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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과연...

by *열무김치 2013. 3. 27.

 

 

 

 

 

 

 

 

 

남한강이 가로지르는 강원도와 경기도 경계선 근처에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생필품을 팔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나 다슬기, 고기를 잡는데 필요한 어구등을 주로 팔았다.

가게 주인은 80이 훨씬 넘은 노인장이었는데 할머니는 4년이 더 위인 요즘말로 연상의 여인이었다.

한달에 한 두 번 그곳을 들르면 두분은 늘 찌그덩한 툇마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오랫만에 왔구만.

온김에 좀 많이 주고 가.지난번엔 물건이 없어서 못팔았어."

컵 대신 큰 사발에 타주는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머리에 큰 수건을 두른 할머니 한분이 사이다를 사러 오셨는데 그 할머니 손이 하도 시커멓기에 할머니가 돌아가신뒤 슬쩍 여쭈어 보았다.

"아이고..할머니가 저렇게 볼품 없어도 아들이 서울 무슨 법원의 판사여."

"아..그래요.할머니가 대단하시네요."

"그러면 뭘혀. 팔자가 사납긴 마찬가진데..."

아들 하나 딸 하나를 금쪽같이 공부 시켜서 출세를 시켰는데 할머니는 여전히 비탈진 밭에서 김매는 신세란다.

"서울 가셔서 좀 편하게 사시면 되지요.고생하지 말고..

"尹씨도 그런소릴 다하네..다 알면서 뭘 .."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동네가 떠들썩하게 잔치를 하고 처음엔 자주 왔다고 한다.

할아버지 가게에 와서 이거저거 많이 사가고 쇠고기도 자주 끊어 오고.

하지만 결혼을 하고 한 두 해 좀 내려 오더니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그 할머니는 동네사람들이 당신아들 이야기만 꺼내면 정색을 하고 역정까지 낸다고 했다.

그리곤 엣날처럼 여전히 비탈진 밭에서 김을 매신다고 했다.

"팔자소관이지 뭐. 또 서울 가 봤자 찬밥이고...지금까지 밭이나 맸는데 거기가서 뭐 하겠어. 그냥 밭이나 매는게 편한거지.

그렇게 살다가 죽는거여."

" 그래도 아들이 판사인데 저렇게 늙은 어머니가 홀로 힘든 농사일을 하는건 좀 그렇네요."

"아들놈이 판사지 할멈이 판사가 아니잖여.품안에 있을때가 지 자식인거지 떠나면 그걸로 포기 해야 혀.

우리는 우리식대로 사는거제. 지금이 농사를 지어먹는 시대도 아니고...

아..尹씨는 뭐 다를줄 아능감? 기대하지 말어."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선인 남한강

 

집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남의 이야기로 막연하게만 그렸던 이런 일들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고, 나 자신도 그런 비슷한 삶에 서서히 발을 들여놓고 있다는 사실에. 

그건 도덕적인 잣대를 들여밀어 재단을 할 일도 아니고 부모 자식이라는 틀에 자신의 생각을 억지로 끼워 넣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살아 온 세월이 다르니 자기 방식대로 사는게 남의 눈을 의식한 삶 보다는 나을지도 모르니까.

지금의 아들 딸이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운가.

하지만 그렇게 살갑고 다정하던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고 결혼을 하면서 서서히 남이 되어 간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부모 마음은 여전하여 변해가는 아이들의 삶을 얼른 받아 들이기 힘들다.

나이들어 가면서 일상적인 소소한 일에도 서운해 하고 자식들의 작은 무관심에도 허전해 한다.

부모님을 오래 모시고 살아보니 그렇다.

그러나 지금같아서는 그럴일은 절대로 없을거라고 스스로 긍정한다.

최선을 다해 살았고 아이들도 그걸 아니까.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속일리 없다.

생활이 나를 속이고 세월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속인다.

어쩌면 이건 다음 세상을 위한 조물주의 계획인지도 모른다.

사람간의 정이 한없이 애틋하면 그 끝은 깊은 상처로 남을 수도 있으니.

자신들의 삶을 살아 가기도 바쁜 지금의 아이들에게 먼 앞날까지 기대하고 바라는건 애초부터 잘 못 끼워진 단추가 아닐까.

어쩌다 어머니가 아프시다고 전화를 넣는다.

수화기 너머로 올해 77세이신 첫째 누님의 반응은 대개 이렇다.

"많이 아프시냐? 이제 아픈게 당연하지.. 그저 주무시다가 편하게 가셔야 하는데 ..

나도 사방이 아파서  죽겠다. 다리도 아프고.

