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80대 노인이 사망한지 거의 한달만에 이웃 주민에게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즘같은 날씨면 사망 후 한달이면 백골상태가 되었을것이다.
그 어르신은 자녀가 여러명 있었지만 사망 한달이 다 되도록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고,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자녀들의 연락처를 알 수 없어서 사망소식을 제때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보통 이런 뉴스를 접하면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세상이 어찌 되려고.. 하는 등의 각이 진 생각을 하게되고 또 비판의 날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노인문제가 사회의 짐이 되는것처럼 비쳐지는 경향이 잦아지면서, 이제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무감각의 사회로 변해 가는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부부관계의 갈등을 부부외에는 잘 모르 듯, 이런 사건의 내막에 숨어있는 개인의 사정을 도덕적인 잣대로만 바라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은 결과만 놓고 볼 뿐 과정을 생각하지 않으며 사실 관심도 없다.
사망하신 어르신께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왜 자녀들이 왕래를 잘 하지 않았는지, 이웃주민이나 복지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만 놓고 이에 관계되는 사람들을 비난 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서글픈 일임에는 분명하다.
설령 말못할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홀로 고독하게 살다가 사망을 해도 자식들이 모를 정도면 가족이라는 의미와 부모 자식간의 관계라는것이 너무 허망하지 않겠는가.
이제 이쯤에서 연일 벌어지고 있는 노인 학대문제나 고독사 문제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여 밀게 아니라 좀 현실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노인의 홀대나,학대, 고독사에 있어 우리 모두 그리 자유롭지 않은 잠재적인 가해자들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대상자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연로하신 어르신과 함께 사는일은 간단하지 않다.
생체리듬이나 생활반경등이 젊은이들과 다르고, 음식을 섭취하는 기호문제,사물의 인지능력 등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이에 발 맞추어 함께 생활을 한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다.
더구나 노인은 자기주장이 강해서 옹고집 내지는 독선적으로 비쳐지는 경우가 많고 작은 일에도 서운함을 느끼는 등, 젊은이들이 얼른 받아 들일 수 없는 요소들이 다분하다.
따라서 대부분 장시간의 인내심을 요구하고 때로는 오랜 질병등으로 가족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나마 가부장적인 가족 공동체 중심의 사회에서는 좋거나 말거나 이를 숙명처럼 받아 들이고 이를 긍정하고 인내하며 살았지만, 가족이 해체되고 개인주의가 팽배해 지면서 자기 자신 외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않는 개인 중심의 아주 고약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산업화 과정에 뒤따르는 물질문명의 명암이 이에 적응해 가려는 현대인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진 탓 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족 공동체의 해체다.
가족 공동체의 해체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변질되어지는 함수관계가 분명하지만 우리사회는 그 과정을 너무도 빨리 밟아 버렸다.
또한 해체과정도 국가 행정이나 경제,교육의 일정 범위내에서 물 흐르 듯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지 못하고 먹고살기 위해, 산업화에 밀린 급격한 탈 이농,남들 보다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교육열로 인해 사분오열되는 아주 좋지않은 과정을 겪었다.
특히 교육의 조삼모사, 1등이나 외모 지상주의가 산업이나 문화 전반에 선한 일로 인식되면서 저물어 가는 구세대와 현 세대들간의 좁힐 수 없는 큰 골을 만들어 버렸다.
짧은 기간에 겪은 모진 변화는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상당한 흠집을 남겼다.
그 결과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노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핵가족화로 부모 외에는 조부모와 가까이 할 수 없었던 까닭에 이는 당연한 결과다.
경험으로 비추어 보면 윗 어른과 함께 살면서 성장기를 거친 사람은 후일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가족관계의 위 아래가 연습이 되어있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도덕적인 행동을 요구하는일은 씨를 뿌리지 않은 밭에서 열매를 거두려는 행동과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과거세대보다 더 피곤하다.
끊임없는 공부와 선두대열에 서야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성장기를 보내야 한다.
자신의 과거를 보상 받으려는 부모들의 욕심과 급변하는 시대가 남긴 어두운 단면이다.
인스턴트 음식과 디지털문화로 통칭되는 각종 전자제품의 범람은 현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특히 고도로 발전된 전자제품의 일상화는 가족이나 개인간의 대화를 끊어 버렸다.
