰옥수수의 한 종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근거는 모르겠다.
경험상 옥수숫대의 키가 작아 도복에 강하고 옥수수통이 굵고 짧으며 겉면이 좀 거칠지만 찰기가 강하고 맛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저 옥수수는 십십수 년에 걸쳐 계속 씨를 받아 년년이 심어 종자를 이어왔으니 분명 여느종과는 차별이 된다.
보통 개량종은 한 두해만 씨를 받아 계속 심으면 병충해는 물론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다.
그러나 저 종은 그런 일이 없다.
하지만 아쉬운 일이 생겼다.
작년까지 명맥을 유지했는데 시골 장모님이 종자보존을 잘 못하는 바람에 내년에 심을 종자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혹시나 하여 집안을 뒤지고 있는데... 만일 없으면 아쉬운 일이다.
분명 근처 어디에 재배하는 농가가 있을 것이다.
저놈이 토종인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대를 이어 장수했으니 그리 믿는 거다.
시골에서 심는 감자는 보통 하얀색이 주류였지만 그중엔 보라색 감자가 있었다.
감자알이 길쭉하니 투박하게 생겼지만 가마솥에 삶으면 분이 많이 나고 여느 감자보다는 단맛이 더 났다.
하지만 이 감자 역시 병충해에 약했고 수확량이 매우 적었다.
식구들 많은 집에서 수확량이 적은 자주감자는 그리 달가운 대상이 아니어서 그저 맛보기용으로 심었다.
요즘엔 컬러푸드라고 하여 여러 색깔이 나는 감자나 채소가 개발되어 시판 중이다.
보라색이나 노란색 등의 컬러푸드는 각종 영양소의 가치도 인정받거니와, 눈으로 보이는 시각적인 비주얼도 무시할 수 없어 미각과 감각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고 보면 옛 자주색 감자는 선견지명이 분명하긴 했는데 그놈의 먹는 문제가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 한 셈이다.
( 옛날 자주색 감자는 아니지만 비슷한 사진이어서 올려본다.)
후미진 산골짝에 가면 통나무를 깎아 만든 저런 재래종 벌통이 놓인 곳이 있었다.
대부분 바위 밑이나 큰 나무아래 두었는데 토종벌들이 분봉을 하면 벌을 받아다 통에 넣었다.
여름내 벌들이 물어 나른 꿀들이 벌통 안에 차면 초가을이나 가을 중순에 단 한 번 꿀을 채취했다.
보통 벌들이 먹을만한 양의 꿀을 남겨 두었는데 근간엔 설탕을 먹이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보통 약탈자가 아닌 셈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간단한 게 아니어서 요즘 토종벌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른 개체수 감소와 말벌의 증가로 큰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토종꿀 한 병을 얻어온다.
그나마 토종벌을 치는 지인이 있기 때문이고 처가에서도 소량으로 벌을 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가의 토종벌들은 몇 해전 모조리 얼어 죽었다.
혹독한 겨울날씨와 소량의 먹이가 원인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이다.
진짜 토종꿀을 만나기 어렵다.
토종벌을 치는 농가도 만나기 어렵거니와 1년에 단 한차례 뜨는 꿀 량이 많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중엔 토종꿀이란 이름을 달고 엄청난 양의 꿀들이 활개를 치니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가 학을 띠고 갈 노릇이다.
어린 날, 높은 천장에 문종이로 주둥이를 감싸서 매달아 놓은 꿀단지를 내려 먹겠다고 갖은 꾀를 짜내던 기억이 삼삼하다.
어찌하다가 내려먹은 꿀맛도 잠시, 빗자루 몽둥이로 먼지가 나도록 매타작을 당한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요즘 아이들은 절대로 그럴 일이 없을게다.
그거 말고도 맛난 게 얼마나 많은가.
그때는 엄마가 왜 그리도 밉던지.
혹시 내가 어디서 주워온 애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는.
