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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기본으로 돌아가기

by *열무김치 2014. 8. 13.

 

 

 

블로그 이웃분중에 아이들 교육에 깊은 관심을 두신 파란편지님이 계시다. (http://blog.daum.net/blueletter01)

또한 인문학 발전을 위해 애 쓰시는  언덕에서 님도 계시다.(http://blog.daum.net/yoont3)

초두에 두 분을 소개함은, 두 분의 나이와 살아 온 시대, 직업등 이 서로 다르지만  우리나라 교육을 걱정하는 마음이 비슷 하다는  점에서 두 분의 의견은 구해 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소개를 드리게 되었다.

물론 두 분 께서도 널리 이해 하여 주시리란 믿음으로 눈치도 없이 혼자 김칫국물 을 마셔본다.

 

위의 단문은 학부모들의 의견을 추려  모 일간지가 실은  글이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지도 벌써 100일이 넘었다.

그동안 세월호 이야기로 해가 뜨고  해가 졌다.

그러나 속 시원하게 해결 된것은 거의 없고 마치 양파를 벗기듯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실망스러운 일만 자꾸 드러났다.

배가 침몰 하면서  속수무책 허무하게 수많은 사람들을 잃었고, 혹독한 비판이 따른 그 이후에도 배 침몰 못지않게  기막힌 일들이 꼬리를 물었다.

수사나 검거 과정에서 보여준 검찰과 경찰의 대처는 그들의 존재가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정도로 허술했다.

세월호 이 후 국가를 개조 한다는 각오로 임하겠다던 정부의 의지도 시간이 가면서 빛이 바래는 느낌이다.

세월호  특별법 등의 문제를 다루는 국회도 처음 모습과 달리 정치적 대립각을 세우고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학교나 군부대에서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이러다 보니 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모든게 불안해 졌다.

더구나 근간의 군부대 사건 사고는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분단과 국방의 의무라는 커다란 명제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둔 부모들은 좌불안석이다.

위 글이 단적으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정부에서 국가 개조를 들고 나왔지만 그게 하루아침에 될 일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는 어린 묘목을 거목으로 키우듯 긴 시간을 요구한다.

그동안 우리들은 아이들 교육에 거의 올인 하다시피 했다.

오로지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부차적인 다른 것들은 거의 무시하고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게 좀 부실해도 성적만 좋으면 모든게 덮여지고, 부모들 역시 아이들 성적이 좋아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면 그것으로 인생의 반 이 성공 한것으로 여겼다.

가장 심각한 일은  입시철마다 사찰이나 교회등 종교단체에 합격기도를 올리는 해괴한 모습이다.

좋게 보면 그만이겠지만  자녀들이 대학에 잘 들어가게 해 달라고  떼거리로 몰려가 신에게 빌 정도로 우리들의 교육관념이 피폐해 있다.

우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제대로 된 직장도 들어가고 사회적인 명망을 얻는 자리도  오를 수 있으니 사람이라면 이에 욕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들은 일부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너무도 많은것을 잃어 버렸다.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자부하는 계층이 산술적인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원칙과 규범에 반하는 행위를 함에 큰 거리낌이 없었던 까닭도, 그 자리에 오기까지 투자했던 시간과 그로 인해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투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속내가  이럴진데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 나오는 지배계층의 변칙을 통한 재화 축적,음성적 사회 일탈등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앞만 보며 달려오다 오늘에 이르러 우리들이 맞닥트리는 풍경이다.

 

수년 전 지역의 한 학교에서 청소년과 참교육 이라는 거창한 주제아래 4박5일간의 연합 수련회가 있어 참석을 했다.

이름있는 강사들이 초빙되어 꽤나 심도있는 강의가 진행 됐고,  특히 주제토론 시간에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발표를 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등의 흥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모 강사가 강의한 내용중에 아주 특이한것이 있었다.

 

내용은 이렇다.

영국에 특파원으로 나가있는 메이저 신문사의 기자가 어느날 공원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는데  어린 학생들 몇 명이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공원엔 사과나무가 많이 심겨져 있었고 공원 여기저기엔 바람에 떨어진 사과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떨어진 사과를 줍기에 어떻게 하나싶어 가만히 지켜보니, 주섬주섬 사과를 주운 아이들이 사과를 모아 사과나무 밑에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다.

기자는 아이들을 불러 물었다.

"얘들아 ,사과를 먹지않고 왜 나무밑에 가져다 놓니?"

