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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6월에...소쩍새

by *열무김치 2015. 6. 16.

블로그에서 자주 오가는 파란 편지님께 놀러 갔더니 귀촉도(歸蜀途)에 관한 좋은 글이 실렸기에 재미있게 읽고 왔다. (http://blog.daum.net/blueletter01/7638646)

더구나 본문을 읽은 이웃블로거들의 의미 있는 댓글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블로그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소쩍새(옮겨온 사진)             "뭐라는 거야?"

 

             귀촉도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 나 삼아줄 ,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머리털 엮어 드릴 .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홀로 가신 임아.

 

귀촉도는 작품에 따라  불 여귀,

자규, 두견, 소쩍새, 두견이 등으로 불리는 새로서  우리 민족의 정서와 결합하여 변형되면서 많은 시가의 소재가 되었다.

소쩍새와 두견새가 같은 종이 아님에도 같은 새로 표현된 것은 중국 시가의 영향이 크다.

널리 알려진 고려말 이조년의 시조에 나오는 자규를 비롯하여, 김소월의<두견이>,김영랑의 <두견>, 조지훈의 <낙화>에 등장하는 귀촉도,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의 소쩍새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는 바로 설화의 주인공 망제’(望帝)가 촉나라에서 쫓겨난 서러움을 임에 대한 여인의 애절한 한()으로 변형시킨 서정주의 작품으로 동양적인 恨, 또는 한국 정서의 恨으로 표현되었다.  

"제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라는 표현을 보면 귀촉도는 새임과 동시 우는 모습을 나타내는 독특한 이원 형태를 취한다.

 

촉나라 임금이었던 두우는 귀향의 염원도 헛되이 타향에서 한을 품고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넋이 새가 되어  해마다 봄이면 구슬피 우는데 그 울음소리가  듣기에 따라 "귀촉 귀촉" 하며 돌아가지 못한 한으로 들렸다고 하니 사람의 감정으로 풀어내는 시를 소쩍새가 알아듣기라도 한다면 가히 기가 막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시인들은 유독 한이 많다.

청포도를 노래한 이육사는 본명이 이원록이지만 그의 수인번호 264는 또 다른 한으로 남는 필명이 되었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김소월의 진달래는 진달래가 지니는 아름다움을 넘어 恨으로 남는다.

숱한 外侵과 가난으로 얼룩진 지난 세월이 우리들 주변의 꽃이나 하늘, 하다못해 작은 돌멩이 하나라도 가벼이 보질 못하고 각기마다에 인생 여정의 아름답고 슬픈 의미를 부여했다는 생각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제 멋에 겨워 "소쩍소쩍" 하고 우는 새에게 작은 새 한 마리로서는 도저히 감당하지도 못할 커다란 덤터기를  씌울 수는 없잖겠는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애석함은 피를 흘리지도 않은 새의 붉은 입을 보고도 피를 토할 만큼의 한이 되고 , 마침내 그 피의 절규는 진달래의  붉은 꽃잎으로 낙화한다.

요즘에 들어 템포가 빠르고 음률과 음정의 톤이 반복되는 노래들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별과 사랑의 애증을 노래한 구슬픈 대중가요들이 인기를 끌었다.

숱한 고난의 세월을 인내하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애환이 보이는 주변의 사물에 녹아들어 새와 하늘, 들판의 야생화조차 거저 있는 존재가 아니 게 된 것은 조상들이 표현한 시어를 떠나 오늘을 교육하는 우리들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또 하나의 숙제가 아닐까 한다.

 

작품으로 만나는 소쩍새는 恨 을 이리도 아름답게 표현했지만 사실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소쩍새는 그리 반가운 새가 아니었다.

배가 부르게 밥을 먹는 걸 생의 소원으로 삼았던 보릿고개엔, 며느리가 들어와 밥숟가락 하나 더 얹게 됨이 결코 예쁘게 보이질 않았던지 실제로 시어머니의 며느리 구박이 유독 심했던 걸로 전해진다.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같은 여자로서 저렇게 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당시를 살아온 어머니 세대들의 생각은 다르다.

전설이 전설만이 아닌 실제의 이야기라고 말씀하신다.

하여 "소쩍 " 하고 울면 그해는 흉년이 들어 더욱 배가 고파지고, "소쩍꿍" 하고 울면 그해는 그런대로 농사가 잘 되어 적은 솥단지에 밥을 하라는 순악질 여사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줄어든다고 하는 우스개는 생활철학이 낳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며느리가 적은 솥에 밥을 해서 식구들 다 퍼주고 나면 정작 자기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었다는 극단적인 표현은 당대의 정치적인 상황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어 준 것으로 단순히 전설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각설하고,

농사를 할 때다.

이놈의 소쩍새가 꼭 새벽에 울었다.

농사를 하는 농사꾼이 소쩍새 울음소리가 듣기 싫은 건, 음흉하게 들리는 소리도 그랬거니와 새소리와 함께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해야 하는 고달픔에서였다.

지금이야 모내기를 모두 기계로 하지만 십 수년 전만 해도 모두 손으로 일일이 심어야 했다.

품앗이로 돌아가는 모내기는 근 한 달여를 내리닫이로 치달았는데, 당시 품앗이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모내기를 할 수 없었다.

새벽 4시에서 5시쯤이면, 졸린 눈을 비비고 억지로 일어나 멀건 아침 국물  한 사발 마시고  모판에 모를 찌러 나갔는데, 처음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일의 피로도가 누적되면서 점점 견디기 힘들게 되었다.