특히 세계의 유례를 찾기 힘 든 국민 대다수의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대화단절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불러왔다.
가족이 모여 앉아도 대화보다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경우가 훨씬 많아서 모처럼 가족이 만나도 가족간의 정을 나눌 기회나 시간이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도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기 힘들다. 그보다 더한것은 시간이 가면서 괜찮다고 느끼는 양질의 직장이 점점 줄어든다.
업무의 효율성과 극대화라는 기업 이념은 사람대신 디지털화 된 첨단 기계로 대체하여 사람이 설 자리를 빼앗아 간다.
직업을 구함에 있어 자신의 스팩보다는 집안의 배경이나 사회적인 인맥이 좋아야 한다고 믿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태백이니 삼포, 오포세대니 하는 말들이 자신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윗 세대들 자신들의 파이를 지켜내기 위한 악습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노인들은 과거 부동산 광풍이나 한탕주의 문화를 만든 바람직 하지 않은 세대로, 결국 미래 자신들의 이익을 갉아먹는 거추장스러운 존재 쯤으로 바라본다.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 )을 형성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현 세대의 대부분은 어릴때부터 노인은 나의 생활과 관계가 없거나 설령 관계가 있어도 친족 이라는 문자적인 관계 외에는 이방인으로 여기며 살았다.
따라서 노인이 외롭거나 고독한 삶을 사는 건 세월의 변화가 주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노년의 어려운 삶이나 고독사 등의 상황은 국가가 책임을 져 주거나 해결 할 문제지 내가 책임감을 갖고 나설일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재산을 물려 주거나 기업을 잇게하는 특별한 경우는 예외다.
그것은 자신의 미래에 거름을 주는 일이므로 적극 앞장서서 쟁취해야 할 가치가 있다.
내 앞날에 플러스로 작용하는 경제적 정신적인 유산이 많은 경우는 그 댓가 만큼의 내 행동도 따라가게 되어 있는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뿌리깊게 박힌 이런 현상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울게 아니라 방법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
1.
어릴때 부터 노인과 가까이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핵가족화 된 작금에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미운정 고운정도 서로 부딯치지 않으면 절대로 생겨나지 않는다.
지난번 파란편지님이 쓰신 요양원 체험학습(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8698) 은 아주 좋은 방법중의 하나라고 보여진다.
아이들이 이런 체험학습을 통해 노인들과 스스럼 없이 가까워지고 자신도 나이가 먹으면 이렇게 된다는걸 간접적으로라도 느끼게 만드는 일이다.
노인 역시 아이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면 몸과 마음으로 훨씬 건강해지고 밝아질것이다.
아이를 둔 부모들은 극한 거부반응을 보일게 뻔 하지만, 머잖아 자신도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 본다면 이는 적극 찬성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분명 이런일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제도적인 틀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시행하다보면 분명한 효과가 나타 난다고 확신한다.
2.
국가에서 효를 장려하는 문화적 제도를 정착 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어버이날을 이틀 정도의 공휴일로 지정하고 부모님을 찾아뵙는 일이 자랑스럽고 의무적인 일이 되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다.
분명히 일각에서는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냐고 하겠지만 마음이 움직여야 행동도 나오기 때문에 동기부여를 위해서는 얼마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에 한 술 더 보탠다면 부모님과 함께하는 모습을 문화적인 컨텐츠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자주 보여주며 홍보하는 일이다.
가정의 폭력이나 언행은 아이들이 안 보는 것 같아도 어느새 보고 배우 듯 , 미래세대에게 어른공경의 반복적인 학습은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지 반드시 그 효과가 나타난다.
3.
그동안 장남 문화를 유지하던 우리 사회의 틀이 무너졌다.
가족의 평등화라는 장점도 생겼지만 그 장점을 따라 책임감도 사라져 버렸다.
장남이라는 봉건적 위치는 즐거움 보다는 집안의 대를 책임진 무거운 짐과 함께 의무감이 뒤따르는 자리였다.
장남으로 태어나면 좋거나 싫거나 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어찌됐던 자신의 책임감 때문이라도 해야 할 일들을 해 냈고 다른 형제들도 이를 인정하고 따라 주었다.
부모가 유산을 상속함에 형제들 간 큰 다툼이 없었던 이유도 분명하게 자리잡은 집안을 책임 질 장남이라는 서열 때문이었다.