나 못가니까 너나 잘 해 드려라."세월 너머의 어머니는 어머니이고 오랜간 떨어져 살았던 인정은 이미 수직관계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다.그러다 돌아가시면 며칠간 상복 입고 왔다갔다 하다가 자신의 삶으로 훌쩍 가버린다.참으로 허무한 일이다.그것은 이건 이렇게 해야 도리다 라는 고정관념을 간단하게 비웃어 버린다.오랜 세월이 낳은 미운정도 사랑이니,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라는 말이 자신을 위로 하려고 사람들이 지어 낸 말이 아님이 분명하다.사람은 이렇게 정을 떼면서 홀로의 길을 가는 듯 하다.

 

 

 

모 TV 프로그램에 일주일 용돈을 1000만원 가까이 쓰는 천만원 푼돈녀 라는 방송이 나왔다.

하루를 살아가기 바쁜 사람들에겐 눈이 휘둥그레지는 내용이었다.

방송을 보자니 1000만원을 쓰는 주인공의 지론이 특이했다.

자기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것처럼  돈을 막 쓰는게 아니라 나름 의미있게 쓰는데 쓰는 만큼 되돌아 온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그러기 때문에 돈을 써도 아깝지 않고 남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의 일상이 소개되었다.

그녀는 매일 외제 자동차를 번갈아 랜트하여 타고 다녔다.

마사지샵에서 자신의 미용을 위해 기십만원의 맛사지를 받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점심을 먹고

친구들을 만나고 자주 거하게 돈을 썼다.

자신을 가꾸기 위해 성형외과를 자주 드나들고, 그 비용도 일반인들이 보기엔 입이 벌어질 정도의 액수였다.

그녀는 스탠드 바(stand bar) 를 운영하며 상당한 돈을 벌고 있었다.

얘기 하는걸로 봐서는 집안도 상당한 재력가로 보였다.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아 주로 개인생활을 위해 일주일에 1000여 만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딴지를 걸 마음은 없다.

나역시 마켓팅을 하는 사람이니 어찌됐든 소비는 경제를 원활하게 돌리는 윤활유나 같으니까.

동남아 쓰나미로 해변 국가들이 곤경에 처했을때 그들의 상처에 누가 될까봐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끊었다.

피해국들이 고통을 당하는데 유유자적 관광이나 하는게 도리가 아니라는 세상 사람들의 인심 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엉뚱한 고통을 호소해 왔다.

쓰나미 피해도 고통이지만 관광객들이 발길을 끊으면서 당장 먹고 살아 갈 길이 막막해 졌다는 것이었다.

하여 그들은 주요 관광지부터 우선 복구를 하고 예전처럼 관광을 와 달라고 세계 여러 나라에 호소 하며 매달렸다.

얼마 뒤 신문에는 한쪽에서는 피해복구를 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수영복 차림으로 느긋하게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진이 실렸다. 

 

어느 중소기업에서 아주 비싼 재료를 이용해 고급 가방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가방이 사치품이라는 질타를 받으면서 마치 그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나쁜사람 쯤으로 몰렸고 결국 가방을 만든 회사는 감원을 하는등 고전하다가 문을 닫게 되었다.

 

요즘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장사도 안되고 중소기업의 물건도 잘 팔리지 않아 하소연이다.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 진데다 불확실한 미래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닫게 만들고 있는것이다.

어찌됐든 돈을 쓰고 소비를 해야 숨통이 트일것이다.

1000만원 푼돈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방송을 진행하는  진행자들이 히히덕 대면서 별 이야기를 다 했다.

심지어 그녀를 회장님이라며 추켜 세웠다.

자본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꽈배기처럼  비꼬려고 이런 방송을 기획 한건지, 아니면 단순히 세상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라는 다양성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막상 방송을 본 일반인들은 심기가 편하지 못했을것이다.

삶의 다양성을 인정 한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소시민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기 때문이다.

자기가 번 돈으로 , 자기가 가진 부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금액을 의식하지 않고 돈을 쓴다...

형태야 어찌됐든 그건 경제적인 숨통를 틔우는일에 일조를 하는 것인데 돈 있는 사람들이 펑펑 써야 되지 않겠느냐...그래야 없는 사람들도 좀 살지.. 라고 은근히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경제대국 일본이 왜 저렇게 주저 앉았는데..우리도 이제는 사회적인 통념을 벗어나 좀 더 개방적이고 거시적인 눈을 가져야 한다....

소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는 사람들의 과감한 소비가 사회의 지탄이 되는 편중된 사고는 버릴때도 되었다...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살아가는 일이 간단하지 않음을 두가지 사례로 다시 확인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산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마치 어려운 수학문제를 앞에놓고 끙끙대는 수험생 같은 기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써놓은 경험의 산물인 책을 읽고 이게 정도의 삶이다 라는 충고와 권면의 말들을 듣는다.