기자의 질문에 이상하다는듯 바라다 보던 아이들이

이 사과는 우리들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지고 가면 안되고 사과나무 밑에 모아 놓으면 공원 아저씨들이 가져 간다. 왜 그런걸 묻느냐 고 되려 묻더라는 것이다.

 

사실 위 글은 내용이 좀 다를 뿐 오래전 어느 교과서에 실렸던것으로 기억된다.

위 사례를 말해놓고 강사는 수강자들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더니 색다른 주장을 했다.

그럼, 우리들도 저 모범스러운 학생들을 본받아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야 되느냐.

강의 내용은 다소 의외였다.

 

**교육이라는 원칙엔  이의가 없다.

하지만 나라 마다의 삶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듯, 지리적 조건과 살아 온 바탕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똑같이 강요하면 안된다.

자원 없는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문화와 기술을 다각도로 받아들여 모방을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걸 만들어 이를 자본시장에 내다 팔아야 먹고 사는데, 원칙적인 방법만 고수하고 융튱성이 부족한 아이로 키우면 미래의 파이를 키울 수 없다.

주운 사과를 사과나무 밑에 가져다 놓는 아이도 필요 하지만, 먹기도 하고, 집에 가져 가기도 하고, 심지어 모아다가 팔기도 하는 등  다양한 생각을 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것이 진정한 교육의 목표다.

글로벌 시대는 다재 다능한 인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교육을 보는 시각의 폭이 단조로우면 결코 21세기 한국이 요구하는 인재육성이 어렵다.**

 

한 사례를 예로 들며 다양한 시선의 강의를 하자 이내 질문이 쏟아졌다.

"그건 궤변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옳고 그름에 관한 틀을 깨고  교사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기본에 반하는 내용으로 교육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다소 언짢은 표정을 하던 강사는 답답 하다는듯

"지금 방법에 관한 얘기를 하는겁니다. 교육은 결국 고정관념을 누그러트리는것이지 원하는 모양을 억지로 만들거나 강요해선 안된다는거지요.

이것은 남의 사과는 반드시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는 양심의 문제나 원칙에 준한 행동과는 다른 문젭니다.

생각의 다양성을 키우기 위한 방법론을 말하려고 하는겁니다."

나를 비롯한 강의를 듣던 수강생들은 불편한 심기가 되었다.

바라는 바 교육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이나 방법의 유연한 융통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못 알아 듣는건지  아니면 강사의 자질이 의심스러운건지 다소 날 선 몇번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고 강의시간은 껄쩍지근하게 끝이 났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그때 그 강사의 강의가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다양한 생각을 가진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은 나름 선견지명이었다.

예로 든 사과를 주운 아이들 이야기를 교육강의에 대입한건 어설프긴 했지만.

그러나 우리들은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다양한 생각은 그만두고 횡과 종으로 줄을 세우고 자기 생각 대신 정책적으로 획일화 된 모범답안을 강요 받았다.

아이들은 조금만 틀 을 벗어나도 적응에 애를 먹거나 실패하기 일쑤였다.

작금에 벌어지는 군부대 가혹행위나 일탈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에게 일벌백계 가혹한 처벌을 한다고 해서 이런 일들이 근절이 될까.

그 뿌리를 끝까지 캐어 본다면 아이들을 기계같이 키운 기성세대들의 잘못으로 귀결된다.

오로지 대중이 원하는 공부에만 매달렸던 가슴없는 세대로 키워 놓고 모든것을 잘 해 내기를 바랬다면 이런 욕심도 없다.

게임 세대라고 표현을 해도 이상할게 없을만큼 각종 폭력 게임에 노출되어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를 그런 방면으로 풀던 아이들은 그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가상과 현실에 대한 구분이 모호해짐을 통계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대응책은 늘 경제논리의 그늘에 가리워져 있었다.

잔혹한 게임이나 무차별적인 인터넷 세상에 익숙해진 세대들은 군부대 환경 역시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한다.

듣기 싫겠지만 지금 전면에 나서서 사회의 잘 잘못을 꼬집으며  언성을 높이는 언론이나 방송이 상황을 이지경으로 만든 주요 매개체다.

그동안 국민들의 알권리와 미디어의 사회적 역할론을  앞세워 무차별에 가까운 선정적 컨텐츠의 융단폭격은 젊은이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자양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도 군부대 사건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성질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

아날로그로 대변되는 60~80년대의 군생활은 지금보다 복무 기간도 긴데다 환경 또한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열악하고 조악했지만 나름의 위계질서가 잡혀 있었다.