근간에 토종의 우수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렇게 괄시를 하던 토종이 이제 명맥이 거의 끊길 무렵이 되자 그 가치를 알아보게 된 것이다.
옛말에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토종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의 땅에서 오랜 세월 기후와 토양에 적응해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식량이라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혼과 진배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그 가치를 너무 늦게 깨닫고 있다.
이제라도 토종의 우수성을 알아보고 이에 대한연구가 진행 중이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작금에 부는 한류열풍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 되었으면 싶고, 그 가운데 한국의 토종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1) 성서에 이스리앨 사람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40년 동안 광야에서 먹었다고 하는 1종류 또는 그 이상의 음식
캐나다에도 야생에 똘배가 자랍니다. 그 똘배를 한국여인네들은 따다가 배청을 만들어
겨우내 식구들 감기예방에 쓰기도 합니다.
동대문 한옥안에 커다란 대추나무가 있어 마당에 그늘을 만들어주고 추석무렵이면 빨갛고 파랗고
고만고만하게 많이도 달리던 것이 추억이 납니다
앵두나무와 대추나무가 있었는데 얼마전 한번 가보니 집은 헐리고 빌라가 들어섰더군요
장독대에 올라가 대나무 장대로 두들겨 패면서 딴 추억도 다 옛일입니다
사진이지만 살아서 제 옆에 꿈틀거리는 느낌입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귀촌이 목표이므로 유심히 읽어내렸습니다.
추운 날씨이지만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쑥떡부터 군침이 돌았는데, 저 닭으로 삼계탕 아니 그냥 백숙하면 엄청 맛있겠어요. 쬐그만 대추 퐁당퐁당 빠뜨려서요ㅋㅋ
옥수수며 감자며 토종꿀이며 '월동준비완료'! 석 달 열흘 간 동굴로 들어가서 글만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현실이ㅜㅜ
(한때 꽤 유명했던 배나무에게 고맙다 고맙다 인사를 자주 해줘야 할 것만 같아요!ㅎㅎ)
보리개떡도 많이 해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먹거리가 풍부해서인지 입맛도 다양하지만
한살 한살 나이가 들어갈 수록 시골이 그립고 토종에 대한
입맛이 그립네요.
저 어려서도 작은 할아버지댁에 오래된 토종 대추나무가 있었는데
많이 따먹었었지요.
그리고 돌배나무도 있었는데 아버지가 안아도 한아름에 안지못할
돌배나무였는데 제법 굵었는데 돌처럼 단단했지만 얼마나 달고
시원했는지 모릅니다.
토종을 잘 보전해야겠지요.
예전에 횡성쪽에 전국을 찾아다니면서 토종종자만 모으시는 분이 계셨는데
어디에 주소를 적어놓았는데 지금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네요.
편안하고 좋은날 되세요.
대추나무 새순 돋아 나는 장면, 똘배나무 쓸쓸하게 집 지킴이 같은 모습, 토종밤나무가 겪은 모진 세월에는,
자연재해도 있었겠지만, 인간들이 외면하던 세월도 있었을 것이고, 까닥하다가는 잘라겠다는 역적모의 같은 것을 하는 것에 애 간장 녹았을 세월도,
저 토종닭은 몸체가 크지만 예전 시골에서는 미종이라면서 도시에서 병아리 사다 나르기 전에는 몸체도 작고, 알도 작은 토종닭이
우리 고향에 있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백숙을 해 놓으면 맛은 더 좋다 하셨지요.
우리 고향의 두벌옥수수라는 자주빛 나는 작은 크기의 옥수수는 일년에 두번 심어 먹기도 했는데, 요즈음은 그 자주빛 나는 옥수수의
크기가 커졌고, 맛은 조금 못하다 싶더라구요.
이 포스팅 속의 토종 옥수수 정말로 한 번 먹어 보고 싶어 집니다. 꼭 이웃에서라도 씨앗을 구해서 이어졌으면 합니다.