나 또한 살아온 날들의 경험이나 느낀바를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전해주고 일러준다.

그러면서도 막상 부딯치는 실생활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거나 좌절하기도 한다.

 

당장의 생활이 급한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국가에서는 빚에 시달리는 악성 채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빚 탕감을 추진하고 있다.

요즘,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이 문제를 두고 세인들간에 박탈감을 호소 하거나 보통의 삶이 저울질 당하고 있다.

보기에는 부실한 금융권을 조정하고 극한 어려움에 처한 채무자를 어느정도 구제하는 일이 경제의 숨통을 틔우는 정책이라고 보는것 같다.

 

국민들의 삶의 기준은 이미 21세기를 뛰어넘는 소비형태를 달리고 있는데 상위층을 제외한 일반인들의 수입규모나 질은 날이 갈수록 떨어진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들은 별 내색이 없는것 같고, 여전히 거리에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활보하며 사람들은 잘 입고 잘 먹는다.

어느새 우리들 손에는 고가의 스마트폰들이 자석처럼 붙어 다니고  모임의 장소마다 질좋은 음식들이 넘쳐난다.

익숙한 이런 모습들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늘 아쉽고 갈급하다.

년봉 2000만원을 걱정 해야하는 우리의 자식들이 엄연 한데도 이미 우리들의 실생활은 일정부분 되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내 자신 포기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면 자명해 진다. 

당당한 외양의 모습과는 달리 틈만 나면 생활을 걱정하는  우리들의 진짜 모습이 어떤건지 가끔은 아리송 하다. 

 

미디어의 순기능이 무얼까?

그저 눈에 비치는대로 전달해 주는게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해 주고 정보를 전달해 준다고 보는걸까?

방송이나 언론도 알고보면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니 별 수 없다라고 한다면 더이상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일주일에 보통 사람들이 1년을 벌어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을, 대부분 자신의 안녕을 위해, 그것도 돈은 써야 다시 돈이 들어온다는 얼른 수긍하기 힘든 제목으로 버젓이 방송을 하여  살기 고단한 시청자들의 염장을 지르는게 방송이 할 일일까?

나 역시 십수년 마켓팅으로 소비의 미덕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 왔는데 참으로 껄쩍지근한 일이다.

 

 

 

 

 

                                                                   헤이~!  뭘 그리 복잡하게 사노....

 

 

 

 

                                                                      알았제..

 

                                                         

 

 

                                                                                               ........아니야..~

 

 

 

                                                                                                                                                       (3컷...옮겨온 사진임)

 

 

 

과연....

글을 읽는 내내 침울한 마음을 떨쳐 낼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도 아프고(더불어 내 친정엄마에게 하는 내 마음도 반성도 되고)
아침 엄마의 전화 목소리가 마음에 자꾸 걸립니다.
일년 360일 편찮다 하시니.....

과소비도 적당히 해야지요.
저는 솔직히,거짓말 하나도 보태지않고 저런 사람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많이 번 사람들이 많이 써 경제가 제대로 돌아간다면야 무슨 문제가 될까마는....

잣대란 게 필요없는 세상이 된 듯 합니다.

글 전체가 제 마음을 어둡게 하네요.
날은 이렇게 좋은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머리감고 봄볕 맞고 돌아와야겠어요.
천만원이 푼돈이라..
늘 월말 결재에 시달리는 입장에서 한편 부러운 이야기긴 합니다.
누군들 저런 생활이 싫겠어요.
하지만 말씀처럼 보통 사람들은 하라고 해도 못하지요.
아무리 내돈이어도 살아 온 환경에 따라 쓰는것도 크기와 그릇이 있을테니요.
분명 방송이 실수를 한거 같습니다.
아들이 판사라는 할머니 이야기가 왜 이리 마음이 아픈지요
“판사는 아들이 판사지 할멈이 판사가 아니라”고 말씀하신
가게 주인 할머니의 말씀도 옳은 것 같아 마음 찡합니다.
이미 효란 단어는 사라지고 없어진 듯하여
우리 세대가 생각하고 바랐던 기준조차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싶구요.

솔직히 서민들은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천만 원 푼돈녀 이야기는 차라리 방송을 하지 말았어야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님의 말씀처럼 미디어의 순기능이 제 기능을 못한다면
거기에 따르는 부작용은 한 없이 커질 테니까요
저도 전혀 부럽지 않은 푼돈녀입니다.
요즘은 방송도 뻔뻔한 구석이 많아서 시청자들의 알권리를 내세워 별의 별 방송을 다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저 방송을 보고 허탈스러운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보통 사람들은 알뜰하게 가꾸며 삽니다.
큰아들 후배가 부장 검사인데 서울에 살며 작은 아파트에서 아들 딸 둘을 공부시키며 살고 있습니다.
웬만한 공부는 에미가 집에서 시키고 꼭 해야만 하는 것만 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판 검사면 잘 사는줄 아는데 월급 받아서 아이들 공부 시키며 산답니다.
그 장모님이 우리 아침운동을 같이 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는것은 잘못된것이지만 실제로 부모님을 도와들릴 수는 없는것같으네요.
글쎄요. 처가집이 잘 살며는?

