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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7월....비내리는 가설극장

by *열무김치 2014. 7. 24.

 

 

                                                                                                                                                              

60년대 산골은 라디오도 귀하던 때였다.

마을에서 좀 머리가 깨였다는 양반이 지금으로 말하면 유선방송 비슷한 시설을 해놓고 라디오방송을 보내주는 일을 했는데, 장비라는 게 같잖아서 집집마다 작고 허름한 스피커 한 대씩을 달아주고 라디오 방송을 송출해 주는 식이었다.

라디오가 없는집이 거지반 이었으니 이것도 인기가 좋아서  집집마다 스피커를 달았는데 한 달 사용료는 쌀 두 되였다.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웃음이 나올 일이지만 이것도 엄연한 사업이라 그 양반은 바쁜 농사철에도 자전거를 폼나게 타고 다니며 사장 노릇을 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부모 대하듯 대접해 주었다.

이 스피커는 곧 잘 엉뚱한 용도로 전용이 되기도 했다. 마을의 관혼상제를 공개적으로 알리거나 면사무소에서  공적인 일을 주민들에게 전달해 줄 때 아주 요긴한 수단이 되었다. 평소 모습을 뻔히 알고 있는 동네 이장도 이때는 무게를 잡고 목소리를 깔았다."에.. 친애하옵고 존경하옵는 주민 여러분, 꽃 피고 새 우는 시절에 댁내 무고 하십니까.  알려 드리겠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밤이 내리면 호롱불 켜놓고 식구들이 모여 앉아 뉴스를 듣거나 연속극을 듣는 일은 큰 즐거움이었다.

지금 젊은이들이 SNS의 facebook 등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듯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어젯밤 들은 연속극의 내용이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집집마다 달아놓은 스피커는 그 당시 문화생활의 필수 조건이었다.

 

 

 

 

                                                                                                                                 

어쩌다 마을에 가설극장이 들어왔다.

요즘 영화를 보는 일은 누워 떡 먹기보다 쉬운 세상이니 영화에 대한 매력이 전 같을리 없다.

하지만 흉악한 산골에서 영화를 보는일은 그야말로 꿈에 떡 맛보기여서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죽은 조상이 살아서 돌아온 것만큼 반가운 일이었다.

동네 여기저기에 허름한 영화 포스터가 나붙고 중간중간 영화를 선전하는 확성기 소리가 동네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제일 몸이 다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영화를 보기는 해야겠는데 돈은 없고 엄마한테 돈 달라고 해봐야 부지깽이로 등짝이나 맞을 테니 이도저도 여의치 않았다.

해서 방법을 찾은 게 동네 여기저기 영화 포스터를 붙이는 일을 하고 영화표를 한 장 얻는 거였는데, 영화표 두 장을 얻기 위해 이 삼십 리 먼 동네까지 가서 영화 포스터를 붙이고 오기까지 했다.

그 아르바이트까지 하지 못한 아이들은 영화 상영이 시작되고 중간쯤 경계가 허술해질 무렵 가설극장 포장을 열거나 찢고 몰래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성공률은 많지 않아 이내 걷어 들리고 혼찌검이 나곤 했다.

그 영화를 보겠다고 코 찔찔 흘리며 손들고 벌을 서던 아이들이 이제 환갑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것은 영화 상영일이 열흘이라면 사나흘은 꼭 비가 내렸다.

낮에 멀쩡 하다가도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영화를 보려고 하면 중간쯤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비가 주룩주룩 내려도 동네 사람들은 일편단심 굳세게 버티고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

어떤 날은 아예 우산을 들고 들어갔다.

아시다시피 한국 영화는 우는 장면도 많고, 슬픈 영 화나 멜로영화에 비는 왜 그렇게도 자주 내리는가.

이별하는 장면이나 극적인 만남, 남녀의 애틋한 사랑장면엔 반드시 비가 내렸다.

아름다운 여배우는 비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우수에 찬 눈동자로  남자들의 가슴을 후벼 팠고, 이별하는 아이와 엄마는 빗속을 헤매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도 덩달아 눈시울을 적셨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그런 영화를 볼 때 다이내믹하게도 하늘에서 궂은비가 내렸다는 사실이다.

엄마 손을 붙잡고 동백 아가씨를 볼 때이다.

오래된 필름을 구해 돌리자니 스크린엔 줄이 죽죽 가는 비가 내렸고 영화의 장면에도 비가 내리더니 드디어 하늘에서도 진짜 비가 내렸다.

난 어머니의 치마를 우산 삼아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는데 어머니와 동네 사람들은 내리는 비를 아랑곳 않고 눈시울을 적시면서 끝까지 영화를 보았다.