예전 경상도에서 농사 짓던 토종감자는 이제 없어 진 것 같습니다.
토종감자 농사 짓는다 해서 택배 신청으로 사 보아도 개량 한 것이지 예전 그 토종 감자는 아니였습니다.
그 토종감자는 타원형으로 생겼고, 크기도 굵지 않았는데, 옅은 분홍색 감자, 흰색 감자가 있었지요.
시골에서 가마솥에 물 붓고, 큰 양푼 중앙에 놓고, 양푼 가 쪽으로 피감자 놓고, 소금 약간 뿌려서 삶아 놓으면,
탁 반으로 자르면 분이 많고, 어쩐지 단듯한 맛도 나는 아주 맛난 토종감자였습니다.
저가 어려서 부산에서 둥글고, 크고 삶아 놓으면 분도 제법 나는 씨감자를 들여서 한 집 두 집 그 개량감자로 바꾸었지요.
예전에는 우리가 어린 시절에 이 토종꿀은 집안에 약으로 쓸려고 조금씩 있었습니다.
그 때도 귀한 것이였는데, 토종꿀 홍수 속에서 진짜 토종꿀은 그 때보다 더 귀하다 해야 겠습니다.
글 말미에 하신 말씀은 제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 옵니다.
우리 세대들이사 살다 갈 날이 얼마 남았겠습니까만, 우리 자식들도,특이 우리 손주들이 이어서 잘 살아야 할 우리 땅이고, 우리 나라인데,
글로벌 세상이라 지구 어디에서든 살아 가지만, 자기들의 근본인 자기 아버지의 나라, 자기 할아버지의 나라가 건재 해야
정신의 기본이 서는 것인 것을요.
이 글 많은 분들이 읽으셨으면 해서 글 주소 복사해서 제 방에 올려 놓겠습니다.
우리들의 살아 온 날의 귀한 우리 토종의 이야기- 좋은 글 포스팅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같은 날 뜨근뜨근한 국밥 한 그릇 사 드리고 싶은데요.
먹을 것 때문에 동분서주하며 바쁘게 사셨던 어머니가 제일먼저 떠오르고, 그 많은 식구들 끼니 해결하시느라 하루도 맘 편하지 못하셨던 것도 낡은 필림처럼 지나갑니다.
이런 고통의 과정들이 오늘로 연결된 것인데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과정의 중요함을 깊게 바라보지 못합니다.
없이 살았어도 위 아래는 알아보았고, 형제들도 서열이 분명하고 서로 챙겨줄 줄 아는 형제애가 분명했는데 그런 장점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핵가족이 낳은 어쩔 수 없는 변화라고 자위해도 자신에게 닥칠 현실은 인정하지 못하는게 우리지요.
토종이라는 게 꼭 동식물만 아니어서 우리들도 관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당차고 매운 우리의 후손들이 토종 한국인의 역할을 잘 해 주었으면 합니다.
노로들이 살아갈 방법도 이들에게 달렸습니다.
뜨끈한 국밥 한그릇 받아 먹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아주 뛰어난 인재들이 많은 나라니까 곧 토종 퍼레이드가 펼쳐질 것입니다. 당연히 떼돈 버는 사람도 나오겠지요.
그러면 또 무슨 부작용도 생길 것이고......
그럴 때를 대비해서 순종은 살아 있어야 할 텐데, 이것도 누군가 책임감 있는 분들이 지키시면 좋겠습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구경꺼리를 잘 보여주셨습니다.
토종이라하면
제가 바로 토종입니다
사회친구들이 그랬다지요 40대에 만난 친구들이
" 저기 말야 저 이여사는 무슨 음식을 좋아할까 ? "
고급 레스토랑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우아하게 먹지않을까 ?