시대적인 요구에 따라 재산 상속의 배분이 법적으로 균등하게 이루어지게 되고, 출가를 한 자녀에게도 같은 비율이 적용되자 주지하다시피 부모의 재산상속 문제로 하루가 조용하지 않게 되었다.
부모의 유지대로 일정인에게 유언상속을 해도 부모의 뜻을 따르던 자녀들이 근간에 이르러 유류분 재산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거는 일들이 부쩍 많아졌다.
돈과 재산에 있어 예민하기 그지없는 현대인들에게 자기몫에 대한 애착은 상상을 초월해서 작금에 벌어지는 상속문제의 다툼을 보면 가히 전쟁이나 다름 없음을 목격하게 된다.
아직 장남문화에서 벗어나지 못 한 부모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갈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간격이 벌어져 있다.
실예로 법정을 찾는 형제들의 재산권 다툼은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10,000여건에 이르던것이 2014년에 이르러35,000여건에 이를만큼 해마다 큰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변호사로 있는 지인의 말을 들으면 수임사건의 상당수가 형제들간의 재산권 다툼에서 오는 갈등 문제라고 한다.
형제들간의 재산 다툼은 기업이라고 해서 다를게 없어서 차라리 듣거나 보지 말았으면 할 정도로 천박스럽고 비극적이다.
더구나 형제간의 재산 다툼은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다시는 서로 상종하지 않는 원수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장남이나 부모를 모시는 자녀에게 일정분의 상속분을 더 인정해 주고 있지만 이에대한 손질이 필요하다.
시대적인 역발상일지는 모르겠지만 장남에게 상당부분의 기득권을 인정해 주고 그로 하여금 의무감도 지게 만들어 다른 형제들이나 사회 구성원들이 이를 받아 들이도록하고 또한 이를 구체화 시키는 일이다.
어차피 하나 또는 둘 정도의 자녀 뿐인데 그게 무슨 남의다리 긁는 소린가 할 수도 있겠지만 제도적인 틀이 있는것과 없는것은 큰 차이를 보인다.
또한 앞으로 인구변화가 어찌 되려는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대적인 변화라고 합리화 시킬일이 아니다.
그렇게 둘러 대기엔 지금이 겪는 아픔과 갈등의 골이 너무 깊다.
4.
부모의 재산상속에 있어 지금보다 강화된 법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모 생전에 재산을 증여하거나 동산을 물려주는일에 강제규정을 두는일이 간단하진 않겠지만, 자식들의 성화를 견디지 못하고 사전에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고 후일 처량한 신세가 되는 노인들이 너무도 많기에 해보는 소리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 해 물려준 자신의 재산을 다시 돌려 달라고 자식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일이 버젓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직설적이겠지만 부모의 재산에 눈이 멀어 지나친 욕심을 낸 자식들이 재물의 효과가 끝나면 부모에 대한 미련이 줄어드는 건 인간이 지니는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다.
그지경이 되면 자식과 부모라는 관계가 어찌 될것이며, 어떤 극약의 처방이 내려진다고 해도 관계는 회복되지 못 할 것이다.
부모가 살아 있을때에는 제도적으로 부동산이나 동산을 상속할 수 없도록 법제화 하면 마음에 있던 없던간에 부모를 찾아보는 일들이 지금보다는 더 늘어 날테고 그러다 보면 없던 정도 생겨날것이다.
입맛이 다셔지는 이야기지만, 요즘 자녀들은 돈에 민감해서 부모가 재산이 있거나 금전이 있으면 오지 말라고 해도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다고들 말한다.
반듯한 자녀들도 많으니 재산문제에 있어 모든 자녀들이 다 그렇지는 않을것이다.
그러나 부모 재산상속의 문제는 살아가기 팍팍한 현대인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그 단적인 예가 몇 푼 되지도 않는 재산을 두고 자녀들간에 벌어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법적 투쟁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상식적인 시선은 차라리 순진하다고 한다니 놀랄 일이다.
죽을때 까지 재산을 꼭 쥐고 있으면서 대접받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자녀들이 도와 달라고 조르는데 끝까지 버틸 부모는 별로 없다.
나중에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상황이 눈에 보여도 그 자리에 발을 들여 미는게 부모 마음이다.