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영화의 장면에 따라 냄새도 나고 바람결도 느끼는 등의 입체 시스템이 각광을 받을 거라는 소식이다.

그러나 이미 몇십 년 전에 이보다 더 리얼한 체험을 했으니 입체 시스템은 이미 맛보고 겪은 터라 첨단 과학이 울고 갈 일이다.
비 내리는 영화내용에 비 좍좍 맞아 가면서 실감 나게 영화를 감상했으니 제 아무리 첨단과학이 만들어 내는 입체시스템의 영화라고 해도 이보다 더 사실적일 수 있겠는가.

비 오는 날, 사랑하는 연인이 우산 받쳐 들고 애틋한 눈길로 마주 보며 진한 사랑영화를 한 편 보는 일은 평생에 한두 번 있을법한 일이다.

한데 그런 장소가 없으니 애석한 일이다.

 

누가 알겠나.

지금은 외면받는 야외 영화관에 획기적인 사랑 아이템을 도입해 대박을 터트릴지.

 

 

 

 

 

 

 

 

 

 

 

ㅎ ㅎ 재미있네요.
저렇게 실감나게 입체적인 영화 감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지금 그 기분에 좀 젖어봅니다. ㅎ
전 가설극장 구경 참 많이 했습니다.
혹시나 지금이라도 차려 놓으면 들어갈것 같습니다.
행운은 매달 우리 곁을 찿아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거의 다 놓지고 만다고 하네요
무덥지만 정신 바짝 차려서 ^-^ 출발하시고
행운도 꽉 잡으시길 바랄께요
반갑습니다^&^~
2본 동시상영하는 극장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때는 그곳에 열심히 갔던 기억이 납니다.
주로 박치기왕 김일의 레스링 영화로 기억합니다.

고교시절에는 옆자리 친구를 꼬셔 '별들의 고향'을 보러간 적이 있습니다.
물론 교복을 입은 관계로 매표소에서 저지당했지요.
저는 교외지도반에 잡힐까 마음을 졸였는데
그 친구는 아무런 걱정없이 표를 끊더군요.
알고 보니 친구의 아버지는 총경 계급인 경찰서장이었습니다.
이후에 어른이 되어 별들의 고향을 다시 보았는데
19금이라고 할 요소들이 전혀 없어서 좀 지나친 정책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치기 왕 김일은 가설극장 들어오면 아예 학교 교실로 그들을 불러서 담요로 창문 가리고 전교생이 본 기억이 납니다.
중간에 필림 막 끊어지고..

별들의 고향은 군에서 보았지요.
19금은 당시로서는 가능했겠지만 요즘 같아서는 싱거운 수준이지요.
군에서 공병대대장을 삼촌으로 둔 녀석 덕분에 혜택(?)을 본 경험이 있습니다.
재미있게 담으셨습니다.
행복하세요.
방문 고맙습니다.
좋은 휴일 되세요.
스피커 이야기에, 지금은 흔적도 없어진 그 시골집이 떠올랐습니다.
어려웠던 세월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그야말로 너무나 리얼한 옛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으니까
그 옛날이 현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어렵더라도 모든 것 그대로인 그 옛날, 한두 시간이라도.

이미자의 저 노래가 당시 그 스피커에서 나오던 노래 같기도 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이게 추억이겠지요.
선생님 말씀처럼 좀 어렵고 힘들더라도 순수했던 그때로 다시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든 귀하게 여겼고 감사했던.

오늘 유원지를 거쳐 왔는데 넘쳐나는 쓰레기를 보면서 이대로 가다간 우리모두 쓰레기에 묻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레기를 버리기위해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바쁘신일 모두 끝나시면 시간 좋으신대로 연락 주세요. [비밀댓글]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잠시라도 하시는 일에 지장이 있을까봐 걱정스럽습니다.
저는 이런 기억이 없으니..ㅎㅎ
초등학교때 언니랑 라디오에서 어린이 연속극을 열심히 들었던 생각이 납니다.
대학때 컴터 수업이 필수여서 첨 컴터를 접했는데
그 당시 이렇게 인터넷이 발달하여 검색만으로 모든 궁금증이 해결되리란 상상은 전혀 하질 못했었지요.
앞으로 어떤 요지경속 세상으로 변할런지 기대가 됩니다.ㅎㅎ
우리동네도 라디오유선방송이 있었죠.
요금은 가을에 나락 한말인가 했던 것 같네요.
이 이야기를 전부터 블로그에 올려야지 하고 있었는데 먼저 올리셨네요 ㅎㅎ

가설극장 이야기 역시 까맣게 잊고 있던 이야기네요.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 공개하려고 마음만 먹고 있었네요.
여긴 비가 안 왔는데 산골이라 기후가 달랐던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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