궁금해들 했다지요
그런데 어느 날 회사 동료들과 회식을 하는 장소에서
밥 먹는 걸 보더니 완전 토종음식만 좋아하니요( 된장 쌈밥 / 배추김치, 그 것도 자르지않고 온 가닥으로 밥숟가락에위에 돌돌 올려 얹어먹는 맛)
제가 지금도 안먹고 안좋아하는 것 아이스크림 초콜릿 케잌 치즈 마요네즈 피자도 ...
ㅎㅎ 좀 맹하지요
고들배기 갓김치 다 좋아하고요 무우시루떡 최고 좋아합니다
대추는 풋대추 제 철에 꼭 사다먹습니다
지나가다 대추나무 보면 그냥 몰래 따먹기도 하고 주인계시면 이야기하고 몇 개라도 꼭 따먹습니다 적당히 익은 붉그스레한 그 풋대추맛을 알지요
오늘 포스팅 통채로 가두어둡니다
고구마에 묻은 밥알을 보니 옛 생각이 많이 납니다
엄마는 가마솥에 밥을 지을때 고구마를 몇 개 얹었지요
그 고구마에 붙은 쌀 밥알 떼어먹는 것도 귀했으니요
참고로 보리쌀을 삶을때 고구마를 얹으면 절대 보리쌀은 고구마에 붙질않았거든요
개떡 닭백숙 대추 밤 옥수수 고구마 자주감자 꿀
순서가 맞나요 ?
토종밤은 광주 큰 올케 친정이 구례군 용방면 사림리라는 곳인데 그 집 뒤안에 가면 딱 저렇게 큰 밤나무 한그루가 있어
그 잘디잔 토종밤맛을 제가 알고 난 후로는 매년 찾습니다 오늘 저녁 광주가면 혹시 몇 개라도 남아있는지 꼭 물어보고 있다면 먹고올랍니다
이거 더 쓰고 싶은 추억거리가 많은데 일단 멈춰야겠네요
생각나는게 많고 글 재주는 부족하고 중구난방 혼란스럽기만 ... 정리가 제대로 안되는걸요
우리 이러다가 댓글 모아 단편집 만들어도 될 지경입니다 ㅎㅎㅎ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 듯 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감칠맛 나는 글 솜씨도 그렇거니와 생소하고 웃음 짓게 하는 이야기가 어찌나 많은지
눈도 깜박이지 않고 또박또박 글을 배독하게 됩니다.
송고를 찧어 만들었다는 개떡은 보기조차 못했으니 그 맛이 무척이나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나 쑥개떡과 보리개떡은 엄마가 해주셔서 먹었지요
유달리 크기는 작지만 단맛이 강했던 토종 대추~~
저도 그 맛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답니다.
친정집 앞마당 한켠에 키 큰 대추나무 두 그루가 있었거든요
명절이나 제사가 돌아오면 어김없이 수확한 대추를 상에 올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토종 배나 밤도 얼마나 단지요
토종 밤 맛은 요즘 개량종 밤과 비교가 안 되지요.
토종닭의 감칠맛에 이끌려 처가로 향하는 걸음이 잦은 이유도
음흉한 웃음 뒤에 감추인 속내가 밉지 않습니다.
어떤 연유든 처가의 일을 도운 건 사실이니까요
우리의 먹을거리 토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니 고맙습니다.
바라건 데 열무김치님 말씀처럼 한류열풍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문 시간입니다.
편히 쉬십시오^^*
그런 경험은 하지 않는게 좋지요.
그당시 기억이라는게 대부분 되돌리기 싫은것인데 추억이라는 포장지로 싸서 예쁘게 보이는거지요.
농가의 어지간한 곳에는 저런 나무들이 한 두 그루씩 있었습니다.
당시엔 잘 몰랐는데 요즘들어 보니 모두 보물이었던 셈입니다.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마을의 수호신같은 거목을 잘라내기도 하고 길 넓힌다고 마구잡이로 파혜치기도 했는데 그때 마을 어르신들이 엄청 말렸어요.