또한 실제로 그렇게 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자식들 역시 처음엔 이런 문제에 고민하겠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어 버리고 포기해 버린다.
자식이 엄연한데도 단칸방에서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에게 대화를 걸어보라.
사람들의 입 찬 말대로 인생을 잘 못 산 노인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 열심히 생을 산 사람들이다.
핑계없는 무덤은 어디에도 없다.
이런 현상에 브레이크를 걸어 줄 대안이 바로 살아있을때 부동산이나 동산을 물려줄 수 없게 만드는 법안이다.
자녀의 지나친 요구에 법의 망치는 이를 중재할 중요한 구실이고 부모역시도 이를 거절 할 훌륭한 대안이 될것이다.
이 방법이 다소 치졸한 면이 없지 않으나 작금에 벌어지는 부모 자식간의 재산상속의 갈등을 생각하면 불필요한 사회비용의 절감이라는 면에서 좋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다만 이런 문제들이 탄력을 받으면 증여등의 조세문제가 저항을 받게 될것이고,이를 빌미로 수입을 창출하는 법 관계자들의 일감이 줄어들어 그리 반갑지 않을것이다.
요즘 자녀들의 취업 문제와 결혼, 주거, 문화생활 등이 각박해지면서 부모곁을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족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통계다.
그만큼 부모의 역할이 힘들고 갈길이 멀기만 하다.
사정이 나은 사람이라고 해서 대부분 남의 얘기고 나와는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지만 어느날 내 신세가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는 사실을 반대로 보면 답이 될것이다.
5.
화장 문화가 처음 도입 될때만 해도 웬만한 집안에 초상이 나서 화장을 하는일은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조상의 몸을 불로 태우는 일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여간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불문율이었지만 지금은 어떤가.
어쩔 수 없는 경우였어도 남들이 알세라 쉬 쉬 하며 했던 화장은 이젠 아예 보란듯이 대놓고 한다.
전국의 산하가 묘지로 뒤덮여 간다라는 구호는 여기에 아주 좋은 면죄부를 주었고, 안그래도 장례 문화에 실증을 내던 사람들은 비용이나 시간이 절약되는 화장문화에 얼씨구나 하고 맞장구를 친 모양세가 되었다.
화장문화에 딴지를 걸자는 얘기가 아니다.
사후 장례문화를 제도적으로 좀 무게있게 다루어서 후대들이 자기도 장차 노인이 된 후 사망하면 적어도 죽음의 장이라도 가치있겠다는 의식을 심어 주자는 말이다.
그렇다면 노인을 대하는 의식구조가 상당하게 변하리란 생각이다.
노후의 삶도 고달프고, 죽고 나서도 마치 더러운 걸레 치우 듯 무관심에 푸대접이면, 삶의 질이 낮아지는것은 물론 노인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시각이 비관적으로 변한다.
6.
노인과 함께 사는 가정에 대해 국가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지원을 해주는 방법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복지예산 때문에 국가에서도 골치가 아플것으로 보인다.
양로원, 요양원, 실버타운등의 국가 지원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가정내에서 노인들이 거주 할 수 있도록 지원정책을 더 보강 한다면 노인에 대한 사회적인 기회 비용이 지금보다는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문제는 자녀들이 이를 수용 하느냐가 관건인데, 이를 수용하는 자녀들에게 지금보다 더 강화된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각종 시험이나 사회활동에 일정량의 인센티브를 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효과가 나지 않을까 한다.
여기에 투여되는 재원이 그렇지 못해서 들어가는 재원보다는 훨씬 적지 않을까.
무엇보다 돈으로 얻을 수 없는 또다른 부차적인 문제들을 예방 할 수 있는 길도 될것으로 보인다.
노인이나 청소년 문제는 당장에 닥친 문제도 그렇지만 여기에 파생되는 연쇄적인 2차 3차적인 문제들이 더 큰 사회 파장을 불러오는것을 감안하면 가정이라는 일정의 틀에 일정 예산을 들이는 일도 나쁘지 않다고 보여진다.
7.
기하 급수로 늘어나는 노인들의 수 에 필적하는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늘리는 일이다.
실버산업은 저물어 가는 아나로그시대의 마지막 일자리라는 말도 있다.