그때 간절하게 바라는 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아침 일찍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와 소쩍새가 울지 않는 일이었다.

소쩍새가 이른 새벽 소 쩍 거리고 우는 소리는 이상하게 짜증을 불러왔다.

"저 빌어먹을 새는 잠도 안 자나.."

발목이 시린 모판에서 모를 찌며 투덜대던 이웃집 아저씨의 목소리가 지금도 선연하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날이 궂어 비가 내리면 소쩍새는 귀신같이 울지 않았다.

비가 많이 내리면 그날은 모심기를 중단하고 느긋하니 아침잠을 잘 수도 있는 데다 모처럼 동네 사람들이 사랑방에 모여 막걸리 잔을 기울일 수 있었으니

모심기를 끝내고 헤어지면서 내일 아침 소쩍새가 울지 말았으면 하고 은근이 바랬던 게 괜한 게 아니었던 게다.

아침 일찍 부지런하게 울어대던 소쩍새로서는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새벽 단잠 너머로 아스라하게 들리던 그때의 소쩍새 울음소리는 참으로 야속스러웠다.

지금의 알람 기능이 그때만큼 원망스러웠을까.

모내기가 거의 끝이 나고 녹음이 짙어지면 희한하게도 소쩍새 우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저 녀석들의 생리로 보아 그 무렵 암 수 서로를 부르고 짝짓기를 하며 새끼를 부화하는 등의 자기 책임을 다 했으리라.

 

사람들이 더 야속하고 애 증타.

우는 소리가 그렇게 들린다 하여 제 멋대로 생각하고 글로 표현하여 자기들 유리 한대로 지지고 볶으니, 이쯤 되면  소쩍새나 두견새는 보상청구를 할 만도 하겠다.

그렇다면 당대의 유명 시인들이나 가객들은 변호인석에 앉아 뭐라고 변명을 하려나.

 

 

 

그러게요 어떻게 변론을 할지 궁금하긴 합니다
여기서도 새소리때문에 잠을 늦게까지 자지는 못합니다
다행히 저 사는 곳엔 큰 나무가 길건너에 있어 멀리서 들리니 상관없는데
주택가엔 집집마다 오래된 나무들이 있어서 창가에서 어찌나 시끄럽게
정말 해의 기운만 비치면 시끄럽게 울어서 도저히 늦잠 자기는 어렵습니다
이곳은 소쩍새보다는 부엉이 우는 소리가 구슬프지요
소쩍새 설화는 <촉왕본기>에 남아있는 중국 전래 민담이지요.
이 이야기는 두견새와 두견화, 즉 진달래에 얽힌 이야기로도 알고 있습니다.
망제혼의 설화를 원용하여 서정주는 <귀촉도>라는 시를 썼구요.
이 새는 소쩍새라고도 불리는 데, 거기에는 '솥이 적다'에서 유래된 가난과 관련된 설화가 전합니다.
장만영의 <소쩍새>는 이를 시화했고, 오영수의 <소쩍새>는 이를 소설화했습니다.
또 다른 것은 소위 ‘접동새 전설’인데, 이를 바탕으로 김소월이 <접동새>라는 시를 썼습니다.
알고 보면 가난한 나라 민초들의 애환이라고 해야하지 않겠는지요,
하하하 소쩍새가 비가오는날은 귀신같이 알고
울지 않았다고 하니
그것또한 저는 무척 신기하네요!!

당대시인이나 가객이라면
얼마나 말을 잘할까요
법정에 서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모습이
저절로 상상이 가네요!!ㅋㅋ
촉나라 임금이었던 두우가 유비의 아들을 말하는 거지요?

제주도에서는 소쩍새의 "소쩍소쩍"하는 소리가 듣기 어렵네요.
그래서 그 소리가 그리워집니다.
비둘기의 구~욱 하는 소리와
꾀꼬리 소리는 자주 들립니다.
중학생때까지 시골에서 살았지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새벽같이 아버지가 깨워서 논에 가자고 하면
왜 그렇게 싫었던지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
두우는 춘추전국시대 중 춘추시대 쓰촨 지방에 있던 작은 소국 촉나라 왕입니다.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기 전에 망하지요.
두우에 관한 자료는 한나라 사람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니 유비 아들과는 무관합니다.
삼국지 촉나라 망제는 유비의 아들 유선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제멋에 겨워 '소쩍 소쩍'하고 우는 새에게 작은 새 한 마리로서는 도저히 감당하지도 못할 커다란 덤탱이를 씌울 수는 없잖겠는가."
이 표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변명'도 이 표현 속의 의미가 이미 내포한 것 아닌가 싶어서 또 한 번 감탄하였습니다.
다 제멋에 겨워 듣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저에게도 외로움이 지나치다 싶을 때 그 울음소리가 더욱 절실한 적이 있었습니다.
잘읽고 갑니다.
요즘도 집 주변에 소쩍새가 살아 밤에 우네요.
웬지 슬퍼 보이는 듯한 음색으로 소쩍소쩍 하고 울어대지요
손으로 모를 심다 보행이양기가 나와 정말 편해졌는데 요즘은 승용이앙기로 전부 대체가 되어
1000평 정도는 모 심는데 한시간 조금 더 걸리는 것 같네요.
보행이앙기도 편하고 좋았는데 승용이앙기에 이어 이앙기도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여 직파시대입니다.
일장일단이 있어 뭐가 좋은지 모르지만 결국 전부 현재처럼 트랙타 직파하거나 항공직파로까지 발전할 날이 멀지 않았겠죠.
농촌의 인구 격감 때문에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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