그런데 모두 미신이고 쓸데 없는거 고집한다고 막 밀어 부쳤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나마 남아있는 과일 나무나 고목의 느티나무들도 그분들의 한결같은 고집이나 믿음으로 지켜졌네요.
지금도 처가에서 여전하게 닭을 기르고 있기는 한데 전처럼 알을 부화시켜 대를 이어 기르는게 아니라 시장에서 병아리 사다가 기릅니다.
그래도 제 멋대로 방사를 해서 기르니까 맛은 비슷합니다.
해서 요즘은 또 열심히 갑니다
ㅎㅎㅎ
휴일 좋은시간 되십시요.
빠른 선택이란 ?
가까이 있는 것을 잡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확실한 것을 잡는 것이다.
정확한 선택이란 ?
좋은 것을 잡는 것이 아니다.
좋으면서도 내게 맞는 것을 잡는 것이다
년말을 맞이하여 반가운 소식 들이 많이
만이 들여 왔어면 좋겠습니다.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주말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불변의흙-
아직 밥때가 되지 않았는데, 어찌나 맛나게 글을 쓰셨던지...책임지세요~ ㅎㅎ
역시 우리것이 좋은 것이네요. 토종....
작지만 결코 맛에서는 따라갈자 없는 것!
저도 겉모습은 작은 사람인데, 속모습은 꼭찬 내실있는 사람이 될랍니다. ㅎㅎ
토종,
뭐니해도 토종닭이 최고입니다. 먹고 싶다.
고향내음 가득담고 돌아갑니데이
농사 짓던분들이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토종을 고집했던 입맛이 있던것도 아니어서 (아마도 전통적인 맛인것 같습니다)
별로 이곳에 쓸말이 생각 나지 않아서 들어왔다가 다시 들어 왔습니다.
미국에서 요즘 젊은 세대들이 오르가믹 식품을 파는수퍼로 쇼핑을 가고 있는데,
그런 식품들을 예전에는 토종이라고 했던것 같습니다.
화학 비료를 주지않고 자연거름으로 키워서 보통식품보다 비싸지만 ,아주 비싸지 않은곳도 있습니다.
그런수퍼에 가면 고상우아한 백인들이 물건값에 구애 안받고 척척 쇼핑카에 담아서 잔뜩 자기집으로 사 나릅니다.
제 큰딸까지 자기 아이들에게 줄 음식은 거기서 사다가 줍니다.
제속으로 보기에 똑같은데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하면서 저는 안사고 딸사는것만 구경하고 나옵니다.
다들 얼마나 건강하게 안아프고 살려고 그러는지 비싸게 준호박이나 오이나 파가 어떻게 다른지 몰라도,
농사짓는것 본적도 없는데 식품은 어느정도 사는사람 기분이 크게 좌우 되는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이 서로 못믿을 세상이라 듣기에 하도 이상한 농약들을 사람먹는 과일이나 채소에 준다는말을
저도 들어 보기는 했지요.예전 분들처럼 순수한 혈통의 시골 닭이라든가 꿀이라든가....제가 뭐생각 나는일이
별로 없네요.그렇게 먹고 살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는데,그런 음식 먹던 사람들은 수명이 짧으셔서
다 이른 연세에 돌아가시고,요즘 사람들이 더 오래 사는것은 토종이 아닌 음식먹는 사람들이지요?
제가 좀 본론에서 벗어 났어도 용서하십시오.뭐라도 댓글은 드리고 싶은데,아는것이 없어서 제가 아는 얘기를 했습니다.
남편이 다음번 이사를 가게 되면 조금 외딴곳에 살면서 우리도 닭도 키우고 사는것도 좋을것 같다고 했지요.