노인돌봄은 기계가 할 수 없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안그래도 양질의 직장이 없어 수십만의 젊은 엘리트들이 방황하고 있다.
우스개말로 지금 한국의 예산집행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도적놈들이 많아서 이모양이라는 농담이 있다.
기업은 돈이 많아도 하기 싫어서 하지 않고,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버산업은 해도 되고 안해도 그만인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해야 할 숙명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이에 관한 학과를 더 늘리고 이에 종사 할 젊은 인재들을 기르는 일이다.
지금도 하고 있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느냐고 하겠지만 돌아가는 사회적인 시스템을 보면 여전하게 초보에 머물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우리들이 깜짝 놀랄만한 노인에 관한 사건들이 백주에 버젓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초고령 사회에 진입해서도 지금의 시스템이라면 아마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우후죽순처럼 벌어질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의식은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고 단 몇 십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 과거의 우리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어떤가.
인구는 더 줄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사람도 있지만 줄어드는 젊은 인구로 인해 몸살을 앓는곳들이 수없이 늘어나고 있다.
마찬가지 예로 얼마 지나지 않아 들여닥칠 초고령사회에 들어가서야 허둥대는 것 보다는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속담에 우선먹기는 곶감이 달고 외상이면 소 도 잡아 먹는다 라고 했지만 이 말은 결국 후일이 지금같지 않다는 뜻이다.
8.
노인 문제는 먼 남의나라 일이 아니라 바로 내 문제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일이다.
지금 편하고 아름답게 살면 그만이지 무슨 미래의 일까지 미리 염려하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라고 받아 들일 수도 있지만 질서가 몸에 배이면 스스로 자유롭듯, 이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가 몸에 배이면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자유롭고 좀 편해 질것이라고 본다.
우리에게 이 괴리가 존재함은 나는 그렇지 않을것이라는 일종의 회피심리다.
세월을 찬미한 시인들은 젊음이 참으로 짧게 지나간다고 노래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내 젊음을 향유하며 기쁘게 여김은 노인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상대성이 없는 세상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것을 어느정도 알수있는 길은 그들과 함께 부딯치며, 비교하고 ,비쳐보고 , 멀찌기서 바라보는 일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보다는 학교와 학원으로 내몰려 성인이 될때까지 주입식 공부에 지친 젊은이에게 어느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마주한 노인은
거의 외계인에 가깝다.
교육이 그 몫을 감당해야 한다.
초등학교부터 노년에 대한 문제를 일부 과제로 다루어 조금씩이라도 접근을 하다보면 몸에 배이고 습관이 되어 이 문제가 생소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는 지금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여유있는 모습으로 노년을 바라보게 될것이다.
그렇다면 어느날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하직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이웃에게 발견되는 비극은 좀 줄어들지 않겠는가.
끔찍한 사건에 지금처럼 가슴을 쓸어내릴 까닭도 줄어 들것이다.
9.
어떤 이유로든 사회복지시설을 이용해야 한다면 이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꾸어야 한다.
여기에 수용되는 노인들 역시 마음으로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도록 해야하고 또 즐겁게 여길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
복지시설에 들어가는 일을 마지못해 하는 지금 분위기라면 앞으로도 노인문제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을것이다.
마지막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는 닫친 마음에서 자식들이 나를 버렸다는 비참한 생각까지 들면 복지시설에서의 마지막 삶도 행복하지 못 할 것임은 자명하다.
복지시설의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컨텐츠의 개발도 국가에서 적극 지원하고, 이곳에 부모를 맡긴 자녀들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떳떳하게 주어진역할을 한다면 처음과 달리 부모와 지식간의 소원해진 관계도 부드러워 질것이라고 본다.
화장장이 틀림없이 필요한 시설임에도 자기가 사는 동네엔 절대로 들어설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님비현상과 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우리들의 마음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복지시설에 부모를 맡기는일에 당사자인 부모나 자녀들이 이를 여전히 감추고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 노인문제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체면유지는 여전하게 하고 싶다는 얘기다.
치매나 중증의 장애가 있는경우 가정에서 이를 감당하며 가족 전체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 보다는 시설에 보내 드리는게 훨씬 나은 경우가 있다.