적어도 동료를 살해 하거나 다치게 하는등의 일탈 행위는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았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단일 성으로 모인 우악스러운 집단이었지만 서로 아껴주고 보듬어 주는 훈훈한 위 아래의 정이 틀림없이 있었다.

인성교육의 부재다.

사건이 일어나고 별 별 이야기가 다 나오고 여러 방지책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모두들 입을 모은다.

전이라고 이런 말이 없었을까.

하지만 교육상 말이 그렇다는거고 공부만 잘하면 이런 일 따위는 항상 먼발치에서 기죽어 살았다.

원리원칙이라는 말처럼 재미없는 단어가 우리사회 어디에 있을까.

교통질서 지키기,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식당이나 공원등에 가서 소리 지르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기, 휴지 함부로 버리지 않기,

어른들 만나면 깍듯하게 인사하기,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기 등등..

사실 이런 좁쌀영감같은 잔소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아이들의 기를 꺾는다거나 배짱이 없는 소심한 아이로 키운다는 피해의식이 있었다.

식당에서 마구 뛰어 다니는 아이를 보고 한소리 하면, 왜 남의 자식 기를 꺾느냐..당신이 뭔데..하는 식이었다.

하여 경찰서에 가서 좀 더러운 꼴을 보더라도 내자식이 남의 자식을 두들겨 패는게 보기좋지 얻어 맞아 코피 흘리고 오는꼴을 참지 못했던게다.

대범하고 도량이 넓은 아이로 키운다는 부모들의 기본적인 마인드가 사실 이랬다.

 

이제 멀고 먼 길을 돌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뒤, 이제보니 그게 아니다, 이제라도 기본으로 돌아가야지 이대로는 안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원칙을 알고, 책임감을 배우고, 다른사람을 생각 할 줄 아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수 도 없이 듣던 옛날 방식으로 돌아 가자는 것이다.

이 말이 지금 나온거라면 얼마나 신선 하겠는가.

하지만 모법답안 같고 샌님같은 이런 이야기는 수 없이 들어서 하는이나 듣는 이 모두 그렇거니 한다.

그걸 몰라?

부정부패 근절 , 사회정화, 바르게 살기운동..

삼청교육대 라는 前代未聞의 희한한 정책까지 동원 했지만 주체 스스로가 부정부패에 빠지는 악순환의 고리는 원리원칙이라는 말을 흉악한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요즘 젊은이들이 마치 흉악한 짐승을 보듯 경멸하는 일부 메이저 신문사나 방송은 언론을 통제하던 암흑기의 잔재를 말끔히 털어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국민들의 의식구조를 장악 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고있다.

이런 기조가 유지되는동안 도덕적인 가치관을 우선으로 알고 살았던 우리들이 우리도 모르게 변해 버렸다.원칙과 규범에 준해 살아야 한다는 말 대신 시대와 상황에 맞게 살아야  결과적으로 제구실을 하고 산다는 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습득했는데, 이런 나무에 달린 열매가 세월호인것은 하나도 이상할게 없음에도 우리들은 지금에 와서 원칙을 무시 했느니 기본을 지키지 않았느니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 

그동안 한다 하는 정책가나 전문가들이 외국의 사례를 견주어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사건이 있을때마다 사후 약방문으로 온갖 처방을 내어 놓았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국민들이 느끼는 걱정과 근심의 지수가 해마다 높아지기만 하니, 도데체 어디가 문제냐,어디서 부터 잘못 된거냐 를 놓고 갑론 을박이다..

신문사의 일방적인 주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변의 정황을 보아도 아이를 키우는 주부들을 통해 이에대한 해답을 제시 하는듯한 움직임이 일고 있음은 분명하다.

공부에 앞서 기본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의 전환이다.

고무적인 것은 이것이 정책 입안자들이나 교육자들이 아닌 교육의 발원이 되는 부모들이라는 사실이다.

과거 치맛바람의 주인공들이고, 교육이라면 옳고 그름을 떠나 불구덩이에라도 뛰어 들었던 장본인들이 생각의 틀을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 되겠다는 희망이다.

그동안 교육전문가들을 통해 당장이라도 사생결단을 낼 듯한 수많은 대책들이 나왔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얘기가 있었느냐는 듯 흐지부지 된게 부지기수라, 웬만한 사람들은 여간한 대책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소 닭 보 듯 강건너 불구경 하 듯 심드렁 했다.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는데다 상황은 점점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꼬여가기 때문이다.

학교나 교육자들이 양치기 소년이 된지 오래다.