사돈 내외분께서 오레곤주 산쪽에 사시면서 닭을 사오십마리 정도 키우셔서 계란도 얻고 ,닭도 잡고 사신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 보자고 했지만 어디 그러고 살수 있을지요.친정근처에 어디에 그런곳이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짐승을 키우는 일이 간단하진 않지만 시간이 가면 금방 익숙해 집니다.
자연산이니 무농약재배니 하면서 자연친화적인 단어들을 동원하여 소비자들에게 다가서려는 기업의 속마음으로 모르는 바 아니지만 대부분 사실과 달라서
정말 어렵게 자연농법을 고집하시는 농민들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 어르신들이 좋은 것을 드셨음에도 장수하지 못했음은 당시의 환경이 장수문화와 거리가 멀었던 탓도 있을것이고, 아무리 좋은 음식을 드셨다고 해도 그것을 상시 복용은 하시지 못했겠지요.
못 먹고 헐벗고 굶주린경우가 훨씬 많았잖습니까.
제 생각은 자연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나이들면 자연 아프게 마련인데 현대인들의 평균수명 연장은 의학의 발달이 가져온 덕이 아닐까 합니다.
좋은 결정을 하셔서 노후는 자연적인 환경에서 사시는 방법도 권면해 드립니다.
제가 농촌에서 오래 살았던 게 경험이 되어 드려보는 말씀입니다.
좋은 댓글 감사 드려요.
요즘 인스턴트음식 먹고 사는 사람들하고 비교해서 죄송합니다.
맞아요 예전에는 다 가난했지요.없어서 못잡수신 선조님들이셨지
그렇게 좋은 음식을 항상 잡수실 여건이 아니었다는 생각은 못했네요.
아버지께서 영어선생님이셔서 다들 직장 없던 50년대 시절에는
저희도 가난했는데도 불구하고 저희는 그래도 잘사는편이었지요.
아버지께서 길에서 울고 있는 계모에게 쫓겨난 언니들을 집으로
데리고 올 정도로 다들 밥을 굶고 살던 시절도 있었네요.
어떨때는 3명의 언니들도 같이 살았어요.
그때가 제가 7-8살 정도여서 그동안 잊고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라가 가난하니까 14살된 딸을
길거리로 쫓아내는 슬픈일들도 있었네요.
저는 지나간 일들을 잘 잊어버립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눈물날 일이네요.
그언니들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까요?
지금쯤 아주 잘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먹거리가 귀하던 어린시절 엄마가 보리개떡 두개 담긴 쟁반을 주면 부식가게에 심부름을 시키길래
개떡도 주고 오라는 내용인줄 알고 주고 왔더니 옆집에서 저희 먹어라 준 개떡이였답니다
지금도 그때 못먹은 개떡이 생각납니다 50년이 지났는데 ㅎㅎ
시장에 나가 쑥개떡 하나 사먹어야겠습니다
작고 알찬 옛 토종 맛에 심취되었습니다.
문득 어느분의 강의에서
우리가 작은 것은 민족의 수난 탓이요
내 자녀들은 민족의 번영으로 점점 크게 자라야 한다던
말씀이 생각나네요.
민족의 수난에서 작음이 민족의 번영에서 커짐이라면 대추알 하나가 주먹만해 진들 푸념 할 것이 아니겠지요
해마다 신품종들이 개발되어 맛도 크기도 이제는 각자 용도에 맞게 탄생되니 환영 할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옛 것을 지켜나가는 것은
할머니의 비녀지른 쪽머리를 어쩌다 만나듯이 귀한 민속이 되어버린 듯 하네요.
잠 설치며 뒤척이다 이 글 한번 더 복습하듯 읽고
귀한 자료 주심에 감사의 인사 올리고 갑니다.
- ★ 미다스 kan7ry
- 2015.12.15 19:43 신고
- 수정/삭제 답글
한 번 먹으면, 또 찾게 되는... 토종꿀같은 맛을 아시려나요(?)
밤도 참 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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