어떻게 만인이 보는 TV에서 그런 방송을 했는지 알수가 없네요.
우리 보통 사람들은 수입과 지출을 마추어 근근히 살고 있는데.......
요즘 같은때에 방송국을 고발해야하는 것이네요.
제가 아시는 분도 검찰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다가 퇴직을 했는데 검소하게 사십니다.
요즘 검찰이 욕을 많이 먹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거라고 전 믿습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할머니가 아들에게 갈 뜻이 없는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바쁜 생활을 반복하다보면 마음이 멀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산수유가 노랗게 피고 매화도 슬슬 준비를 합니다.
주말에 나들이 한 번 하시지요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메스컴에 뜨는 사람은 극 소수지요.
위에 말한 사람도 아주 유망한 사람입니다.

공무원이 바르게 살며는 보통 사람과 같은것이지요.
옛날이 아닌 지금은 그렇습니다.
열무김치님 과연 이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해 봅니다.
오래전에 블로그에서 읽었던 두 이야기가 생각이 나네요,
하나는 여섯번째 라는글이고 하나는 촌년 50만원 이라는 글입니다.
첫번째 글은 외동아들로 자란 아들이 잘되어서 부모님이 함께 살아 계실때는
시골을 자주 다니며 잘 하더니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재산을 탐낸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서울로 모시고 갔는데 남편 앞에서는 아주 잘 모시는것 같이 하고는
시아버지 밥도 제대로 차려주지도 빨래도 해 주지 않고 매일 놀러 다니며
시아버지 한테는 집을 보게하고 집에서 기르는 개 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아서
어느날 나는 여섯번째 라는 글을 써 놓고 가출을 했는데 아들이 이글을 보고서
아내에게 이혼선언을 하면서 아내가 다시는 않그러겠다는 이야기고
두번째는 검사인가 판사 아들을 둔 홀어머니 이야기인데 어느날 시어머니가
농사를 진것을 갖고 서울 아들집에 갔다가 우연히 며느리의 가계부를 보았는데
촌년 50만원 이라고 적혀있는것을 보았는데 가만히 보니까 자신에게 매달
며느리가 부쳐준 돈과 날짜가 같더랍니다.
그래사 그길로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시골로 내려 왔는데 아들이 전화해서 무엇이
서운해서 말도 없이 내려 가셨냐고 자꾸 캐물어서 사실을 이야기 했더니 아들이
며느리와 자녀들을 태우고 처가집에 가서 처자식은 들여 보내고 자신은 들어가지
않으니 장인 장모가 왜그러냐고 해서 내 어머니를 촌년이라고 하는 사람과는 살수가
없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장인이 딸을데리고 사돈댁을 찾아가 손발이 다 닳도록
빌었다고 합니다.
저 가게집 할머니 말씀처럼 우리네 부모들은 자식이 판 검사 되었다고 유세를 떨거나
목에 힘주려 하지 않지요.
효도라는 것은 자식이 잘 되어 고래등 같은 집을 지어 드리면 좋겠지만
우리의 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자식들이 건강하고 좋은 가정을 이루어 잘살길 바라고
가끔 이라도 전화라도 해주어서 어디가 불편한것은 없는지 건강은 어떤지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갖고 소외되지 않게 해 주길 바라지요.
뉴스에 하루에 5~6억의 숙박료를 써서 미국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미국의
부통령 이야기가 화자가 되고 있는데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낸 세금을 함부로쓴
사람들은 지탄 받아야 하겠지요.
늘 건강 하세요.

촌년..50만원.
듣고보니 마음이 그렇네요.
그 며느리에겐 시골에 보잘것 없는 시어머니는 손님이거나 그냥 신랑 어머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아들 딸들이 건강하게 잘 사는것도 부모의 바람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돈 쓸일도 많으니 물질적인것으로도 잘 해 드리면 금상첨화지요.
생활비 안준다고 아들을 상대로 부양비 소송을 하는 세상이지만 웬만하면 조금씩이라도 용돈을 드리는게 안부만 묻는것보다는 낫다고 봅니다.
어른들도 이제는 돈 쓸 일들이 자꾸만 많아 집니다.

좋은 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주말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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