 

기실 반듯하고 모범적인 생활 운운 하는게 일반인들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준건 아니다.

군부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정의사회 구현이니 공공질서 확립이나 하는 구호들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 보다는 정치적인 통제 수단으로  변질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적당하게 요령 부리고 때에 따라 처신 하는게 살아가는데 유리한 점이 많았으니, 기본을 지킨다던가 책임을 다 한다던가 하는 반듯함은 왠지 손해라는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생을 어느정도 산 사람들이 이런걸 모를리 없는데 갑자기 기본을 지키자든지, 무엇을 어떻게 해보자 하는식의 바람은 또 어떤식으로 국민들의 생각을 통제하고 옭아 맬것인가 하는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그러나 지금은 당한 처지가 전과 다른데다  살 좀 보태서 절박하기까지 하다.

마치 드라마처럼 벌어지는 작금의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국민의 생각이나 행동을 스스로 바꾸고 있다고 본다.

하여 다시 꺼내 든것이 기본이니 원칙이니 하는 수 도 없이 울궈먹던 말 아닌가.

이제, 또 그말이야? 라고 달겨 들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게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정치권 역시도 자신들의 무능으로 빚어진 일에 내심 당황스러워 하는 눈치다.

이것은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얻어낸 결과로 이번이 마지막 기회 일 수도 있다.

지식인들의 책임도 크다.

자신들이 향유하는 가이드 라인을 그어 놓고  정상적이지 못한 사회의 흐름에  쓴소리를 내지 못하는 적당주의자들의 집단이 되었다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부에 앞서 ,교통법규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 , 길거리에 떨어진 휴지를 휴지통에 넣는 일등의 아주 작은 원칙 부터 서서히 몸에 배도록 연습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작게나마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어린 나무가 거목이 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듯 아이들 역시 나무와 같다.

더불어 자연을 보고 배우는 경험 역시 우직한 나무를 닮아가는 일이다.

세월호는 오랜 시간, 기본을 불신한 ,어찌보면 예정된 결과다.

원칙이나 양심에 준하는 행위등은 살아가는데 손해라는 패배의식이 학습으로 굳어져 오래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던게다.

이제 높다란 벽에 둘러싸여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현실을 맞닥트리고 나서야 우리들이 대수롭잖게 보아 넘겼던 작은 질서들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 어렵고 힘들겠지만 아직도 듣기 어색하고 거북한 기본이라는 것을 몸에 배도록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이런 행동들이 편해지고 자연스럽게 될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금 부터라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번 세월호 사건이나 군부대 사건은  마침표가 되는게 아니라 진행형이 될 수 밖에 없다.

부정하고 싶지만 지금까지 우리들이 붙잡고 온 현 교육 시스템의 한계다"

 

어린 자녀들을 둔 이땅에 사는 부모들의 하소연이다.

 

아래 동영상은 가까운 이웃 블로거분이 포스팅 한것을 옮겨 왔는데 어린 새끼들이 스스로 올라 오기를 기다려 주는 어미 오리의 새끼 교육이 감탄 스럽다.

 

 

 

 

 

 

 

선생님!
참으로 요즘 같은 세월에는
아이들 키우시는 부모들은 아이들 밖에 내 놓기가
쉽지만은 않은 세월 이기도 합니다
도한 정치판을 가만 들여다 보면 이곳은 싸전도 아니고
돗떼기 시장도 아니고 참으로 한심하기 이를 때 없습니다
세상은 발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나라는
역사를 거슬러 가고 있으니~~~
아이들에게는 강요 하면서 정작 어른들은 지키지 않는 약속 ~~`참 많지요, 선생님1
좋은 글 올려 주심에 감사드리며
비 내리는 오후지만
마음만은 상쾌하고 싱그러움으로 가득 하시기 바랍니다,선생님!
너무도 공감이 가는 글을 읽고 제 자신부터 많은 반성을 합니다.
우리 나라가 어떻게 될려고 이 지경인지요
뉴스를 볼때마다 짜증이 나고 정치인들 모습하고는...열불이 터집니다.
어제 저녁 모임을 다녀오는 길,
지하철 내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5명이 얼마나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는지요.
저도 종요히 하라고 예기 할까 맘 먹고 있는데
옆에 게신 남자 노인분이 고함을 치며 조용히 하라고......
속이 시원했지만 충고를 하는 그 분도 좀 고운 목소리로 하셨으면 좋으련만,
학교 선생들 교육 안하고 뭐했느냐고 발끈하던 말끝에
"가정교육부터 학교 교육,사회 교육 모두를 탓해야지요
요사히 학교 현장 잘 아시지 않느냐고 반문했더니 조용히.......
교직을 퇴직햇던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군의 왕따 폭력!
어디서부터 그 근원을 찾아야할까요
한숨만 나옵니다
일곱 가지를 하나하나 읽어봅니다. 거의 이미 본 것들입니다.
모두 절실하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그 중 한 가지를 빼고는 다 절실하다고 하는 것이 편리하겠지요?
가령 어느 국회의원이 "그럼 당신은 21세기를 살고 있고, 나는 1960년대 사람이란 말인가! 그럼 왜 나에게 투표했는가?" 하고 물으면 대답이 궁하겠지요?
다만 "이 세월호 선장 같은 놈아!"는 우습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합니다. 좀 오랫동안 살려 쓰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저렇게 저를 소개해 놓은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쑥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강사 얘기는 좀 우스웠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생각의 다양성'에 대한 사례로서는 별로 적절치 못한 것을 들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이만큼이면 얼마나 깊은 생각을 하셨을지, 얼마나 오래 컴퓨터 앞에 앉아 계셨을지 생각했습니다. 새삼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절실하셨기 때문이겠지요. 솔직하게 말하면 서민들은 몰라도 지도층 인사들이 시간을 내어 읽어주었으면 생각합니다.