다만 이에 따르는 비용 문제로 형제간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문제가 자기의 문제라고 여기고 폭 넓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자기는 하기 힘들어 부모를 시설에 보내고 그 비용까지 감당하지 않으려 한다면 되려 자신이 불쌍하지 않겠는가.
덧붙인다면 좀 가혹 하겠지만 자기의 의무를 감당하지 않는 자녀들에게 일정 범위내에서 법적인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비용문제에 있어 각자 감당 해야 할 몫에 대한 강제규정을 두면 자식들간의 극한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것이다.
이 문제는 개인의 인권을 침해 할 수도 있다는 점과, 가정사에 국가가 개입할 수 있을까 라는 단서가 붙지만, 이런 문제가 갈등의 불씨가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비화되어지는 경우가 너무도 많아지니 사회적인 기회비용을 미리 막는다는 취지에서 생각을 해 볼 문제다.
또 한가지 덧붙인다면 우리나라 언론의 역할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사명을 다해야겠지만 우울하고 어두운 소식 보다는 밝고 긍정적인 소식을 자주 전해야 할 책무가 언론에게 있다.
일부 방송을 바라 보노라면 일정 사건에 마치 당장에 큰일이라도 날 것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불특정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여 시청자들을 붙잡으려는 의도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가령 추석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재산다툼이나 부모 문제등으로 살인 등의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등의 소식을 연일 내보내면 이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팍팍해지고 타인에 대한 불신감이 생겨난다.
가급적 우리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밝고 기운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었으면 한다.
과거 폭력이 미화되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영화나 극을 만들어 인기를 끌던때가 있었다.
가뜩이나 폭력게임에 중독이 되다시피한 청소년들이 많았는데, 이런류의 컨텐츠들은 사회폭력에 모종의 정당성을 부여하게 만들었고 사회 전반에
서열문화를 심었는가 하면, 힘이 있으면 법에 반하더라도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아주 좋지않은 예를 남겼다.
법이 엄연해도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의 사슬은 이러한 형님문화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사회 곳곳에는 어두운 면 보다는 밝은 면이 더 많고 , 나쁜 사람들 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들로 인해 사회가 유지되어 나가고 그 사실은 시대가 바뀌어도 가치를 잃지 않는다.
언론은 이러한 밝은 면을 찾아서 국민들에게 자주 알리고 또한 그런 분위기가 되도록 유도해야 할 책무가 있다.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해 인기를 끌어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시청자가 즐겁고 행복해야 방송도 살아 남는다.
안 좋은 소식에 이를 가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난다는것은 언론의 책임이다.
특히 노인문제에 있어 앞으로가 큰일이다 식의 언론보도 보다는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것이다.
지켜 보건데 노년은 즐겁고 행복한 날 보다는 아프고 괴로운 날들이 훨씬 더 많다.
자녀보다는 아픈몸을 위한 약들이 더 가깝고 자신과 대화를 할 반려견이 더 가까운 경우가 괜히 있는게 아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도 오랜세월이 낳은 체험의 산물이다.
이렇듯 노년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복잡하다.
그 어려운 과정을 물 흐르 듯 비켜가는일은 논리적인 설명으로 해결 되는게 아니다.
또한 나만이 예외가 될 수도 없다.
나에게 상관 없을 것 같은 그날은 도적같이 이르고 어느새 당사자가 되어 있을것이다.
이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는 끊임없는 관심과 대화, 멀리서라도 바라보아 주는 애틋한 시선이 없이는 너도 나도 결코 자유롭게 건널 수 없는 필연의 江이다.
반가워서 긴~글 읽으며..저도 노인이며 또 노모를 모시는 입장에서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글이라 끝까지 읽었습니다.거동을 못하시는 노모를 요양병원에 모시다보니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두달만에 집으로 모셨습니다.글로써 다~쓸수 있겠습니까..
열무님 어머님을 뵈니 지팡이를 짚으시고라도 거동을 하시니 부럽습니다..
저희 어머닌 그러지도 못하시니..동생이나 저나 감당하기가 버겁네요..게다가 치매까지..ㅜㅜ
노모를 모시는 같은 입장이라 댓글이 길어 졌습니다..열무님네 가정모두가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이 착잡하다'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입니다.