문자메시지에 단점을 콕콕 꼬집에 내었습니다
정치권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네요
지금 상황을 보면 언제 이런 사고가 일어날 지 모를 상황입니다
대처가 되고 있는지 지금 많은 일들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요즘와서 사건이 더 많이 터지는 것 같습니다
모순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든 것이겠지요ㅡ부정이 아직도 판치고 있으니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다
영국의 아이들이 사과를 주워다 사과나무 아래에 갔다가 놓았다는 그런 일화가 마음에 닿습니다
한국의 어린이들은 과언 이럴까요. 인성교육도 그렇고 교육도 땅바닥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언제 톱니바퀴가 맞아 기웃등거리지 않고 계절의 순리마냥 잘 돌아가려는지 한국의 국민으로서 답답한 마음입니다 ^^
공부보다는 작원 원칙부터 지켜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가네요!!
모든사람이 기본을 지킨다면
혹시나 나만 이래서 손해를 보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못할텐데 하는 마음입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눈이 두 개인 원숭이가 길을 잘못 들어 눈이 하나 뿐인 원숭이들이 사는 숲속에 가고 말았습니다.
눈이 하나인 원숭이들은 눈이 두 개인 원숭이를 병신 취급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현실이 꼭 그 이야기 속의 우리를 지칭하는 듯하여 속이 쓰립니다.
기본을 지키는 사람이 두 눈을 가진 원숭이 입니까?
아니면 외눈 원숭이가 정상인 시대인데 우리가 그걸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까?

저 역시 이 포스팅을 많은 분들에게 전파하고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대체적인 사회 윤리 수준이 지금의 우리 나라보다 더 나쁜 나라가
어떤 나라일까, 생각이 들게 되는 적이 많아요. 군사 독재의 후유증인
면이 많다는 생각도요. 영혼을 돈과 맞바꿨다는 말과 함께요.

옳지 않은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범법 행위를 하고도 장관, 총리 청문회에 나설 수 있는 사회잖아요.
(유명 정치인이, 저번 시장 선거 때는 내가 양보했으니 이번은 내
차례라고 말하는, 안 하기가 아주 쉬운 바보스런 실수(?)도 쉽게 하는
그런 사회 분위기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요.)
새끼 오리들을 보면서 . . .
눈에 눈물이 맺힙니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이렇게 혼란스럽고 불신이 판을치는 사회가
되었을까요.
대가족시대 에서 핵가족화 되어가면서 그리고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부부가 함께 출퇴근 하는 맞벌이 시대가 열리면서
빨리빨리 문화와 경쟁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들을
하나씩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성교육은 뒷전이고 오로지 대학입시에 촛점을 맞춰서 교육을 하는
우리의 미래가 걱정이 되기만 합니다.
요즘에 일어나는 사고들을 보면은 안전불감증에 공무원들과 사회지도층들의
부조리가 이렇게 속수무책의 인재사고를 양산해 내는것 같습니다.
편안한 날 되세요.
이제는 진짜로 우리 사회가 내실을 다지고 기본을 지키는 것으로 변화할 시점이지요.
배고픔과 추위를 어느 정도 극복한 단계에서 건실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이 다수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너무 요원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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