흔히들 문제 해결에 있어서 '현상 - 원인 - 대책'의 방식으로
보고서나 계획서를 쓰겠습니다만 과연 정책당국자들이 입안하여 시행하는 계획을
이대로 계속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저도 저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만기친람식으로 의견제시를 못합니다만은
분명한 것은 관료. 정치인들이 위의 글을 꼭 한 번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끝까지 다 읽어보는데는 노인문제에 대한 흥분감이 앞서였였습니다
저는 뭐라 말 하기 어렵습니다만
나이 들어가는 노녀으로 가는 이쯤에서는
정말 곱게 받아들이며 현명한 대처방법을 찾아야한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고맙습니다
장문의 다큐 같은 글 보여줄 열무김치님
우선 시체조차 버려지는 현상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 같고, 그 참담함이 일반화될 것 같고, 우리의 미래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서 저절로 참담합니다. 그러면서 소박하게 이른바 '죽음복'이라도 좀 타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삼스럽지만, 노인의 권위는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 이야기하신 것이지만 예전에 노인들이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효를 중심으로 한 문화와 교육도 중심적이었지만,
살아 있는 지식 창고로서의 권위, 부의 분배자로서의 권위도 핵심적인 구실을 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스마트폰조차 어릴수록 더 잘 만지고, 컴퓨터 같으면 자녀들에게 물어야 해결되는 일들뿐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부의 분배도 그렇습니다. 이미 다 쓰신 일이지만, 이제는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으로 해결하는 문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입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언론 문제는 덧붙이신 것이지만 9번이 되어야 할 것 같고,
어쨌든 언덕님 말씀처럼 위정자들이나 학자들이 이 글을 읽어보았으면 하는 욕심을 갖게 됩니다.
열무김치님처럼 의식을 가진 분들이 자신의 생각을 널리 알리는 것도 참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스며드는 것 / 안도현
파란편지님 말씀처럼 정말 대단한 글임에 깊이 공감하는 마음입니다
문득 시 한편이 생각나서 옮겨 봅니다
먼길 떠나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한 밤이네요...
예전에는 3대가 모여 사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혼자사는 것이 오히려 일반화 되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입니다.
조금 젊은 아들들은 그 많은 재산을 섭취하고도 한 달에 돈 만원도 용돈을 부쳐드리지 않구요
어떨 때는 법에 고소라도 하고픈 마음이랍니다 ㅎㅎ
그래도 어머니 곁에서 건강하신 외할머니가 더 오래사시길 바랍니다^^. [비밀댓글]
노인문제는 정말 우리 세대에게도 곧 닥칠 일이라서
이런저런 대안을 생각해보지만
정말 열무님 의견중 대부분을 실천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노인문제 재산상속문제.. 지금 우리나이에 고민해볼 문제라서 ..
저 위에 어머님 사진.. 평생 열무김치님 같은 효자와 함께 사셔서 일생이 행복하셨을꺼 같아요.
하지만 인생의 종착역이 머지않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사진이 슬퍼보입니다.
요즘 저희 친정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지난주에도 우리집에 머물면서 각종 검사를 받으셨습니다.
시골에서 일을 많이 하신 분이라 양쪽 무릎관절을 인공으로 넣어야 하고 허리도 심하면 수술해야 할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몸이 아프신데도 평생 해오신 농사일을 놓지 못하시고 마늘심어야 할
일을 걱정하며 내려가시더군요.
78이란 연세에도 논을 사시고 재산 모으는 일에 열중이신 아버지..ㅜㅜ
나중에 자식들에게 나눠주려고 그런다고 하십니다..
자식들 재산 나눠줄 생각하지 말고 두분이 열심히 쓰시고 이제 몸을 챙기라고 하셔도 머릿속 깊이 박힌
나이드신분들 고정관념은 바뀌시질 않네요.. 이제 우리나이가 재산상속을 생각해야 할 때가 되니
조금 걱정이 앞섭니다. 6명의 형제가 다들 모나지 않고 저 같아서 별일은 없겠지만 재산앞에서는
어떤 다른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고.. 부모님 앞으로의 삶도 염려가 되고..
저에게 닥친 문제라서 긴글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위해 헌신하는 자녀들은 손꼽을 정도에요
옛말에 부모는 열자식위해 희생해가며 고생하는데
열자식은 있어도 보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은 하나도 없다고 하잖아요
이젠 양로원 요양원이 노인들의 필수 코스가 되어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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